식민지(2)
“여러 모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동아시아 질서의 패권자는 청입니다. 청이 그리 약한 나라는 아니지 않습니까? 프랑스도 제법 고전해야 할 겁니다.”
“그 나폴레옹도 청을 잠자는 사자라 칭했습니다. 동아시아와 암흑 대륙의 토인들은 다를 겁니다.”
음...... 그래.
사실 청은 병신이 맞긴 하지만.......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차관이 입을 열었다.
“전제 조건?”
“먼저, 동아시아의 사정에 대해 해박하며, 또한 유능하며 대영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검증된 이를 동아시아 지역에 보내야 합니다. 신분이 낮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고요. 경험은 좀 부족하더라도 최소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을 공사나, 그 정도 수준의 요직 혹은 그 보좌관에 배치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흠.”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인선이 생각나는군, 다음은?”
“조약 내용의 해석에 따라 갈리겠으나. 영국제 무기를 직접 공급하는 것은 조약에 문제가 될 소지가 없지는 않습니다.”
“어디 타국에서 조달해 와야 한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럼 이탈리아나, 조약에 참여하지 않은 독일의 공국 등에서 조달해올 수 있지 않겠나.”
“예, 그렇습니다.”
“좋군, 아주 좋아. 조금 예산 소요가 있긴 하겠지만 인도의 안전을 위해서는 싼 값인 셈이지.”
원 역사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돌파해 인도 아대륙으로 러시아군이 들어올 거라면서 설레발을 떨어댔던 영국은 지금은 프랑스가 그 깊은 정글을 헤치고 인도차이나 반도를 기점으로 인도를 공략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동인도 회사에 최대한의 협조를 지시해야 할 듯 합니다.”
“우선 필요한 예산의 확보는.......”
한 번 대략적인 방향이 정해지자, 회의는 빠른 속도로 진척되었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성공하면 프랑스에게 개망신을 줄 뿐 아니라 인도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고, 실패해도 손해볼 건 예산뿐이다. 꼬리를 잘라버리면 그만이니까.
같은 방식으로 프랑스가 영국 식민지에서 분탕을 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영국은 식민개척의 선두주자고, 그곳의 식민지는 영국이 장악하고 있다.
국가체제가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와는 상황 자체가 다른 것이다.
“젠티안 자작.”
“예, 장관님.”
“자네가 해줘야 할 일이 하나 생긴 것 같군.”
“예?”
“유럽 내 국가들 가운데 빈 조약 비가맹국으로써 쓸 만한 무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국가와, 무기 종류에 대해 리스트를 뽑아보게,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야겠지.”
“외람된 말씀이오나 장관님, 꼬리가 길면 걸릴 위험성이 큽니다. 제 소견으로는 차라리 저들이 스스로 유럽제 무기를 생산할 역량을 갖추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네 판단에 맞도록 수행하게, 하지만 단 하나만 명심하게나, 절대 꼬리를 잡혀서는 안 되니, 영국과의 연관성은 터럭만큼도 있어서는 안 돼.”
“물론입니다.”
***
“대체 당신네들은 뭔 짓을 한 거요? 그 글자를 왜 지워!”
“....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국장님이 내용에 대중들에게 알려질 경우에 발생할지 모를 폭동을 염려하셔서.......”
“빌어먹을, 그럼 적어도 내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기다렸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저 개들은 대체 뭐하자고 끌고 온 거요?”
“국장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범인의 냄새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에 개가 투입되면..... 홈즈 씨도 예전에 개를 쓰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크레오소트라는 특징적인 물질이 그의 신발에 묻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고! 대체 무슨 수로 경찰과 시민들을 포함해 수백 명은 족히 다녀갔을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냄새를 찾아낼 수 있단 말이오!”
무능한 상관 덕에 대신 욕을 얻어먹는 신세가 된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죄인이 된 표정으로 홈즈의 힐난을 들어야만 했다.
“단 하룻밤 만에 두 사람이 더 살해되었습니다. 경찰국에서는 물론이고 내각에서도 범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백지 수표라도 드릴 겁니다.”
“어차피 내가 모은 재산만 해도 공작의 재산에 부족함이 없으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단서를 당신들 손으로 다 때려부숴놓고 내가 점이라도 쳐서 범인을 잡기를 바라오? 차라리 당신들이 빠져 있는 편이 훨씬 쉽겠소!”
분통을 터트린 홈즈는 그나마 잘 정리되어 있는 증언기록을 뒤졌다.
“세 번째 살인에 목격자가 있었네. 그리고 이 살인마는 제법 충동적인 인물이야. 정신병을 앓고 있을 확률도 낮다고는 할 수 없겠군.”
“설명해주겠나?”
“최소한 지워버리기 전에 내용을 기록해두기는 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지, 세 번째 살인이 벌어진 시점에서 유대인인 슈바르츠 씨가 현장을 목격했고, 여자를 폭행하던 남자가 립스키라고 외치자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성이 자신을 쫓아오길래 몸을 피했다고 증언했네, 즉 현장에는 피해자를 빼고도 최소 세 사람이 있었던 거지. 슈바르츠 씨의 증언이 정확하다는 것과 현장에 남겨진 혈흔을 감안할 때 몇 가지 가능성이 점쳐지네.”
“말해주게나.”
“첫째, 일단 슈바르츠 씨가 범인을 목격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애초에 이 살인은 계획범죄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지나가는 아무나를 타겟으로 잡아 살해한 살인 사건이네. 피해자와 면식이 있지도 않고, 이해 관계도 없어.”
“보통의 범죄는 원한, 이득, 신념이라는 세 가지로 원인을 압축할 수 있는데, 이 셋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례거든. 그래서 내가 상당히 심각한 정신병자라고 한 거네, 문제는 이게 겉으로 봐서는 정신병에 걸렸는지 알기도 어려운 경우라서 어지간한 의사들도 골머리를 썩이겠지, 피해자들이 미리 알고 경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칼을 들고 덤비는데 대체 무슨 수로 경계하겠나. 특히 이런 낮선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하는 이들이.”
“담배를 피우는 남자는 공범이었겠지?”
“아니, 확신할 수 없네, 우선 립스키는 유대인의 성 중 하나이자, 유대인을 비하하는 명칭 중 하나네, 게다가 작년에도 시시한 사건이 하나 있지 않았나.”
“살인을 시시하다고 말하는 자네 말에는 절대 동감할 수 없네만,”
“아무튼 간에 이 가설이 맞다면 주변 인물을 이용해서 귀찮아질 것 같은 상대를 떨쳐낸 행동이지, 사실이라면 제법 지능적인 행동이야. 자네 말처럼 공범의 존재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겠네만.”
“그런데 자네도 지능적이라고 할 정도의 행동을 정신병자가 취할 수 있나?”
“아니, 자네가 생각하는 그건 전혀 아닐세, 저런 유형의 살인범들은 범행의 결정은 충동적으로 할지언정 그 과정은 철저하게 준비하네, 만약 공범이 있다면 주범에게 심리적으로 강하게 억압, 차라리 종속이라 부르는 게 맞겠지, 그런 경우일 거고, 지극히 드물지만 없는 일은 아니네. 그리고 경찰의 추론은 전혀 쓸모없어, 범인이 꼭 의학적 지식이 있을 이유는 없거든, 외국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이 이를 뒷받침하네.”
“외국에도 이런 사건이 있었나?”
“일본에는 토오리마(通り魔)라는 요괴의 전승이 있네, 아무 면식도 없는 이에게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다는 요괴인데, 내용 자체는 미신이지만 그런 종류의 범죄가 없으면 그런 미신이 생겼을 리가 있나? 일본만 그런 것도 아니네, 찾아보면 전 세계에서 유사한 종류의 범죄들이 수두룩하게 나올 걸세, 범인이 잡힌 범죄도 있고, 아닌 범죄도 있겠지.”
이번 홈즈 에피소드를 읽어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하나의 폭로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살인 행각과, 미치광이 살인마를 뒤쫓는 홈즈, 잡을 의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헛발질만 해대는 답답한 경찰들의 모습에만 집중하리라.
하지만 그들도 느낄 것이다.
왜 그들이 표적이 되는지.
런던 시내의 인적이 드물어질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는데도 그 공포를 이기고 거리로 나와서 손님을 찾아야 할 만큼 가난하니까.
모르거나, 애써 눈을 돌리거나 하는 이들에게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저들은 저런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물론 우리의 이야기는 살인사건의 해결이기에, 사건 현장으로 나타나는 이들의 비참한 생활 환경에 대해 묘사할지언정 이들을 도와야 한다거나 하는 말은 없다. 정황증거로 건조하게 묘사될 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과하면 역효과니까.
물론 이게 당장 저들의 인생을 바꿔줄 무언가가 되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1856년에 모든 물고기가 폐사한 템스 강에서 풍긴 냄새 때문에 의회에서 탈취제와 표백제를 총동원해 냄새를 빼고, 1861년 영국의 앨버트 왕자가 템스 강 물을 마셨다가 숨져도, 1878년에 대악취로 의회를 도저히 열 수가 없어서 의회가 폐회되어도, 콜레라가 창궐해도 꾸역꾸역 눈을 돌리고 있다가 2차대전도 다 끝난 1950년대에 와서야 정화 사업을 시작한 게 영국인들이다.
이제 와서 내가 소설 하나 써서 화이트채플 빈민가의 실태를 고발한다고 해서 사회복지가 생겨나면 말이 안 된다. 애초에 빈민가가 없어진 게 나치가 런던을 공습했을 때 빈민가 전체가 홀랑 타버려서 아예 싹 재개발했던 걸로 아는데.
그러나 적어도 경각심을 줄 수는 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정말 기적이 일어나서 뭔가 복지체계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나는 여기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
스위스에 와 있으니까.
“요하네스 와일드 박사.”
“예....... 음, 성함을 뭐라 불러드려야 하겠습니까?”
“그냥 헤어 뮐러(Herr Müller : 뮐러 공)이라 부르시오.”
뮐러는 방앗간 주인을 뜻하는 평민의 성이고, 헤어는 귀족 지칭어.
즉 대놓고 가명이다.
“... 뭐 좋습니다. 뮐러 공, 그래서 저희를 찾으신 이유가.......”
“총기를 주문하고 싶소.”
“죄송합니다만.....”
“많이, 군대를 무장시킬 만큼.”
“군대입니까?”
“일단 만 단위부터 시작하겠소, 난 대충 10만 정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모르지, 그쪽 상황에 따라 달라질지도.”
와일드 박사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당연히 대금은 지급할 거요, 다만 방법은 좀 비공식적으로 해야겠지만.”
“어느 나라입니까?”
“알려줄 수 없소.”
“뮐러 공,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 총기들이 스위스 서약 동맹의.......”
“스위스의 중립을 침해하는 데 쓰일 일은 없을 거요, 그 보장이면 되겠소?”
“그리고 스위스의 국익에 결과적으로 해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걱정 마시오, 그 총기가 유럽에서 쓰이지는 않을 테니.”
총기 기술자인 요하네스 와일드는 눈 앞에 앉은 상대를 뜯어보았다.
‘그런 돈은 함부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어느 국가의 정부 쪽 사람, 프랑스어 억양으로 보든 창백한 피부로 보든 귀족임은 확실한데.’
어느 나라가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대량의 총기를 사들이는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바이에른? 프랑스? 아니면 사르데냐? 시칠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러시아?
짐작가는 상대가 너무 많다. 일단 단순히 소국이 쉽게쉽게 지출하는 건 아니고, 그 정도 돈을 가볍게 지출할 수 있는 나라는 굳이 여기까지 와서 소총을 살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지금 창설이 추진되고 있는 스위스군을 위한 소총이나 만들고 있던 판인데.
“여기서 혹시 화포도 판매하오? 야포 말이오.”
“야포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그걸 구하시려면 크루프 쪽으로 알아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크루프가 이미 있었던가...... 있으면 거기도 가보긴 해야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 메모지에 크루프를 적어놓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