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30화 (30/60)

식민지(1)

결혼식이 모두 끝난 밤, 아니, 차라리 새벽이라 불러야 할 시간에 나는 침실의 발코니에 있었다.

차디찬 새벽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조금씩 푸른빛을 띄기 시작하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달.

정확히 한 달 뒤부터, 나는 외무성으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

이미 역사를 원 위치로 돌려놓기는 글렀다. 글러도 한참 글렀다.

그러니 최선을 다한다.

‘최악만 피하는 걸로.’

첫째, 어차피 지금 기술로 댐 건설은 뭘로 봐도 무리수다. 이 시대 최고의 천재인 브루넬이 코웃음을 친 목표니까 확실하겠지.

그러니 최악이라고 해 봐야 프랑스의 국가파산과 혁명이다.

그리고 둘째.

제국주의를 약화시킨다.

제국주의는 막말로 뽕이다.

국민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마약이 필요했던 거다, 물론 식민지에서 자원을 수탈하지 않았냐고 하면 아니지만, 그게 꼭 필요한 자원이었던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이건 영국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당장 글래드스턴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가진 것은 문필가로써의 명성.

그러나 그 명성도 결국 한계가 있다. 소설 잘 쓴 게 총리를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 그게 가능했으면 저 디즈레일리도 7수하지는 않았어야지.

‘하지만 내가 그나마 개입이 가능한 게 영국이야.’

즉 외무성에서, 영국의 국익을 최선을 다해 대변한다.

영국이 최대한 식민지를 많이 가져가면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최소한 죽고 나서 21세기 한국으로 돌아갔더니 한국이 바나나 공화국 꼴이 되어 있는 꼴은 보지 말아야 할 거 아닌가. 돌아갈지 안 돌아갈지도 불명확하다만 돌아간다면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낼 수 있다면.

내가 역사를 뒤튼 결과가 단 한 명의 목숨을 더 살려내는 결과가 된다면. 원 역사보다 눈곱만큼이라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역사가 변한다면 그걸로 좋다.

지금까지는 그냥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쯤 되니 책임감이 느껴진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사람들이 분명히 죽을 거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 꿈도 꾸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덜 죽게 만들 수 있을 거다.

사람들이 고통받겠지만, 그 수를 줄이거나 그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거다.

이미 내가 가볍게 놀린 손에 세계의 역사는 심하게 틀어졌다. 그렇다면 그걸 더 좋게 돌리지 못할 이유는 어디 있다는 말이던가.

***

홈즈는 벽난로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게 사건을 주게,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을, 모리어티 교수가 죽은 이후로 런던은 재미없는 동네가 되어버렸단 말야.”

“양식 있는 시민들이라면 자네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걸세.”

“나도 아네, 범죄가 줄어야 더 세상에는 좋다는 건. 경시청 사람들이든, 아니면 시민들이든,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겠지, 다만 이제 문제가 된 건 실업자가 되다시피 한 어느 사립 탐정일 뿐이지..... 응?”

홈즈는 몸을 반쯤 일으켜 창문을 내다보았다.

“저 길 건너편에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서 있군, 무슨 일이지?”

잠시 뒤, 허드슨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홈즈 씨,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찾아오셨.....”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덜컥 열렸다.

“홈즈 씨,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굉장히 상황이 급해져서..... 사과는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소, 안 그래도 무료해서 죽을 지경이었거든. 무슨 사건이오?”

“살인입니다.”

“살인? 신문에서는 보지 못했소만.”

“신문에 나면 도저히 여론 통제가 안 될 겁니다. 일단 경찰 내에서만 수사하고 있지만, 언론에 나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진척이 없어서....”

“아니, 무슨 일이길래 그렇소? 어디 높은.......”

“그건 아닙니다. 피해자들은 매춘부들입니다.”

“들?”

“사망자는 최소 두 명입니다. 오늘 밤에 사망자가 더 늘지도 모르죠.”

“호오.”

홈즈는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곧장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현재까지의 경찰 조사 결과를 읆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펜을 내려놓았다.

내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셜록 홈즈였다.

“잭 더 리퍼.”

아직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그 정체불명의 살인마.

그러나 잭 더 리퍼는 본의 아니게 어마어마한 사회공헌을 했다.

잭 더 리퍼의 무대였던 화이트채플의 빈민가의 실상을 영국 전역에 알린 것.

이미 16세기 후반부터 영국 공권력은 화이트채플을 사실상 포기했고, 17세기 말에는 이미 초거대 빈민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미래에 세워질 구룡성채 이상의 마굴인 것이다.

당장 잭 더 리퍼의 시대에는 화이트채플에만 매춘부 1200여명과 업소 60여개 이상이 존재했다는 통계도 있었으니까.

첫 두 명의 피해자는 숙박업소의 침대를 빌릴 4펜스가 없어서 매춘을 하러 나왔다가 살해당했다. 잭 더 리퍼의 것으로 확실시되는 마지막 피해자 역시 집세가 밀려서 잭 더 리퍼의 두려움에도 억지로 나왔다가 살해당했다.

그 사실이 영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그 빈민가의 비참한 실상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영국 의회가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빈민구제의 첫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셜록 홈즈를 통해 화이트채플의 실상을 고발할 것이다.

선정적이고 사실에 들어맞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선동을 할 필요는 없다. 진실만 말하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당장 멀쩡한 나라의 수도 한가운데에 공권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빈민가가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 아닌가.

원작에서는 셜록 홈즈가 잭 더 리퍼를 상대할 일은 없었지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범죄자와 실존하지 않는 탐정을 맞붙이기로 결정했다.

그 진실을 조금 일찍 고발하기 위해서.

창작물이기는 해도, 화이트채플의 비참한 실상은 활극 속에서 충분히 녹여낼 것이고, 거기에는 한 점의 거짓도 없으리라.

여기에서 나는 뭔가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저 실상만을 보여주고, 빈민을 구제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집어넣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 글을 읽는 자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만들 것이다.

그게 진짜 사람들을,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이니까.

***

한 달 후, 영국, 외무성.

“제법 큰 효과를 보기는 했소만, 동남아시아 지역을 저 개구리들에게 넘기게 되었다는 게 다소 아쉽군.”

“암흑 대륙에서 이미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개구리들이 인도 아대륙에 접근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단 말이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놈들이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지는 몰랐네만.”

유럽의 전통은 잘나가는 놈 두들겨패기.

영국이 너무 급격하게 덩치를 불리자 프랑스든, 프로이센이든, 오스트리아든 간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프랑스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동맹 움직임이었지만, 영국 외무성은 굉장히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동맹한다고? 그 개와 고양이가?”

“잠재적인 위협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실존하는 위협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강역을 회복하고 싶다면 결국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모두를 위협하게 될 텐데, 결국 프로이센이 찢어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프로이센이 떨어져나가면 너덜너덜한 프랑스와 이빨 빠진 호랑이 오스트리아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걸 증명하듯이 오스트리아는 애초에 제대로 뭔가를 얻어가지도 못했다. 프로이센은 그래도 식민지 몇 곳을 자신들의 몫으로 확정받은 것과는 반대였다. 프랑스도 아프리카에서 간신히 완전히 축출당하는 것만 면한 판이었고 그나마 아시아에서 조금 개평을 챙겨간 수준.

그렇기에, 영국과 러시아의 외교단은 상황을 굉장히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한 고관이 입을 열었다.

영국의 능력은 외교.

어차피 영국 혼자의 능력만으로는 죽었다 깨도 유럽 대륙을 혼자 정복할 수 없기에 한 발 물러나서 강한 놈을 두들겨패는 방식으로 영국의 지위를 보전받아온 것이지 않은가?

물론 이번에 러시아와의 동군연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 모르지만, 일단 아직까지 이 방침의 전환이 명문화된 적은 없었다.

“명백히, 동남아시아에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발을 들이밀 여지를 남겨놓은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또한 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여지 역시 이번에 차단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뭔가 인도 아대륙의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방안 필요합니다.”

“동감하는 바네, 혹시 좋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제가 발언할 수 있겠습니까?”

출근한 건 고작 며칠 전이지만, 이 안에 대해서는 내가 그동안 생각한 게 좀 있었다.

“말해보게나. 자작.”

“현지인들을 지원하는 겁니다.”

내가 고민 끝에 결론내린 제국주의를 꺾어버린 최선의 수단.

현지인들의 무장이다.

“현지인들?”

“분명 빈 조약에서는 특정 국가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해당 지역에 대한 군사개입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우리가 나서서 전쟁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레드코트와 로열 네이비가 움직이면 조약 위반이지만, 무턱대고 침략했다가 현지인들의 격렬한 저항에 못 이겨서 패배한다면....... 그건 스스로의 책임 아닙니까.”

“그 현지인들이 브라운베스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지?”

“그 현지인들이 브라운베스와 영국제 야포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물론 비밀리에 해야겠지요, 무기야 민간 상인들이 팔아넘겼다고 주장하면 프랑스도 말이 궁해질 겁니다.”

“그게 가능하겠나? 그 열등한 유색인종들이 프랑스군을 이길 수 있다고?”

저 인간은 꼭 한 대 치고 싶게 말하네, 진짜. 말 자체도 짜증나는데 말투가 비꼬는 투니 기분이 두 배로 더럽다.

“쉽지야 않겠죠, 하지만 프랑스군의 역량 강화는 치명적입니다. 루이필리프가 살고 싶다면 어디서든 성과를 내야 할 판에, 빈 조약은 가뭄에 단비 아니겠습니까.”

“즉 왕조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움직일 거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현재 프랑스군은 정예병들의 대부분은 러시아와 워털루에서 쓰러지고, 그나마 남은 군사력도 네덜란드에서 쓰러진 상태입니다. 지금 남은 건 문자 그대로 쭉정이들뿐이죠. 무기를 제대로 된 걸 가져다주고, 비밀리에 소수 고문단을 동원해 군사훈련을 시키면 거리상의 문제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할 수 없을 프랑스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주는 일은 충분히 가능할 듯 합니다.”

“호오.”

“또한 암흑 대륙과는 다르게 동아시아는 이미 천 년이 넘도록 국가체계가 자리잡았고, 왕조는 여러 번 교체되고 전쟁도 있었을지언정 자체적인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저 토인들을 규합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높은 일입니다.”

내 발언에, 좌중에는 침묵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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