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질서(2)
파티장 바깥에 휴게실 비슷하게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디즈레일리와 마주앉은 나는 홍차의 향을 맡았다.
“향이 좋군요.”
“요즘 홍차들도 믿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악덕 업자들이 스트리크닌과 고양이 똥을 홍차에 섞는다는 소문도 있으니 말입니다.”
음, 그거 진짜야.
나중에는 그 자극적인 맛에 중독된 사람들이 스트리크닌 홍차만 찾았다는 얘기도 있긴 한데, 일단 다른 건 몰라도 그거 독극물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거 먹고 골로 간 인간도 제법 있을 거야.
“젠티안 자작님.”
“말씀하십시오.”
“자작님은 대영제국이 가야 할 길은 어느 방향이라 생각하십니까.”
“그야, 이미 자명한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빙긋 웃었다.
“선각자의 짐, 맏형의 의무를 수행해야죠.”
“맏형의 의무라.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저 역시 부족하지만 작가고, 동시에 당신의 책을 읽었으니 말입니다.”
홍차 한 모금이 목구멍으론 넘어간 뒤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레이트 브리튼에는 식민지가 필요합니다.”
“동의합니다. 전적으로요.”
디즈레일리의 성향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은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전진, 그리고 전진>
적극적인 확장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
그리고,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 역시 그에게 식민개척의 논거를 제공해 주었다.
제국주의의 논거를.
“의원님과 제가 전성기를 맞기 전에 증기선이 모든 바다를 항해하는 날이 올 겁니다.”
나는 별거 아니란 듯이 말했지만, 디즈레일리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범선은 명백히 현역이다.
증기선은 크게 늘고 있지만, 증기선은 어디까지나 연안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탄소가 없어서다.
석탄을 대량으로 소모하는 증기선의 특성상, 석탄의 효율이 그렇게 좋지도 않아 배에 싣는 양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 중간기착지에 대규모의 저탄소가 필요한데, 이 중간기착지를 싹 식민지로 만들고 항구를 개발해 석탄을 쌓아야만 증기선이 대양을 돌아다닐 수 있다.
제국주의 전성기의 열강들도 그게 힘들어서 상당수의 열강들은 그걸 처음으로 성공시킨 영국에게 외교적으로 한 수 접어주면서 영국의 석탄 공급 네트워크를 빌려다 써야 했다.
그게 아니면 그들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가면서 저탄소를 따로 세우든가. 이도저도 싫으면 식민지랑 계속 범선으로만 교류해야 한다.
“물론 그 전까지는 범선이 계속 현역일 테니, 저 역시 나름 돛을 개량하는 연구도 해보는 중입니다만. 특허도 두 개 정도 냈습니다.”
“오롯이 대영제국의 힘으로만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 예측하시는 겁니까.”
“당장은 아니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으리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사람은..... 당신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막 의회에 들어온 사람을 너무 띄워주시는 것 아닙니까?”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제법 좋다 자부하니 말입니다. 당신은 언젠가 총리까지 오르고도 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제가 총리에 오르면 자작님이 특허를 내신 신형 돛을 왕립해군에서 채용하게 하겠습니다.”
농담조로 말한 디즈레일리는 브랜디를 탄 홍차를 조금 더 마셨다.
“아우렐리아(Aurelia : 라틴어로 황금의 나라)까지도 대영제국의 영광이 미쳐야죠.”
“하, 그걸 또 기억하셨습니까? 제가 제 책을 읽은 사람들과 대화한 바에 따르면 절반 넘게 그 동네 이름도 기억 못하던데 말입니다.”
“이름이 흥미로워서 말입니다. 엘도라도와 같은 작명 아닙니까.”
“우연히 구한 고대 역사기록을 보고 재미있어서 말입니다. 황금의 나라. 저는 대충 이상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는 했습니다만, 실존했던 나라입니다. 지금은 지팡구(일본)의 서쪽, 중국의 동쪽에 있는 작은 반도국가인 조선입니다만. 머나먼 과거 존재했던 신라라는 천년왕국 시절에는 정말 엘도라도와 같아 그 수도는 저택들에 금박을 입힐 정도로 부유했다더군요. 진짜 엘도라도가 있다면 거기였겠죠. 물론 에스파냐인들이 찾으러 나가기 수백 년도 전에 반란과 내전으로 멸망했습니다만.”
“일본의 서쪽, 중국의 동쪽이라, 무역하기는 좋겠군요.”
“.........”
디즈레일리는 한반도가 나온 세계지도를 본 적도 없겠지, 대충 이탈리아 같은 동네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절대 아니올시다. 뭐, 내가 그 착각을 정정해줄 이유는 없지만.
사실상 신대륙으로 가기 전 구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나라로 내가 묘사한 탓에 아우렐리아까지 그 영광을 떨치겠다고 한 거지 설마 진짜로 조선까지 가서 포함외교로 개항시키겠어?
하더라도 흥선대원군 시절이면 그냥 신미양요나 병인양요 하나 추가되고 마는 거겠지 뭐.
근데 흥선군이 몇 년생이더라.
기억도 안 나는 건 머릿속에서 치워버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레이트 브리튼이 그 모든 지역을 온전히 장악할 필요는 없지만, 전략적 요충지인 경우,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해 자치령이든, 보호국이든 묶어둘 필요성은 있습니다.”
디즈레일리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입으로는 반론을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는 무작정 식민지를 늘리다가는 상당한 곤란에 빠지게 된다는 전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그 불충했던 13개 식민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거 참, 내숭 떨고 있네, 내가 당신 정책방향을 모르는 게 아닌데 어디 한 번 떠보겠단 건가.
“13개 식민지는...... 막말로 머리가 너무 굵었죠. 게다가 북미 대륙이 너무 좋은 땅이었습니다. 현지인이야 있어봐야 인디언이죠, 적당히 자급자족하기는 어려워서 지원이 필요한 땅, 거기에 현지인들이 어느 정도 있어서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인구수를 차지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면 직접 지배가 가능하기는 할 겁니다. 다만 그게 아닐 경우, 지배층에게 확실하게 영향력을 심어두고 보호국으로 두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그들에게 문명을 전해줘야겠죠. 아마 생각보다 금방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입니까?”
“기업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니 말입니다. 만약 대륙 간 운송비용이 충분히 저렴해진다면 기업들은 본사와 사무실 등을 제외한 단순 공장들은 하루에 1실링도 안 되는 돈으로도 열심히 일할 식민지인들을 고용하기 위해 그곳에 공장을 세우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군요.”
“아니면 대규모 전쟁이 터져서 전선이 고착된 상태에서 몇 년씩 끌거나, 그럴 위험이 큰 곳이라 군대가 주둔하는 등의 이유로 대량의 공산품 수요가 그 인근에 존재한다면 또 모르겠군요. 아예 왕립해군의 조선소를 지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하지만, 대륙간 운송비용은 비싸다. 정말 비싸다.
물론 육로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한참 싸기는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은 변함없다.
그, 80일간의 세계 일주였나? 그것만 해도 생각해보면 21세기에는 하루이틀만 투자해도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런데 이 시대...... 아니, 기차가 사방군데 다 다니고 증기선도 자유롭게 다니니까 지금보다 좀 더 미래겠구나, 내가 그게 몇 년도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인지를 모르니. 아무튼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 80일이 걸렸다는 거 아닌가.
거기에 배 크기도 훨씬 작아서 한 번에 실어나를 수 있는 양이 훨씬 적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아무튼 간에 이 시대에 대륙간 운송비용이 거의 똥값이 되어서 인건비까지 계산하면 가난한 나라에 공장을 두는 게 훨씬 이득이 되는 시기가 오리라는 말은 그야말로 공상과학의 영역이겠지, 굳이 비유하자면 언젠가 인류가 화성에 도시를 세울 거라는 정도일까?
물론....... 물론 이 시대가 좀 기술만능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알파고님... 아니 기술이 언젠가 뭐든 다 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진 면이 있긴 한데. 아니, 이건 21세기도 마찬가지던가. 생각해보니 19세기랑 21세기의 차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지도?
잠깐 딴 생각을 한 나는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
“백인의 의무 말이군요.”
“백인의 의무보다는 전 선구자의 의무가 더 듣기 좋습니다만. 먼저 배운 사람은 기독교적인 의무에서 그들을 무지와 야만에서 끌어내어야 한다.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물론... 국가는 봉사단체가 아니니 그에 맞는 보답은 받아야겠지만요, 대학에서도 학비는 받지 않습니까?”
그게 말이 좋아 근대화, 교화지 사실상 식민화라는 걸 모를 정도로 둔하면 영국 총리가 되지도 못했겠지. 아니나 다를까, 디즈레일리는 빙긋 웃었다.
“괜찮은 명분이군요.”
애초에 아무리 제국주의 시대라고 해도 명분 하나 없이 쳐들어가 나라를 집어삼키지는 않는다. 적어도 외교에서, 그리고 국민들을 선동..... 아니,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명분이 필요하니까.
제국주의 시대에 명분이 생길 때마다 유럽 열강들이 깽판을 쳤다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깽판을 치고 싶을 때 명분 같지도 않은 명분을 들이밀거나 없는 명분을 쥐어짜 만들어서라도 칠지언정 아예 명분이 없는데 깽판을 치기는 그들도 좀 주저하긴 했단 거다.
그런 의미에서 선각자의 짐 운운은 기적의 논리다.
소위 말하는 ‘비문명국’의 내정에 간섭할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거니까.
상대에 대한 내정간섭이 아니다. 상대의 미개한 체제를 ‘교정’ 해주는 거다.
상대의 이권을 뺏는 게 아니다. 정당한 수업료를 받아가는 거다.
물론 정말, 정말 잘 풀리면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권을 받아가고 상대는 문명으로 도약할 수도 있겠지. 물론 그렇게 잘 풀리더라도 그 와중에 문화와 전통이 대대적으로 파괴당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물론 그것들도 나름 가치가 있지만, 동도서기는 답이 아니라는 건 전 세계에서 입증되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서양식으로 겉과 속 모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갈아치운 유일한 나라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나라, 일본 제국조차 결국 파벌놀이나 하다가 아무도 책임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아 한 탓에 폭주하다 자멸해버렸다는 걸 생각하면 이미 19세기에 접어든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갈아엎지 않는 한 모든 구대륙의 비유럽권 국가들,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을 제외한 신대륙의 모든 국가들에게는 단 먼지 한 톨만큼의 희망도 없다.
근대화와 개혁의 0.00001%의 희망이라도 남겨놓느냐, 아니면 100%의 확률로 식민지화당하고 학살당하고 착취당하느냐 중에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전자를 고를 거다.
내가 제국주의의 시조라고 욕을 먹는다고? 어차피 지금 이 시대에는 철갑선 같은 것도 없고, 아직 열강들도 압도적인 포함외교를 벌이기에는 애매하게 발전이 덜 된 시대다.
차라리 열강들이 어설프게 들이밀다가 예상 못한 반격에 콱 물어뜯기고 물러나면, 그 나라의 위정자들이 제정신이라면 그 소수의 원정대에게 자기들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고 근대화와 발전에 힘쓰겠지.
병신들이라면 이번에 이겼으니 다음에 또 이길 거라고 생각하다가 망하겠지만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디즈레일리 코인은 제일 안정적이라는 거다.
글래드스턴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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