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22화 (22/60)

제 21차 콘스탄티노플 공방전(2)

아프다.

춥고, 열나고, 목아프고, 몸에 힘은 하나도 없고.

약도 못 쓰고.

아니, 입이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못 쓰는 게 아니다.

안 쓰는 거다. 적어도 이 시대 기준으로는.

어차피 약 보급품도 모자란 탓에 받기도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군의관에게 가면 감기약 정도는 받아먹을 수 있었을 거다.

그 감기약에 모르핀이나 아편이 들어가 있을 뿐.

“고집 부리지 마시고 약 쓰십쇼.”

“안 써, 안 쓴다고.”

닭고기 수프나 먹고 말지.

잘 먹고 물 많이 마시고 내 면역력이 일을 하기를 기대해야지, 이 시대에 약 쓰면 골로 간다니까?

‘내가 페니실린이나 설파제 나오기 전에 시중에 돌아다니는 약 쓰나 봐라.’

물론 부하인 윌리엄 녀석이 날 뇌 안 쓰고 애를 키운다는 모임의 구성원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하지만...... 그건 미친놈들이고 난 진짜 그거 먹었다가는 골로 간다는 걸 아니까 안 먹는 거라니까?

당장 헤로인이 모르핀보다 안전하다는 개소리가 당당히 통용되는 시대인데 말이지.

“암튼 어케 돌아가냐?”

“거의 열댓 번 공격한 모양입니다. 열댓 번 다 패퇴했고요.”

“병신들인가?”

“저번에 가장 큰 공성포 날려먹은 게 좀 큰 모양입니다.”

뭐가 됐든 나한테 테오도시우스 성벽 공격하라고 시키지만 않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부에 기독교인들이 반란이라도 일으켜 성문이라도 열 거라도 기대하나.”

“그도 아니면 금각만을 돌파할 생각일지도 모르죠.”

“뭐 어느 쪽이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 아니, 모른다, 그건 윗대가리들이 할 생각이지 내 알 바냐.”

나는 고개를 슥 들었다.

당연하지만 천막이니까 달은 안 보인다.

“콘스탄티노플은 달이 떠 있는 동안 함락되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지.”

“저치들은 오히려 그걸 반대로 이야기하더군요, 이건 함락이 아니라 탈환이니까 되려 달이 떠 있는 동안 이겨야 한다나.”

“쿨럭!”

나는 몇 번 더 기침을 한 뒤,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근육통도 없어졌고, 목 낫고 열만 내리면 돌아다닐 만 하겠는데 말이야.”

“어차피 주워듣기로는 러시아인들이 우리의 병력 지원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니까 당분간 일 없을 겁니다. 몸조리나 하십쇼.”

“왜? 우리 군이 수는 적어도 저놈들보다는 훨씬 정예일 텐데?”

“자존심 문제 아니겠습니까. 뭐 콘스탄티노플을 자기들 손으로 못 뺏으면 차르가 면전에 뭐라도 던지나 보죠. 암튼 전 가보겠습니다.”

“그래, 부대 관리 좀 부탁한다.”

좀만 있으면 나을 거 같으니까 푹 쉬고 나아서.... 하, 진짜 의사나 간호사가 절실하다. 이 시대의 의료도구인지 고문도구인지 구분도 안 가는 것들 들고 뛰어다니는 거 말고 21세기 병원 의사선생님들.

아니, 아쉬운 거 생각하면 이미 한둘이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자.

‘집에 가고 싶다.’

내가 아프면 가장 난리치는 게 어머니랑 라일라였지.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직접 밤을 새우면서 간호하셨지만, 어머니도 나이가 드셔서 쉽게 지치시는 탓에 그 뒤부터는 내 건강 체크하는 건 라일라가 해왔다.

뭐 애초에 10대 후반부터는 내가 애초에 감기 이상의 병치레를 한 적이 거의 없었지만.

‘나이팅게일.’

간호 하니까 또 생각난다.

도끼 들고 보급창고 문을 때려부순 깡이 있었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여리여리했지만.... 아니, 생각해 보면 그때 12살이었잖아? 당연한 거네.

꼭 그녀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간에 그녀의 능력이 탐나는 건 사실이다.

결국 어머니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혼 문제는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만........ 뭐 어머니는 내가 전공을 세우는 것보다 안전하게 있는 걸 더 좋아하실 분이니까.

너무 많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꼬였다. 열 때문인가.

‘정계에 나서는 것도 바로는 쉽지 않겠지.’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역시 의회에 나가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21세기에도 금뱃지 다는 게 어디 쉽나...

뭐, 어떻게든, 어떻게든 시의회 의원까지는 바로 시도해 볼 수 있다지만, 내가 원하는 건 최소 최하 서민원이다.

영국 정부의 의사결정과정에 개입을 하거나, 적어도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위.

즉 끽해야 시 내부의 문제나 논할 시의회는 매력적이지 않다.

게다가 무슨 망언이 또 기어나올지 모를 상황에서 시간을 넉넉히 쓸 수도 없고.

그러면 관료의 길이 있는데..........

이 시대는 관료를 정정당당하게 뽑지 않는다.

신분과 재산을 보고 뽑는다. 매관매직이 합법화된 시대다.

‘역시 외무부겠지.’

국내 문제도 있겠지만, 이런 대규모의 문제를 처리하려면 외무성에 들어가는 게 가장 쉬울 거다.

내 신분과 재산을 고려하면 아마 서기관급은 아니고, 참사관 정도는 주지 않을까.

외무고시 통과 안 하냐고? 이 시대에 그런 게 있겠냐? 시험으로 사람 뽑는 것보다 매관매직이랑 인맥빨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라니까? 진짜로? 그거 폐지되는 게 19세기 말이니까 진짜로 아직 한~참 남았다.

그, 딱 이 시대를 다루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도 젊은 귀족들이 파티하면서 외무성에서 일하던 고위 관료가 ‘니가 하고 싶다고 말만 하면 공사직 줄 테니까 어디 외국에서 기분전환이나 하고 와.’ ‘내가 그 공사직 받아들이려면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는데, 그 전제조건이 최소 3개월 이상 유지될 내각이네.’ 라는 대사가 있었거든? 너무 인상깊어서 아직 기억하는데, 얘네들이 20대의 결혼도 안 한 젊은 귀족들, 어느 백작 아들, 어느 후작 손자, 이런 양반들이다.

그러니까 백작 아들 후작 손자 이러면 시험 치지도 않고 바로 공사로 임명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이거다.

나도 나름 백작 아들이긴 하지만 좀 아싸기도 하고 하니 바로 공사는 어렵고 참사관 정도 하다가 좀 경력 쌓이면 공사로 올리지 않을까.

그리고 공사직이면 웬만큼 유럽 상황에 개입할 수도 있고, 거기에 후일 의회로 가기도 수월할 거다.

나이팅게일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금상첨화이긴 할 텐데.......

‘젠장, 다 말랐네.’

물수건을 대강 냉수에 적시는데, 어디선가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아, 망할, 또 야습이냐?”

아닌가.

나는 비틀거리면서 텐트 입구로 나갔다.

찬바람이 훅 불어오면서 정신이 확 들었다.

그리고, 불타는 성이 보였다.

“뭐, 뭐야?”

러시아어로 돌격을 외치는 소리, 반대로 오스만 측에서 처절하게 뭐라 질러대는 소리가 들리고, 총성이 울렸다.

“성문이..... 열린 건가?”

아니, 근데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이쪽이 아닌데.

“저기 금각만 쪽 아냐?”

진짜로 성문 연 건가? 어떻게? 성 내부 기독교인들이 호응한 건가?

나만이 아니었다. 당황한 듯 장교 막사에서 장교들이 웅성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콜록!”

“모르겠네, 러시아군이 기습으로 성벽을 넘은 건가 싶네만.”

“저야 누워 있었지만 대위님도 뭐 들으신 거 없습니까?”

“없네, 저치들은 우리에게 공유해주는 게 하나도 없어.”

저것들은 동맹군이 맞긴 한가.

나는 이마를 짚었다.

“우리는 어쩝니까?”

“그냥 가만 있는 쪽인 것 같네.”

“......... 만약에 저걸로 콘스탄티노플 떨어지면 말입니다.”

나는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여기 와서 총 한 방 안 쏴보고 가는 거 아닙니까?”

“야포는 좀 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군. 아쉽지 않나?”

“예?”

“사나이라면 전쟁 한번 겪어 봐야 하는데, 이건 숫제 전쟁이 아니라 소풍.... 크흠, 여기 와서 독감 걸려서 앓아누운 친구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군.”

“이번 주 내에는 확실히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한 2주는 행군이든 전투든 뭐든 없을 것 같긴 하네만, 그래도 가급적 빨리 회복할 수 있게 하게나. 기왕 나온 김에 사냥이라도 해야지.”

“알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대위님.”

“고마우면 홈즈 신작이나 빨리 내주게.”

젠장.

이것도 내가 조만간 홈즈 부활시킬 거라고 부대 내에서 예고하고 다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디 으슥한 데 끌려가서 멍석말이나 당하지 않았으려나.

***

“복잡한 다수의 톱니바퀴와 원판 등으로 이루어졌고, 크랭크와 기어로 조작하는 계산기네, 태양, 달, 행성의 움직임과 위치, 달의 위상을 계산하는 아주 복잡한 달력 장치이기도 하고, 윤년의 반영도 가능하네.”

홈즈는 자신이 자작한 기계를 툭툭 건드렸다.

“손으로 돌리는 건가?”

“그렇네.”

“...... 난 이걸 봐도 모르겠군.”

왓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천문학에 쓰기 위해서 만들었지, 부품들을 하나하나 주문제작하느라 제법 돈이 들기는 했지만 괜찮네.”

“홈즈, 하나만 물어도 괜찮겠나?”

“말해보게.”

“왜 이런 걸..... 그러니까, 상용화시키지 않는 건가? 뭐 행성의 위치나, 달의 모양이나, 대부분의 사람에게야 필요 없겠지만 학자들이나 그런 사람들에게는 제법 쓸만하지 않겠는가?”

“난 어디까지나 아마추어네.”

여기까지 쓴 나는 머리가 딩딩 울리는 느낌에 결국 도로 드러눕고 말았다.

“아이고 머리야......”

몸 아플 때 글 쓴다는 거, 쉬운 일이 아니다.

자고로 어른 말씀이 틀린 거 없다더니, 정말 몸 아프면 서럽다.

어디서 들었더라? 세상에서 가장 사람이 외롭고 서글플 때는 아픈데 간병해줄 사람 하나 없어서 자가치료하고 누워있을 때라던데.

경험담이라는 감상이 줄줄이 묻어나오는 그 말을...... 누가 했더라.

아니지, 지금 누가 그 소리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전황이다.

문제는 나는 일개 소위, 그리고 지금은 정보의 전파 속도도 느려터진 19세기다. 전신이 개발됐던가 아니던가.

본론만 말하자면 내가 알 도리가 없다는 거다.

그러니 상당 부분은 내 뇌내망상으로 때워야지.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지면.’

오스만은 사실상 끝장이다.

한 번 손에 쥔 콘스탄티노플을 러시아가 놓으려고 들 리가 없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유럽 본토의 전황인데, 독일 내 국가들이 러시아군의 통과를 허용했느냐가 첫 번째 문제.

만약 이게 되지 않았다면, 러시아군은 십중팔구 해로를 통해 영국군과 합류한 뒤, 저지대에서 프랑스와 맞서 파리를 점령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 터였다.

여기서 이겼느냐, 졌느냐.

프랑스가 저지대 전역에서 승리했다고 한들, 프랑스에는 미래가 없다. 스페인 하나 아군으로 끌여들여놓고, 다시 러시아 원정을 시작할 건가? 아니면 두 번째 트라팔가 해전을 벌일 건가?

대륙봉쇄령? 지금 루이필리프의 손에는 그만한 권위는 애초에 있지도 않다.

즉, 루이필리프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우위에 놓인 상황에서 협상을 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다.

그런데 그 우위에 놓인 상황이라는 게 뭘까?

그리고 영국이 협상장에 나오리라는 보장은 또 어디 있는가?

내가 아는 나폴레옹 전쟁기의 영국과, 현 시대의 국제관계 등을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모르겠다!

루이필리프가 뭐 알아서 하겠지.

일단 전쟁 끝나면 상황이 알기 싫어도 알려질 테니 거기에 맞춰 움직이면 그만이다.

그렇게 결론을 낸 나는 원고를 대강 치워놓고 해먹에 누웠다.

피곤해서 그런지, 잠은 빠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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