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차 콘스탄티노플 공방전(1)
-콰아아앙!
포탄이 요새의 벽을 두드렸다.
갈리폴리 반도에 주둔한 오스만군과 로열 네이비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해안포 사격은 같은 위력의 함포보다 3배 강력하다는 게 정설이다.
함포보다 기본적으로 명중률도, 연사력도 높은 데다, 기타 지원을 받기도 용이하니까.
그러나, 애초에 로열 네이비는 상륙을 하기 위해 해안포를 제압하려는 게 아니다.
단순히 오스만군을 붙들어놓고 콘스탄티노플을 봉쇄하기 위해 작전하는 것일 뿐.
문자 그대로 인근에서 깔짝거리기만 하려고 작정한 적 함대는 해안포로 때려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면대결이 아니라 항구를 봉쇄하고 상대의 신경을 박박 긁어놓기 위해 작전하는 건 로열 네이비가 지긋지긋하게 수행한 작전이니까.
아예 상륙전을 벌이려고 하거나 적의 해안포대를 전멸시키려고 작정했다면 전열함들도 피해를 각오해야 했겠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다면 오스만 측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준비되었습니다!”
단 한 문의 대포의 수송을 위해 30대의 수레와 60마리의 소가 필요했다. 이를 관리하는 병사만 수백 명인 대형 공성포, 바실리카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해로로 수송되어 갈리폴리 반도에 막 배치되었다.
영국군은 이 거포의 존재 자체는 알았지만, 이게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송되어 갈리폴리 반도에 재배치되었다는 사실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게 함정이었다.
어차피 포의 사거리라 해 봤자 수백 미터인 관계로 영국 함대는 해안포들의 최대사거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1km 언저리에서 깔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르반 거포의 사거리는 300kg짜리 돌덩이를 장전했을 때 1.6km에 달한다.
물론 그 대가로 한 발 장전할 때 포를 식히기 위해 3시간이 걸리고, 하루에 7발 이상 쏘면 포신이 엿가락처럼 휘어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위력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발포!”
포탄 한 발이 허공으로 날아갔고, 오스만군의 사거리 밖이라고 안심하고 재정비하고 있던 전열함의 돛대를 넘어가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었다.
“제길! 다시 쏴!”
“너무 뜨거워서 식혀야 합니다!”
질겁한 영국 해군의 전열함들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본 오스만군의 방어사령관은 이를 갈았다.
“잽싸게 재장전하고 쏘라고! 저놈들 도망가잖나!”
“하, 하지만 너무 뜨겁습니다!”
“식혀! 멍청아!”
방어사령관의 갈굼에 다급하게 달려간 몇몇 장병들은 대포에 물을 끼얹었다.
물론 그게 최신형 화포였다면 괜찮은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갈리폴리에 있던 오스만군도 잡병은 아니었다.
마흐무트 2세가 예니체리들을 숙청할 때 동원된 신군부의 중심이 된 부대, 훔바라즈였으니.
이들은 각국에서 사들인 최신 장비를 충분히 운용하고, 그에 맞춰 훈련받았다.
당연히 그들의 관념은 자신들이 쓰는 무기에 맞춰져 있었고, 급하게 식힐 필요가 있으면 물을 끼얹고는 했다.
그러나 물을 뒤집어쓴 바실리카 거포는 몇 세기 전에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혼란 속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찬물을 뒤집어쓴 거포는 순식간에 자신이 가진 열로 물들을 증발시키며 빠르게 식었다.
그리고 중세 말의 야금술로 만들어진 청동 대포는 달궈졌다가 갑자기 급랭되는 급격한 온도변화에 견딜 수 없었고, 포신에는 깊은 금이 생겼다.
그러나 전투의 혼란 속에 아무도 신경쓰지 못했다.
아무도.
***
“HMS 썬더러 피격! HMS 썬더러 피격!”
마스트가 박살난 전열함이 위태위태하게 항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날아온 건 뭔지 모를 그 괴물딱지 같은 대포가 아니었다.
만약 그걸 정통으로 맞았으면 전열함이고 나발이고 단숨에 격침당했으리라.
다만, 적 포병들의 숙련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게 좀 걱정되었다.
“빌어먹을.”
후퇴를 해야 하나.
제독은 급히 고민에 빠졌다.
썬더러와 테세우스가 집중포격을 뒤집어쓰고 도망쳐오는 게 눈에 보였다.
재정비를 하고 다시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저 규격 외의 대포 하나 때문에 함대 전체가 운신에 제약을 받고 있다.
임무를 수행하려면 들어가기는 해야 한다, 봉쇄를 유지하려면 대포의 사거리를 감안할 때 너무 멀리 떨어질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게 그 괴물의 사거리 안이라는 게 문제다.
순간, 이제는 슬슬 익숙해져 가는 포성이 울렸다.
아마 도망가는 썬더러나 테세우스를 노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제독의 몸에 큰 충격파가 닥쳤다.
***
“명중! 명중입니다!”
사거리 아슬아슬한 곳에 있던 적 전열함 한 척이 아주 박살이 나면서 침몰하는 걸 본 오스만군은 승리의 환호를 내질렀다.
“저놈들 우왕좌왕합니다!”
“자자, 어서 서둘러! 도망가기 전에 한 방은 더 먹여줘야지!”
어차피 해류와 바람 등등 때문에 전열함 같은 대형 함선들이 이 지역을 벗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걸린다.
번개같이 포신을 식히고, 화약을 채우고, 포탄을 장전하는 절차를 끝마친 포병들이 포문을 도망치는 전열함에 겨냥했다.
그리고, 폭음이 터져나왔다.
이전과는 좀 다른 폭음이.
흑색화약이 순식간에 기체로 변하면서 포의 후미를 터트리고, 포신 전체를 따라 금이 가 있던 탓에 뒤만 터진 게 아니라 금을 따라서 기체들이 그 틈을 비집고 벌리면서 잘게 부서진 청동 파편들로 변한 바실리카는 어마어마한 수의 청동 파편 조각을 사방으로 흩날리면서 포병들과 그 주변에 있던 운 없는 오스만 병사들을 너덜너덜한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
콘스탄티노플, 오스만 제국.
수많은 적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술탄 마흐무트 2세는 묵묵히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망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마어마한 수의 적병들.
병력비는 5대 1,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거대한 화포가 있었다.
890mm의 구경을 가진 사석포.
차르 대포가 삼중성벽을 무너트리기 위해 나타났다.
***
“끄응.”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저 멀리 성벽과 대포를 번갈아 보며 코를 훌쩍였다.
그동안 정말 별일 없었다.
대규모 회전이 일어났다면 영국군이 개입했겠지만, 오스만 제국의 저항은 산발적이었고 러시아군으로도 처리가 충분히 가능한 선이었다.
그리고 뭔가 있더라도 나는 열외되었다.
몸살감기가 났으니까.
“으으.....”
“소위님, 좀 어떠십니까?”
“기침은 안 나는데 열이 나서 더운데 또 추워, 미치겠다.”
“약 안 드셨습니까?”
미쳤냐. 뭐가 든 줄 알고 처먹어.
“끙,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감기약 같은 거 먹으면 몸이 안 받아서 상태 더 안좋아진다고.”
안에 모르핀이 들었는지 아편이 들었는지 모를 약 따위 필요 없다.
효과도 진통효과밖에 없는 거, 그냥 정신력으로 이겨내야지.
며칠 고생 죽도록 하는 게 남은 평생 약물중독자로 사는 것보다는 낫다.
“그나저나 저놈들도 고생이네.”
수많은 러시아군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어 포탄을 수송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890mm, 89cm의 직경을 가진 구형 물체를 실어나르는 것도 개고생이었다.
나는 온몸을 파고드는 한기를 내몰기 위해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살짝 입천장을 덴 기분이었지만 몸은 확실히 따뜻해졌다.
물론 그게 쑤시는 뼈마디를 편안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죽겠다.... 진짜로.”
집에 돌아가면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을 것 같았지만,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폭음이 내 귀를 때렸다.
-콰앙!
제법 거리가 있었는데도 귀청을 울리는 포성에 나는 급히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면으로 돌파되지 않았다는 테오도시우스 3중성벽의 일부가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워우.”
“위력 한번 무식하군.”
테오도시우스 삼중성벽을 돌파할 만한 무기는 제국 멸망 후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극히 드물었다. 제식으로 굴려질 정도의 무기로는 이빨도 안 먹혀서 거의 반쯤 장식품이던 물건을 무기화해 동원해야 할 만큼 삼중성벽의 위용은 거대했다.
그러나, 한때 그 성벽을 때려부쉈던 우르반의 거포 ‘바실리카’의 구경을 아득하게 능가하는 차르 대포는 최외곽의 흉벽을 단 일격만으로 크게 손상시켰다.
저 멀리에서 고성이 들렸다.
“콘스탄티노플이여! 350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가 돌아왔노라!”
“돌아오기는 개뿔이.........”
나는 차를 조금 더 홀짝였다.
“예?”
“저놈들은 슬라브인이잖아? 콘스탄티노플이랑 관계도 없는 놈들이 잘도 돌아오네 어쩌네......”
“하하........ 그런 말씀하시면 저놈들은 길길이 뛰지 않겠습니까?”
“뛰라지 뭐.”
그나저나 이거 점령하면 소유권은 어디로 가는 거지?
단순히 생각해봐도 ‘콘스탄티노플 내놔 빼애액!’ 이러면서 드러누울 놈.....나라가 여기에만 둘, 거기에 어깃장 놓으려고 할 게 뻔한 놈 하나.
아니, 윗대가리들이 병력을 파병한 걸 보면 단순히 어깃장만 놓을 생각은 아닐 거고.
고민을 좀 해 봤지만, 결국 내 결론은 하나였다.
모르겠다!
들어오는 정보의 양도 너무 적고 신뢰성도 담보가 안 된다.
그리고 알아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역시 높으신 분이 되어야 하나? 하지만 무슨 재주로?’
군공? 웃기는 소리다. 19세기 초반 군대에서 뭔 군공을 세우겠다고? 총 맞아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일단 집에 몸 성히 돌아가고 나서나 해 볼 생각이기는 하....... 뭐지?”
순간, 저 멀리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대지를 환히 밝히는, 저녁노을보다 더 붉은 불빛도.
“저기 러시아군 진영 아냐?”
***
“의무병! 의무병!”
부상당한 병사들이 들것에 실려갔고, 병사들이 불을 끄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러나 불이 화약에 옮겨붙은 곳이 몇 곳 있었고, 잠시 뒤 2차 폭발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대포가 터졌습니다!”
“뭐?”
“공성포가 터졌다고요!”
“공성포 하나 터졌다고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라고 말할 게 없었다.
터진 공성포 주변에 있던 병사들 20여 명은 현장에서 즉사했거나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그때, 함성이 들려왔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가까웠다.
“빌어먹을! 적들의 기습이다! 비상! 비상!”
“이교도들의 야습이다! 다들 총 들고 나와!”
“이교도 놈들이다!”
혼란에 빠진 러시아군 진영으로 성벽 밖으로 기어나온 오스만 튀르크의 병사들이 각종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저 개자식들이 죽여달라고 성벽 밖으로 기어나왔다! 전부 죽여라!”
“데우스 불트! 신께서 원하신다!”
러시아군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반격에 나섰고, 잠시 뒤 사방에서 총성과 냉병기의 충돌음들이 어우러지면서 전투가 개시되었다.
“장군님! 즉시 러시아군을 지원해야........”
“아니, 날이 어두워서 아군 간에 교전이 이뤄질 위험이 크다! 전 부대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대기하라!”
물론, 여기서도 영국군은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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