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19화 (19/60)

개전(3)

여름궁전, 러시아 제국.

전러시아의 11대 황제, 2대 핀란드 대공이자 폴란드의 2대 국왕,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로마노프는 영국 공사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귀국이 원하는 참전은 어렵지 않소. 적절한 대가가 지불된다는 전제 하에 말이오.”

차르의 말에 영국 공사는 차르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오스만.”

“폐하, 그건.......”

“러시아가 프랑스에 맞서 참전하면, 프랑스는 어느 나라와 접촉하리라 생각하시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를 적으로 돌리면서? 반대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과 싸울 각오를 하고? 둘 모두 영국과 러시아를 모두 상대해야 할 프랑스에게 있어서는 추가로 상대하기는 골치아픈 상대지, 나폴레옹 전쟁의 재림 아니오.”

“.......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숙적, 오스만과 접촉하는 게 그들로써는 가장 안정적인 길이겠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양자 모두를 자극하지 않고 새 동맹을 찾으려면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

지금 프랑스는 동원도 끝마치지 못했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선전포고라서 프랑스 상선들이 지금 이 순간도 왕립해군에게 나포되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프랑스가 우위에 있는 것은 프랑스가 벨기에 전쟁에 개입하면서 동원해두었던 병력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카를로스파가 가진 현지 병력을 끌어들여서 지브롤터 주둔군에 비해 숫적 우위를 가져갔다는 것뿐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지브롤터 주둔병력이 그렇게 허무하게 궤멀당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프랑스가 동원을 마칠 때까지는 또 한세월이다. 영국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아니, 전 세계가 다 그렇다.

동원을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해줄 수 있는 상업철도는 영국에서도 겨우 일부가 부설되어 있을 뿐, 아직 퍼져나가려면 조금 이른 시기.

현재 유럽 각국의 동원체계는 나폴레옹 시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의 후진적인 동원체계를 감안하면 영국과 프랑스가 모두 동원을 마친 뒤에야 병력을 꾸려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실상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몸값은 최대한 올려받아야 하지 않는가.

“즉, 오스만을 공격하는 것은 필연적인 전쟁에 앞선 예방전쟁이오, 본국이 군을 몰아 프랑스와 오스만을 쳐부수겠으니 영국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싸우고, 종전 협상에서 우리의 몫을 보장해주시오.”

발칸, 크림, 콘스탄티노플.

더 나아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 중 대부분.

러시아 제국이 몇 번씩 대규모 전쟁을 벌여 가면서 얻고자 했던 영토들이었다.

과거에는 유럽 국가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러시아를 견제하는 바람에 마음놓고 영토를 넓힐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영국은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고, 프랑스는 전쟁에서 이기면 그만이다. 오스만이야 진작 이빨 빠진 호랑이 꼴이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개입할 명분이 없다.

얼마 후, 영국은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들 입장에서도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그냥 이대로 본토에만 있다가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

레드 코트의 군복을 갖춰입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식적으로, 진짜 상식적으로.

내가 무슨 19세기 군대를 지휘해서 맹활약을 해서 장군까지 올라갈 수 있겠는가? 미래지식 원툴인 나로써는 그냥 전선에서 전사자 1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물론 돈은 제법 모았으니 다른 귀족들이 나폴레옹 전쟁기에 한 것처럼 내 사비로 연대를 편성해서 국가에 헌납하고 대령 계급까지는 받을 수 있다.

그럴 필요가 없을 뿐.

애초에 내가 군에 입대한 건 그냥 겁쟁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 소리를 듣게 되면 평판에 치명상이니까.

이 전쟁의 규모가 나폴레옹 전쟁급이 될까......라고 하면 모르겠다.

하지만 괜히 나서서 피해를 입을 건 없다.

그냥 몸성히 돌아가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지 무슨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처럼 날뛸 필요가 없었다.

‘그나저나, 이 시대는 정말 인맥이 최고구나.’

돈 없고 빽 없으면 서러운 건 21세기도 마찬가지라지만, 여기서는 더했다.

실력주의적이라는 그 왕립해군조차도 함장이나 그 이상급이 빽으로 있는 사관후보생은 항구 근처에 방 얻어놓고 놀러다니는데 기록에는 성실한 걸로 기재되어 최소복무기한이 차자마자 칼같이 진급하고, 빽 없는 놈은 얄짤없고.

육군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빽은 별로 없어도 돈은 있었고, 나 자신도 제법 이름있는 작가인지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빽이 없는 게 아쉽기는 했다. 연대장님은 얼마 전에 처음 뵌 분이라 빽이라고 하긴 조금 미묘하고........

21세기의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써는 그냥 부정부패의 극치로밖에 안 보이지만, 이들에게 있어서는 진짜 이 체계가 합리적이라고 믿고 있으니 뭐라 말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먼 미래의 누군가는 21세기의 체제를 보면 맙소사, 어떻게 투표라는 방식으로 통치자를 정할 수가 있지? 당장 국가의 대계 따위는 생각 안 하고 상대만 이긴다면서 하는 온갖 흑색선전에 인기몰이에 분열과 갈등 조장까지 문제점이 뻔히 보이는데 왜 바꿀 생각을 안 한 거지? 개돼지들인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물론, 영국인들이 이런 제도를 정식으로 가지고 있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다. 오랫동안 복무한 이들에게 보상은 해줘야겠는데 국가예산으로 퇴직금을 주기는 아깝고, 계급제 사회에서 평민 출신 장교가 능력으로 진급하면 하급 귀족 장교들이 ‘니가 뭔데 우리한테 명령질이야?’ 라는 반응을 보이는 탓에 고위 장교가 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도록 만들어 평민이 알량한 능력 하나 가지고 군에서 출세하는 길을 원천차단해버리는 구조.

21세기의 사람들이 들으면 ‘이게 뭔 개소리야?’ 싶겠지만 19세기의 영국인들에게는 계급사회의 유지와 예산을 아끼는 게 무능한 장교들을 혈통만으로 고위직에 올리는 걸 감수할 만큼은 중요했다는 의미다.

물론 영국군이 유럽을 제패한 건 돈으로 떼우는 건 영관급까지고 장군 진급은 실력이 있어야 하게 하는 것, 그리고 최소한 해군은 그래도 실력주의를 지향해 천민의 아들이든 귀족의 아들이든 전부 사관후보생부터 시작하도록 했기에 실력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아까 이야기했듯 빽이 든든하면 승선 명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육지에서 놀고먹거나 빽 없는 후보생보다 진급에 유리하고, 능력이 아니라 연공서열에 따라서만 진급할 수 있는 등 온갖 문제가 있긴 하다.

그런데도 세계를 제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놈들이 더 막장이거든.

그나마 제독들이 자기가 빽을 서 주는 장교들을 자기 체면 때문에라도 좀 엄격하게 보는 편이고, 그나마 연공서열은 높은데 무능한 인간들은 한직으로 돌려버리는 제도가 있어서 그나마 무능한 인간들이 어느 정도 걸러진 덕에 해군 장교단의 질은 세계적 수준인 거다.

보는 입장에서는 현기증이 절로 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데.

아무튼, 나는 일개 소위로써, 회의장에 들어가는 장교들을 보고 있었다.

영국인들과 러시아인들.

아무래도 지상전 중 적지 않은 요소를 담당할 이들이니, 영국에도 러시아 장군들이 협의를 위해 온 상태였다.

***

회의장에 모인 러시아와 영국의 장성들은 유럽 지도를 펴 놓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세바스토폴을 공략하실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흑해에서 군사작전을 펼칠 경우,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을 점유하고 해협을 차단하고 있는 이상 이에 대해 영국 정부는 지원을 제공해드릴 수가.....”

“아? 하하! 그건 역정보요, 이미 이 부분과 관련해서 그리스와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소, 테살로니카까지 병력과 장비를 해로로 수송한 뒤, 그리스군과 함께 육로로 진군해서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할 거요.”

“예?”

“세바스토폴 공세는 그저 연막이오, 물론 이번 기회에 크림을 손에 넣기는 하겠지만, 크림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더 가치가 높은 것은 콘스탄티노플이오.”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콘스탄티노플은 러시아에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콘스탄티노플을 바꾸자고 하면 충분히 내어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들에게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서, 우리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 것이오, 오스만의 해군은 이미 허울만 남은 지 오래이니 우리 함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고, 지상군을 투입해 콘스탄티노플까지 진격해야지.”

위험 부담을 끌어안고 갈리폴리 등 적의 코앞에 상륙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의 협조를 받아 그리스 국경에서 밀어붙이겠다!

물론 거기에 투입될 병력은 발트 해에서 출발해서 외레순 해협을 통과하고, 영국 해협을 지나 세우타를 거쳐 지중해로 들어가는 길고도 긴 여정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중간에서 영국 본토와 몰타 등에서 지속적으로 재보급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길일 터.

“하지만 보급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느 정도는 현지조달해야겠고, 그게 아니면 그리스에서 협조를 부탁할 것이오, 그걸로도 안 되면 해상수송해야겠지만, 현지에서 전혀 구할 수 없어서 본국에서 받아와야 하는 물품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 판단했소, 보충병은 현지에서도 구할 수 있고, 인근에 항구도 여럿 있으니 보급로가 끊어지지는 않을 거요.”

원래 수도 점령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

러시아는 과감한 작전으로 오스만을 조기에 탈락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프랑스에 대한 대응은......”

“프랑스에 대한 대응은 우려하지 마시오, 차르께서 엄명을 내리셨으니, 프랑스는 동쪽에서 대군을 마주하게 될 거요. 다만.......”

“문제가 있습니까?”

“독일 국가들이 길을 열어줄지가 조금 우려되는구려, 여차하면 해상을 통해서 네덜란드로 이동한 뒤, 재정비해서 진격할 생각이오. 일단 이건 귀측이 프로이센 왕국을 설득해주기를 바라고 있소만.”

어차피 길만 내주는 게 문제라면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구할 것까지는 없고, 프로이센이 국경만 개방해주면 되니까.

“하지만 프로이센이 개입할 경우, 이에 자극받은 오스트리아가 끼어들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일단 노력은 해 보겠으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집결한 병력을 북해를 통해 네덜란드로 실어나르는 것이 빠를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프랑스는 파리가 거의 전부인 나라요.”

혁명 세력이 파리만 점령하면 사실상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게 되는 것과 같다.

파리가 없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러니, 저지대에 상륙해서 밀어붙이는 게 낫다.

“네덜란드에 우리 지상군을 어느 정도 파병할 예정입니다. 러시아 측에서도 병력을 최대한 빨리 편성해주시는 걸 바라겠습니다.”

“물론이오.”

두 손이 굳게 마주잡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