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17화 (17/60)

개전(1)

프랑스, 파리

“라이미들에게 굴복할 수는 없다!”

“앉아서 비참하게 사느니 서서 당당한 죽음을!”

루이필리프 정권의 안일한 인식은 이미 한계를 맞이했다.

통제는 사라졌다.

언론이 ‘영국의 모욕적인 요구’가 프랑스 외무부에 접수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신문에 실어 떠들어대자 파리 전체가 오만한 해적 놈들의 요구를 알기까지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폭동이 일어나기까지는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의 시민들은 여전히 나폴레옹을 그리워하고, 나폴레옹을 몰락시킨 영국에 대한 원한도 살아 있었다.

루이필리프는 정말로, 정말로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아 적당히 외교적인 선에서 분쟁을 종결지으려 했지만, 시민들은 즉각적인 전쟁을 원했다.

그 소음이 들려오는 가운데, 내각 회의실에서는 내무부 장관의 침통한 보고가 이어졌다.

“루이 나폴레옹이 스트라스부르에서 나폴레옹 지지자들과 접촉했답니다.”

루이 나폴레옹.

루이필리프의 1순위 경계대상.

그 ‘나폴레옹’의 조카.

그리고 보나파르트주의자들의 핵심 구심점.

“만약, 루이 나폴레옹이 본격적으로 반정부 활동을 시작한다면, 이를 막을 수 있겠나?”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재 공권력의 활동은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각 부대는 현재 간신히 영내만 지키고 있는 상태입니다.”

파리의 시민들이 분노했다.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미친 건.......

“황금여명회의 활동이 몇 차례 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부 잡혀도 상관없는 곁다리들 뿐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단 말인가, 우리 공권력이? 수사망이?”

황금여명회.

그 웃기지도 않는 이름의 비밀결사가 프랑스의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빈 체제에 불만을 품은 수많은 급진주의자들, 혁명가들, 대학생들, 지식인들 등을 그 안에 품은 황금여명회는 훨씬 어둡고 위협적인 무엇인가로 급속히 변질되고 있었다.

“황금여명회가 보나파르트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고 가정하면, 파리는.... 무너질 겁니다.”

“영국과 전쟁은 절대 안 될 일입니다! 이미 지난 전쟁에서 프랑스의 피해가 이미 컸는데........”

“지브롤터를 손에 넣기만 한다면 저들의 분노도 어느 정도 진정될 거라는 건 명확합니다. 그러면 체계적인 수사를 통해 저 뒤에서 분탕질을 치고 있는 자들을 색출하는 것도 가능....”

“미친 소리! 물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불에 뛰어든다는 소리입니다!”

“그럼 당신들은 이 미친 불길을 막을 수 있소? 야! 니가 먼저 해 봐!”

당장 자기가 단두대에 올라갈 판이다.

사실, 이건 단지 황금여명회나 전쟁 여론이나 그런 걸 탓할 차원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루이필리프에 대한 불만이 이를 기반으로 일제히 터져나온 것이니까.

반 루이필리프파에게는 어느 쪽이든 좋은 상황이었다.

전쟁으로 이어지면 어차피 루이필리프는 끝장이고,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 끌려내려가서 단두대에 오를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영국과의 전쟁에서 어떻게든 승리했다는 명분을 손에 쥐는 것.

그러나, 어떻게?

“칼레를 통한 직공은 너무 뻔한 수단입니다. 영국이 당해주지도 않을 겁니다.”

“로열 네이비에게 모조리 수장이나 당할 겁니다.”

“꼭 런던을 불태울 필요는 없습니다. 단기결전을 통해 우위만 차지하면 됩니다, 지브롤터만 차지해도 명분은 충분히 섭니다.”

“아니, 무슨 지브롤터가 뉘집 애 이름입니까? 스페인의 협조는 또 어떻게 받아낼 거요!”

“스페인이 왕위 계승 문제로 내전을 벌이고 있잖소! 카를로스파에게 접촉합시다. 여왕파에 비해 밀릴 뿐 아니라 지브롤터를 둘러싼 스페인 남부 지역이 이들의 영역이잖소!”

스페인은 현재 3살짜리 여왕을 모실 수 없으니 카를로스를 왕으로 모시자는 카를로스파, 그리고 정통성 있는 여왕을 따르겠다는 여왕파로 나뉘어 있었다.

남부 지역을 차지한 카를로스파는 명백히 여왕파에 비해 밀리고 있었으니, 동맹을 하면 더 많은 것을 양보받을 수 있을 터.

정통성 면에서 우위에 있던 여왕파에게서 민심을 뺏으려면 실지를 회복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던 카를로스파에게는 애초에 선택지가 없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여왕파도 뭘 할 수가 없을 게 뻔해 보였다. 매국노로 찍혀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싫다면 말이었다.

태동한 민족주의 가운데, 지브롤터의 탈환은 수많은 스페인인들의 소원이었으니까.

“전쟁 준비가 실질적으로 거의 되어있지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보급품과 탄약, 화약의 비축분은......”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지브롤터를 점령한 뒤에 협상을 해야지!”

“그러니까 지금 지브롤터가 무슨 칼레에라도 있는 줄 아시냐는 말입니다!”

이미 길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서 지옥의 불길로 스스로 달려들 뿐.

***

영국, 추밀원.

“결정을 내렸소.”

추밀원의 정식 구성원들 외에도 주요 인사들 다수가 모인 추밀원에서, 윌리엄 4세는 선언했다.

그의 심경을 결정적으로 변동시킨 것은, 그의 형수였다.

‘그 계집, 아직도 빅토리아를 손 안에 가지고 노는 걸 포기하지 못했어.’

이래서는 안 된다.

그년의 손에 이 나라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니, 빅토리아가 그녀에게서 벗어날 구멍을 마련해주어야만 한다.

“정식으로 약혼을 발표하고자 하오.”

“폐하, 그러면 프랑스의 망동은......”

“프랑스가 선제공격을 가하지 않는 한 관망하는 것으로 하겠소.”

“폐하!”

그 순간, 전령이 급히 달려왔다.

“폐하! 급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전쟁입니다!”

“프랑스?”

“예! 지브롤터가 공격당하고 있으며, 거의 비슷한 시간에 선전포고문이 접수되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프랑스가 지브롤터와 붙어있기라도 하면 이해한다.

그런데 그건 아니지 않은가. 스페인이 선전포고했다면 지브롤터를 공격당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프랑스인데?

“스페인의 카를로스파가 프랑스와 손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공격 주체는 스페인 반군과 프랑스군입니다!”

***

<리디아는 존의 그림자를 쫓았다. 빗방울에 젖은 돌로 만든 포석을 그녀의 구두가 밟으면서 낸 소리에 존은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딱히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의 의문 섞인 시선을 받은 리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뻔했다.>

<첫사랑이라는 열병에 걸린 소녀의 가슴은 그 저주로 인해 새까맣게 타버렸지만, 그 마음을 가면으로 가린 리디아는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달려가 안길 수 없었다. 자신은 장미니까, 자신을 안으면 상처입을 게 뻔하니까. 그 사랑은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이니까.>

<그저,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었다, 그 숨결, 그의 행동, 그의 모습, 전부가 그녀의 가슴을 농락하는 느낌이었다.>

<처음이기에 서툴렀다. 처음이기에 두려웠고, 처음이기에 억누를 수 없었다. 그저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젠장.”

진한 현자 타임이 몰려온다.

펜을 내던진 나는 얼굴을 감쌌다.

“아니, 소설 좀 끼적였다고 전쟁이 나는 게 말이나 되냐고....... 말이......”

이미 일어났을 전쟁을 소설로 예언한 거라면 차라리 예언자 소리 들으니 낫지, 이건 그냥 누가 봐도 자기 실현적 예언 아닌가.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랑과 벗어던진 가면, 검게 타버렸지만 치유된 마음이고 나발이고......”

내가 이거 진짜 계속 써도 되는 거 맞나.

“대체 뭐가 문제지? 난 그냥 돈 좀 넉넉하게 벌고 싶었을 뿐이야.”

덤으로 셜록 홈즈 팬들에게 맞아죽는 일을 피하려는 생각도 있었고, 저질러놓은 일을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전쟁이라니, 나 같은 소시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커져버린 거 아닌가?

내가 일으킬 최대의 나비효과라고 해 봤자 후대의 문학 교과서에 실려서 불쌍한 학생들을 고문하는 정도만 생각했지 전쟁은 정말 꿈도 못 꿨다고.

“젠장..... 전쟁, 그래, 전쟁 나가야지.”

문제는, 일단 난 귀족이다.

그리고 귀족은 사병이 아니라 장교로 전쟁에 나간다.

이 동네는 어떻게 된 건지 임관을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계급이 돈으로 사고 팔리는 거다.

물론 실제 임관하려면 계급을 사도 최소복무기간이 지나야 하고 TO도 나야 하지만, 막 태어난 애한테 소위 계급장을 사주고 군대에 갈 만큼 크면 복무기한 다 채웠다면서 대위, 소령 바로 달아서 군생활 시작하는 게.....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잖아.

물론 귀족은 징병의 대상은 아니다.

다만 귀족이 되어서 평화의 시기라 전쟁이 없는 것도 없는데 참전 경력이 없으면 병신 취급을 당해서 문제지.

즉 내 인생목표를 이루려면 전쟁에 참전을 하긴 해야 한다는 건데.......

‘개 같네 진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돈은 있으니 소위 계급 사면 장교 계급으로 참전은 가능할 텐데, 소위면.... 보통 전장에서 구르지.

‘후방, 제발 후방 가고 싶다.’

미리 사놓은 게 있으면 대위급으로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우리 집안이 팔자가 편 건 내가 셜록 홈즈를 쓰기 시작한 이후라서...... 그래서 미리 사놓은 건 전혀 없다.

‘애초에 전쟁이 날 줄 내가 알았냐고. 젠장.’

전쟁을 유발한 인간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뻔뻔한 소리인 줄은 알지만, 진짜로 나도 몰랐단 말이다.

***

아서 웰즐리는 수상관저에 앉아서 차분히 보고를 들었다.

정권이 뒤집어지면서 다우닝 가 10번지를 탈환한 웰즐리는 전쟁 상황에 대한 보고를 경청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지브롤터는 사실상 상실이군.”

“예, 적들이 해안포를 배치한 이상 어렵습니다.”

병력을 지금 보내도 늦는다. 연락이 온 시간, 다시 병력을 보내서 요새에 증원할 시간.... 모르긴 몰라도 지브롤터 요새는 지금쯤 함락되었거나, 함락되기 직전의 상황이리라.

박격포함들을 다수 동원하고, 대규모 육군 병력을 때려박아 가면서 포격을 퍼부으면 지브롤터를 탈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손실이 크다.

하지만 전투로 인해 실지하는 것은 상관없다.

땅을 좀 잃더라도, 상대에게 패배를 안겨주면 그걸 종전 조약에서 고스란히 토해내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카를로스파가 프랑스와 동맹했고, 벨기에도 프랑스의 동맹이지. 그러면 그들의 적은 우리의 동맹이다.”

스페인의 여왕파와 네덜란드.

하지만 이들은 각각 카를로스파와 벨기에까지는 제압해도, 프랑스를 제압하기에는 체급이 딸린다.

“러시아는 우리 편으로 참전할 의사가 있다고 하던가?”

“현재 러시아에 파견된 외교관들이 차르를 알현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혼인에 관련해서..... 대폭 양보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그걸 벌충할 만큼 프랑스를 두들겨패서 얻어낼 수 있는 게 많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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