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음(1)
어느 작가가 중2병 환자들 모임이라고 폄하한 것과는 다르게, 황금여명회는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법 큰 조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명백히, 나폴레옹 전쟁 기간 프리메이슨은 혁명의 전파 수단으로 활동했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에 남미에 퍼진 프리메이슨 조직들은 독립운동 세력으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프리메이슨의 지하조직은 결코 이들에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프리메이슨의 가입 기준을 보면, 종교를 가진 21세 이상의 남성으로써 부양 가족이 있으며, 일정 이상의 연수입을 가져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다시 말해, 급진 과격파나 반사회적 단체와 관계가 없고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며, 평범한 시민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사회적 지위가 제법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
당연히 과격파나 혁명론자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입구컷’을 당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이 자라날 토양은 유럽 전역에 차고 넘치는 마당이었다.
빈 체제는 명백히 시대착오적이었고, 자유, 평등, 박애와 내셔널리즘이 뿌리깊이 자리잡은 유럽에서 몇 년 전 그리스 독립전쟁을 계기로 열병에 가까운 자유주의, 내셔널리즘 운동이 터져나온 것 역시 필연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유주의 운동은 무력으로, 군사력으로 짓밟혔다.
제일 먼저, 프랑스의 노동운동 탄압으로 인해 적지 않은 규모의 프랑스계 좌파-후일 마르크스에 의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라고 지칭될-세력이 탄압당해 지하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 당국의 실책이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을 그리 지지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도리어 이 탄압은 좌파를 지하화시켰다, 기존의 비밀결사 상당수가 나폴레옹의 몰락 당시 궤멸해 제대로 재건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롭게 발족한 지하조직의 이름으로 채택된 황금여명회는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계파로 나뉘어진 세력들 가운데 새로운 사상을 탄생시키는 토양이 되고 있었다.
“그 수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구원이다. 그 수가 있으면 우리는 인류의 마음을, 영혼을 열 수 있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하늘에서 이루어지듯, 지상에서도 이루어지리라.”
프랑스어로 된 의식문을 외운 젊은 청년은 회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단의 마지막 절차를 시작했다.
“그대는 황금여명회의 회원으로써 그대의 온 삶을 바쳐 인류 전체의 진리와 계몽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는가.”
황금여명회의 상징인 컴퍼스가 그려진 문장이 걸린 깃발 아래, 장미 십자가 앞에 당당히 선 청년은 선서했다.
“예.”
“황금여명회의 회칙은 결코 침략에 있지 않으며,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이름 아래 공영과 문화의 발전에 있음을, 권력의 독점이 아닌 분배에 있으며, 사회계급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철폐와 모든 법적, 경제적, 종교적 노예계급의 해방에 있음을 이해했고, 이 가치에 헌신할 것을 선언하는가?”
“예.”
“자신이 아직 미숙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완성을 위해 동료 네오파이트와, 선배 이니시에이트, 어뎁트, 마구스의 조언에 항상 성실하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을 맹세하는가?”
“예.”
“설령 죽음의 위기가 눈앞에 닥치더라도, 결코 자신의 안위나 우정이나 사랑 등의 이유로 형제들의 신원이나, 주요 시설이나, 그 외 황금여명회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정보들을 단체 바깥의 존재에게 전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비밀을 엄수할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오라, 네오파이트여.”
청년은 앞으로 나왔다.
“그대의 이름을 말하라.”
“피에르 프루동, 전직 출판사 직원이며, 소르본 대학 학생입니다.”
“네오파이트 피에르는 이 순간부터 종신토록 황금여명회의 회원 자격을 보유함을 선언한다. 이는 명백한 배신 행위를 하는 등 정당한 이유로 총회에서 그의 제명이 결의되거나, 사망이 확인되는 순간까지 유효하다. 이에 대해 이의가 있는 학우는 지금 말하거나, 영원히 침묵하라.”
그리고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전직 교사, 출판사 직원, 그리고 현 소르본 대학 학생인 피에프 조제프 프루동은 그 박수를 받으며 황금여명회에 입단했다.
***
나는 조간신문을 보고 차를 엎지르고 말았다.
“어머! 괜찮으세요? 주인님? 주인님.....?”
라일라가 내 안색을 살폈지만, 내 눈은 신문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면, 음, 이게 혹시 원 역사에 있었나? 시베리아 개발 계획에 대한 회담, 그리고 알렉산드르 황태자와 빅토리아 공녀, 후일 빅토리아 여왕이 되어야 할 여자와의 혼담이?
아니, 내가 그래도 앨버트 공 정도는 아는데 그 양반 어디갔어, 혹시 앨버트 공이 나중에 나와서 혼담이 깨졌던 건가?
음, 그렇겠지.
아니, 애초에 러시아의 차기 차르와 영국의 차기 여왕 간의 혼담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겠어? 둘 다 장자 상속제인데 그럼 영국과 러시아가 다음 대에는 같은 왕을 모셔야 하는데 그러면 그 왕이 어디서 업무를 보는지부터 해서 조율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닌데, 그냥 언론에서나 호들갑 떨다가 유야무야되겠지 뭐.
아무리 봐도 뭔가 행복회로 같았지만, 그래서 뭐 내가 버킹엄 궁전에 쳐들어가서 이 결혼은 안 됩니다! 할 것도 아니고..... 일단 역사의 억지력 같은 게 있기를 바라야지.
나는 뭐 적극적으로 역사를 바꾸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미래지식 이용해서 꿀이나 달달하게 빨면서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냥 응? 뭐 적당히 인기 작가도 되고, 돈도 잔뜩 벌고, 거기에 조금 더 욕심부리면 국위선양했다고 훈장도 좀 받고, 결혼하고, 백만장자가 된 뒤에 만들어놓은 목돈에서 이자와 배당금 같은 거나 받아먹으면서 편히 살다가 늙어죽는 게 내 인생 계획이었다고.
근데 그 달달한 미래지식이 쓰레기통에 쳐박힐 판이다.
진짜 빅토리아 공녀와 황태자가 결혼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빅토리아 공녀가 여왕이 못 된다면? 빅토리아 시대는? 벨 에포크는? 1차대전은? 2차대전은?
이 세계선에서는 한국이 독립할 수는 있을까? 아니, 아직 식민지도 안 됐구나. 이대로 가다 보면 21세기 한국은 그 어디 아랍 어느 동네나 동남아시아 어느 동네랑 비슷한 신세 되는 거 아닐까?
물론 알량한 애국심이 발휘된 건 아니다. 사실 21세기 한국이 어떻게 되든, 전혀, 전혀 내 알 바는 아니다.
문제는 내가 죽은 뒤다, 그대로 저승행이라면 내 알 바 아니지만, 나를 19세기 극초반 영국으로 환생시킨 놈이 나를 21세기 한국인으로 다시 환생시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 있단 말인가. 소설 같은 데에서도 꼭 그러잖아?
즉, 내 보신을 위해서는 세상이, 그리고 한국이 너무 망해도 곤란하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정말 예측불허다.
‘영국과 러시아가 동군연합이 되면, 그레이트 게임은 확실하게 날아가고, 그럼 일본도 근대화는 못 할 텐데. 아편전쟁도 아직은 안 일어났고.’
그레이트 게임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 전제만으로 19세기에 일어날 대부분의 사건들의 전제조건은 깔끔하게 날아간다.
보불전쟁은? 독일 통일은? 비스마르크는?
“끄으으........”
긴고아에 고문당하는 손오공마냥 주박에 걸린 것처럼 머리를 붙잡고 끙끙대는 내 안색을 안절부절하며 살피던 라일라가 천을 가져와 차를 닦아냈다.
“......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 문제에 나보다도 더 민감하게 반응할 나라가 있다.
결코 멀지 않은, 도버 해협 너머에.
***
프랑스, 파리.
국민의회는 차라리 도떼기 시장이 더 조용할 지경이었다.
“다들 진정하고 한 명씩 발언 순서를 지키시오!”
의장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지만, 깔끔하게 묻혔다.
“국왕 폐하!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까!”
“러시아와 영국이 손을 잡았습니다! 우리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단 말입니다!”
“나폴레옹 시절을 상기하십시오! 우리는 또 다시 유럽에서 포위될 지경입니다!”
“억측 아닙니까! 그저 몇몇 언론사에서 약혼을 이야기한 것 뿐입니다!”
“그냥 약혼? 야! 영국의 차기 여왕과 러시아의 황태자의 약혼이 그냥 약혼이냐? 대가리에 뇌가 아니라 콩소메라도 들어있냐?”
“뭐야? 내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 결투다!”
“하!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 장갑이나 던지시오!”
“그마아아안!”
루이필리프는 사자후를 내질렀다.
“영국이 침공해 온다면 그에 맞설 뿐이다! 스페인과 동맹하고, 유럽 대륙에서 동맹국들을 찾을 것이다! 프로이센과 합스부르크 둘 중 적어도 하나는 우리를 지지할 것이다! 영국이 프로이센에게 동맹을 제안한다면 우리는 합스부르크와 손잡을 것이고, 합스부르크와 손잡는다면 그 반대가 될 뿐!”
그렇게까지 외치고서야 혼란은 좀 진정되었다.
“폐하, 그러면.......”
“외무장관, 즉시.......”
“독일 연방으로 떠나겠습니다. 추가로 하명할 것은 없으신지요.”
“뭘 약속해도 좋소, 저 러시아와 영국의 사악한 동맹을 막을 수만 있다면 뭘 해도 상관없소.그리고 이 약혼의 상세한 정황에 대해 알려진 바가 있소?”
“듣자니 영국 측에서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영국?”
“예.”
“윌리엄 4세가 전쟁을 결심한 모양이군. 빌어먹을.”
내부 불만 해소용으로 지브롤터를 쿡쿡 찔렀을 뿐이었다. 실질적인 군사 도발은 전혀 하지 않고 외교적 수사를 통한 압박만 가했는데!
“폐하.”
“말하시오, 모르티에 장군.”
한때 나폴레옹 휘하의 26원수 가운데 하나였던 에두아르 모르티에는 프랑스의 총리 겸 육군장관으로,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지금 즉시 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전쟁 한 번 하려면 병력 모으는 데 한 세월이 걸린다는 건 모두가 안다.
조지 스티븐슨이 로켓호를 만들어내어 상용 열차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건 아직 영국에만 깔리는 중이었고, 유럽 본토의 국가들이 열차를 상용화하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했다.
전쟁을 하려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청년들을 동원해서 도보나 마차를 통해 소집해야 하니, 병력 소집에 한세월.
모르티에의 말은 그렇기에....
“동원령을 내려 병력을 모아 단시간에 지브롤터를 들이쳐야 합니다. 누가 먼저 병력을 준비하고, 누가 먼저 치느냐에 따라 전쟁은 결판납니다.”
나폴레옹도 그랬다.
나폴레옹이 소수로 다수의 적을 격파했다지만, 사실은 다수로 소수의 적만을 격파했다.
전쟁의 기본은 적의 접면에 적보다 더 많은 병력을 밀어넣는 것. 그러나 군부대는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도로의 면적을 차지하기에 한 길로 통과시킬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양쪽 모두 동일한 조건이니, 만일 적보다 더 빠르게 기동해 적들이 병력을 합류시키기 전에 적을 각개격파하면 필승이다.
그것이 나폴레옹의 전술이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키워낸 프랑스군의 우월한 행군 능력과, 자신의 수학적 능력을 이용한 행군 일정 조율을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게 조율했고, 이를 통해 유럽을 제패했다.
그리고, 모르티에는 한때 나폴레옹의 심복 중의 심복이었고, 그의 전술을 당연히 학습했다.
“적은 우리보다 많지만, 우리가 더 빨리 준비할수록, 더 먼저 빠르게 공격을 가할수록 그 우위를 상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외교에서도 유리할 것입니다.”
적을 두들겨 꺾어놓으면 양쪽을 저울질하고 있을 독일계 국가들도 잽싸게 편을 정할 터.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선제공격을 가해야 합니다.”
워털루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그는 워털루 전투 직전에 앓아눕는 바람에 참전할 수 없었지만-단 몇 분의 차이만으로 전투의 패배, 더 나아가 전쟁의 승패가, 국가의 흥망이 정해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둔한 자는 과거의 교훈을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평범한 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실수를 되새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현명한 이는 다른 이의 실수에서 배워 스스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니, 현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둔하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단 하루라도 일찍 동원령을 내릴수록 더 유리해집니다. 폐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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