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전쟁(1)
자유와 방종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에 대한 답은, ‘시대에 따라’가 맞을 것이다.
물론 그 자유와 방종의 경계, 권리의 범주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경우, 권력자들의 의지에 따라 언론의 자유는 얼마든 제약될 수 있었다.
아니, 이것을 제약이라 해야 할지도 의문이었다.
언론 스스로가 저 위에 있는 의지를 느낀 뒤부터 자가검열을 시작한 셈이었으니까.
멜서스 트랩과 빈민증가방지법에 대한 논의가 어느 시점부터 쏙 들어갔다.
더불어 그동안 논의되던 빈민법 폐지에 대한 논의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은 물론이었다.
이를 굳이 표현하자면 백래시.
새로 즉위한 국왕의 강력한 의지와, 질려버린 정치인들과 시민들 등이 형성한 여론은 빈민방지법은 물론이거니와 빈민법의 폐지나 개정에 대한 논의마저도 틀어막아버렸다.
그 와중에, 신작이 발표되었다.
몇몇 이들이 우려한 것처럼, 신작, <늑대는 달을 보며 울지 않는다>는 멜서스 트랩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그 작가인 젠티안 자작부터가 기술만능주의자로써, 사회적 문제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었으니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설에서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일견 설득력이 있었다.
버려진 설원, 시베리아가 통째로 농토로 변하고, 지중해를 간척해 농토로 삼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각국은 분쟁이 일어난다. 당연히 그렇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9할을 단 한 개의 국가가 담당하고 있다면, 그 힘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각국은 자신의 식량주권을 지킬 능력이 있는가?
***
“이에 따라, 식량주권 연구위원회 예산안이 통과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망치 소리가 의회를 청아하게 울렸다.
오늘의 마지막 사안이 끝나자, 의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퇴장하며 대화를 나눴다.
“예산 증액을 반대하는 작자들은 뭐하는 인간들인지 모르겠군요.”
“어허, 체면 없게.......”
“체면이고 뭐고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아니, 나폴레옹에게 그렇게 당해보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답니까?”
“식량 주권을 사수하려면 방법이야 몇 가지 있지.”
지브롤터를 막거나, 아니면 베링 해협을 막아서 시베리아를 개발하든가.
이에 대한 논의는 버킹엄 궁전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따.
“시베리아를 개발하려면 당연히 러시아와 힘을 합쳐야 하며, 지중해를 개발하려면 이탈리아 반도에 대한 영향력 투사가 필요합니다.”
“브리튼은 단독으로는 식량을 자급할 수 없습니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대륙 봉쇄령이 우리에게 그토록 치명적이었던 이유죠.”
나폴레옹의 상흔이 아직 채 아물기도 전이다.
유럽 국가들에 의한 영국에 대한 포위공격은 아직도 영국 내각의 공포의 대상이엇다.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논의해도 좋을 듯 합니다.”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이라.”
“우리가 프랑스와 손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식량의 부족 가능성은 명백하고, 우리 역시 식량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후대가 우리를 원망할 것입니다.”
“일단 이 두 가지 안건을 올려봅시다. 시베리아 개발, 그리고 지중해 간척,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간척을 통해 비옥한 농토를 얻는 건 실제로 가능합니다. 저 네덜란드인들이 바로 그 증거지요. 그리고 지브롤터를 우리가 쥐고 있는 이상, 그건 우리 손에 달린 셈입니다.”
“하지만 지브롤터가 막히면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더라도 쓸모가 없어지고, 인도의 식민지화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중해 간척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러시아에서도 동의할 겁니다. 베링해협을 육로로 통과할 수 있게 된다면 알래스카의 경영이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알래스카와 캐나다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캐나다자치령에서의 막대한 수익을 기대해 볼 만 합니다.”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은 다들 아시다시피 흑해를 통해 수출되는 곡물입니다. 이 곡물들에 대한 초장기계약을 맺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해로가 봉쇄되면 그것도 의미가 없지 않겠소?”
“그러니 해군력을 증강해야 합니다. 최소한 상트페테르부르크-런던 노선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러시아에는 아직 철도가 놓이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기관차가 다니기 시작한 건 영국이다, 아직 유럽 밖은 물론이고 유럽 내에서도 영국 외에는 상용 철도 노선을 보유한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다. 프랑스와 독일마저도.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밀을 철도를 통해 항구까지 옮기고, 그 항구에서 우리 해군의 호위를 받으면서 밀을 런던까지 옮기는 것, 이것이 연합왕국이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더라도 지켜내야 할 절대방어선입니다.”
당연하지만,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는 필수다.
독일은 식량자급률이 영 좋지 않은 곳, 이탈리아는 통일되지 않은 채 혼란스러운 동네고 프랑스는 당장 선왕 시절에 나폴레옹 전쟁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말 다 하고도 남았다. 당장 총리인 웰즐리 공작이 그 나폴레옹을 워털루에서 격파한 자가 아닌가.
즉 유럽의 식량수출국 중 영국이 손을 잡을 만한 상대는 나폴레옹 전쟁기의 혈맹인 러시아뿐이었다.
인도에서 식량을 나르는 건 가능은 하지만,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었다.
윌리엄 4세는 장관들의 회의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느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러시아에 고위급 외교 회담을 제안하게, 지금 기술로는 족히 백 년이 걸린다고는 해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예, 폐하.”
웰즐리 공작이 예를 갖추었다.
그들은 아직 나폴레옹의 악몽을, 대륙봉쇄령의 공포를 잊지 못했다.
단 하나의 국가가 모든 식량의 공급을 독점한다면, 그 식량 공급을 무기화한다면?
패전이다, 필연적인 패배가 다가온다.
가뜩이나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대영제국에 있어서 이는 심대한 위협이다.
***
어느 필화를 부르는 인간이 신문을 뒤덮은 셜록 홈즈에 대한 사설과, 런던 시내에서 거행된 팬들의 셜록 홈즈 장례식과, 서명운동의 기세에 질려서 빈집의 모험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끼적거리는 동안, 도버 해협 건너도 그리 평온하지는 못했다.
얼마 전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를 확실하게 작살내고 오를레앙 왕조가 들어섰으나, 입헌군주제라고는 해도 투표권을 가진 인구는 전체 인구의 0.7%에 불과했기에 분노한 노동자들에 의해 프랑스 국내는 파업과 시위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튈르리궁에서는 오늘도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폐하, 노동자들은......”
“못 배워먹은 비렁뱅이들이 대체 뭘 안다고 선거에 끼워달라는 건지, 세금을 그만큼 내고 투표권을 달라고 하는 게 상식 아니오?”
귀족 한 명이 투덜거렸다.
“하여튼 무지렁이들을 선동하고 다니는 놈들이 문제입니다. 보이는 대로 잡아족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폐하, 한 가지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이번에 영국과 러시아 간에 회동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이는 심대한 안보 위협입니다.”
“..........?”
“나폴레옹 시기처럼, 영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쳐 우리 프랑스를 노릴 것입니다. 최소한 나폴레옹 시절에 대한 향수는 무지렁이들 사이에 제법 크니, 소문을 내면 믿을 겁니다.”
“호오.”
“그걸로도 어렵다면,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말해보게.”
그러자, 백작은 미소를 지으며 책 두 권을 회의실 탁자에 올렸다.
“이 책을 배포하는 겁니다. 글을 모르는 무지렁이들도 알 수 있도록 말로 퍼트려야겠죠, 그렇게 해서 여론을 모은 다음, 지중해 연안 국가들과 연합해 지브롤터를 압박하는 겁니다. 전쟁까지 갈 것도 없이 긴장감만 조성되어도 해결됩니다. 그 다음에는 선동하는 놈들을 전부 영국이나 러시아 첩자로 몰아서 감옥에 쳐넣을 수 있습니다.”
“백작의 말이 좋은 생각 같구려.”
물론 순수한 의도만은 아니었다.
7월 왕정의 지지파 대부분은 부르주아.
전쟁 위기가 닥치면, 각국은 군대를 확충하고 무기를 생산할 터, 무기, 탄약을 생산하면 문자 그대로 대박을 칠 수 있었다.
즉, 자신들의 지지자들에게 단꿀을 나눠주고, 불평분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시위를 강제로 해산시켜 여론도 가라앉히는, 일석삼조의 계책이었다.
그러다가 진짜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절대로 안 나지.’
‘영국이 먼저 선전포고를 할 리는 없다, 동맹국 하나 없이 무슨 선전포고? 그리고 우리는 선전포고 안 할 건데?’
러시아와 영국 간에 기술교류가 좀 있다고? 그게 뭐 어쩌라는 건가. 당장 프랑스도 영국에게 제법 많은 투자를 받은 상태였다. 어디 황태자가 한 번 찾아간다고 다 동맹인가? 국가 간에 선물 좀 주고받는다고 다 동맹인가?
진짜 전쟁이 나겠다 싶으면 그 전에 좀 수위 낮추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중세 이후로 귀족들과 군주의 일이었다.
물론 프랑스 혁명 이후로 총력전이라는, 국민군이라는 전 국민들의 참전에 대한 개념이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개념은 용납되지 않는다.
오늘날 프랑스에서 공화주의는 전대 공화국의 공포정치로 기억되었고, 공화주의는 왕정복고 이후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혁명은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고,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며 전통을 파괴한다. 결국 이는 국가를 유지시킬 수 없고, 인간은 개인이 속한 가족, 국가, 역사, 문화, 종교에 의해 완성되므로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
국민이 애국심을 가지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살기 위해 숨을 쉬듯이, 자신을 구체화하기 위해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의 애국심과 사회의 위계질서가 국가를 유지시킨다.
그것이 당연한 상식인 사회에서, 무지렁이들의 여론에 떠밀려 전쟁을 결정하는 정부란 주객이 전도된 일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주체조차 부르주아들이었다. 영국의 의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부유한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프랑스와 긴밀한 경제적 협력을 맺고 있고, 이들을 전부 개전 이후 몰수 과정을 거쳐 상실할 각오를 하지 않은 한 개전만큼은 피하려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애초에 프랑스도 선을 넘을 생각은 없었으니, 그저 군비를 증강하고 신문을 통해 여론전만 편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들이 국경을 넘는가? 아니면 영토를 요구하는가? 물론 지브롤터를 돌려주어야 한다고는 떠들겠지만 말뿐이고 어떠한 실질적인 행동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자신들이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고 영국에 먼저 선전포고하지 않는 한, 저 귀찮은 사회주의자들을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교양 있는 지식인들이 아니라 무지렁이들이 정권을 틀어쥐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영국과의 전쟁은 일어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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