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고통(1)
영국, 시티 오브 런던.
“아, 자작님.”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들렀네, 브루넬.”
젊다 못해 어린 남자지만, 동시에 가장 미친 커리어를 가진 인간이다.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영국이 낳은 최고의 공학자.
내가 이 양반과 맺은 인연이 제법 복잡하다.
몇 년 전, 템즈 강 지하 터널의 공사 작업에서 사고가 발생해 몇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공사 책임자였던 브루넬도 중상을 입었고, 6개월간 요양해야 했지만 책임자 중 두 명이 현장에서 즉사할 정도의 대형사고였고, 이로 인해 터널 공사가 몇 년간 중단되었다.
한편 그 뒤로도 브루넬의 커리어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그가 지휘했던 클리프턴 다리 공사는 브리스톨 폭동 때문에 투자자가 싹 빠져나가면서 좌초되었지만, 그때 내가 브루넬에게 투자를 좀 해 준 게 첫 인연이었다.
이후 브루넬은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건설의 수석 엔지니어가 되고 나서 한창 철도를 놓던 와중에 갑자기 선박에 관심을 가졌다.
브리스톨-뉴욕 노선을 새로 놓자는 주장이었고, 이로 인해 그레이트 웨스턴 기선회사가 성립되었다.
나 역시 초기 투자자이자 대주주로 그 이름을 올렸다. 물론 경영자는 따로 있지만.
아직 증기선이 대양을 오갈 정도의 효율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는 시대에 내가 21세기에 이름을 들었을 정도의 공학자가 주도해서 대서양 횡단 선박 사업을 한다? 안 낄 이유가 있나? 빚을 내서라도 껴야지.
“아무래도 돛을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돛은 공간을 많이 잡아먹지.”
“예, 이게 수지가 맞으려면 화물을 최대한 많이 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 내가 알려준 기술은 연구해봤나?”
“그 로터 말입니까?”
“그거면 공간은 확 줄일 수 있지 않나. 돛을 접을 필요도 없고, 역풍에도 강하니.”
“진짜 그걸 연구해야 할 판입니다. 제가 계산해 본 결과 증기기관만으로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데.......”
“뭐, 바다 위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일도 발생하는 법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나? 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게.”
사실 이 회사가 로터, 그러니까 풍통(風統)을 보조추진기로 채용하면 그 기술의 최초 고안자인 내게도-사실 인터넷에서 본 걸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지만-떡고물이 적잖게 떨어지리라는 걸 아니까 하는 소리지만.
“배는 클수록 좋습니다. 배가 감당할 수 있는 하중은 치수의 세제곱에 따라 증가하는데 그에 반해 배가 받는 저항의 양은 치수의 제곱만큼 증가하니 치수가 크면 클수록 연료소비가 효율적이 되어 운송비가 싸진단 말입니다.”
“..............”
미안, 한 귀로 흘렸다. 뭐 배가 크면 좋지.
“크흠, 아무튼 그래서 그레이트 웨스턴은 어떻게 건조가 잘 진행되고 있나? 멘지즈&선즈 놈들보다 자네가 뒤쳐질 수는 없지 않나.”
“절대 안 집니다. 걱정 마십시오. SS 그레이트 웨스턴은 제 이름을 걸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최초의 증기선이 될 겁니다.”
“뭐.... 내가 바람직한 주주로써 해야 할 일은 자네를 믿고 기다리는 일이겠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믿는데 다른 주주들 중에서는 의구심을 조금씩 품는 인간들이 있어, 지난번 설계변경만 없었어도 우리가 SS 시리우스인지 하는 후발주자 놈이랑 경쟁할 일이 있었겠나?”
“외륜보다는 프로펠러 추진이 낫다는 확신을 제게 심어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뇨.”
“내가 뭐 외륜 쓰지 말라고 돈 들고 협박이라도 했나. 외륜선으로 설계된 걸 설계 변경해버린 건 자네일세.”
“더 나은 방법이 있는데 그보다 못한 기술로 만드는 건 공학자로써 죄악입니다.”
“해군이야 외륜선보다 프로펠러 추진 방식을 좋아하기는 하겠지, 외륜보다 프로펠러를 노리는 게 더 어렵고, 갑판에 함포를 배치하기도 편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상선 회사 아닌가. 뭐 나중에야 해군에 특허를 팔아먹든 그치들에게 군함을 건조해서 팔아먹든 할 수 있긴 하겠지만 말이네. 아무튼, 시리우스보다 늦으면 투자자들이 적잖이 실망하지 않겠나? 나야 자네 고충을 이해하네만.”
“이 브루넬의 이름을 걸고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밤을 새우고 노동자들을 두 배로 고용해서라도 이길 겁니다.”
“그래야지, 원래 사업에서 선점 효과라는 게 강력한 거네, 날 보게나, 셜록 홈즈 시리즈로 추리 소설이라는 이름을 선점해놓으니 그 뒤에 뭐가 나와도 다 내 아류작이라는 소리나 듣잖나.”
“그건 자작님이 너무 잘 쓰신 게 문제 같습니다만. 농담이 아니라 백 년도 모자라고 천 년을 갈 명작이 아닙니까.”
뭐, 셜록 홈즈 시리즈가 원래부터 어마어마한 명작이기는 하다. 천 년이 아니라 2천 년, 3천 년도 우습게 가지 않을까.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건널 수 있다면, 이제 증기선이 못 갈 곳은 없어지는 셈이니까.”
“인도-태평양이야 뭐 중간에 기항지가 많으니 저탄소만 많이 만들어놓으면 증기선을 충분히 운용할 수 있죠. 대서양만 건널 수 있으면 못 갈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서양에는 뭐 변변한 기항지가 없으니, 자네 말이 맞네. 증기선만 타고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것도 꿈은 아니겠지. 두세 달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나?”
“그게 제 꿈입니다.”
브루넬은 그렇게 말하면서 애정을 담아 기관 장치의 용도를 알 수 없는 부품들을 애정어린 손길로 쓰다듬었다.
“나도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자네 배 타고 여행이나 가볼 생각이니 안 가라앉게 튼튼하게 만들게나. 워낙 큰 배니 용골이나 안 부러질지 걱정이군.”
“용골은 그래서 제가 많은 개량을 했습니다. 의원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은 저 역시 걱정하니 말입니다. 우선 그 길이가 300피트(200미터) 이상에 달하는 용골의 경우는......”
음, 괜히 말했다.
할 말과 하면 안 되는 말을 못 가린 업보로, 나는 브루넬이 알아먹을 수도 없는 공학 용어로 일장연설을 하는 것에서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
“에휴. 라일라,”
“예, 주인님.”
“오늘은 참 귀가 고생 많이 하는 날이었다.”
“아하하.”
“차라리 의회에 나가서 칼질을 하고 오는 게 낫지. 뭐 법적으로 의회에 갑옷 입고 들어가면 참수고, 의회에서 죽는 것도 불법이기는 한데.”
“..... 그럼 처벌은 어떻게 해요? 죽는 게 불법이면? 죽은 사람을 처형하나요? 아니면 시체를 감옥에 넣나요?”
“낸들 아냐? 500년 전 사람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아나, 그게 아마 1313년에 제정된 법이던가 할걸.”
“아, 그런데 그 소식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
“신작 말이에요.”
“내가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게 보통 좋은 사건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거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다. 별 문제 없이 글이 잘나가면 굳이 말을 길게 할 필요 없이원고료로 나오는 현금으로 이야기하면 된다.
“그 기본 설정에 대해서, 조금..... 음...... 유출이 된 거 같아요.”
“유출?”
나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회사 쪽에서 유출이 된 거 같기는 한데, 그........”
그녀의 고사리같은 손이 세계지도를 짚었다.
“이곳과, 이곳.”
베링 해협, 그리고 지브롤터 해협.
“야, 잠깐.........”
“유출된 게 이거 관련 정보에요.”
내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느낀 게 있는데.
이 인간들을 상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거 같다.
“그래서, 진짜로 그거 하자고 하는 인간들이 생겼다냐?”
“...... 어느 정도는요?”
그때, 저 멀리에서 고함이 들렸다.
“호외요! 호외!”
“국왕 폐하께서 위급하시답니다!”
***
“헨리 경! 헨리 경! 그를 데려와! 나 죽는다! 신이시여! 이게 무슨!”
윈저 성에서 외마디가 울려퍼진 지 15분.
국왕은 명백히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국왕의 옷자락은 그가 항문으로 쏟아낸 피로 더럽혀져 있었다. 내장에서 막대한 양의 출혈이 발생한 증거였다.
응고된 핏덩어리들을 시종들과 의사가 급히 닦아내었지만, 이미 상태의 악화는 명백했다.
심장에는 석회가 끼고, 뱃속에는 종양이 생긴 방탕한 왕은 그 어떤 명의가 와도 이제 와서 구해낼 수는 없으리라.
“신이시여......”
왕의 입술 사이에서 언어가 되지 못한 신음이 새나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조지 4세 시대의 종막이었다.
***
라일라는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거의 14시간 가까이 몰두해 있는 젠티안 자작은 빠르게 글을 적어내리고 있었다.
종이가 떨어질 때쯤 새 종이 뭉치를 가져다놓고, 잉크가 부족해질 때쯤 새 잉크병을 가져다두고 다 쓴 잉크병을 씻어다 채우는 건 그녀의 업무였다.
그리고 그가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하는 것은 그녀의 의무였다.
“도련님, 식사하세요.”
“놓고 가.”
“이번에는 샌드위치 아닙니다. 내려가서 드세요.”
샌드위치와 음료 정도면 그녀가 가지고 올라오지만, 그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우는 게 하루에 두 끼 이상이면 곤란하다.
물론 일하느라 정신없는 자작의 입장에서는 그냥 달라는 대로 주라고 요구하고 싶겠지만, 여백작은 이 부분에 대해 단호했다.
무조건 하루에 두 끼는 식탁에서 먹으라는 것.
“지금이 몇 시길래....... 어라?”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던 자작은 벌써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음에 깜짝 놀랐다.
“잠깐, 내가 밥을 먹었나.....”
“아침식사 하시고 바로 들어가셨고, 점심은 샌드위치로 드셨습니다. 저녁 드실 시간입니다.”
“끄응, 그래, 알았어, 조금만 더 하면 오늘 쓸 분량은 다 채울 것 같았는데.”
“식사 끝내시고 채우세요.”
“그래야지. 신문 좀 줘봐.”
“백작부인께서는 식탁에서 신문 보면서 식사하시는 거 질색하시는 거 아시죠?”
“어차피 지금 시간이면 이미 드시고 기도하실 시간 아닌가?”
“그건 그렇죠.”
“아무튼 배가 고프긴 하네, 오늘 저녁 뭐야?”
“평소랑 똑같습니다.”
신문을 받아 든 자작은 중얼거렸다.
“흐음, 역시.”
얼마 전, 빈민감소법을 지지하던 조지 4세가 서거했다.
그 뒤를 이어 왕세제였던 윌리엄 4세가 즉위하자 단숨에 빈민감소법은 강력한 지지자를 잃어버렸다.
윌리엄 4세는 명백히 빈민감소법이 비기독교적,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가뜩이나 수적으로 우세했던 반대파가 젠티안 자작의 공식 성명에 이어 찬성파를 공격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되었다.
“다행이군, 빈민감소법의 통과가 저지되었어. 신작이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네요.”
“대신 힘들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대체 왜 이렇게 픽션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인간들이 많지? 픽션은 좀 픽션으로, 아하하, 이 설정 흥미롭네, 그럴듯하네, 이러고 넘어가면 어디 덧나?”
“그런 사람들이면 베이커 가 221B에 편지도 안 보내요. 그러고 보니 셜록 홈즈 신작도 쓰셔야죠?”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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