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3화 (3/60)

위선의 시대(2)

홈즈는 중얼거렸다.

<삶이란 길을 걷다 마주친 고독한 영혼들의 교차로, 서로 같은 길을 걸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운명의 급류에 휘말려 뿔뿔이 흩어질 존재들의 이야기지.>

<대령은 날 죽일 수 없었네, 그는 겁쟁이였거든, 그 따뜻할 뿐 덧없는 망집을 버리지 못해 스스로 심연으로 걸어들어간 자가 그만한 용기를 낼 리 없지, 올바른 길을 살아간다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신이 보낸 선물을, 신의 축복이 담긴 선물을 걷어찰 용기는 더더욱 없었을 터.>

홈즈는 허드슨 부인의 하숙집 2층의 의자에서 여유롭게 파이프에 담배를 채운다. 왓슨은 또 사건을 거하게 쳐 준 이 못말리는 친구에게 대체 무슨 소리를 해줘야 할까 고민하는 눈치.

내 머릿속에서는 그 하숙집의 풍경이 이미 재생되고 있었다.

“지난번에 그 이야기 기억하나? 실뭉치처럼 꼬여버린 수많은 감정 속에서 살인이라는 주홍색 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 말이야.”

“감정이 아니라 정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남자가 누더기가 된 몸을 이끌고도......”

“그때의 사건이 실뭉치였다면, 이번 사건은..... 그래, 끝이 보이지 않는 만화경을 보는 것만 같네, 수많은 거울들에 의해 무한히 반사되는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허드슨 부인의 하숙집의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던 마지막 석양의 빛줄기마저 꺼지고, 그 자리를 달빛이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그 창문을 망연하게 바라보며, 너무나 익숙한 풍경 속에서 익숙한 인물과 같이 있지만 오늘따라 더욱 실체감과 멀어진 나머지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던 홈즈는 이번의 사건을 되새김질한다.

“과학적이지 못한 말이지만,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눈동자가 달과 같다고 생각했네, 그리고 그날 그녀를 보았을 때, 그 달은 타오르고 있었지, 석양의 빛을 받아 세상을 모조리 태워버릴 듯한 달빛이랄까?”

“홈즈, 내가 매번 놀라네만, 자네 시인의 재능도 있었던가?”

왓슨은 혀를 내두른다. 물론 홈즈는 무감각하다. 그의 의사 친구는 여전히 자신을 모른다. 그는 대학 시절에 시집을 두 권이나 출판했었던 인물이다.

“일단 여기까지.”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더 써보려고 해도 내장의 항의시위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소재가 슬슬 바닥나 간다.

내가 아는 셜록 홈즈를 기반으로 창작하다시피 하면서 시리즈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소재도 문제다.

그래서일까, 요즘 신문을 읽는 빈도가 늘어난 것 같다.

신문은 언제나의 런던 신문이었다.

여러 사건사고들, 각종 소식들. 사설들.

<독립을 외치는 벨기에인들을 돕겠다..... 프랑스, 네덜란드에 개입 시사>

<템스 강에 버려지는 오물들..... 이대로 괜찮은가?>

<런던 브리지 건설 또 지연......>

아직 템스 강에는 연어가 살기는 한다.

‘살기는’ 한다.

물론 몇 년 내에 템스 강의 물고기는 씨가 마를 거라는 걸 아는 입장에서는 이미 런던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도시였으니까.

내가 돈 많이 벌었어도 런던에 집을 안 구하고 교외에 저택을 구한 게 다 이유가 있다.

저기서는 오래 살기는 글러먹었으니까.

아직 산업혁명이 본 궤도에 오르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도 런던 공기를 보고 21세기 한국의 미세먼지를 생각하면 한국의 미세먼지가 천사같을 정도니 뭐 말 다 했지.

그때, 한 가지 글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빈민법, 빈민들을 구제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생충들을 양산하는가?>

빈민법이라, 그거 빈민들이 굶어죽지 말라고 국가보조금 주는 거 아니던가? 근데 그걸 폐지한다고?

아 뭐 21세기에도 국가지원을 서민들에게 계속 해주면 서민들이 국가 재정의 기생충이 되네 뭐네 하는 망언을 하는 정치인은 있었으니 19세기인 지금이면 신기할 것도 못 되나.

<인구론에 의하면, 인구증가 경향에 어떠한 억제도 가해지지 않는다면 세계 인구는 25년마다 2배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인류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에 필연적인 생존에 필요한 자원의 부족을 야기한다......>

인구론, 인구론이라, 아하, 이게 그 멜서스 트랩인가 뭔가 하는 거구만?

멜서스 트랩.

토머스 멜서스가 익명으로 출판한 경제학 서적 인구론, 정식 이름은 <인구의 원리에 관한 일론, 그것이 장래의 사회개량에 미치는 영향을 G.W.고드윈, M.콩도르세. 그리고 그 밖의 저작가들의 사색에 언급하며 논함>에서 주장한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언젠가 인구 증가 속도를 식량 생산 증가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것.

토지 당 단위 생산물에는 한계가 있기에 식량의 증가 속도는 산술급수적이지만, 인구의 증가는 기하급수적이므로 식량 생산이 1. 2. 3, 4, 5로 증가하면 인구는 1. 2. 4. 8. 16으로 증가하기에 결국 이를 방치하면 인류는 궤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문제가 현실화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질병, 기근, 전쟁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인구를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삶의 질은 여전히 최저수준이고,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결국 사람들이 대규모로 줄어 인구가 조절되는 사이클이 무한히 반복되기에 이를 트랩, 덫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 역사적 예시로는 흑사병,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아일랜드 대기근, 그리고 이스터 섬의 사례 등이 있었기에,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실제로 중국의 역사를 뜯어보면 근현대에 들어서기 이전까지는 전형적인 멜서스 트랩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프랑스 혁명의 원인도 근본적으로는 기근이었다. 심지어 현대에 들어온 뒤에 일어난 학살 등도 그러한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저출산까지도 멜서스 트랩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 모두가 살기 위해서 저소득층의 인구를 줄여야 한다, 결혼이나 출산을 늦추거나 금지하고, 더 나아가 전쟁이나 기아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맬서스의 주장이었다.

영국에 빈민법이 없어진 이유 역시 이 맬서스의 이론을 당대 영국 정부가 받아들인 탓이었다. 빈민복지를 하면 결국 모두가 가난해지고, 그들의 운명이 안타까울 수는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빈민법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인데, 내가 빈민법에 딱히 관심을 둔 적은 없지만 일단 지금 빈민법에 대한 폐지 여론이 슬슬 수면위로 기어나온다는 거잖아?

정부가 법 하나 만들거나, 개정하고, 폐지하는 데 얼마나 굼벵이처럼 움직이는지를 생각해 보면 폐지된다고 해도 몇 년 뒤쯤에나 폐지될 거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 코에 괜찮은 아이디어 냄새가 난다는 거지.

멜서스 트랩이 현실화되고, 21세기에 이르러 과잉인구에 빠진 지구에 갇힌 인류.

부유층조차도 진짜 고기는 먹기도 어렵도, 대부분의 인간들이 해초로 만든 멀건 죽만으로 죽지 못해 살아가며, 사망축하금이 정부에서 지급되는 세상.

인세의 지옥.

물가를 내리라고 시위하는 민중들을 향해 기관총을 주저없이 퍼붓고, 딸기잼 한 병이 다이아몬드 못지않은 가격으로 거래되며 중산층과 상류층도 딱딱한 건빵과 물 등이 대부분, 고기 스튜와 드레싱 하나 없는 샐러드가 포함된 식사는 최고위층조차도 감격하며 먹는 시대.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할 새로운 식품이 출시되었지만, 그 진실은 인육을 갈아 만든 것이었다는 진실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계에 폭로되는 모습까지.

<소일렌트 그린 이즈 피플! 소일렌트 그린 이즈 피플!>

귓가에 파운드 금화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

나는 즉시 출판사와 접촉했다.

런던 시내의 한 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나는 얼마 안 가서 편집장과 대화하게 되었다.

“이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소설 말입니다.”

편집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나온 빈민법 폐지 여론을 의식하신 건가요?”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이걸 보는 사람들이 그걸 연관지어서 생각할 겁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고요.”

편집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치인들이 전혀 관계없는 발언을 곡해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결코 적지 않은 사례가 있죠, 작가님의 발언 역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채 요리로 나온 테린을 한 입에 넣을 수 있게 썰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빈민법의 폐지는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인구를 늘려야 해요, 인구가 곧 국력이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주민들을 보내 식민지를 개척할 생각을 먼저 해야지 사람들을 죽일 생각을 하면 됩니까? 파이가 작으면 파이를 늘려야죠, 제 말은,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바깥으로요.”

“브리튼의 밖, 유럽의 밖, 대륙의 밖으로요.”

편집장이 다시 입을 열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쳤다.

“저는 전문가들이 말한 필연적인 미래에 대해 경고할 뿐입니다. 해결책도 제시할 거고요. 발전하면 그만입니다.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많은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더 넓은 세상으로, 지구 바깥까지 나아가서 인구압을 해소하면 끝날 일입니다. 더 많은 식민지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의 영화 스토리를 표절한 거긴 하지만, 일단 그렇다 치고.

“인류는 나아가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발전된 기술, 더 많은 영토, 이들이 바로 파이입니다. 그 파이를 늘릴 생각을 해야지 사람들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제 소설 내에서도 명백히 그런 메시지를 담을 거고요. 당장 캐나다가 있고, 오스트레일리아가 있고, 아시아가 있지 않습니까?”

좀 제국주의적인 발언이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시대가 제국주의 시대인데 내 발언 가지고 일일이 걸고넘어질 사람도 없다.

“맞는 말씀이군요.”

편집장도 딱히 태클을 걸지 않고 동의 의사를 표했다.

“우리는 바깥으로 나가야지, 이곳에 주저앉아서는 안 됩니다. 안주는 곧 쇠락이니까요.”

“......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그들은 작가님의 작품을 맥락을 무시하고 인용할 겁니다.”

“그럼 후속작이라도 한 편 내주죠.”

편집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후속작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뭐, 그런 식의 문맥을 무시한 인용을 하면 제가 공개적으로 비판할 겁니다. 저는 과학기술에 투자를 더 늘리고, 식민지 개척을 더 늘리자는 주장을 했을 뿐 사람을 죽이자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요. 빈민법을 없애는 게 아니라 빈민들을 해외로 보내 낭비되는 토지를 줄여야 합니다. 미국의 대토지, 그리고 남미의 토지,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문제인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다른 곳들. 충분히 개척할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멜서스 트랩을 걱정하는 건 집안에 식량이 3일치밖에 없다고 굶어죽을 걸 걱정하는 꼴입니다. 밖에 나가서 식재료를 시장에서 사 오면 될 거 아닙니까?”

“언젠가 지구에서는 한계가 올 텐데, 작가님은 그럼.......”

“지구가 좁으면 우주로 나가야죠, 저는 화성도 적절한 기술력과 100여 년의 시간을 소모하면 충분히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더 나아가 지구에 식량을 공급할 농업 행성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태양계 밖의 다른 별들까지도요.”

아직 은하 이상으로 인류의 우주관이 확장되지는 않았지만, 지동설은 확고부동하게 증명되었을 뿐 아니라 지구 바깥의 별과 성운에 대한 정보들은 충분히 있다.

즉 지구 바깥에 다른 별과 인간이 살 만한 행성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충분히 할 만하다는 거지, 그 화성인이 나오는 우주전쟁이 몇 년도 소설이더라?

“저는 인간을 믿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를 믿죠, 인간은 굳이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쥐똥만큼도 안 믿는다.

21세기에서 뭔 지랄이 났었는지를 기억하는 나로써는 인간을 믿는다는 말만큼 공허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말이 먹힌다.

1차 세계대전 이전, 기술이 모든 문제에 대한 만능열쇠로 여겨지는 벨 에포크, 산업혁명, 빅토리아 시대.

그러나 그런 빅토리아 시대에도 사회 전반에 깔린 엄숙주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안쪽에서부터 썩어들어가는 도덕적 타락, 지옥같은 빈부격차까지, 수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과, 19세기 초 대영제국의 차이였다.

명백히 삶의 질은 한참 떨어지지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세상.

그렇기에 인간을 믿는다는 말도 통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메인 요리에 나이프를 가져다 댔다. 적당하게 구워진 스테이크의 소스와 육즙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후속작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제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작가님 말씀을 들어주기를 바라야 할지 아니면 듣지 않아주기를 바라야 할지 모르겠군요.”

나는 피식 웃고는 스테이크 조각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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