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시대(1)
시끌벅적한 광장은 수많은 인간군상들로 들끓는다. 서로를 스쳐지나가는 흐릿한 그림자들의 모습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들의 편대비행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는 차라리 고요했다.
어떤 이유에서 발을 옮기든, 저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목적지가 있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광장에서 유리되어 있었다.
목적지 없는 망령은 광장에 녹아들 수 없었기에, 나는 달에게 자신의 하늘 왕좌를 내어주고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해가 뜨지 않는 도시, 런던에게 있어 극히 드물게도 맑은 하늘의 가장 빛나는 별은 퇴장하는 마지막 순간, 너무 눈부시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도록. 벌꿀주를 가득 담은 술잔처럼 찰랑이는 빛덩어리는 하루의 마지막 배려를 한다는 듯 회색빛 세상을 슬프도록 붉게 물들였고, 황금빛 노을은 모든 존재에게 평등하게 빛을 주며 모두의 실루엣을 황금빛 비단으로 감쌌다.
눈부신 황혼의 풍경 속에서 낮과 밤이 교차하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해와 달이 교차한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아, 그래, 라일라.”
메이드 복장을 한 어린 소녀가 고개를 공손히 숙였다.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은 일하던 중이었는지 흐트러져 있었지만, 녹색의 큰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머님은?”
“마님은 기도 중이십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귀족들이라면 모조리 목을 치던 광기에서 도피해 노르망디에서 영국으로 탈출하신 프랑스의 백작 영애셨던 어머니는 그때 만난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셨다.
두 분은 행복하셨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전사하지만 않으셨다면 계속 행복하셨겠지.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어머니가 여백작이든 간에 재산도 넉넉지 않았던 탓에 가세가 기울어져 갔고,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이상 나 역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자작(작위를 가진 귀족의 장남은 한 등급 낮은 작위로 불러주는 것이 당시의 예절이었다. 백작의 장남의 경우는 자작, 공작의 장남의 경우는 후작)이면 뭐하는가. 재산이 없는데. 영지에 대한 소유권? 혁명정부에게 싹 압류당했다더라.
나중에 보상을 받기는 했는데, 그것도 간신히 귀족 체면만 지키면서 살 정도엿고.
그런 마당이었기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아서 코난 도일도 안 태어난 세계관에서, 내가 쓸 만한 글이 뭐가 있었겠는가.
나는 흥행 보증수표를 꺼내들었고, 순식간에 돈이 복사가 되고 있었다.
“라일라, 일할 거니까 잉크병과 종이 꺼내서 내 책상 앞에 놔둬. 펜촉도 갈아놓고.”
“아, 네! 식사는요?”
“하고 왔어.”
“아, 저.... 그게..... 그런데 아직 책상 정리를 못 해서........”
“지금 해.”
지시를 받은 라일라는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걸 힐끗 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아, 왔니? 에드. 일은 잘 보고 왔어?”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또 성경을 읽으시나요?”
“내가 수녀원에 안 들어갔던 이유는 네 아버지 때문이었고, 그 다음은 너 때문이었다. 네가 결혼만 하면 안심하고 수녀원에 들어가련만.”
“저 돈 많아요 어머니.”
“하지만 여자 보는 눈은 딱히 없지 않니?”
아니 어머니, 그렇게 팩트로 세게 때리지면.......
“마음에 둔 여자라거나, 정말 없니?”
“솔직히 말하자면 제 눈에 차는 여자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좀 밖에도 다니고 그러렴, 여자를 만나야 눈에 차는 여자도 생기고 그러는 거지.”
“한 번 있긴 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자더군요, 깔끔히 포기했습니다. 아무튼 전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내가 받는 원고료는 어마어마하다.
인류 역사에서 인기가 보장된 최고의 베스트셀러, 셜록 홈즈 시리즈.
물론 사실 원본이 있어도 베끼는 작업은 쉬운 게 아니다.
아직 타자기도 안 발명된 세상, 시대에 맞게 작품을 약간씩 어레인지해야 하는 문제도 있어서, 전부 손으로 써야 한다.
물론 그만한 대가는 있다. 원고에서 단어 5개당 1파운드가 나오니까. 원고료는 단어 기준으로 나온다.
간단히 말해, 돈이 복사가 된다.
올라와 보니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신문쪼가리들과 찻잔, 스콘 접시와 음식 부스러기 따위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바구니 두 개에 종이가 네모반듯하게 되어 있었다.
“수고했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라일라는 고개를 숙였다.
라일라, 어머니가 고용했던 메이드.
아직 어린애지만, 어머니가 내 방 꼬라지를 보고 기함하신 뒤 얘를 붙여서 내가 사람 사는 꼴은 하고 살게 하라는 특명을 내리셨다.
그리고 나는 얘를 좀 더 알뜰하게 부려먹고 있다. 일단 지금은 소설 스토리를 듣게 하면서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나 이 시대 사람이 듣기에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잡아내게 시키고 있지만, 라일라가 글을 익히면 그때부터는 원고 사본 만들기나 오탈자 교정부터 시작해서 업무 외 노동을 좀 실컷 시킬 생각이다.
대신 글 가르쳐주는 교육비는 안 받고 보너스도 줄 거니까-부려먹으려고 가르치는 거긴 해도-나름 합리적인 거래 아닐까?
“6시 되면 사전 가져와라.”
“네, 알겠습니다.”
물론 라일라는 내 음모를 모르고, 그냥 글 가르쳐준다는 사실만으로 좋아하고 있다. 21세기의 선생님들이 참 좋아할 제자상이야. 배움 그 자체를 즐기다니.
***
“........ 한다.”
“저, 도련님.”
“응?”
“그러면 그 아이린 애들러는 어떻게 되나요?”
“일단 떠나가서 영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정도인데, 왜 그러니?”
“아이린 애들러는 일단 혼자잖아요, 게다가 머리도 좋고, 홈즈 선생님의 성격이랑 지성을 같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솔직히 왓슨 박사님도 벅찬데 그래도 홈즈를 한 번 물먹인 여자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닐까 해서요.”
“뭐야, 아이린 애들러와 셜록 홈즈를 이어달라고?”
“저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 할걸요?”
음, 그건 그렇다.
당장 21세기에도 그런 재해석이 차고 넘치거든. 원작에서 다른 남자가 생겨서 결혼했는데도 어떻게든 홈즈와 이어주려는 셜로키언들이 넘쳐났는데 여기라고 안 그럴 리 있겠냐.
“흐음...... 그런데 내가 지금 구상한 스토리에서 홈즈가 결혼할 타이밍이 없어. 지금 홈즈는 자신의 숙적과 싸우고 있거든.”
“더 좋네요, 그 모리어티 교수 말이죠? 그럼 그 모리어티 교수를 쓰러트리고 결혼하면 되지 않을까요? 증인은 왓슨 박사님이 서고요, 왓슨 박사님도 결혼하셨는데 셜록 홈즈도 해야죠.”
으음, 이게 시대적으로는 일반적인 관점이겠지.
멀쩡한 사람이 어디 성직자도 아닌데 결혼을 안 한다? 이거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요.
물론 홈즈는 여자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인물이라지만 그것도 아이린 애들러라는 특이 케이스가 나왔으니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충분히 나올 수 있고.
솔직히 나도 미래에서 소설 기억하는 대로 베껴다 팔아먹는 실정이지만 내가 셜록 홈즈가 실시간 연재되는 시대에 살았다면 아마 ‘아, 작가가 이제 슬슬 홈즈도 장가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려나.
음, 어쩌지 진짜.
“라일라.”
“네?”
“만약에 말이다, 아이린이 포기한 게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고, 홈즈는 모리어티 교수와의 최후의 결투에서 같이 죽게 된다면.......”
“도련님.”
아주 진지한 표정이 된 라일라가 답했다.
“제가 장담컨대 이 집으로 돌 날아올 거에요.”
“....... 그 정도야? 아니, 그건 그렇기는 한데, 허.”
원 역사에서 마지막 사건 쓰고 나서 좀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하도 팬들이 극성을 부려대서 홈즈를 어거지로 부활시켰던 게 빈집의 모험이었던가.
“으음........”
“그 주인님이 계획하셨다는 게 뭔데요?”
“그게......”
나는 마지막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 주었다.
“........ 런던 시내에서 폭동이 일어날 거에요.”
그 말을 들은 라일라의 답변이었다.
“........ 진짜로?”
“네.”
라일라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무조건 일어나요.”
“.............”
나는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나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었다.
“혹시 신문 좀 있어?”
“아침에 받아둔 게 있을 거에요. 가져올까요?”
“그래, 세상 돌아가는 건 알아야 글도 나오지.”
라일라는 곧장 쪼르르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나는 곧장 자리에 앉아 잉크를 채웠다.
“빌어먹을, 이거 불편해서라도 타자기를 발명해야지 원.”
타자기가 원 역사에서 언제 발명되었더라? 조만간일 텐데.
아무튼 간에 까놓고 말해서 ‘나는’ 못 만든다.
내가 뭔 수로 만드냐, 내부 구조도 모르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데.
물론 19세기에 돈과 같이 던져놓으면 타자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기는 있을 텐데, 그게 나는 아니라는 게 문제다.
“하아.”
진짜 과거로 오게 되니 아쉬운 게 하나가 아니다.
인터넷도 아쉽고, 컴퓨터도 아쉽고, 아스피린도 아쉽고.
교통수단도 구질구질하고, 의사들은 마약을 처방해주고 있고, 흡연이 건강에 좋다는 개소리가 정설로 당당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이러니 내가 뭐 몸이 안 좋아도 의사를 찾아가겠나. 의사를 찾아가더라도 약은 안 먹는다. 그 약 안에 뭐가 들어 있을 줄 알고.
거기에 동양의 오컬트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고....... 아주 굿판 한번 보여주면 그것도 제법 장사가 되겠어 아주?
아직 빅토리아 시대가 오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빅토리아 시대가 열리고, 이번 생의 대부분은 그 빅토리아 시대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빅토리아 시대를 이렇게 규정하고 싶었다.
위선의 시대.
사회는 발전한다고 하지만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광산에서 일하다가 죽어가고, 서양 세계는 눈부시게 발전한다고 하지만 그 발 아래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식민지들의 고혈이 가득 차서 말 굴레까지 닿을 지경이었다.
종교적 엄숙주의가 강요되지만 조금만 뒷골목으로 가면 온갖 방탕함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걸 엎어버릴 능력도, 의지도 내게는 없다.
그래도 나는 운 좋게 기득권의 끝자락에나마 간신히 엉덩이를 걸치고 있으니까.
내가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내던져졌다면 나도 혁명을 꿈꿨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시대의 승리자인 영국 시민이며, 그 중에서도 이름 있는 작가가 되었고 집안도 부유하며 반쯤 몰락했다지만 귀족 가문은 귀족 가문이다.
사회의 저명 인사로써 그럭저럭 즐기면서 지내다가 늙어죽어도 될 위치라는 거다. 1차대전? 2차대전? 그걸 내가 보겠나? 내가 1808년생인데.
내가 1차대전을 보려면 106세, 이 시대의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그 전에 내가 늙어죽을 확률은 99%에 달한다. 2차대전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루이 14세도 이런 말을 했다지 않는가. 짐이 죽은 뒤에 대홍수가 일어나든 말든 짐이 알 바 아니니라.
뭐, 그러니까 조용히 살 거다. 조용히, 사회에서 떨어지는 단꿀은 최대한 빨아먹으면서.
설마 글쟁이 하나 때문에 역사가 뒤틀리기라도 하겠어.
나는 피식 웃었다. 망상에도 정도가 있었으니.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일개 소설가인데 뭐, 날 과거로 보낸 게 신인지 악마인지는 몰라도 내가 역사를 제대로 뒤집어놓기를 원했으면 명문가의 자식이나 권력자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줬겠지 원 역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몰락가문의 유복자 따위로 태어나게 했겠냐.’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편안히 몸을 기댔다.
마침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라일라가 문을 열었다.
“신문 가져왔습니다.”
“고맙다.”
“마실 것 가져다드려요? 매번 신문 보실 때면 마실 거 찾으시잖아요.”
“음, 물 한 잔만 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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