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1화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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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829년, 런던의 한 클럽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명은 제법 젊고, 한 명은 장년의 나이였지만 둘 모두 프록코트에 실크헷으로 치장한, 전형적인 부유한 신사였다.

“인기는 정말 폭발적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외알 안경을 쓴 장년의 신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희 잡지는 구독수가 2배로 늘었고, 이대로 가면 올해 내로 5배까지 느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겁니다. 혹시 저희 회사 측에서 뭔가 더 해드릴 것이 있을까요?”

“흐음, 계약상으로는 충분히 배려를 받았으니 지금 당장은 크게 없을 듯 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쓰는 속도가 빠르시군요.”

“젊어서 바짝 벌어놓고 노후에는 편안히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비축을 많이 쌓아둬야 갑자기 뭔가 일이 생겨서 제가 해외에 나가거나 하는 일이 생겨도 독자들이 기다리는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암요.”

홍차를 홀짝이며 편집장은 빙긋 웃었다.

“원래 사장님이 직접 오시기로 했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오시지 못했습니다.”

“허, 사장님을 한 번 더 뵙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요.”

“저번에 파티에서 뵙지 않았습니까?”

“정직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도 없었습니다.”

“아, 아쉬운 일이군요. 다음번에는 한번 자리를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 젊은 신사를 주시했다.

폭풍.

아니, 광풍.

셜록 홈즈 시리즈는 그야말로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홈즈의 하숙집이 있다는 베이커 가는 관광객으로 미어터지고 있었고, 셜록 홈즈를 실존 인물로 믿고 자기 사건도 해결해 달라며 베이커 가 221B로 날아드는 편지 탓에 인근 우체국들은 고역을 겪고 있었다.

문제는 애초에 베이커 가에는 200번대 주소가 없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우체부들은 이를 일일이 반송하며 ‘베이커가 221B는 없는 주소다’라는 사실을 발신인들에게 납득시키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당연히, 그 작가인 에드워드 젠티안 자작의 유명세와 몸값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서 코난 도일이 아니다.

그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젊은 신사는 웃으면서 홍차를 마셨다.

“스콘 맛이 좋군요.”

“하하, 자작님께서 취향이 고급이십니다.”

글쎄.

자작이라 불린 젊은 신사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혹시 다음 줄거리를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홈즈에게 첫 실패를 안겨 줄 생각입니다.”

“실패........요?”

장년의 신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소설에 조예가 깊지는 않습니다만, 홈즈가 실패하는 걸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 물론 납득 가능하게 쓸 겁니다. 이번에 홈즈를 상대하는 인물은 사실 어떤 법도 어기지 않았지만, 동시에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의 열쇠를 쥔 인물이거든요.”

“조금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홈즈에게 언제나처럼 의뢰가 들어오지만, 그 의뢰주가 제법 거물입니다. 한 나라의 황족이거든요.”

“황족이라.”

“대공의 밀사를 자처한 남자는 홈즈에게 단숨에 정체를 간파당합니다. 대공 본인이었죠. 연기를 그만둔 대공은 사진을 하나 찾아와 달라고 합니다.”

“사진이요?”

“대공은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가들 가운데에서는 결혼 상대에게 깐깐한 조건을 요구하기도 하죠, 대공은 한 공주와 정략결혼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가 과거 연심을 품었던 한 평민 여성이 거기에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발표일에 자신과 그가 가까운 사이였다는 걸 증명해서 파혼시켜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죠, 애가 있거나, 정부였거나 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고, 상대 왕가의 분노만으로도 대공의 입지에는 치명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음, 그러면....”

“일종의 플라토닉한 관계, 그 정도로 알아두시면 될 겁니다.”

“예, 그렇군요.”

“그 여성의 이름은 아이린 애들러, 그녀는 두 가지 무기가 있었죠, 대공의 친필 편지와 대공의 사진, 홈즈는 친필 편지는 종이는 훔쳤고, 글씨체야 흉내내면 그만이라고 우길 수 있지만 대공과 애들러 양이 같이 찍은 사진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야 당연하죠.”

“대공은 그 사진에 대해 뭐든 내놓을 수 있다 말했습니다. 막대한 보수를 홈즈에게 약속하고 역시 어마어마한 선금을 주었죠, 홈즈는 그 사진을 대공에게 가져다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대공은 자신이 이미 시도한 일에 대해 알려주었는데, 두 차례 사진을 사들이려 했고 세 차례 도둑을 고용해 그녀의 집을 뒤지거나 아예 한 번은 강도를 보내 그녀가 마차에 타고 있을 때 사진을 빼앗으려 했으나 전부 허탕이었다고요, 홈즈는 이를 지적하며 괜히 들쑤셔 놨으니 더 사진을 꽁꽁 숨겼을 거라고 말하고, 차라리 바로 자기를 찾아오지 그랬냐며 책망합니다. 대공은 할 말이 없었죠.”

“흐음.”

“뭐 여차저차해서 홈즈는 아이린 애들러가 사진을 숨겨놓은 장소를 알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래서 홈즈와 왓슨, 대공이 셋이서 가서 홈즈가 담을 넘어 직접 사진을 가져오고, 대공과 왓슨은 바깥 마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뜻밖에도 담을 넘었던 홈즈가 당황한 표정으로 편지 한 장을 들고 대문으로 나오는 걸 봅니다.”

“오호?”

“집이 텅 비어 있었던 거죠, 자신이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셜록 홈즈가 자신의 상대라는 사실을 눈치챈 아이린 애들러가 가산을 정리해 도주해버린 겁니다. 편지는 셜록 홈즈 앞으로 와 있었고, 사진은 돌려주지 않겠지만 그걸 공개하지도 않고 한 때의 철없던 시기의 추억으로 가지고 있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대공에게 이제는 마음 놓고 결혼해도 된다고 추신이 붙어 있었죠, 대공은 경탄하면서 신분만 고귀했다면 황후가 되고도 남았을 여인이라며, 그녀는 자신의 말을 반드시 지킬 인물이니 의뢰는 해결되었다고 말하며 원하는 보답을 묻습니다. 그러자 홈즈는 다른 대가가 아닌, 그녀가 편지에 같이 넣어 둔 아이린 애들러의 사진을 택하는 걸로 끝나는 거죠.”

“허어, 이건 또 괜찮군요, 홈즈가 실패는 하지만 완전한 실패도 아니고, 혹시 아이린 애들러가 추후에 또 등장합니까?”

“아직 생각해둔 바는 없습니다.”

자신이 마사지를 가한 보헤미아 왕국 스캔들의 스토리를 이야기한 젊은 신사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럼, 다음 홈즈와 왓슨의 모험을 위하여.”

“위하여.”

두 사람은 웃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돈벼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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