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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집착 받는 시종이 되었다 (127)화 (127/129)

외전 2화

클라이드는 그녀가 제 속을 들여다보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비슷한 육감이 있다면, 못난 심장을 다 들킬 것이다. 잠깐도 떨어져 있기 싫어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남자를 한심하게 여기겠지.

그녀가 제게 질려 버릴까 봐 늘 두려웠다.

언젠가 물었을 때 에디스는 잘생긴 얼굴을 들먹이며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외모는 오래가지 못한다. 물론 그녀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겠지만, 그래 봤자 몇 년이다.

감정의 깊이는 갈수록 깊어지는데 질척거리는 자신의 태도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이러다가 나중에 에디스가 저를 귀찮아할까 봐 두려웠다.

“응, 좀 이따 봐요.”

친절히 웃어 주는 그녀가 고마울 뿐이었다.

* * *

장엄한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클라이드는 에디스의 손을 제 손목에 고귀하게 받쳐 잡았다.

수많은 하객이 홀을 가득 메우고 둘의 성혼을 지켜봤다. 천장의 샹들리에와 사방의 벽걸이 초에 불이 밝혀져 휘황하게 빛났다. 금사를 섞어 짠 휘장이 빼곡한 불빛을 받아 찬란히 반짝였다.

진한 적색의 카펫을 밟고 두 사람이 몇 계단 위의 단상에 올랐다.

자신이 에디스의 남편이 되는 것, 에디스를 제 아내로 맞이하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를 담아 길디긴 개회사가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새로 주어질 작위와 영지, 공식적인 지위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클라이드는 늘 생각해 왔다.

황태자가 아닌 보통 남자였다면 그녀와 어떤 관계가 되었을지.

아마 지금보다는 이르게 연을 맺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부담스러워한 적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에디스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던 때가 가장 힘들었다. 이렇듯 옆자리에 세움으로써 그녀 역시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게 죄스럽고 안타까웠다.

천운이 따라서인지, 에디스는 통치자의 자질을 타고났다. 장담하건대 자신보다 그녀가 훨씬 제국의 안위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여전히 지울 수 없었다.

에디스는 야망을 품고 황족의 부와 명예를 누리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권리보다 의무를 더 중히 여겼다. 남에게는 그게 좋아 보여도 클라이드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인생을 편히 즐기게 하고 싶지만 현실은 황후의 관을 씌워 줘야 해서 미안했다.

잠시 멈췄던 팡파르가 다시 울렸다.

다음 식순은 결혼 선언문 낭독이었다.

클라이드가 직접 작성한 글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자가 대독했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정이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한 식장에서 그가 먼저 펜을 들었다. 선언문의 하단,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야 할 공란에 펜촉을 댔다.

조금 떨렸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실수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사인했다. 수없이 썼던 제 이름의 서명이 자칫 어긋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에디스에게도 펜이 놓인 은쟁반이 다가왔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펜을 들며 잠시 클라이드를 바라봤다.

떨림이 훨씬 심해졌다.

선언문 앞에 나란히 선 발끝만큼이나 이름이 나란히 쓰이는 순간이 긴장됐다.

당당하고 의젓한 남편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조바심 나는 심정을 드러내서 그녀를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에디스가 말했듯이, 저 한 사람만 보고 이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다. 별 너머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오직 자신이다. 따라서 그녀가 의지해 주는 만큼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클라이드의 이름 바로 아래에 우아한 필치로 그녀의 사인이 들어갔다.

떨리는 손끝을 감추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뭣 때문에 떨고 긴장하는지 가늠하기는 힘들었다. 그녀가 서명을 거절하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을 망치는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었다.

그저 심장이 서늘하게 뛰었다.

자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 식순으로 넘어가기 직전, 클라이드는 사회자에게 손끝을 까딱여 신호를 보냈다. 잠시 여유를 갖기 위해서였다.

서명을 마친 결혼 선언문을 챙겨 가려던 시종이 다가오지 못하고 연단 아래에서 발을 멈췄다. 많은 하객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힌 채였다. 식장이 드넓었지만, 관객석과 공연장의 차이처럼 주인공인 두 사람 주변은 비어 있었다.

클라이드는 주변을 크게 둘러봤다.

그러고 나서 에디스에게 시선을 맞췄다.

나직하게 낮춘 그의 음성이 연단의 영역 안에서만 머물렀다.

“나의 황후…….”

그녀의 꽃 같은 입술이 부드럽게 펼쳐졌다.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맙습니다.”

“폐하.”

“온 힘을 다해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

“별의 힘을 이길 수 있도록. 한낱 인간이 큰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서.”

“…….”

“널 나한테 평생 묶어 둘 거야.”

“클라이드.”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노력할게. 많이 아껴 주고 보듬어 줄게.”

“나 역시 그럴게요.”

“고마워.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만…… 고마워, 내 아내.”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기하던 음악이 다시 연주되었다. 결혼식의 순서마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웅장한 음악이었다.

클라이드는 그녀의 손을 굳게 잡았다.

예법대로라면 간격을 유지한 채 바르게 서야 하지만, 이 정도의 파격은 괜찮으리라 여겼다.

“황후, 이제 그만 갈까요?”

“예, 폐하.”

그녀를 응시하는 시선을 거두기가 아쉬웠다. 일생 동안 눈에 그녀만을 담고 싶지만,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은 몸을 돌려 정면을 향했다. 귀족, 관리, 외국 사절,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무릎을 굽혀 하례했다.

모든 이의 공경 어린 인사를 받으며, 둘은 새로운 첫발을 내디뎠다.

* * *

예식이 끝난 후 연회장에는 곧바로 오찬이 차려졌다. 수많은 하객과 귀빈을 위해 풍족한 식사를 준비했다. 먹고 마시며 흥겨운 분위기를 돋우는 동안 각종 공연도 벌어질 예정이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찬에 이어 저녁의 만찬, 무도 연회까지 즐기게 될 것이다.

국가적인 행사로서 황제의 결혼 연회는 7일 동안 계속된다. 기간이 다소 짧은 듯한데 재정을 걱정하는 에디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그 정도만 진행하기로 했다.

황제 내외만을 위한 점심 식사는 따로 차렸다.

복장을 가다듬고 잠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선대 황제는 황태자 시절에 결혼하면서 내내 하객을 접대했지만, 클라이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눈치 볼 권신도 없고 오로지 에디스만 잘 챙기면 되었다.

그녀에게 결혼식이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격식과 절차를 따르느라 힘들었던 기억만 남는 건 원치 않았다.

그래서 미리 일정을 짤 때도 에디스가 무리하지 않고 마음 편히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조치했다.

미리 음식이 차려져 있는 테이블에 먼저 클라이드가 와서 기다렸다.

잠시 후 길게 줄을 이룬 시녀들과 함께 에디스가 등장했다.

“황후관을 벗었군.”

묵직하고 펑퍼짐하게 늘어지는 겉옷도 잠시 벗어 두고 클라이드의 맞은편에 앉았다.

“너무 무거워서요. 관 말고 다른 장식품도 많아서 목이 아파요.”

“잘했어. 오후 일정에는 관을 쓰지 말자.”

“아무리 그래도 식을 치른 날인걸요. 참고 써야지요.”

“안 그래도 돼. 에디스가 황후인 걸 이 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래도요. 사람들 만날 때는 써야 폼이 나죠.”

사랑스럽게 미소 짓는 에디스가 제 아내라니. 자신은 우주 최고의 행운아다.

에디스가 쓴 황후관은 2대 위의 황후가 즐겨 사용하던 관을 말끔하게 수리했다. 그녀만을 위해 새로 제작 중인 관은 결혼 3주년 축하 연회에서 쓰게 될 여정이다.

시종들을 모두 내보낸 후, 클라이드는 일어나서 에디스의 잔에 음료를 채웠다. 테이블에 남는 공간이 없을 만큼 많은 음식 중에서 그녀가 잘 먹을 법한 접시를 가까이 옮겼다.

클라이드는 자기 몫의 스테이크를 큼직하게 썰어 빨리 먹어 치웠다. 전투적으로 식사하는 내내 그녀에게만 신경이 쏠렸다.

에디스는 수프만 느릿느릿 몇 숟가락 떠먹었다.

“왜 그렇게 못 먹어?”

“입맛이 없네요.”

“그래도 좀 더 먹어.”

오늘 같은 날 먹성 좋게 점심을 해치우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그는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는 에디스를 가만히 보아 넘길 수 없었다.

의자를 끌어다가 가까이 앉았다. 숟가락을 대신 들어 말끔히 수프를 떴다.

“이것만 마저 먹자. 응?”

“클라이드…….”

“건더기도 으깨서 부드럽게 끓인 거라, 속에서 편하게 받을 거야.”

꾸준히 달래다 보니 에디스가 입을 벌렸다. 재빨리 한 입 넣고 다음 숟가락도 채웠다.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디 하루 이틀 먹이나. 결혼하는 날이라고 달라질 건 없었다.

“이젠 정말 못 먹겠어요. 당신 성의는 고맙지만.”

에디스가 도리질 치는 바람에 수프 그릇의 절반만 비웠다. 아쉽지만 다른 음식을 끌어와야 했다. 이번에는 석류를 듬뿍 올린 푸딩이었다.

“어쩔 수 없군. 디저트는 어때? 새콤한 맛이 기운을 차리게 해 줄 거야.”

빨간 석류 알갱이가 그보다 더 붉고 탐스러운 입술 사이로 들어갔다.

세 입 받아먹는 것까지 헤아리자 클라이드의 졸아들던 마음이 차츰 풀렸다. 결혼식을 치른 후 그녀가 몸살이라도 걸리게 된다면 자신은 괴로워 못 견딜 것 같았다.

하얀 푸딩과 붉은 석류가 그녀의 앙증맞은 입 안에 머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이젠 정말 끝이라는 태도로 에디스가 입을 냅킨으로 눌러 닦을 때, 참고 또 참던 감정이 폭발했다.

“에디스…….”

상체를 굽힌 그가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

상큼한 과일 향이 훅 끼쳤다.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도저히 인내하기 힘든 자태였다. 무방비하게 벌어진 입술에 클라이드의 무도한 입이 다가들었다.

“읏.”

깜찍한 신음을 입술과 함께 머금었다.

푸딩 저리 가라 할 만큼 몰랑한 감촉과 몸이 동하는 향기에, 클라이드는 더 깊이 그녀를 탐했다.

한번 터진 물꼬를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 에디스가 아닌 척하며 따라오는 행위에 더 흥분했다. 한 쌍의 뱀이 되어 둘의 벌어진 입 안이 질척하게 교차했다.

클라이드는 그녀의 목을 가만히 쥐고 그 뒤까지 감쌌다.

고개를 비틀어 접촉할 만한 면적을 넓혔다.

두 입술이 엇갈렸다. 그 속은 습하고 뜨거웠다. 턱을 벌렸다가 오므리기를 반복하며 클라이드는 제대로 점심을 먹지 못한 그녀를 제 입에 몰아넣었다.

“하아, 클…….”

빡빡하게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에디스는 한마디도 끝을 맺지 못했다. 입 안에 감도는 자신의 이름이 듣기 좋았다. 그 음성이 에디스라서 더욱 좋았다.

키스만으로는 부족했다.

욕구에 가득 찬 채 그녀를 안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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