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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집착 받는 시종이 되었다 (126)화 (126/129)

외전 1화

운명의 결혼식을 축복하듯이 쾌청한 날씨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한 그레이트홀은 결혼식장으로 꾸며져 화려함을 뽐냈다. 초가을의 풍요로운 꽃들이 홀 외곽에서부터 입구를 거쳐 실내 전체를 장식했다.

클라이드는 모조리 새로 만든 휘장과 테이블 클로스를 무심히 눈에 담으며 홀을 지나쳤다. 형식상 최종 점검을 하러 왔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황제궁과 황후궁을 연결한 회랑을 급한 걸음으로 지났다. 그의 뒤쪽으로 시종과 근위병이 우르르 줄을 이었다.

“에디스가 어디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했지?”

황후궁 정문을 넘으며 클라이드가 시종에게 물었다.

“대응접실이라고 들었습니다.”

“1층 대응접실?”

“예.”

그는 잠시 멈칫했다. 모퉁이만 꺾으면 곧장 대응접실에 도착하게 될 테지만, 그쪽으로 선뜻 발길이 가지 않았다.

“음, 아닌 것 같은데.”

혼잣말하며 에디스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떠올려 봤다.

준비는 다 마쳤을 테고, 지금쯤은 식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는 수시로 시종을 보내 그녀가 뭘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한 시간쯤 전에 헤어와 메이크업이 성공리에 끝난 소식도 들었다. 시녀들이 에디스의 아름다움에 감격했다고 한다.

정해진 대로라면 에디스는 이때쯤 대응접실에서 소수의 엄선된 하객과 환담을 나누며 식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기분이 달랐다.

클라이드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발길을 돌렸다.

계단을 올라 2층 턱을 넘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에디스가 옷차림을 가다듬는 방으로 향했다.

“에디스?”

신기하게도 안에서 그녀의 음성이 들렸다.

“들어와요, 클라이드.”

육감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닫힌 문을 여는 그의 어깨에 뿌듯함이 넘쳤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었다. 때려 맞힌 게 정답이 되곤 했다. 에디스가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떠올려 봤던 게 실제와 맞아떨어졌다.

늘 그녀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꿰뚫어 보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예외적인 상황까지도 맞혀 버리니까 자신이 꼭 점쟁이 같았다.

그녀에게는 아직 털어놓지 못했다. 이 기분이 심각하게 여길 정도라고 확신하기 어려워서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에디스가 그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황금빛 드레스에 황금 관은 쓴 그녀는 누구보다 황후의 품격에 어울렸다.

드레스를 가봉하면서 시착할 때도 같이 있었고 황금 관을 수선해서 머리에 써 볼 때도 같이 있었지만, 준비했던 걸 한꺼번에 모아 완성된 모습을 보니까 또 다른 감동이 격하게 북받쳤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미모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

곱게 흘기는 그녀의 눈초리조차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클라이드, 식이 얼마 안 남았는데 여기까지 오면 어떡해요.”

도톰하게 오므린 입술은 연한 장미색 연지를 발라 싱그러운 윤기가 흘렀다. 가볍게 타박하는 말조차 향기롭게 들렸다.

“하객들이 알면 몰래 흉보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는 황제궁에 점잖게 머물러야 했다.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건 궁중 예법에도 어긋나고 바람직하지 못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기분을 어쩌란 말인가.

지난밤에 헤어져 오늘 내내 에디스를 볼 수 없었다. 하루가 빡빡하게 돌아가리라는 걸 알기에 여태 참았다. 시종만 보내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단장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가 이제야 잠깐이나마 짬이 났다. 얼굴을 볼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순 없었다.

자신을 끌어당기는 인력이 느껴지는 에디스를.

“대응접실에 갔다가 나 없어서 여기로 온 거죠?”

클라이드는 주변을 물리고 그녀 옆의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았다.

“거기에는 들르지 않았어.”

“그럼 어떻게 알고 여기로 올라왔어요?”

“에디스는 왜 여기에 있었어?”

“머리핀이 다른 사람 옷자락에 걸려서요. 잠깐 손질 좀 하려고요.”

“삐져나온 거 없는데? 예쁘기만 해.”

“다 끝났으니까요.”

그녀가 푸스스 웃었다.

동그랗게 밀리는 뺨이 어여뻤다. 화장을 하든 안 하든 늘 반짝이는 사람이다.

다만 소소한 불만이 있다면 화장 때문에 키스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클라이드는 입을 맞추고픈 충동을 참는 게 고역이었다.

“내가 무서운 얘기 해 줄까?”

“뭔데요?”

“왠지 에디스가 여기에 있을 것 같았어. 아무 근거도 없이 느낌만으로.”

올리브 빛의 눈망울이 커다래졌다. 그녀는 눈동자가 유난히 커서 저렇게 치켜뜨면 꼭 인형 같다.

“오호, 진짜 좀 무서운데요?”

눈부신 미모에 넋을 놓느라고 얘기의 흐름을 놓칠 뻔했다. 클라이드는 겨우 심정을 추스르며 미소 지었다.

“혹시 기억나? 며칠 전에 네가 나 몰래 연회와 관련한 지출 장부를 검토한 적이 있잖아.”

“당연히 기억나죠. 당신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들이닥쳐서 내가 보던 장부를 뺏었잖아요. 결혼식 업무는 절대 손대지 말라면서!”

그녀가 분한 기색으로 작은 콧방울을 찡긋거렸다.

“그때도 순전히 감에 따라 움직인 거였어. 보고를 받아서가 아니라, 왠지 네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우와, 점쟁이네요.”

“그 얘기 나올 줄 알았네.”

“신 내린 거 아니에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대답에 클라이드는 손등으로 입을 막고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신 내린다는 건 아마도 에디스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인 듯했다. 구체적으로 뭔지 캐묻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너한테만 이런 느낌이 있는걸. 점성술사처럼 특별한 점을 치지는 못할 것 같아.”

에디스가 그대로 정지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골몰하는 표정도 어쩜 이리 귀여운지. 마주한 채 눈꺼풀만 깜빡깜빡하는 모양새를 보며 그는 폭주하는 심장을 제 손으로 꾹 눌러야 했다.

자신이 그녀의 남편이라서 너무 행복했다. 아직은 남편이 아니지만 곧 식을 올릴 테니까 남편이 맞지.

빨리 식을 올리고 싶다. 에디스와 하나가 되고 싶어.

클라이드의 광대근이 주책없이 꾸무럭거리며 올라가려고 했다.

잠시 동안 구름 위를 떠다녔던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디스가 까딱 고개를 기울였다.

“촉이 온다니……. 어디 한번 실험해 볼까요?”

“어떻게 실험하게?”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에 흥미로운 기색이 가득했다.

에디스는 재미있는 놀잇감을 찾은 어린아이처럼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서랍을 뒤적이더니 플레잉 카드를 찾았다.

“카드를 맞히는 건 어때요.”

“글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맞히기 쉬운 것부터 일단 해 볼게요.”

신이 난 그녀가 카드를 섞었다.

클라이드는 자신 없었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저렇게 흥미진진해하는데 자신도 장단을 맞춰 줘야 옳겠지.

잠시 후로 다가온 결혼식은 안중에도 없이, 에디스가 테이블에 카드를 뒤집어 내려놨다. 이 순간 제일 중요한 일이 카드 맞히기라는 듯이 온 신경을 카드에만 쏟았다.

한 장의 카드를 뽑아 들며 패를 숨겼다.

“얍! 내가 든 카드는 과연 뭘까요?”

클라이드는 어이가 없었다. 아주 간단한 테스트지만 맞힐 확률은 희박했다. 수십 장의 카드 중에 그녀가 뭘 들었을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무 느낌도 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하라고 하니 일단 집중해 봤다.

전혀 모르겠다.

자신이 깨달을 수 있는 건 복잡한 문양의 카드 뒷면과 그것을 잡은 에디스의 손이 훔치고 싶을 만큼 곱다는 사실이었다.

한 번 더 느낌을 끌어올려 봤다.

역시 모르겠다.

결국 아무 숫자나 말할 수밖에 없었다.

“4?”

“8인데요. 그럼 모양은요?”

“다이아?”

“아닌데. 그럼 색깔만이라도.”

“빨강?”

에디스가 펼친 카드는 클로버 8이었다. 다 틀렸다.

실망한 그녀가 카드를 착착 접었다. 다시 해 볼 시도도 하지 않고 카드를 케이스에 넣어 버렸다.

마지막 질문은 빨강과 까망 중에서 고르면 되는 2분의 1 확률이었는데도 틀린 걸 보고, 그의 육감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에디스는 뾰로통해진 채로 혼자 ‘괜찮아’라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더 귀여워서 클라이드는 벙긋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카드는 맞히지 못했지만, 다른 기분은 느낀 게 조금 있어.”

“그게 뭔데요?”

“에디스, 조금 전에 서랍을 뒤지면서 뭔가 고민한 게 있어?”

“헉, 어떻게 알았어요? 내 뒷모습에 낌새가 있었나?”

“겉으로 알아차린 건 없어. 그런데 묘한 느낌이 들더라.”

낙담해서 처졌던 눈꼬리가 순식간에 상큼하게 올라갔다.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이 생동감을 더했다.

그녀가 카드를 팽개치고 클라이드에게 바짝 다가왔다.

“느낌이 어떤지 알고 싶어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신중히 말을 골랐다. 실체가 없는 무형의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느리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술렁거리고 혼란한 느낌. 나 자신이 고민할 때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라.”

“와! 신기하다.”

에디스가 제자리에서 사뿐히 뛰었다.

가벼운 발걸음을 타고 길디긴 혼례복 스커트가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기뻐하는 티가 역력했다. 또 육감이 왔다. 그녀는 단순히 호기심이 자극받아서 기뻐하는 게 아니었다. 그 이상을 내다보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아까 열었던 서랍에서 주사위를 꺼냈다. 고민의 증거였다.

순간적으로 결정하느라고 머리를 썼겠지. 테스트할 때 주사위와 카드 중 어느 게 나을지 빠르게 계산했을 것이다.

클라이드는 그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사실은 전부터 이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어. 그런데 오늘 또 겪어 보고 털어놓는 거야.”

“클라이드, 나한테 감이 예민해진 거군요. 아주 특별하게.”

“좋은 현상인 것 같아.”

“맞아요. 바람직한 일이겠죠.”

“어쩌면 너를 향한 내 인력이 약간은 강해진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동그랗던 눈매가 금세 손톱 모양으로 휘었다. 그녀는 그의 생각을 단번에 공감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기 전부터 비슷하게 추측했을 거라고 육감이 외치고 있었다.

에디스의 아득해지려는 얼굴을 만지고 싶어, 그는 손을 뻗었다. 보드라운 뺨을 살짝 만졌다. 약간의 스킨십이 너무 아쉬웠다. 얼른 식 끝내고 밤이 되면 좋겠다.

옅은 한숨이 클라이드의 손안에서 흘렀다.

“나도 그런 느낌 생기고 싶어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느낌인걸. 에디스는 지금으로도 충분해.”

“그래도요.”

바깥에서 인기척이 부산하게 들렸다. 줄곧 조용히 대기하던 사람들이 발소리나 헛기침을 내기 시작했다.

나갈 시간이었다.

“먼저 가 있을게.”

제 신부가 될 에디스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잠시 후에 식장에서 만나겠지만, 짧은 동안이나마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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