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점을 보러 간다는 말인가.
하늘을 숭상하는 세계관이니 이곳은 별점이 제일 많았다.
현실에서의 에디스도 인터넷 운세를 기웃거리곤 했다. 다들 재미 삼아 보지 않나? 좋은 얘기를 들으면 철석같이 믿고, 나쁜 얘기를 들으면 한 귀로 흘리는 거지.
그런데 클라이드는 여기에 이세계를 더했다. 다른 세계를 읽는 점성술사라니. 저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퇴근하려던 가방을 슬금슬금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용하대요?”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미소 짓는 클라이드는 마치 그녀를 그물에 낚인 물고기 보듯 했다.
“물론이지.”
“이세계를 어떻게 본대요?”
“그거야 만나 봐야 알지 않을까?”
“가짜 점쟁이도 은근히 많던데요.”
“황실 직속의 천문관에서 소개받은 사람이야. 수석 천문학자를 불러서 비밀리에 에디스의 사정을 물었거든.”
귀를 쫑긋 세운 에디스가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천문학자는 점을 봐주지 않아요?”
“천문학은 점성술과 달라서 미지의 세계는 다루지 않더군. 대신에 하늘의 흐름을 읽는 건 비슷해서 서로 알고 지내는 이가 많더라.”
“그래요?”
“이번에 만날 별 점성술사는 쉽게 약속을 잡지도 못하는 사람이래. 1년 뒤까지 예약이 다 찼다나.”
클라이드는 황족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분명 약장수가 되었을 거다.
약 진짜 잘 판다.
* * *
평범한 귀족의 복장을 갖춰 입은 에디스와 클라이드는 아무런 문양이 새겨지지 않은 마차를 타고 황궁을 나섰다.
따르는 자는 마부 역할을 하는 근위대장과 마부 조수가 된 닉슨뿐이었다. 네 명밖에 되지 않는 단출한 일행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둘 불이 꺼져 가는 시내 중심가를 지나 외곽으로 빠졌다. 거리에 에디스의 마차밖에 없어 다각다각 말 달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목적지는 한참을 더 가야 했다. 도시를 완전히 벗어나 황무지 언덕을 올랐다. 점성술사가 사는 곳을 미리 숙지하고 갔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언덕 사이의 골짜기에서 아담한 목조 집을 발견했다.
마차가 집 앞에 멈추자 웬 소녀가 나와서 클라이드 일행을 맞이했다.
“오늘 약속한 분들이세요?”
“그렇다.”
“술사님은 언덕 위에서 별을 보고 계세요. 그쪽으로 가려면 조금 걸으셔야 할 텐데, 괜찮으실까요?”
“상관없다. 앞장서라.”
마차가 오르지 못하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조금만 걷는다더니 상당히 먼 거리에 걸쳐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났다.
그동안 밤이 깊었다. 시각을 알 수는 없었지만 거의 한밤중으로 다가가는 듯했다.
불빛이 한 점도 없는 황무지 언덕 위로 별이 쏟아질 듯했다.
에디스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진짜 많네요.”
“정말 그렇군. 평소에 보던 별과는 다른 느낌인걸.”
“왜 여기에서 별점을 치는지 알 것 같아요.”
점 보러 와서 별 구경에 심취해 버렸다. 에디스는 입을 벌리고 별이 박힌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계속 감상하다 보니 더는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이 휘황하게 밝았다.
초저녁에는 손톱 모양의 달이 떠 있더니 이제는 별만 남았다. 달이 환한 하늘도 좋지만 별이 강처럼 흐르는 하늘도 좋았다.
원래의 세계와 이곳은 별자리가 똑같을까? 한 바퀴 빙 돌아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별에 관심이 없어서 별자리도 잘 알지 못했다. 심지어 도시에 살아서 별을 자주 볼 수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내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고작해야 두어 개의 별만 찾곤 했다.
그곳은 여전할까? 내가 살던 집과 가족.
문득 어깨에 큼직한 망토가 둘러졌다. 입고 있던 에디스의 망토 위에 클라이드의 망토가 추가됐다.
“천천히 별 구경해. 급할 거 없으니까.”
클라이드가 망토 앞자락을 여미고 매듭까지 꼼꼼하게 묶어 줬다. 그녀가 추워할까 봐 신경 쓰며 어깨를 당겨 안았다.
“아니에요. 다 봤어요.”
“생각이 많아 보이던데, 무슨 생각 했어?”
“……내 집이요.”
팔뚝을 감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왔다. 마치 그녀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는 에디스를 따라 별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내려 동그란 뺨과 작은 입술을 응시했다.
“거기에서 네 이름은 뭐였어?”
“서지우요.”
에디스가 털어놨던 비밀을 처음에는 믿지 않더니 이젠 받아들이는 걸까. 이름까지 묻는 걸 보면.
“이름이 특이하네. 여기서는 짓지 않는 방식이야. 성은 어떻게 돼?”
“서가 성이에요. 지우가 이름이고요.”
“지우…….”
에디스의 시선이 하늘에서 클라이드에게로 내려왔다. 검게 어둠이 드리운 얼굴은 우수에 차 있었다.
“에디스는 점성술사를 만나면 뭘 묻고 싶어?”
“어쩌다가 내가 이 소설로 들어오게 됐는지가 궁금해요.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지. 언제쯤 가게 될지.”
검은 눈매 사이로 형형한 안광이 그녀에게 올곧은 감정을 실어 보냈다.
“돌아가고 싶어?”
“…….”
긍정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돌아가길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한참 고심하던 에디스는 제 마음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대답했다.
“돌아가는 방법도 묻고 싶고……. 여기에서 살 방법도 있는지 묻고 싶어요.”
“…….”
그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제 생각 해서 둘러댄다고 여기는 듯했다.
“클라이드는요? 어떤 걸 점 보고 싶어요?”
“너랑 궁합.”
“에?”
“우리가 아주 잘 맞는 커플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점성술사의 입으로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식은 언제 올릴 수 있는지, 혹은 못 올리게 되는지. 그런 것도 궁금하고.”
클라이드의 태도는 그녀에 비해 아주 확고했다. 곁에 두고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에디스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리라는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팔뚝을 꾹꾹 누르듯이 잡는 손길에서 포기하지 않을 감정이 느껴졌다.
“그만 갈까요.”
할 말이 궁색해져서 발길을 옮기려던 차였다.
어둠에 묻혀 희미하게 보이는 언덕의 완만한 굴곡 위로 이질적인 글씨가 떴다.
[눈이 먼 점성술사를 포획하기는 우리 안의 닭을 잡는 것보다 쉬웠다. 페이튼이 보낸 사내들은 점성술사가 쓰고 있던 후드를 끌어 내려 얼굴을 덮었다. 뒷덜미를 내리쳐 기절시킨 후 어깨에 짊어졌다.]
“헉!”
“왜 그래, 에디스?”
“점성술사가 혹시 눈이 멀었어요?”
앞서가던 소녀가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다른 분한테 듣고 오셨나요?”
[피처럼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해할 잔인함을 닮은 노을이었다.]
[사내들은 기절한 점성술사가 무겁다며 투덜거렸다. 언덕을 내려가다가 말고 점성술사를 주먹질해서 깨웠다. 몸도 가누지 못하는 술사에게 제 발로 걸으라며 윽박질렀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에디스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이건 언제 일어난 일일까?
지난번에 나타난 글은 에디스가 이미 겪은 사건이 적혀 있었다. 혹시 점성술사도 이런 일을 벌써 당한 걸까?
“서둘러요. 얼른 술사를 찾아야 해요.”
좋지 않은 낌새를 눈치챈 소녀가 오솔길을 따라 마구 달렸다. 에디스 일행도 뒤를 따랐다.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잡목이 듬성듬성 돋은 황무지 언덕은 아무도 없었다. 소녀는 흙먼지가 묻은 채 바닥을 뒹구는 점성술사의 가방을 주워 들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인적을 찾을 수 없는 언덕을 헤매며 울먹였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호위들이 주변을 수색하는 동안 클라이드는 손댄 흔적이 없는 가방을 확인하며 침음성을 흘렸다.
“에디스, 점성술사에게 탈이 생겼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가끔 환상이 보이거든요. 원작 소설의 대목이 눈앞에 어른거려요.”
“별을 보던 중에 멈칫거렸던 게 그것 때문이었나.”
“맞아요. 요즘에는 최신 회차의 내용이 보이는데, 거기에 쓰여 있었어요. 점성술사가 납치됐다고요.”
“누가 저지른 짓인지도 봤어? 알고 있는 걸 내게도 자세히 설명해 줘.”
숨을 곳도 없는 언덕이라 수색은 금방 끝났다. 호위들이 돌아와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에디스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원작 전부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조금 전에 본 건 고작해야 두 단락이었어요. 헛것을 보는 것처럼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거든요.”
“분량이 상당히 적군.”
“노을이 질 때였고, 몇 명의 사내가 강제로 끌고 갔어요.”
“어디로?”
“목적지는 모르겠는데 언덕 아래까지 내려간 대목에서 끊겼어요.”
“흠, 살려서 끌고 간 걸 보면 당장 죽일 목적은 아니겠네. 서둘러 구해야겠어. 범인이 누군지도 알 수 있을까?”
“페이튼이 보낸 자들이었어요.”
“페이튼? 아니, 대체 왜지? 평범한 점성술사를.”
“글쎄요.”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나? 그보다 일단 그레이브즈 가에 사람을 보내는 게 급선무겠어.”
일행은 걸음을 서둘러 언덕 아래로 향했다.
급히 근위병 한 소대를 부른 후 일반인의 복장을 갖추게 했다. 클라이드와 에디스는 술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 뒤에 물러나서 사태를 지켜봤다.
페이튼의 집 문을 두드릴 때는 점성술사의 가족인 소녀를 앞세웠다. 술사가 흔적을 남겼다고 핑계 대면서 만남을 청했다. 그런데 체격 좋은 성인 여럿이 소녀와 함께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문에서 막혀 들어가지 못했다.
권세가의 하인들은 대문 밖에서 소녀가 아우성쳐도 꿈쩍하지 않았다. 안쪽에 사정을 전달하지도 않고 무조건 막아 댔다.
“어떡하죠?”
마차 창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던 에디스가 걱정스레 클라이드에게 물었다.
“집 안에 있는 건 확실하군.”
“어떻게 알아요?”
“윗사람한테 고하지 않고 싸우기만 하잖아. 그럼 뻔하지. 미리 지시가 있었던 거야. 누군가가 점성술사를 찾으러 오면 딱 잡아떼라고 전달받았겠지.”
“페이튼이 점성술사와 그만큼 깊은 은원관계가 있다니, 정말 뜻밖이네요.”
클라이드는 바깥에 대고 이만 철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소녀에게는 상황이 달라지는 대로 소식을 전해 주겠다고 달래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바탕 소란이 마무리되고 거리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레이브즈 가를 뚫는 방법으로 정면 돌파는 너무 시끄럽겠어.”
“점성술사가 과연 무사할까요?”
“글쎄. 고초를 겪을지도 모르지.”
“하필 우리가 점 보러 간 날에 끌려가다니. 공교롭게 되어서 자꾸 마음에 걸려요. 마치 나와 연관이 있는 것도 같고요.”
“저 집에 매수해 둔 하인이 있으니 조만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술사를 구해 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더는 그레이브즈 저택을 손댈 수 없다고 결론짓고 두 사람은 귀갓길에 올랐다.
그때, 새벽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마차를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