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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집착 받는 시종이 되었다 (61)화 (61/129)

61화

클라이드는 의사를 다시 불렀다. 희귀한 케이스로 늦게 발현하는 오메가를 위해 챙겨야 할 일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보다시피 에디스가 몸도 가누지 못하는군.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푹 쉬게만 하면 돼?”

거의 늘어지다시피 한 그녀를 안아 들어 그의 무릎에 올린 채였다.

“휴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몸속에 쌓였던 오메가 페로몬이 많을 테니까요. 해열제와 페로몬 안정제를 드릴 테니 증상을 봐 가며 먹여 주십시오.”

“알겠네. 다른 건?”

“히트 사이클 도중에는 딱히 해 줄 일이 없습니다. 다만 지나고 나면 오메가 페로몬을 조절하는 연습을 시작해야겠지요. 전하의 알파 페로몬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자신의 오메가 페로몬도 조만간 느끼게 될 듯합니다.”

“좋아. 나중에 다시 자네를 부르도록 하지.”

에디스는 둘의 대화를 귀담아들으면서도 눈만 깜빡이는 인형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뺨의 온도가 심상치 않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도 힘겹게 들렸다.

“에디스, 우리 이만 침실로 올라갈까?”

응접실을 나와 곧바로 클라이드의 방으로 올라가는데 그녀는 도리질 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목덜미를 굳게 부여잡으며 느슨하게 몸을 기댔다.

히트 사이클은 동물의 세계에 빗댄다면 발정기에 해당했다. 알파나 오메가가 서로의 짝을 부르며 본능이 극대화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만큼 매혹적인 모습이 도드라지기도 했다.

평소에도 예뻐 죽을 것 같은 에디스가 발갛게 달뜬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스러운 얼굴로 살짝 미소 짓고 있음을 모르는 듯했다.

더 세게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클라이드의 마음에 들불처럼 번졌다.

침대에 고이 내려놓기가 지독히도 힘겨웠다.

* * *

수건의 물기를 꼭 짜냈다. 세면용 볼에 맑은 물이 쪼로록 떨어졌다.

클라이드는 섬유의 결이 살아난 수건을 단정히 접었다. 마른 수건과 젖은 수건을 여러 장 준비해 트레이에 담았다.

무릎걸음으로 침대에 올라가 그녀 옆에 트레이를 내려놨다.

“그새 땀을 많이 흘렸어.”

얇은 이불을 절반만 젖힌 후 에디스의 발을 찾았다.

뽀얀 피부의 발이 갑작스러운 습격에 놀라 움츠러들었다. 무릎까지 말려 올라간 침의는 스커트와 끝단에 달린 프릴이 전부 흰색이었다. 아침의 그녀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침대 안 풍경이었다.

클라이드는 세심한 손길로 발 한쪽을 잡으려 했다. 오목하게 팬 발목이 놀란 토끼처럼 파드득 뛰었다.

“내버려 둬도 돼요.”

에디스는 제 몸집만큼 큰 베개를 끌어안고 있었다.

“괜찮아. 어려운 일도 아닌걸, 뭐.”

“조금 있다가 목욕할 건데요.”

“손발에 끈적한 느낌이 남아서 에디스가 찝찝해했잖아.”

아침 식사를 한 후에 목욕하겠다고 궁인에게 얘기해 뒀기 때문에, 자고 일어난 지금은 우선 옷부터 갈아입은 상태였다.

땀이 돋았다가 마른 등에 향긋한 오메가 냄새가 짙게 풍겼다.

“발목에 힘 좀 빼 줄래?”

“정 그러면 궁인을 불러서…….”

“내가 할게.”

기어코 클라이드가 발뒤꿈치를 그의 손바닥 안에 담는 데 성공했다. 동그란 뒤꿈치를 가볍게 잡은 다음 제 무릎 위에 올려놨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에디스.”

그가 내뱉는 말마다 의미가 담긴 듯했다. 에디스에게는 지나치게 무겁고 과분한 의미였다.

마음을 받아 주지 않을 셈이라면,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너무 기분이 좋고 매 순간이 편안해서 중독적으로 그를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녀는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리를 느슨하게 내렸다.

“그럼 조금만요.”

클라이드가 세상을 다 가졌다는 양 밝게 미소 지었다. 시중드는 궁인처럼 에디스를 떠받드는 상황이 뭐가 그리 기쁜 건지 잘생긴 입매가 마구 위로 솟구쳤다.

그는 물수건으로 발끝을 톡, 톡, 건드렸다.

“차갑지 않아?”

“별로요. 그냥 쓱쓱 닦아 줘도 돼요.”

“그렇게는 싫은걸.”

수건 온도에 피부가 적응하도록 한 다음에는 조금씩 발가락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새끼발가락이 소중하다는 듯 살금살금 돌려 닦더니, 다음 순간에는 제 손가락에 수건을 감아 발가락 사이를 문질렀다.

발 사이사이 그의 손끝이 스치고 지나갔다.

“읏, 간지러워요.”

마음대로 닦도록 그를 내버려 두려고 했지만 저절로 에디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더 살살 해야겠군.”

“여기까지만 하고 끝내는 방법도 있어요.”

“싫다니까.”

발꿈치를 꾹꾹 눌러 지압하는 손길이 고집스러웠다. 그는 다른 수건으로 바꿔 가며 발목부터 전체를 말끔히 닦고 나서야 비로소 수건 트레이를 한쪽으로 밀어 놨다. 누구를 위해 닦은 것인지 모호한 과정이 겨우 끝났다.

하지만 에디스의 발은 여전히 마수와 같은 커다란 손아귀 안에 있었다.

그가 그녀의 발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금세 말라서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일어난 발등은 아침의 흰 햇살을 받아 진주처럼 반짝였다.

클라이드는 콧날을 아래로 내리며 희미한 실핏줄이 비치는 발을 가만히 응시했다.

짙은 청색의 머리칼이 느리게 움직였다.

차츰 발등을 덮어 조각 같은 코끝을 실핏줄 위에 올렸다.

“예쁘다.”

숙인 머리에 가려 그가 뭘 하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

따뜻하고 촉촉한 감촉이 우연히 지나가는 실바람처럼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순결한 분위기였다.

그가 닿은 곳은 하필이면 발등의 제일 간지러운 부위였다. 자극을 참지 못한 새끼발가락이 까딱까딱 춤을 췄다.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멈춰 있던 클라이드는 아쉬운 듯 천천히 몸을 폈다.

머물렀던 자리에 낙인을 찍힌 듯한 기분이었다. 동그스름하고 보드라운 감촉은 영원히 에디스가 그의 것이라는 증거라도 되는 듯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발현열의 후끈한 열기와 더불어, 그의 소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심장을 두드렸다.

* * *

옷시중을 들 궁인을 부르는 에디스를 보고 그가 언짢은 기색으로 한마디 했다.

“아직 사이클이 끝나지 않았어. 더 쉬어야 해.”

그녀는 가운을 덧입고 간단하게 숄도 걸쳤다. 몸단장할 때 사용하는 옆 침실로 건너가기 위해서였다.

“다 나았어요. 이젠 말짱해요.”

“의사도 충분히 쉬라고 권했잖아. 발현열이 내렸다고 전부가 아니라니까.”

“걱정은 고마워요. 하지만 일어날 때가 된 것 같네요.”

태연한 척하며 싱긋 웃었다.

팔짱을 낀 클라이드가 제법 살벌한 기색을 내비쳤다. 여차하면 저를 억지로라도 말릴 기세라서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에디스는 멀리 도망가려 하는 참이었다.

그와 함께 발현을 경험해 보며 절감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간호받는 동안 에디스는 몸이 편해서 좋았다. 하늘 같은 황태자가 잔시중을 들고 밥까지 먹여 줬다.

반면에 클라이드는 행동 하나하나가 진심이었다. 에디스가 원하면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뭐든 해 줄 태세였다. 심지어 보답받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굴었다.

가만히만 있어 달라고, 제가 해 주고 싶어서 그런다고 말하는 그는 담담했다. 에디스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아마 클라이드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겠지.

심하게 표현하자면, 자신이 그를 이용해 먹는 느낌이었다.

에디스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대처해야지.’

지금처럼 내내 붙어 다니다 보면 클라이드만 계속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

모질게 마음을 먹고 사표를 던져야 해.

퇴근하겠다고 얘기하러 마지막으로 그의 방에 들렀다. 클라이드의 등 뒤로 문 열린 별실이 들여다보였다. 꽤 오랜 시간 땀 흘려 일했던 현장이다.

차라리 황태자와 시종의 위치를 지켰다면 그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시종이 되었을 텐데.

제국을 염려하는 업무는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에디스의 적성에 잘 맞았다.

별실에 돌아올 수 있을까? 지금 심정으로는 힘들 듯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귀가 보고에 불과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했다.

뒤돌아 있던 클라이드가 서서히 돌아섰다.

에디스는 마음이 안 좋아서 눈을 내리고 있었다. 애꿎은 카펫의 무늬만 헤아리면서 그가 아무 대답이나 해 주기를 기다렸다.

“에디스, 나와 어디 좀 같이 갈까?”

“어딜요?”

“가 보면 알아.”

“저, 지금 집으로 가던 중이었는데요.”

“잠깐 들렀다가 가. 붙잡지 않을 테니.”

오래 걸리지 않는다거나 순순히 보내 주겠다는 말이 왠지 그녀의 속을 아는 듯했다. 그의 앞에서는 오늘 저녁 퇴직 희망서를 쓰려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들킨 느낌이었다.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 따끔거렸다. 그의 뒤를 따라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황태자궁을 벗어난 두 사람은 훨씬 웅장하고 화려한 궁으로 향했다.

바로 황제궁이었다.

“여긴…….”

그가 늘 혼자만 다녀오던 곳이었다. 다른 때는 거의 24시간 에디스를 곁에서 떼어 놓지 않으려던 클라이드이지만, 이 일정만은 동행을 청하지 않았다.

황제궁 앞까지 함께 왔던 근위병과 다른 시종이 문 앞에 멈췄다. 클라이드가 손짓하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에디스는 선뜻 따라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네게 보여 주고 싶어.”

머뭇거리며 정문을 넘었다. 한적한 분위기의 궁 내부를 거쳐 중심부로 향했다.

클라이드를 안내하기 위해 앞장선 황제궁의 시종은 굉장히 말수가 적었다. 짧은 인사를 듣지 못했다면 벙어리로 오해할 만큼 사소한 안부 대화조차 없었다.

황제의 침실로 보이는 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시종은 방문객이 누구인지 황제에게 전하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거나 인기척도 내지 않았다. 황제를 모시는 시종이면서 기본적인 예의조차 무시하는 태도에 그녀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년간 병상을 지킨다고 알려진 황제의 방은 향을 태운 냄새가 옅게 났다.

클라이드가 황제에게 인사도 드리지 않고 침묵하자 그녀 역시 손을 앞으로 모으며 조용히 대기했다. 멀찍이 떨어져 선 채 기묘한 실내 풍경을 골고루 눈에 담았다.

침대 휘장이 내려져 있었다. 황제는 잠들어 있는 걸까?

“에디스, 이리 가까이 와.”

오수에 든 황제라도 함부로 범접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에디스는 조그맣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클라이드가 손짓하며 재차 권하자 머뭇머뭇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이제부터 보게 될 건 절대로 비밀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폐하를 모시는 시종들 외에 이 자리까지 온 사람은 네가 유일해.”

에디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황제파로 불리는 중신들도 적지 않은데 아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니. 함부로 티 내지 못하면서도 속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치지 않는 두꺼운 휘장이 한 뼘만큼 열렸다.

그가 손등으로 살짝 틈을 벌리자 그림자 진 침대 안쪽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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