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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집착 받는 시종이 되었다 (19)화 (19/129)

19화

원작의 세계관을 뒤엎을 만한 폭탄 발언을 하며 그가 에디스의 바로 앞에서 헐떡거렸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원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좋은 것이지, 기질이나 성별은 중요하지 않아.”

“……!”

급작스러운 깨달음이 그녀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그랬을 수 있어.

원작의 클라이드는 아드리안을 만나기 전에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어.

남자나 여자, 아니면 오메가나 알파, 베타를 선호하는 호불호 따위가 전혀 없었지.

자신의 반려를 찾고 맞이했을 뿐, 반드시 남성 오메가일 이유는 없었던 거야. 원작의 클라이드는 아드리안에게 영혼 깊숙이까지 빠져들었지만 그건 오로지 상대가 아드리안이라서였어. 취향 탓이 아니야.

이건 개연성 붕괴도, 원작 파괴도 아니다. 공개된 25화 분량까지는 이런 정황이 충분히 풀리지 않아서 에디스가 몰랐던 것이다.

‘예전의 그는 이성에 관심이 없었다.’ 이 대목을 어떻게 ‘별 취향이 없었다.’로 해석할 수 있었겠는가. 줄줄이 긴 설명과 사건이 이어져야 파악하지.

그녀는 망연해져 버렸다.

특히, 베타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콕 들어와 박혔다.

언제는 나한테 싫다더니. 관심 없다더니.

가면 갈수록 클라이드의 섭섭했던 한마디가 왜곡되어 떠오르며, 그녀 혼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때, 클라이드가 상체를 앞으로 구부렸다. 줄곧 찡그리거나 기분이 별로인 모습이다가 이젠 그것마저도 에디스에게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상의 열기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나란히 앉은 옆자리가 후끈후끈했다.

“전하, 왜 그래요?”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우연히 클라이드의 손목을 가볍게 건드렸다가,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뜨끈한 온도에 깜짝 놀랐다.

“전하…….”

그가 에디스의 손을 세게 잡았다.

어떡하지?

이 남자, 펄펄 끓는다.

내리깔았던 눈매를 들자 어느새 핏발 선 흰자위가 무시무시했다. 손목을 잡은 완력도 조절이 안 되는 듯 아프도록 강했다.

“하아, 나 러트 사이클이…….”

까칠하게 쉰 음성은 순식간에 둘만의 공간을 퇴폐적인 분위기로 물들였다.

후으, 하아…….

마른 입술 사이로 새는 숨결도 사막의 바람처럼 뜨겁고 건조했다.

“러트가 오고 있어.”

손을 억세게 끄는 바람에 그에게 당겨진 에디스에게 갑작스럽게 더운 열기가 훅 끼쳤다.

클라이드에게 기울어진 그녀의 몸뚱이가 함께 뜨끈뜨끈해지고 있었다. 억세게 당겨진 바람에 옆구리가 활처럼 휘었다.

러트 사이클을 겪는 알파는 인간이 아니라 발정 난 수컷에 가깝다.

잔뜩 흥분한 채 교미할 상대를 찾아다니는 짐승.

맛이 가 버릴 징조가 벌써 클라이드에게 나타나고 있었다. 열이 들뜬 황금 눈동자는 용광로가 되어 일렁였고 그녀를 부여잡은 손아귀는 가면 갈수록 탐욕스럽게 변화했다.

“하, 흑!”

악화하는 속도는 그녀가 본 어느 알파보다 급하고 격렬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끈하던 입술이 순식간에 퍽퍽해졌다. 반들거리는 혀가 삐죽이 튀어나와 제 아랫입술을 핥았다. 혀끝의 미세한 돌기까지 그녀의 시야에서 확대되었다.

“목이 말라.”

그가 마른침을 삼키자 유려한 목선이 크게 일렁였다. 목마름의 해답을 찾으려는 듯 느슨하게 풀린 입술이 서서히 에디스에게 내려왔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전하, 이만 돌아가시죠.”

도움의 손길이 시급하다. 그것도 당장.

에디스는 손목을 뿌리치고 일어나, 시종이 왔다 가면서 내려진 깃발을 다시 집어 들었다.

팔을 휘휘 저어 깃발이 높이 휘날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이 부디 이 표시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빈약한 발끝을 돋워 깡충거렸다.

클라이드가 뒤따라 일어났다.

조금 전보다 덩치가 커진 것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뒤통수에 드리운 어둑한 그림자가 공포스러웠다.

“에디스…….”

짐승의 흐느낌을 담아 그녀를 불렀다.

“나, 좀……. 후으.”

절박한 신음과는 상반되게 야만적인 몸놀림으로 돌연 덮쳐들었다.

맹수가 먹잇감을 사냥하듯이 크게 몸을 부풀리고 위에서부터 내리찍었다.

넓은 어깨는 그녀를 빈틈없이 감싸 달아날 틈이 없게 했고, 울퉁불퉁한 두 팔로 만든 아름은 원형의 깊은 우물을 만들었다.

갈급하게 그녀를 뒤로 돌려 세운 후, 어깨 폭이 아담하게 좁아지도록 힘껏 끌어안았다.

숨이 막힌다. 차려 자세를 한 팔 안쪽으로 갈비뼈까지 뻐근해. 게다가 거친 손아귀는 그녀의 등짝을 바스러지도록 세게 움켜쥐었다.

“전하 이러시면……. 핫!”

겨드랑이 아래로 굵은 남자 팔을 집어넣어, 흠칫거리는 여체를 번쩍 들었다.

그르릉 울리는 소리는 어떻게 들어도 사람 신음이 아니었다. 누렇게 빛나는 눈동자도 분명 늑대의 그것이었다.

맨날 트레이닝을 즐기는 체육남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깜짝 놀랄 만큼 파워가 넘쳤다. 손쉽게 받쳐 올린 에디스의 몸이 훌쩍 허공을 날았다. 마치 깃털처럼.

자신의 몸무게가 가벼울지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렇게 공중부양을 해 본 적은 현실 세계에서 롤러코스터 탈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얼마나 높이 띄워졌던지, 짙푸른 머리칼의 정수리가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그녀의 가슴이 클라이드의 얼굴까지 올라왔다. 등줄기를 부여잡은 손은 커다란 갈퀴와 같았고, 둔부 아래를 받친 반대편 팔뚝은 지극히 굳건했다.

웅얼웅얼, 그의 말소리가 갈수록 부정확하게 바뀌었다.

집착적으로 반복하는 소리는 그녀의 이름과 닮아 있었다. 에디스. 에디스. 에디스. 확실하지 않아 도리어 그녀의 심사를 혼란스럽게 했다.

갈수록 그의 행위에 어둑한 느낌이 강해졌다. 실제로 목격하게 된 러트 사이클은 원작의 흐름과 무척 가까웠다.

클라이드나 아드리안을 만날 때마다 수위가 계속 올라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도 19금 삐—가 에디스를 상대로 실현되고 있었다.

“전하, 전하 정신 차리세요.”

그가 그녀의 등을 더듬었다.

“부드러워. 너…… 하아.”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매 순간 혼미해져 가면서, 클라이드는 당장이라도 품에 안은 먹잇감을 잡아먹을 듯 이빨을 세웠다.

새하얀 치아와 선명하게 붉은 혈관.

선정적으로 중얼거리는 뜻 모를 말투.

통통하니 살이 오른 입술이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건네며 열감기에 걸린 자처럼 움직였다.

입술의 느낌이 안쪽까지 미치지도 않는데 에디스는 옴찔옴찔 몸을 떨었다. 한 치도 안 되는 틈에서, 진득한 클라이드의 숨결과 입놀림을 느끼며 홀로 소스라쳤다.

뒤통수 머리칼이 쭈뼛 곤두섰다.

“내려…… 줘요.”

가늘게 새는 그녀의 음성은 무력하게 떨리고 있었다.

남성의 힘을 오롯이 감내하느라.

자신도 덩달아 이 분위기에 심취하느라.

한계까지 휜 척추는 흐물흐물하게 늘어진 채 그에게 몸을 의지해 버렸고, 클라이드에 비하면 한참 가냘픈 손목은 어느새 탄탄하고 굳건한 남자 목덜미에 둘려 있었다.

“그렇게는 곤란해.”

섬찟한 기분이 들 만큼 그는 단호하고 집요했다. 뇌리가 흐릿한 와중에도 곧 시종이 올 것을 파악했는지 어딘가 몸을 숨길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숨게? 숨어서 뭐 하게?

“잠깐.”

놀란 에디스가 허리를 뒤틀었다. 벗어나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가지 마.”

완력이 한층 강해졌다. 등 한복판을 누르는 손바닥이 몸통을 압박했다.

흘끔 올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본능만 남은 짐승 같았다.

에디스는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힘껏 밀었다.

“그만요.”

고개를 든 클라이드가 거절당한 수컷처럼 애처롭게 눈꼬리를 내렸다.

그녀에게만 지나치게 집중한 신경은 위험하게 느껴졌다. 알파의 러트, 그것도 최고의 우성 알파 클라이드의 러트 사이클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인데 벌써 상태가 이 지경이라니.

그래도 접촉점이 줄어들자 둘 사이의 분위기가 잠시나마 가라앉았다.

덕분에 그는 이곳이 미로 정원이라는 현실을 깨달은 듯했다. 스스로 자제하기 위해 심호흡하며, 잠시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가 되돌렸다.

“미안, 기분 상했어?”

클라이드는 여전히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말투만은 한결 나아져서 에디스의 안부를 묻는 태도가 평소와 비슷했다.

“도움을 청했어요. 시종이 곧 올 거예요.”

말을 꺼내자마자 미로 통로에서 몇 명의 시종이 나타났다. 급격하게 달라진 황태자의 상태를 발견하자마자 부랴부랴 걸음이 빨라졌다.

원래 러트 주기는 며칠 후인데 예정보다 당겨진 것에 당황하는 소리도 있었다.

클라이드는 에디스와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는 흥분 상태가 줄어드는 듯했다. 대신에 열이 심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져, 주변을 둘러보는 행동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에디스, 뒤따라와 줘.”

건조하게 쉰 음성을 남기고 그는 앞장서서 저만치로 사라졌다.

미로를 몇 번 꺾어지는 동안 시종과 기사가 추가됐다.

줄줄이 뒤따르고 비호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느덧 클라이드의 머리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

한동안 에디스는 갈 곳 없는 신세로 지냈다.

클라이드가 러트를 겪는 동안 황태자의 침실은 통제되었고 자연히 그녀도 업무 공간으로 정해진 별실로 가지 못했다. 직속 상사가 클라이드인 탓에 보고를 올릴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앉을 책상이 없다는 건 굉장히 뻘쭘한 일이었다. 그나마 시종장이 챙겨 줘서 황태자 집무실 옆의 시종 사무실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동안 황태자의 특별한 러트 사이클에 대해서도 귀띔받았다.

클라이드의 러트는 매달 찾아와 사흘간 지속된다고 했다. 심하게 열이 나고 이성을 잃을 만큼 본능이 강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통상적으로 다른 알파가 하루 이틀 가볍게 흥분 상태를 겪고 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또한 클라이드는 오메가를 침실에 들이지 않기로 유명했다.

가까이에 오메가가 있다면 훨씬 수월하게 러트를 넘길 수 있을 텐데, 그는 본능의 해소만을 위해 자신의 곁을 내어 주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러트 사이클에서 페로몬 조절은 오메가와 잠자리를 가지면 간단하다. 알파의 본능을 실컷 발산하고 나면 한동안 거뜬해질 수 있다.

그보다 낮은 단계로 피부 접촉을 하거나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향기와 기운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라이드는 이런 것마저도 거부하고 부득부득 혼자 버티곤 해서 황실 주치의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지독한 성질 우성 알파로서 클라이드는 무척이나 의사를 곤란하게 하는 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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