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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집착 받는 시종이 되었다 (11)화 (11/129)

11화

본능적으로 옹크리게 되는 그녀의 육신은 커다란 품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등을 흠칫거리자 울퉁불퉁한 복근에 닿았다. 겨우겨우 간격을 띄웠지만 그의 늘어진 셔츠 옷감이 등줄기를 간지럽혔다.

총쏘기 자세 교정이 이렇게 야하게 느껴질 만한 일인가. 사격장에서 우리 뭐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주변에는 클라이드를 시중드는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볼 겨를은 없었다. 클라이드가 알파 페로몬을 있는 대로 잔뜩 내뿜은 탓에 다들 흥분하거나 당황한 걸 보지 못했다.

그녀는 달래듯 하는 다정한 귓속말을 들으며, 사소한 격려를 뇌리에 새겨 넣기에 바빴다.

“그래, 혼자 해 봐.”

나직하고 울림이 깊은 음성.

“조준하고 쏴.”

에라 모르겠다.

할 수 있는 한 집중해서 과녁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깜짝 놀라서 몸이 절로 들썩거렸다. 바로 앞에서 터지는 폭발음이 무시무시했다.

반탄력으로 총신이 퉁겨진 탓에, 에디스도 뒤로 밀려났다.

“앗!”

클라이드가 그녀를 받쳐 잡았다.

총의 무게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반동도 상당히 컸다. 미리 얘기 들은 대로였다.

“괜찮아?”

굵직하고 든든한 팔뚝으로 덥석 허리를 끌어안은 그는 그녀가 비틀거리지 않도록 부축했다. 이번에는 간드러지게 애타는 접촉이 아니었다. 뒤로 완전히 안겨 버렸다.

사격이 끝나고도 에디스는 총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힘이 들어갔다.

총성 때문에 귀가 먹먹하고 아직도 긴장이 계속됐다.

“네, 괜찮아요. 잘…… 쐈나요?”

차라리 혼자 집중해서 쐈더라면 이만큼 혼미해지지 않았을 듯하다. 물론 그러면 발포 직후 뒤로 튕겨 나가거나 팔을 다쳤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잘 쐈어.”

총알이 목표물의 어디에 박혔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무조건 잘했단다. 총을 치우고 그녀를 부둥부둥 안아서 달래기에 바빴다.

“바로 설 수 있겠어?”

당연한 걸 묻는다. 제 허리에 감긴 클라이드의 팔이 도리어 거북스럽던 차였다.

“물론이죠.”

질척질척하고 농밀한 접촉을 마무리 지을 절호의 기회다. 그녀는 신중하게 클라이드를 밀어내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릎이 휘청 꺾였다. 스스로 의식할 겨를도 없이 쓰러져 가고 있었다.

그녀가 물러난 간격만큼 클라이드가 서둘러 달려왔다. 어깨를 감싸 제게로 힘껏 당겼다.

에디스의 당황스러운 이마가 남자의 곧은 빗장뼈에 부닥쳤다.

“괜찮지 않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을 꽉 잡았다. 클라이드의 넓은 어깨를 붙들려다가 손아귀에 모두 담지 못해 미끄러졌다. 간신히 소매 옷자락을 목숨줄처럼 부여잡은 작은 손이 울룩불룩한 굴곡의 남자 팔뚝과 대조됐다.

볼썽사납게 바닥에 뒹구는 꼴은 면했지만 둘이 부둥켜안은 모습도 그리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조금…… 총소리가 커서……. 이제 나아졌…….”

그녀가 물러나는 것을 클라이드는 허락하지 않았다. 나아졌다는 말도 귓등으로 흘렸다.

“총소리 때문인 것 같아?”

“……?”

“혹시 특별한 냄새는 못 맡았어? 몸이 달라지는 기분이라든가.”

“무슨 말씀이신지.”

뒤이어 추궁할 때는 목소리를 낮췄다. 귓불을 핥을 듯 가까이에 입술을 대고 조곤조곤 속삭였다.

“또는 나한테 안기고 싶다든가.”

옷자락을 쥐었던 주먹으로 그를 퍽 치고 말았다.

“전하!”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동글게 말아 쥔 손날이 딱딱한 가슴팍에 작렬했다.

그는 멀쩡하지만 손목이 아린 사람은 도리어 에디스였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는 여러 시종의 얼굴이 주변에 잔뜩 보였다. 자신이 황태자를 주먹질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앗,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클라이드는 둘 사이를 막아서려는 호위 기사를 손끝으로 제지하며, 에디스의 팔을 가볍게 부축했다.

“마음 쓰지 마. 친근하게 대해도 된다고 내가 허락했잖아.”

허락했다고? 언제?

의아한 시선을 던졌더니 클라이드가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아하, 알겠어. 고마운 마음으로 에디스도 뻔뻔스럽게 나가기로 했다. 내심 켕기지만 그와 편한 사이처럼 굴었다.

그런데 클라이드가 확인하려 했던 부분이 신경 쓰였다. 냄새가 나고 기분이 달라진다니, 무슨 뜻일까.

“전하, 냄새는 전혀 못 맡았어요. 혹시 중요한 문제인가요?”

이곳에서 날 만한 냄새라면 그가 뿌린 향수라든가 땀 흘린 직후의 체취쯤일 텐데 둘 다 느끼지 못했다.

“못 맡았다면 그런 거겠지.”

클라이드에게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뭔가 냄새를 알아채야 하는 거였구나. 또 다른 시험인 걸까? 남몰래 눈치가 보였다.

“……죄송합니다.”

에디스는 뭔지도 모르면서 시종 된 도리로서 사죄부터 올렸다.

“네가 죄송할 건 없어. 그런데 왜 쓰러지려 했지?”

앗, 이건 좀 곤란한 질문이었다. 그에게 안겨서 따끈따끈하고 몽롱한 저세상 기분에 취했노라고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냄새 운운하는 시험에서 탈락한 직후라, 거짓말은 못 하고 적당히 둘러댔다.

“전하와 너무 가까이 있었던 바람에…… 조금 어지러웠던 것 같아요.”

“나와 가까워지면 어지러워져?”

“그건…….”

하긴 그렇네. 은밀한 접촉에 몰입하긴 했지만, 다리가 풀릴 정도로 분위기에 취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떨결에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던졌다.

“그냥 발을 헛디딘 것 같아요.”

클라이드의 굴곡 깊은 눈매가 더 많이 파였다. 탐색하듯이 가늘게 좁혀 뜬 시선을 마주하게 되자 그녀는 지은 죄도 없는데 괜히 안절부절못했다.

“냄새는 못 맡았지만 반응은 했다?”

“혹시 독 같은 건가요? 몹쓸 냄새를 분별하는 테스트, 뭐 그런 거?”

독향이라면 드물게 쓰인다고 들었다. 혼미하게 한다든가, 잠들게 한다든가, 또는 육체적으로 흥분하게 한다든가 하는…….

거기까지 생각의 흐름이 미치자 느낌이 빡 왔다.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느냐는 건 바로 그것이다!

“혹시 전하, 저한테 미혼향 썼어요?”

클라이드에게 돌연 큰 웃음이 터졌다.

“미혼향? 에디스, 진짜 기발한데?”

심각하게 고심하느라 굳히고 있던 미간을 펴며 치아까지 드러내어 웃음 지었다. 즐거워하는 그의 기색만으로 충분한 해답이 되었다.

“그, 그렇죠? 역시 미혼향일 리가 없는 거죠.”

무슨 냄새가 지나갔는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지만, 황태자에게 즐거움을 제공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 *

< 2장. 알파와 오메가 양쪽에게 당하고 있습니다. >

황태자가 ‘늘 곁에 두는’ 시종인 에디스는 클라이드의 모든 일정을 수행해야 했다. 점심을 각자 따로 먹으면서 쉴 틈이 주어졌을 뿐, 이후로는 또 그와 붙어 지냈다.

황실의 품격에 맞는 옷차림도 잇따라 제공되었다. 별실의 보관함에는 순식간에 에디스의 의복이 가득 채워졌고, 앞으로도 상황과 자리에 맞는 드레스가 추가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후에 접견실로 따라 들어오라는 명을 받고 클라이드의 뒤에서 자리를 지켰다. 접견 내용을 받아 적는 서기와 황태자의 공무를 지원하는 시종이 따로 있어서 그녀가 할 일은 오가는 대화를 귀담아듣는 것뿐이었다.

이번에 클라이드가 만나는 사람은 황제의 상비군을 축소하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대귀족이었다. 접견 분위기가 제법 살벌했다.

별실로 돌아와서는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이젠 에디스의 시중을 드는 궁인도 배정됐다. 화려한 과시용 드레스에서 편한 드레스로 갈아입자 한결 살 것 같았다.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느슨하게 앉았다.

오후 4시. 이제부터 본 업무 시작이다.

에디스의 책상 맞은편에는 벽 전체에 짜진 책장 사이로 빼곡하게 문서철이 꽂혀 있었다. 그녀가 휴가로 지낸 사흘간 별실이 이런 식으로 개조된 것이다.

“아이고오—. 이걸 언제 다 읽고 정리하나.”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서류를 쌓아 두기만 했겠어. 분명 정리된 것도 있을 거야.”

이것과 관련된 일을 하는 시종에게 부탁해 볼까. 그녀는 문서에 손도 대지 않고 잔머리부터 굴리며 중얼댔다.

“에디스가 직접 해.”

“핫!”

의자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 소중한 엉덩이, 요즘 왜 이렇게 고생이 많냐.

“전하, 오셨…….”

인사를 싹둑 자르며 그가 다그쳤다.

“응, 왔어. 그리고 네가 잔꾀 쓰려는 것도 눈치챘지.”

나타난 줄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그녀의 앞에 온 클라이드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삐딱하게 기울이는 턱선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좋지 않다. 아주 좋지 않아. 저런 식으로 음흉한 속셈이 있어 보이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기괴한 결말에 이르곤 했다.

학습 효과가 생긴 그녀는 얼핏 보면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짓궂은 미소가 더 섬찟했다.

“안 그럴게요. 제 손으로 하나씩 읽고 정리할 거예요.”

“반드시 그래야 할 거야.”

“하지만 왜 번거롭게 중복 작업을 해요?”

“기존의 보고서는 개개의 시종마다 배후에 둔 세력의 입김이 작용했거든. 전혀 객관적이지 않아. 그래서 나는 편견 없는 네 시각이 필요해.”

뜻밖의 한마디를 진지하게 던져 놓고, 그가 손을 내밀었다.

“찬 바닥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앉아 있는 건 아니지?”

심사 뒤틀리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남자다. 잡을 손이 눈앞에 있지만, 클라이드가 매너남인 건 잘 모르겠다. 오히려 유치한 방향으로 심술 맞은 건 확실하다.

그녀는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며, 커다란 손을 사양하지 않고 덥석 잡았다.

“전하께서 놀라게 하니까 미끄러진 거죠.”

“그랬나? 조심하도록 하지.”

그는 에디스를 제자리에 고이 돌려놓고 순순히 물러났다.

둘의 책상이 90도 각도로 놓여 있었다. 클라이드의 정면으로 에디스가 옆모습을 보인 배치였다.

오늘의 공식 일정이 끝나고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라서 그는 자신의 책상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겼다. 손수 차를 따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환경은 1층의 대형 집무실이 낫지만 바로 앞 복도를 따라 수많은 아랫사람이 모여 있으니, 마음 편히 있을 곳으로는 여기가 나은 듯했다.

에디스는 서가에서 몇 권의 문서철을 골랐다. 우선순위 꼬리표를 붙여 놓은 것들 위주였다. 양은 방대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그의 얘기에 설득당한 바람에 어느새 군소리 없이 책장을 넘겼다.

별실에 드나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사다망한 황태자이시니 시종이 부르러 올 법도 하건만 누구도 얼씬하지 않았다.

여기에서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고 미리 얘기가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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