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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집착 받는 시종이 되었다 (10)화 (10/129)

10화

25화밖에 공개되지 않은 원작에서는 글 소개로만 그날을 언급했다. 조금 전 읽은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폭주하는 클라이드와 최악의 참사 직전에 막아서는 아드리안. 클리셰 범벅이지만 그래도 스토리 상으로는 큰 무리가 없고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원작과 반드시 일치하는지는 의심스러웠다.

이를테면 원작의 아드리안이 여자 베타에게 관심을 가졌을 리가 없다. 분명 BL 소설이었고 메인 수는 바람피우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이 달라지고 있는 걸까?’

원작보다 일찍 두 주인공을 만나도록 시도하고는 있지만, 아직 어떤 성과도 이루지 못했다.

‘그냥 예전의 호감이었을 수도 있잖아. 아드리안의 태도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

다시 되새겨 봐도, 아드리안이 저를 엄청나게 좋아했다면 그렇게 순순히 지켜보고만 있었을 리 없다. 그는 아직 주인공 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클라이드와 엮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딴생각이 길어지자, 말고삐를 잡은 시종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내리지 않는 겁니까. 발 받침이 필요해요?”

“네? 아, 아니요.”

승마 정도는 기본적으로 할 줄 아는 에디스는 가뿐하게 혼자 말에서 내렸다.

공포가 가시지 않은 머릿속이 클라이드가 온 제국을 피바다로 만들 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날이 오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살해 대상 중의 하나가 되려나.

저만치에서 뒷모습을 보인 클라이드는 현역 군인 같았다. 길쭉하고 날렵한 체형으로 미루어 봐도, 들은 대로 몸 쓰는 취미에 열을 올리는 게 분명했다.

그가 옆으로 돌아서며 그녀를 발견했다. 밝은 태양 아래 새카맣게 반들거리는 머리칼이 선명했다. 굴곡이 깊어서 짙은 그림자가 진 눈매도 매력적이었다. 높은 콧대가 오만한 듯, 또는 뭔가 못마땅한 듯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늦었군.”

그가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설마 기다렸을 리는 없고. 괜히 부아가 치민 에디스는 딱 부러지게 받아쳤다.

“제시간에 출근했습니다만. 사무실에 들렀다가 명을 전달받고 왔습니다.”

클라이드의 별실에 있었다고는 차마 말하기 민망해서 사무실로 각색했다.

에디스는 그의 곁에 시립하면서 소매 안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치사하게 시간을 재고 있었나. 내버려 둬도 제가 어련히 바지런하게 움직이지 않을까.

옆구리에 화승총을 낀 클라이드는 야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겼다.

궁에서보다 간소한 복장이어서인지 몸매도 잘 드러났다. 떡 벌어진 어깨가 만져 보고 싶을 만큼 근사했다.

그는 사격을 잠시 멈추고 에디스를 찬찬히 훑었다.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시험을 치를 때라든가 수발 시종으로 임명받을 때의 싸한 느낌과 같았다.

승마용 바지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에 그의 시선이 이르렀다. 조각 같은 턱선이 희미하게 비뚤어졌다.

“옷이…….”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지급받은 복장입니다.”

“음, 내가 고른 거긴 하지만…….”

클라이드가 직접 선택했다고? 대체 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승마 복장이 돌연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황족을 직접 모시는 시종은 복장도 굉장히 중요하다. 아랫사람의 수준이 주군의 품격과 직결되기도 해서, 반드시 외모가 번듯하고 옷을 잘 차려입은 시종을 뒤따르게 한다.

그녀가 클라이드를 수발들 만한 의복을 갖추기 힘드니까 약간의 지원이 이루어지나 보다고 단순히 생각했건만, 직접 골랐다니 뜻밖이었다.

상식을 깨는 돌발 행동은 계속됐다. 그가 갑작스레 코트를 벗어젖혔다. 곁에서 모시던 이들은 무슨 큰일이 벌어질지 몰라 쩔쩔맸다.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그가 에디스에게 다가왔다.

그림자가 드리울 만큼 커다란 키로 바짝 다가선 다음, 두 팔을 들어 그녀를 에워쌌다.

피할 틈도 없이 맞닥뜨린 몸뚱이에 장벽과 같은 클라이드의 상체가 닿았다. 에디스는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남자의 목울대가 목마름을 견디며 일렁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해야 했다.

놀란 토끼처럼 움츠린 어깨 위로, 뜻밖에도 남성용 코트가 둘렸다.

“걸치고 있어.”

그녀보다 한참 큰 옷은 거의 이불이었다. 몸이 다 덮이고 길이는 무릎까지 내려왔다. 머리통만 빼꼼히 나온 상태인데도 그는 신중을 기해 꼼꼼히 앞섶을 여며 줬다.

“왜 이걸 저한테…….”

의복 담당 시종도 저기에 대기 중이니 에디스에게 들고 있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보릿빛 실크 셔츠만 입은 그는 가슴팍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났다. 코트와 마찰하며 정전기가 생긴 탓인지 목둘레의 레이스는 살짝 뜨고 앞가슴은 쫙 달라붙었다.

두툼한 근육질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그의 호흡에 맞춰 높이를 달리하는 바위 같은 대흉근과 푹 파인 가슴골이 얇은 실크 아래로 선명했다.

에디스의 양쪽 팔뚝을 커다란 손아귀가 올가미처럼 감쌌다.

고개를 조금 숙인 클라이드의 더운 숨결이 이마를 간질였다.

“승마복이 지나치게 잘 어울려서.”

훅 들어오는 발언이 아찔하다.

무슨 뜻일까.

날리는 모래처럼 생각이 흩어져 도저히 판단이 불가능했다.

팔뚝을 쥔 손아귀에 힘이 더해 갔다.

“널 이 꼴로 둘 수는 없으니 오늘은 이만 철수해야겠군.”

송곳처럼 찌르는 시선이 감추어 둔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 것만 같았다.

“제가 뭘…… 실수했어요?”

자신 때문에 황태자의 일정이 바뀌는 건 원치 않았다.

크고 집요한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올라와 머리칼에 닿았다. 반 묶음 한 머리의 웨이브 진 끄트머리를 우연인 것처럼 가볍게 스쳤다. 윤기 넘치는 백금발이 햇살을 받아 환하게 반짝이고 있음을 에디스만 모르고 있었다. 신록의 숲을 배경으로 한 초록의 눈동자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도. 커다란 눈매는 가늘게 좁혀 뜨면 고양이 같고 지금처럼 놀라면 강아지 같다는 것도.

“하긴, 지금 돌아가 버리면 에디스가 곤란하겠군.”

사격장에는 측근뿐이지만 궁으로 돌아가면 평소와 달리 일찍 돌아온 이유를 다들 궁금해할 것이다.

이마에 닿을 듯 말 듯 한 입술이 은근한 분위기로 달싹거렸다.

“그럼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고 갈까?”

“전하의 뜻대로…….”

이런 남자가 어떻게 폭군이 되어 충신과 간신을 가리지 않고 깡그리 몰살해 버리게 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현재의 클라이드는 사적으로 체력 단련과 사격을 즐기면서 공적으로는 꽤 괜찮게 제 역할을 수행하는 황태자이다. 측근을 빡세게 굴리긴 하지만, 궁 사람 중에 관두고 싶다는 사람은 적었다.

“에디스도 총 쏠 줄 알아?”

그녀의 갸름한 턱을 차마 만지지 못하고 내리는 손끝이 조심스러웠다.

“총이요? 아뇨.”

“한번 쏴 볼래?”

이 남자의 파격은 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에디스의 사고방식이 도저히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저, 저는…….”

“어렵지 않아. 장전은 시종이 해 줄 거야. 과녁을 보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지.”

그가 턱을 까딱해 보이며 총기류가 대기하고 있는 사수 위치로 향했다.

총을 한 대 더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자신의 것은 직접 총알을 넣고 꽂을대를 사용해 화약을 담았다. 사격터 전담 시중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사격 준비를 마친 클라이드가 잔디밭 반대편에 세워진 과녁을 바라봤다.

에디스에게 강권하려는 의도는 없는지 쫓아오도록 재촉하지 않았다. 먼저 한 발 쏘고 다음 샷을 준비했다.

발포 소리는 요란하지만 에디스는 솔직히 쏴 보고 싶었다. 재미있을 것 같다.

클라이드의 원작 속 미래가 총기류와 얽혀 암울하게 내다보일 뿐이지 그녀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좋아했다.

승마를 배울 기회가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고 넙죽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곳 귀족들이 주로 마차를 이용하느라 웬만해선 말을 타지 않지만 흥미롭게 배웠다. 이런 성향은 빙의 전의 에디스와 현재의 자신이 겹치는 부분이었다.

주춤주춤 다가가자 그가 멋들어지게 입매를 벌려 웃었다.

“역시 에디스.”

이해하지 못할 반응이다.

“역시……라니요?”

“아무것도 아냐. 처음 쏴 보는 거지?”

클라이드는 말을 돌리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가까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네에.”

“이리 와. 가르쳐 줄게.”

에디스를 위해 준비된 총을 건네주며 그가 쏘는 법을 간략히 설명했다. Y자형 막대를 땅바닥에 꽂아 총을 고정하고, 선 채로 쏘는 방식이었다.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손잡이를 잡으니 단거리 달리기의 출발점에 선 것처럼 긴장됐다.

“이렇게 조준하면 돼요?”

가늠좌를 통해 과녁을 주시했다.

“그런 자세로는 불안정해. 쏘는 순간 뒤로 튕겨 나가는 수가 있어.”

“그래요?”

“조금만 내가 받쳐 줄게.”

클라이드는 그녀의 어깨에 걸쳤던 코트를 치우고 등 뒤에서 팔꿈치를 붙들어 줬다.

한쪽 팔꿈치가 잡힐 때, 등줄기에 남자의 따뜻한 체온이 직접 와닿았다.

가슴팍이 그녀의 날갯죽지에 지그시 눌렸다. 눈으로 보아 탄탄할 듯하던 남자 가슴은 실제로 접촉하니 돌덩이 그 자체였다. 과하게 크지 않으면서도 잘 발달한 근육들이 섬세하게 움직였다.

반대쪽 팔꿈치까지 그의 손안에 들어갔다. 완전히 뒤로 끌어안긴 꼴이다.

이러려고 그는 총을 쏴 보라고 권한 걸까. 아니면 권유할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조준하다 보니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걸까.

곤란해 죽겠다. 클라이드를 밀어낼 수가 없다.

그가 민망해할까 봐 조심스러운 점도 있지만, 자신의 마음이 매몰차지 못했다.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또 좋기도 하고…….

이놈의 얼굴 밝힘증.

생각을 고쳐먹는다. 정확히는 얼굴 더하기 몸매 밝힘증이다.

“앞을 잘 봐. 쏠 수 있겠어?”

소곤거리는 음성이 귓바퀴를 간질였다.

하, 목소리 한번 예술이네.

목덜미가 죄다 뻣뻣해졌다. 단정히 반 묶음 한 머리 안쪽으로 두피 모공까지 쭈뼛하게 섰다.

숨결과 말에 질척하게 엉겨들어 그의 입술이 귀와 닿았는지 떨어졌는지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빨갛게 열이 오른 귓가에 두근두근하는 자신의 맥박이 느껴졌다.

“못 쏘겠으면 같이 할까?”

그녀가 꼼짝도 못 하자 클라이드는 다른 방식을 권했다. 남성의 감각을 느끼느라 아무 말도 못 한 것이지만, 오락가락하는 정신 상태를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아니요. 할 수 있어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시선은 먼 곳을 보고 있어도 관심은 클라이드에게만 전부 쏠렸다. 두 팔을 고정하느라 끌어안긴 자세와 그녀의 어깻죽지를 누르는 돌 가슴팍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넓지 않은 접점이 애가 타도록 감각적이었다.

아예 세게 끌어안는 것도 아니라 호흡을 따라 미세하게 마찰하는 부위가 유독 민감했다.

게다가 갈수록 뜨끈뜨끈해지고 있었다. 지독하게 더워. 밀착한 남녀의 육신이 온통 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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