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35화 (83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35화>

    -내가 막아 줄 수 있는 건 일주일뿐이야.

    이제 최종 결재만 남은 인사 결과.

    신안 인신매매 사건 등으로 내부 진통이 심해서 본래의 인사 결정 예정일보다 훨씬 늦어졌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더 눈감아 줄 수 있는 것이지 그 이상은 힘들다.

    명분이 너무 확실했기 때문이다.

    비록 서울역과 서울고속터미널 테러 사건으로 삐끗하긴 했지만, 종혁은 그동안 그 누구라도 이견을 달 수 없는 압도적인 실적을 냈다.

    이런 경찰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경찰 역사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속 승진을 하는 경찰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경찰이 상부를 믿고 따를까.

    이런 장희락 경찰청장의 말에 종혁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여의도는 가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가려고 하니까 일주일인 거야.

    아니었다면 연수 따윈 반려시켰을 것이다.

    물론 연수가 종혁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고위 간부를 꿈꾸는, 혹은 이미 고위 간부인 경찰들 모두 가고 싶어 하는 FBI 연수.

    그러나 그것이 이렇게 쫓겨나듯 가야 한다면 그 누가 좋아할까.

    “감사합니다.”

    -임명식 때 보지.

    “충성.”

    통화를 종료한 종혁이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정계라…….’

    선뜻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현몽준 대표님과 홍정필 대표님이 내 뒤에 있는 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이런 수작을 부렸다?’

    이 정도로 간이 큰 정치인이 누굴까.

    “괘, 괜찮으십니까, 서장님?”

    “이민석 회장이 움직인 겁니까?! 이 개자식!”

    걱정스럽게 종혁을 쳐다보는 형사들.

    ‘그래. 지금은 이게 문제가 아니지.’

    이민석이라는 악마 그 이하의 무언가를 잡아 족치는 게 더 중요하다.

    “현 시간부로 대광해수욕장 영아 살해 및 유기 사건의 수사팀을 한시적인 특수본으로 승격, 이민석 회장 검거 작전에 돌입합니다. 두 분은 수사지원과의 도움을 받아 저 여성들부터 체포하세요.”

    은밀히. 이민석 회장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충성!”

    경찰들이 튀어 나가자 종혁도 담배를 끄며 몸을 돌렸다.

    ‘일단 시간부터 벌어야겠군.’

    이민석을 잡아 족치기에 일주일이란 시간은 너무 부족했다.

    “예, 헨리.”

    * * *

    [특종]신안경찰서장 최 모 총경, 외국인 관광객 폭행!

    외국인 관광객, 알고 보니 브라질 대사관 직원?!

    음주 폭행! 경찰이 아니라 깡패!

    영웅 경찰, 최 모 총경의 민낯! 폭행당했다는 증언 잇따라!

    과도한 공권력. 폭력 경찰로 회귀?

    장희락 경찰청장, 진상을 조사 중에 있다!

    톡!

    난리가 난 포털 사이트를 닫은 민영우 변호사가 눈을 가늘게 뜬다.

    “이 정도로 절제력이 없는 사람이었나?”

    아니다. 그가 조사한 최종혁이란 경찰은 폭력적이긴 해도, 영리하고 치밀한 사람이었다.

    사명감이 높고, 정의로워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결코 두고 보지 못하는 경찰다운 경찰.

    ‘그런 경찰이 술을 먹고 외국인을 폭행했다? 그것도 대사관 직원을?’

    선뜻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수작으로 생각하기에는 이번 폭행 사건으로 인한 후폭풍이 너무 크다.

    종혁에게 검거당하다 과잉 진압,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이 정도면 제아무리 종혁이 그동안 쌓아 놓은 대외적인 이미지가 대단하더라도, 그가 만든 실적이 엄청나더라도 단순 징계로 끝나지 않는다.

    “그만큼 이번 인사 결과가 충격이었다는 건데…….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민영우 변호사가 연진을 감시하는 경호원의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별다른 일이 없는데도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던 경호원. 그래서 CCTV를 다시 확인하며 혈액검사를 의뢰했다.

    “이것도 이상이 없다라…….”

    아니다.

    무슨 방법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종의 방법으로 경호원을 잠재운 뒤 종혁과 연진이 접촉한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자신이 파악한 종혁이라면 지금쯤 어떠한 움직임이라도 보여야 했으나, 너무나도 잠잠한 그의 모습.

    그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기에 조용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행동했기에 그리 보이는 것일 터.

    즉, 최종혁과 김연진은 남모르게 내통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깜찍한 년.’

    빠드득!

    설마설마했는데 그 멍청해 보이는 모습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치다니.

    “후우…….”

    치솟는 살심을 겨우 누른 민영우 변호사는 담배를 물며 히죽 웃었다.

    “뭐, 그년만 치우면 해결되는 문제니.”

    민영우 변호사는 핸드폰을 들었다.

    이민석 회장에게 보고하고, 연진의 처우를 결정해야 됐다.

    그 순간이었다.

    쿵쿵쿵!

    갑자기 두들겨지는 변호사 사무실의 문에 민영우가 눈을 껌뻑이며 일어선다.

    “아, 음식이 벌써 온 건가? 예, 들어오세요!”

    벌컥!

    “음식은 거기 테이블에…….”

    “이야. 이런 곳에서 업무를 보시는군요? 여긴 월세가 얼마나 합니까? 30만 원? 40만 원?”

    허름한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을 터트리는 덩치 큰 사내.

    “최종혁 서장, 당신이 왜 여기에…….”

    종혁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민영우의 읊조림에 고개를 돌리며 윙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변호사님. 꽤 저렴한 곳에서 사시네요?”

    민영우 변호사는 미간을 좁혔다.

    * * *

    “이야아!”

    투다다다닥!

    해가 진 어두운 밤, 5세의 남자아이가 아파트 거실을 내달린다.

    활기차게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에 젊은 여성, 미주가 흐뭇이 웃는다.

    “승한아.”

    “응!”

    “우리 승한이는 누구 거?”

    “엄마 거!”

    “아이구, 예뻐라! 누구 아들이기에 이렇게 예뻐?”

    “엄마 아들!”

    미주는 엄지를 치켜들었고, 그녀의 아들은 배시시 웃다 다시 한 손에 로봇을 들고 거실을 내달린다.

    “쉬유유융!”

    띵동! 띵동!

    “……하.”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에 한숨을 내쉰 미주가 일어선다.

    또 자신의 아이가 뛴다고 아랫집에서 올라온 것 같다.

    얼마 전 이사를 온 아랫집. 이전에 있던 사람들은 아들이 아무리 뛰어도 별말을 안 했는데, 얼마 전 이사를 온 아랫집 신혼부부는 너무 참을성이 없었다.

    “아니, 애가 그럴 수도 있지. 유난이네, 정말! 자기네들은 안 그럴 줄 아나!”

    아무래도 회장님께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알았다고요! 알았으니까…….”

    씩씩거리며 문을 열던 그녀는 험악한 인상을 지닌 남성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자 깜짝 놀라 문을 닫으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남성의 발이 현관문 사이로 끼워 넣어진다.

    턱!

    “왜, 왜 이러세요! 누구세요!”

    “아이고, 윗집입니다.”

    “무슨 말이에요! 당신들 윗집 사람이 아닌…… 헉!”

    눈앞으로 내밀어지는 경찰공무원증에 미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아이 뛰는 게 우리 집까지 울리네요. 진짜 아파트에서 혼자 사나. 조심 좀 합시다. 쯧. 수고하세요.”

    굳어 버린 미주를 안으로 밀어 넣으며 현관문을 닫는 형사들.

    거실을 내달리던 그녀의 아들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두 형사 중 한 명이 몸을 낮추며 환하게 웃는다.

    “안녕?”

    “안녕하세요!”

    “어이구, 옳지. 인사 잘한다. 아저씨들이 엄마랑 할 이야기 있으니까 잠깐 방에 들어가 있을래?”

    아들은 미주를 봤고,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바, 방에 가서 책 읽고 있어.”

    “응!”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에게서 시선을 뗀 형사들이 다시 미주를 본다.

    “우리가 왜 왔는지 알죠?”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경찰이라면 이렇게 함부로 다른 사람 집에 들어와도 되는 건가요?!”

    발뺌하는 그녀의 모습에 형사들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지가 배 아파 낳은 딸을 뒷골목에 버린 걸 벌써 잊었다고?”

    “이야, 이년 진짜 쌍년이네?”

    “허억?!”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그녀.

    “임미주 씨, 당신을 영아 유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여기 체포 영장 보이시죠?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미주가 형사에게 잡히는 손을 다급히 빼낸다.

    “다, 당신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우리 아기 아빠가 누군지 아냐고!”

    “알아. 현진그룹의 이민석 회장.”

    쿵!

    “아, 안다고?”

    “어. 네가 유기한 아기가 이민석 회장의 딸이란 것도.”

    “……하! 그런데도 날 체포하겠다고?!”

    형사들은 도끼눈을 뜨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왜? 저 아이가 이민석 회장의 혼외자식이니까, 후에 현진 그룹을 물려받을 아이니까 널 빼내 주고, 너를 체포한 우리를 어떻게 할 거다? 꿈 깨세요, 임미주 씨.”

    비웃음을 내민 형사가 사진을 내밀었고, 그 사진을 본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난생처음 보는 여성들 때문이 아니다.

    환한 미소를 짓는 여성들이 끌어안고 있는 아이들.

    자신의 아이와 외모가 많이 비슷한 남자아이들.

    너무도 불길한 추측이 그녀의 뇌리를 강타한다.

    “봤지? 당신 아들을 대체 할 아이는 많아.”

    “거, 거짓말. 이건 거짓말이야!”

    “왜? 이 여성들과 이민석 회장이 나눈 대화 내용도 보여 줘?”

    모든 진실을 깨달은 그녀는 다시 주저앉았다.

    인생역전의 꿈은 그렇게 불발되었다.

    * * *

    허름한 소파에 앉은 종혁이 다시 사무실을 둘러본다.

    의뢰 한 건당 십수억은 가볍게 챙기는 민영우의 위명에 맞지 않은 허름한 사무실.

    ‘이런 식으로 위장을 하는 건가?’

    마치 수임이 거의 없는, 능력 없는 변호사라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사무실.

    이런 사무실을 보고 민영우의 본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찻잔을 내려놓는 민영우 변호사를 향해 종혁이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젓는다.

    “아, 내가 변호사님을 좀 살려 주려고 해서요.”

    “저를요?”

    “예. 곧 당신에게 사건을 의뢰한 이민석 회장이 체포 될 거라서 말입니다.”

    움찔!

    어이없어하던 민영우 표정이 대번에 굳는다.

    “죄목은 12명 영아 살해 교사 및 방조.”

    쾅!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뒤통수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민영우의 눈이 파르르 떨리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거만하게 다리를 꼰다.

    “모르셨나 봅니다? 이민석 회장과 만남을 가졌던 여성이 김연진 외에도 8명이나 더 있었다는 거.”

    종혁이 테이블 위로 그녀들과 이민석 회장의 대화 내역을 프린트한 걸 내려놓는다.

    그에 다급히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한 민영우 변호사.

    탁!

    그 내용들을 모두 확인한 민영우 변호사가 입술을 비틀며 움츠렸던 어깨를 편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기백이 쏟아져 나온다.

    “제가 서장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군요.”

    “저도 돈을 만지는 놈인데 권력가의 사냥개를 모를 리가요. 어떻게, 이젠 관심이 좀 가십니까?”

    만약 아무것도 모른 채 이민석 회장이 갑자기 구속됐다면, 자신은 무능한 사냥개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면 앞으로 그 어떤 권력가도 다시는 자신을 찾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쯤이면 이미 이민석 회장도…….”

    “아, 여성들을 감시하던 이들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그들도 다 잡아 뒀으니까요.”

    이민석 회장에게 이 정보가 넘어가는 일은 없을 거다.

    “영장도 중앙지검의 특수부에서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목포지청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큰 사건. 어쩔 수 없이 비밀리에 중앙지검 특수부로 사건을 이관시켰다.

    “강철선 부장검사……. 정말 빈틈이 없으시군요.”

    그렇다면 종혁의 폭행 기사도 이를 위한 연막이라는 뜻이었다.

    “하하하!”

    한 방 제대로 맞았다. 이 정도면 그로기다.

    “저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길을 마련할 시간을 얻게 되었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년이라지만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한 일입니다.”

    그랬다. 종혁이 굳이 민영우를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혹시라도 어떤 낌새를 눈치채고 이민석에게 보고할지 모르는 민영우의 입을 막기 위해.

    보고를 받은 이민석이 김연진을 죽이는 걸 막기 위해.

    ‘그리고 이래야 너도 방심하지.’

    그간 권력가들의 사냥개로 살아온 민영우. 털면 터는 대로 왕건이들이 쏟아질 거다.

    “그래도 은혜는 은혜죠. 제 밥그릇, 아니 제가 굶어 죽지 않을 수 있게 해 주셨는데요. 그 대가로 저도 선물을 하나 드리죠.”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민영우는 커피향을 음미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제게 처음으로 의뢰한 사람은 이민석 회장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정치인입니까?”

    “오. 상부의 신임이 대단하신가 보군요. 확실히 저라도 서장님 같은 부하 직원이라면 예뻐할 것 같습니다. 제게 처음 의뢰를 맡긴 사람은 윤성철 의원이었습니다.”

    “윤성철 의원?”

    의아해하던 종혁은 이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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