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34화>
뚜벅뚜벅.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었을 새벽 1시, 종혁은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발걸음을 옮겼다.
김연진은 어째서 자신의 아이를, 그것도 두 번이나 죽인 것일까.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아이를 키울 용기가 없어서?
‘그건 아니야.’
김연진과 이민석 회장 둘 다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분명 알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두 사람이 공모한 일임이 확실했다.
그렇게 종혁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연진이 있는 고급 빌라 앞에 섰다.
“오셨습니까, 최. CCTV 해킹은 끝냈습니다.”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빌라 안과 밖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민영우.
그를 속이기 위한 CCTV 화면 조작이 끝났다는 말이었다.
“고마워요, 이고르.”
“아닙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누, 누구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연진의 목소리.
“알잖습니까. 문 열어 주세요.”
-……네.
잠시 후 현관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고, 뒤이어 겁에 질린 연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름인데도 춥네요.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연진은 비켜섰고,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꺾고 있는 경호원을 발견하곤 피식 웃었다.
“제대로 잠들었네요.”
“다, 당신이 시켰잖아요!”
종혁이 배달부인 척 넘겼던 음식이 담긴 봉지 안에는 수면제도 함께 담겨 있었다.
김연진은 그것을 보자마자 종혁의 의도를 알아차리곤 경호원에게 그걸 먹인 것이다.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네요. 아니었다면 이민석 회장을 찾아가게 됐을 테니까요.”
이민석 회장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을 가장 조용히 처리할 방법은 하나다.
바로 연진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녀만 사라지면 진실을 증명할 방법은 사라지고, 그 어떠한 주장도 가설에 불과해지니까.
“혀, 협박하는 건가요!”
“그럼?”
오싹!
“제 새끼를 둘이나 죽이고 화장실 쓰레기통에 유기한 네년을 곱게 대할까?”
설령 이민석 회장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이유를 대든 김연진이 부모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아, 아니…….”
“아가리 다물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나도 너 따위와 오래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목과 심장을 옥죄는 거친 살기에 그녀가 주춤 물러서다 의자에 걸려 넘어진다.
“악!”
“쯧. 앉아.”
“네, 네.”
연진이 식탁의 의자에 앉자 종혁은 담배를 꺼내 들다 혀를 차며 다시 집어넣는다.
“일단 이민석과 민영우에게 말하지 않은 건 칭찬하지. 어차피 네 스스로 살기 위해 그런 것일 테지만.”
그녀가 아무리 찢어 죽여도 모자랄 악독한 년이라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걸 두고 볼 순 없었다.
“일단 다시 한번 확인하지. 이민석 회장은 죽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걸 알고 있지?”
“……네.”
까득!
순간 종혁의 심장이 옥죄어진다.
“그럼 이민석 회장이 살해를 지시한 거냐?”
“……네.”
쾅!
테이블을 후려친 종혁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두 명 다?”
연진은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머리끝까지 치솟는 분노가 눈앞을 흐리게 만든다.
심호흡을 하며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려던 종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연진의 멱살을 잡았다.
“꺅!”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아무리 시킨다고 한들 자신이 낳은 아기를 죽인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그럼 이민석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야?! 죽을 거냐고, 씨발년아-!”
“나,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요! 아기를 죽이지 않으면 죽인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왜 자신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아무것도 없는 부모 밑에서 힘들게 공부해 한국대까지 진학을 했는데, 앞으로 창창한 앞길만 남았는데 왜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돈이 낫잖아! 그리고 왜 나한테만 이러는데! 다른 년들도 있는데 왜 나한테만-!”
쿵!
“……뭐?”
연진은 눈물을 쏟아 내며 종혁의 손을 뿌리쳤다.
“아저씨한테는 나 말고도 스폰하는 애들이 더 있다고요…….”
순간 세상이 멈췄다.
* * *
겨우 진정이 된 연진이 입술을 삐죽 내민다.
“나도 정말 우연히 봤어요.”
이민식 회장이 씻으러 들어갔을 때, 핸드폰으로 S-톡이 왔다.
호기심이 들었다. 기업 회장은 평소에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눌까 하는 호기심이.
“그래서 봤는데…….”
이제 4살 정도 된 아기와 연진 자신 또래의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회장님 아기는 잘 크고 있어요, 라고요.”
놀랐다. 배신감도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증이 컸다.
그래서 톡을 더 뒤져 봤는데, 그 외에도 다른 사진들이 더 있었다.
“모두 아기 사진이거나 아기랑 여자가 함께 찍힌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등록된 이름이 전부 대학명이었다.
“한 명이…… 아니라고?”
“그렇다니까요! 이런데 내가 어쩌겠어요!”
자칫 다른 여자들에게 밀릴 판인데, 더 이상 돈을 받을 수도 없을 판인데 어떻게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씨발년아, 그게 말이냐?”
“……흑!”
“후. 일단 알았어.”
언제 경호원이 잠에서 깨어날지, 민영우 변호사가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이제 그만 가야 했다.
“김연진.”
“네, 네.”
“명심해. 난 오늘 여기 안 온 거고, 너도 날 안 만난 거야. 입만 다물고 있으면 죽지는 않는다는 소리라고. 알아들어?”
겁에 질린 연진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고, 종혁은 현관을 빠져나갔다.
“자라.”
‘잘 순 없을 테지만.’
끼이익! 쿵!
“이 개새끼…….”
빠드드드득!
종혁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정말 맞다면 이민석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악마다.
아니, 악마도 손을 저을 무언가다.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죽여야 할까…….’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종혁은 이를 갈며 골목을 빠져나갔고, 곧 골목에 숨어 있던 SVR도 해킹한 CCTV를 원래대로 돌려놓으며 사라졌다.
한편 그로부터 30분 후.
“핫?!”
눈을 뜬 경호원이 당황한다.
그런 그녀의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노려보는 연진.
“경호원이라면서요? 두 번 경호했다가는 내가 납치돼도 모르겠다. 그쵸?”
“죄, 죄송합니다.”
“흥!”
쾅!
연진은 안방으로 들어갔고, 남겨진 경호원은 눈빛을 가라앉히며 닫힌 안방 문을 바라봤다.
“접니다, 변호사님. 주무십니까?”
분명 자신이 까무룩 잠이 드는 모습을 민영우도 봤을 거다.
보고를 해야 됐다. 그의 의심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도록.
이것 역시 종혁이 알려 준 대처 방법이었다.
* * *
기이이잉!
“으흐응.”
아이보리 색채 때문인지, 아니면 테라스의 큰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 때문인지 화사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아파트.
이십대의 미녀가 진공청소기를 들고 집 안을 누빈다.
아기가 있는 듯 거실 한구석에 놓인 장난감 박스와 거실 전체에 깔려 있는 스펀지 매트.
TV 선반에 놓인 귀여운 여자아이가 해맑게 웃는 사진이 담긴 액자를 마른 헝겊으로 닦아 낸 그녀는 양손을 높이 들었다.
“다했다!”
집이 넓어서인지 청소를 하는데도 한 세월.
하지만 하루라도 빼먹을 순 없다. 자신의 게으름이 곧 소중한 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보다 훨씬 말끔해진 거실을 보며 뿌듯하게 웃은 그녀는 시계를 보곤 아차 하며 얼른 화장실로 향했다.
“약속 늦겠다!”
띵!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 오른 여성이 먼저 타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가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805호 새댁이네. 어디 가? 예쁘게 빼입었네?”
“네. 약속이 있어서요. 아주머니도 어디 가세요?”
“난 잠깐 장 보러 요 앞 마트 가지. 그보다 남편은 언제 보여 줄 거야?”
“호호. 글쎄요. 너무 멀리 나가 있어서…….”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1층에 도착하자 서로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그렇게 몸을 돌리는 순간 여성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왜 저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거야? 하긴, 남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니 입이라도 떠들어…… 에부부. 좋은 말, 예쁜 말.”
평소에도 예쁜 말을 쓰는 버릇을 하지 않으면 아들 앞에서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녀는 차를 몰고 강남의 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딸랑!
“미주야!”
“애들아!”
그녀는 무려 3년 만에 보는 친구들의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 * *
커피숍에서 시작된 수다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아, 우리 승한이 데리러 갈 시간이다. 난 먼저 일어날게! 오늘 만나서 즐거웠고, 다음에 또 만나자!”
“잘 가!”
손을 흔들며 떠난 여성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방금까지 웃고 있던 그녀의 친구들의 낯빛이 굳는다.
“정말 계속 애를 키우나 보네.”
“아빠가 대체 누구래? 누구 아는 사람 없어?”
“알면 이미 말했지.”
“확실해. 난 아무래도 어디 재력가의 첩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싶어.”
“뭐? 진짜?”
“미주 가방 못 봤어? 그거 올해 샤넬 신상이잖아! 8백만 원짜리!”
“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그래서 연락이 끊겼던 거였어?”
낯빛이 차갑게 굳은 여성들이 몸을 일으킨다.
왜인지 더 이상 이곳에 있기 싫었다.
한편 어린이집에 도착한 여성이 선생님과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오늘 우리 승한이는 어땠어요? 낮잠은 잘 재웠어요? 식사는 잘 먹였고요? 우리 승한이가 오리랑 당근 못 먹는 건 아시죠?”
“그럼요.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희 어린이집은 모두 맞춤으로 설계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고개를 끄덕인 여성이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있는 아들을 향해 양팔을 벌린다.
그러자 그제야 선생님의 손을 놓고 달려와 엄마에게 안기는 아이.
그녀의 입가에 큰 미소가 그려진다.
‘이 아이가 내 아이야.’
자신을 아주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보물.
“승한아,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네! 선생님, 굿 바이! 씨 유 투머로우!”
“승한이도 See you Tomorrow!”
“아이구. 우리 승한이 이제 영어도 잘하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영어에 다시 미소를 짓는 그녀.
멀리서 한 사내가 카메라를 들어 그런 그녀와 아이를 찍었다.
찰칵!
* * *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불이 꺼진 신안경찰서의 회의실.
대광해수욕장 영아 살해 및 유기 사건의 담당 형사와 종혁이 불이 켜지는 스크린을 응시한다.
“이름 박미주. 나이 26세. 현재 슬하에 5세의 남자아이를 두고 있으며…….”
사건 담당 형사의 입에서 그녀의 약력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그리고 2009년 1월, 경기도 안양에서 발생한 영아 유기 사건의 피해자와 친자 관계임이 확인됐습니다.”
쿵!
마치 운동장만 한 망치가 내려친 듯한 회의실.
이를 악문 종혁이 겨우 입을 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는다.
“혹시 여자아이입니까?”
“……예. 맞습니다.”
“영아는 어떻게 됐습니까.”
“다행히 그 근처를 지나던 행인이 아이를 발견, 고아원에 인계됐다가 현재는 다른 가정에 입양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계속하죠.”
“그럼 다음 사람을 보시겠습니다. 이름 정시은.”
사건 담당 형사의 입에서 무려 8명의 여성이 거론된다.
그는 브리핑을 하며 아주 잠시 종혁을 경이롭다는 듯 응시했다.
갑자기 자리를 이틀 비우더니 뜬금없이 이민석 회장의 S-톡 내역, 그리고 이민석 명의의 전화와 차명으로 된 전화의 통화 내역을 가져온 종혁.
그것은 폭탄이었다.
일개 형사로선 감당할 수 없는 폭탄.
“이상입니다.”
브리핑이 마무리된 순간 회의실에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고, 종혁이 천장을 보며 눈을 감는다.
‘이로써 확실해졌군.’
이민석은 현재 자신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어받을 후계자를 만들고 있는 거다.
“정확히는…… 좋은 텃밭에 좋은 씨를 뿌려서 훌륭한 열매만을 획득하려는 거겠지.”
자신의 유전자를 아주 진하게 이어받은 아이만 고르려는 거다.
빠드드득!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이민석은 악마도 손을 저은 무언가였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서장님.”
“어떡하긴요. 당연히…….”
지이잉! 지이잉!
말을 끊는 진동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봤던 종혁이 미간을 좁힌다.
“잠시만요. 예, 청장님.”
장희락 경찰청장의 전화다.
-방금 경무인사국에서 서류가 올라왔어.
이번 인사이동에서 발령받아 갈 부서가 정해졌다는 말.
“그렇습니까? 어디로 가면 됩니까?
-외사국 부국장.
“……예? 홍보부가 아니라요?”
서울역과 서울고속버스 터미널 테러 사건으로 인해 1년은 상부가 가라는 곳으로 가야 되는 종혁.
그래서 종혁은 자신의 거취가 홍보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홍보부의 덕을 톡톡히 봤으니 말이다.
-그리고 미국 FBI로 1년간 연수.
쿠당탕!
기함한 종혁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최 서장, 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까득!
“……그러게 말입니다.”
순간 종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청장님.”
-말해.
“현진그룹입니까?”
-……정계.
쿵!
‘저, 정계라고?’
종혁은 의아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