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31화 (83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31화>

    까앙!

    “굿샷!”

    짝짝짝짝짝!

    경쾌한 소리와 축하의 박수가 울리는 녹색의 필드.

    구름에 햇빛이 가려졌음에도 후덥지근한 날씨에 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노인의 표정이 굳는다.

    “……알아보고 연락하지.”

    전화를 끊은 노인이 눈을 감자 그의 주변에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에 장년인이 다가와 시원한 물통을 내민다.

    “냉수입니다, 의원님.”

    “둘째 놈이 죽인 게 하나가 아니라고 하는군. 알고 있었어?”

    장년인은 고개를 숙였다.

    “노리개를 위해 많은 돈을 쓰시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노인도 알고 있었다.

    며늘아기와 정략결혼을 했는지라 서로 정을 붙이지 못한 채 노리개를 가지고 논다기에 그러려니 했었다.

    둘 사이에 자식이라도 있으면 좀 낫겠지만, 며늘아기의 텃밭이 씨가 자라지 못할 상태라 자식도 들어서지 않는 상황.

    그 정도는 노인도 용인했었다.

    ‘그런데 그걸 또 못나게 들켜?’

    이러니 아직도 믿질 못하는 것이다.

    노인의 눈이 떠졌다.

    “둘째 놈보고 들어오라고 해.”

    노인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예, 의원님.”

    “의원님, 안 가십니까?”

    등 뒤에서 들리는 외침에 노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글서글 웃으며 몸을 돌린다.

    “어이구, 김 회장. 내가 별거 아닌 전화를 받느라 김 회장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허허.”

    노인은 무더위에 연신 땀을 훔치는 김희건 회장을 향해 다가갔다.

    * * *

    서울의 어느 고층 빌딩.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멈춰 서자 사람들이 튀어나온다.

    차문이 열리고 싸늘한 인상의 사십대 중년인이 내리자 허리를 깊이 숙이는 사람들.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중년인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고층 빌딩 안으로 들어간다.

    뚜벅뚜벅!

    그의 발걸음 소리에 로비에 있던 사람들도 허리를 숙인다.

    “다음 스케줄은?”

    “다음은…….”

    “회, 회장님!”

    “막아!”

    중년인의 뒤에서 튀어나온 경호원들이 달려오는 장년인을 막아선다.

    며칠을 씻지 못한 듯 추레한 얼굴.

    “회장님! 제 말 좀 들어 주십시오, 회장님!”

    “입부터 막아!”

    “가시죠, 회장님.”

    “……잠깐.”

    중년인이 손을 든다.

    “놓아 드려요.”

    “회장님.”

    비서를 말린 중년인은 장년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얼굴이 확 밝아진 장년인이 다급히 달려와 중년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회장님!”

    “처음 뵙는 분 같은데, 무슨 일인지 차분히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저, 저는 삼중금속의 공장장입니다! 그런데…….”

    “삼중금속?”

    중년인은 비서를 봤고, 그는 어렵사리 기억을 발굴해 냈다.

    “아무래도 저희 그룹의 4차 하청 업체 같습니다. 작년에 신기술을 개발했는데, 3차 하청에 뺏긴 것도 모자라 계약이 만료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고개를 끄덕인 중년인이 장년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운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돌아가 계시면 좋은 소식이 갈 겁니다.”

    “예? 저, 정말이십니까?!”

    “오랫동안 저희 그룹을 위해 애써 준 파트너를 외면할 만큼, 그리고 이렇게 용기를 내 주신 분을 버릴 만큼 저희 그룹은 그렇게 신의가 없는 곳이 아닙니다. 사태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흑!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로비를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을 뒤로하며 엘리베이터에 오른 순간 중년인의 얼굴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푸근한 미소가 사라진다.

    그에 비서가 얼른 물티슈를 내밀고, 중년인은 살갗이 벗겨질 것처럼 손을 박박 문지른다.

    “굳이 이러실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직원들이 보고 있잖아. 그보다 방금 전 그 업체에게 하청을 준 업체가 어디지?”

    “우산정밀이라는 곳입니다.”

    “거기까지 정리해.”

    다시는 이런 거지 같은 짓거리를 할 수 없도록.

    가져가는 것 하나도 없이 철저하게 짓밟으라는 지시였지만, 비서는 익숙한 일이라서 그런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신기술도 그룹에 귀속시키겠습니다.”

    “이것들도 태워 버리고.”

    중년인이 방금 전 거지 몰골인 장년인에게 닿았던 재킷 소매와 와이셔츠를 벗어 넘긴다.

    띵! 스르릉!

    때마침 열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중년인이 회장실로 들어가 새 와이셔츠를 입으며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저 아래 마치 개미처럼 움직이는 도로와 보도의 풍경을 바라보는 중년인.

    “상황은 어떻게 돼가고 있지?”

    앞뒤 잘린 말이었지만, 알아들은 비서가 고개를 숙인다.

    “민영우 변호사가 무사히 빼냈다고 합니다.”

    “민영우라…….”

    중년인이 입안에서 그 이름을 굴린다.

    이름 정도는 들어 본 적 있다.

    기업가나 정치인 등 권력가들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싶을 때 부르는 사냥개.

    “소문만큼 능력이 좋나 보군.”

    “승률은 물론이거니와 현재까진 언론의 노출도 없다고 합니다.”

    “……스카우트를 할 가능성은?”

    “다른 분들께서 불편해하실 겁니다.”

    “하긴.”

    그동안 많은 권력가의 비밀을 알게 됐을 민영우. 당연히 그에게 의뢰를 맡긴 권력가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보단 그 멍청한 년이 문제로군.”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은 몰랐다.

    “역시 씨 도둑질은 못한다는 건가.”

    겨우 공장 생산직 노동자인 아비를 둔 연진.

    누구의 도움 없이 한국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기에 개천에서 용이 난, 씨를 다르게 타고 태어난 거라 생각했지만 근본은 바꿀 수가 없나 보다.

    “그보단 운이 좋지 않았다고 봐야 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연달아 터진 대형 사건으로 인해 철저한 감시를 받는, 거의 2미터마다 CCTV가 있다고 할 정도로 CCTV가 넘쳐 나는 곳이 신안이다.

    “거기다 요즘 경찰의 능력이 많이 상향됐습니다. 아무래도 인식 프로그램 시리즈라는 수사 기법을 쓴 것 같습니다.”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해도 들켰을 것이다.

    “김 비서.”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중년인은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라고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저 답답해서 푸념을 해 봤을 뿐이다.

    “이번이 두 번째던가?”

    “예.”

    두 번의 실패. 한 번이야 우연으로 치부할 테지만, 두 번은 연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세 번째 기회를 주려고 했던 건 순전히 그녀의 학벌 때문이었다.

    놓치기에는 너무 명석했던 두뇌와 앞으로 그녀가 쌓아 갈 인맥.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그것이 헛똑똑임이 증명됐다.

    ‘정말 똑똑했다면 CCTV도 변수에 넣었어야지.’

    “정리해.”

    “……알겠습니다.”

    지이잉! 지이잉!

    “잠시 전화를 받겠습니다. 연희동입니다.”

    움찔!

    싸늘하다 못해 삭막하던 중년인의 얼굴에 미약한 흔들림이 생긴다.

    “……받아.”

    “예, 김 비서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비서는 낯빛이 어두워진다.

    “회장님, 어르신께서 연희동 저택으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올 때부터 그러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이번엔 또 뭐라고 잔소리를 할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오자 중년인은 혀를 찼다.

    “쯧.”

    * * *

    어두워진 밤, 정원수가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가니 신발장에 고용인이 대기하고 있다.

    중년인이 신발장에 서는 것과 동시에 그의 구두를 잡는 고용인.

    익숙하다 못해 일상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가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의원님은 부엌에 계십니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건강을 챙기는지.”

    거의 매일 이 시간이면 야식으로 라면을 먹는 아버지. 아마 오늘도 먹고 있을 거다.

    중년인은 고개를 저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후루룩! 후루룩!

    “나도 라면 하나 줘요.”

    “네, 회장님.”

    중년인이 맞은편에 앉자 노인이 힐끔 중년인을 쳐다본다.

    “라면 먹을 정신은 있나 보구나, 둘째.”

    “형은 어디 갔습니까?”

    “그걸 못나게 들켜?”

    “오늘도 다른 의원들과 술 마시러 갔습니까?”

    노인의 뒤를 이어 정계에 투신한 첫째 형.

    아니, 애초부터 그를 위해 키워졌다. 자신이 기업가로 키워진 것처럼 말이다.

    “이젠 머리가 굵어졌다고 아비 말도 무시하는 거냐?”

    “아버지가 먼저 나서지만 않았어도 제가 알아서 대처했을 겁니다.”

    연진은 이미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경찰에 체포됐을 때 움직이려고 했는데, 눈앞의 아버지가 그보다 먼저 움직인 거다.

    “앞으론 제가 대처하겠습니다. 변호사의 연락처만 주세요.”

    “……쯧. 어떻게 된 일이야?”

    “박 보좌관에게 보고받으신 그대로입니다.”

    “근본 모를 서얼을 집안으로 들이려는 게야?”

    “그럼 어쩌겠습니까.”

    맨땅에서부터 시작해, 그 더럽고 천박한 노동자들과 굴러가며 힘들게 키워 온 그룹이다.

    그런 그룹의 후계를 남매들이 노리고 있다.

    지금이야 자신의 나이가 젊어 수월하게 막아 내고 있지만, 지금보다 나이가 든다면 그것도 힘들 수밖에 없다.

    눈앞의 아버지가 개입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년인의 눈빛이 서늘해진다.

    “제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자격이 없다?”

    탁!

    노인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중년인이 입술을 비튼다.

    “저희가 한 건 거래였잖습니까?”

    거래.

    그 말에 노인의 눈빛이 한층 더 싸늘해진다.

    “네가 내 자식이 아니었으면 그런 거래조차 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보느냐?”

    “그 값도 모두 치른 것으로 압니다만.”

    태어나 지금까지 10원 하나 허투루 받은 적이 없다.

    용돈, 카드, 과외 등 중년인이 누려 온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랐고, 중년인은 그 대가를 모두 치렀다.

    받은 것의 몇 배를.

    “그보다 계속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만 할 겁니까? 아, 다 끓였으면 가져와요.”

    “예, 회장님.”

    라면이 앞에 놓이자 중년인이 젓가락을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계속 노려보는 아버지의 시선에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후.”

    노인은 주먹을 쥐었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을이었다. 자칫 잘못 터졌다가는 6선 의원이라는 타이틀도 지켜 주지 못할 터.

    “최종혁이란 놈이 이번 사건을 맡았다.”

    이 이름도 들어 봤다.

    결코 일개 경찰로 치부해선 안 될 인물, 최종혁.

    “걱정 마십시오. 그년이 멍청하기는 해도 저에 대해 말할 정도로 멍청한 년은 아니니까.”

    아버지가 먼저 나서지만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연진의 입을 막았을 테지만, 굳이 그걸 말해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쯧쯧쯧. 그런 근본도 없는 년을 믿는 거야?”

    “돈을 믿는 겁니다.”

    사람은 믿을 수 없지만, 돈은 믿는다.

    돈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리고 설혹 일이 잘못되어도 걱정 마십시오. 저흰 서류상으로 남이지 않습니까?”

    정치인의 자식이 기업을 운영하면 본인의 정치 인생에 바람 잘 날이 없을 거라며 태어나면서부터 먼 친척의 양자로 입적되어야 했던 중년인.

    그렇기에 지금까지 공식적인 행사는 물론이고, 가족 행사에도 함께한 적이 없다.

    참으로 비정한 아버지였다.

    “그래서 네가 누리지 못한 건 없었을 텐데? 그리고 내가 그걸 말하는 것 같으냐?”

    그런 근본도 없는 텃밭에 아무리 좋은 씨가 심어진다 한들 곡식이 제대로 자랄까. 어차피 서얼을 집안으로 들일 거라면 제대로 된 텃밭을 사들여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하자가 있던 연진이라는 텃밭. 알아보니 처음에 낳은 것은 계집이었고, 이번에 낳은 것은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애지중지 다뤄 온 텃밭이 영 못쓰게 됐으니 다른…….”

    후루룩!

    노인은 중년인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이내 푸근히 웃는다. 오늘 처음으로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노인.

    “허헛. 아무튼 그 근본 없는 년은 문제없다는 거지?”

    “예. 그년의 입이 계속 다무는 이상 최종혁이란 경찰이 제게 도달할 일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노인은 젓가락을 들었고, 어느새 부엌엔 두 사람이 라면을 먹는 소리만 울렸다.

    * * *

    쿵쿵쿵쿵쿵!

    강렬한 비트가 울리는 클럽의 VIP룸.

    “자, 한 방 갑니다!”

    뻥!

    “꺄아아악!”

    “와아아!”

    비명을 지르는 남녀들의 잔에 샴페인이 따라지고, 남녀들은 눈을 빛낸다.

    무려 한 병당 2백만 원짜리 샴페인. 이십대인 그들에겐 너무 고가의 술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기다리는 건 그게 아니었다.

    “자, 우리 샴페인만으로는 섭섭하시죠?”

    분위기를 띄운 클럽 MD가 뒷주머니에서 파란 알약이 든 작은 봉투를 꺼내 든다.

    그에 이십대 남녀들이 눈을 빛내며 침을 삼킨다.

    “우리 언니, 오빠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샴페인의 찰떡궁합 안주! 캔디 대령입니다-!”

    “와아아아아!”

    퐁! 퐁! 퐁!

    샴페인잔 속으로 떨어지며 기포를 만드는 파란 알약.

    클럽 MD가 샴페인 잔을 높이 쳐든다.

    “모두 잔 들어! 아, 마시기 전에 우리 회장님께 인사!”

    “형, 잘 먹을게요!”

    “잘 먹을게, 다니엘 오빠!”

    테이블의 상석. 여성의 가슴을 주무르던 삼십대 후반의 남성은 남녀들의 외침에 입술을 비틀며 앞에 놓인 샴페인잔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갑자기 열리는 문 뒤로 눈 하나가 드러난다.

    높다란 위치에서 곱게 휘는 눈.

    “여기 있네?”

    상석에 앉은 남성을 발견한 종혁은 문을 완전히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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