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30화>
김연진의 눈이 데구루루 굴러간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이야. 이거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네요. 마침 약속이 있어서 왔는데, 이렇게 김연진 씨를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푸근히 웃어 준 종혁이 그녀의 전신을 훑는다.
“그런데 반성 따윈 안 하네요?”
움찔!
“……이야기는 제 변호사와 나눠 주세요.”
입술을 깨문 김연진이 종혁을 스쳐 지나가자 종혁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뾰족한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그녀를 눈여겨보던 남성들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그에 종혁이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그녀를 응시했다.
“김연진 씨, 내가 정말 약속이 있어서 왔을 거라고 생각해?”
쿵!
입가에 달린 미소와 달리 무심하기 그지없는 시선.
그녀의 시간이 얼어붙는다.
“이봐요, 여기 아가씨가 싫다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경찰입니다.”
“……예?”
타다닥!
“오셨습니까, 최 서장님!”
“아, 오랜만입니다, 김 상무님.”
“연락도 없이 오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하하. 근처에 온 김에 갑자기 생각나서요. 방 있죠?”
쩔쩔매는 이 호텔 관계자의 모습에 나섰던 남성들이 슬그머니 물러선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조용히 둘이서 식사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좀 준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 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분이 입을 옷도 준비해 주세요.”
고개를 숙인 호텔 관계자가 물러나자 종혁이 다시 김연진을 바라봤다.
“망신당하고 따라올래요, 아니면 그냥 따라올래요?”
“…….”
피식 웃은 종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호텔 관계자의 뒤를 따라고, 김연진은 이를 악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은 호텔 레스토랑에 있는 룸으로 향했다.
“대충 코스로 준비해 주세요. 와인도요.”
“알겠습니다.”
호텔 관계자가 물러나자 종혁이 김연진을 본다.
꺼림칙해하면서도 궁금증이 가득한 그녀의 눈빛.
“아, 제가 이 호텔의 VIP라서 말입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세계 모든 글로벌 체인 호텔의 VIP다.
“……경찰이 돈이 많으시네요.”
“제가 좀 많습니다. 아마 김연진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전화 한 통 해도 되나요?”
“하시기 전에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툭!
종혁이 그녀의 출입국 기록을 그녀의 앞에 놓는다.
“3년 전, 그러니까 대학에 입학하신 후 1학기만 끝내고 어학연수를 가셨더군요.”
흠칫!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그, 그래서요?”
“그런데 참 신기하죠. 호주에 도착해 학원에 등록한 기록은 있는데, 그 어떤 경제 활동을 한 기록은 없어.”
“그, 그거야……!”
“그리고 당신이 마치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러서 다녔다는 목격 증언도 있고.”
쿵!
종혁은 하얗게 질리는 그녀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김연진 씨,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아기를 살해하고 유기한 것이.
드륵! 쾅!
파랗게 질린 그녀가 다급히 일어난다.
그에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앉아!”
“무, 묵비권을 행사하겠어요!”
“……푸핫!”
이년은 알까. 방금 그 발언이 죄를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아니, 애당초 그녀의 대답은 필요도 없었다. 이미 증거는 확보했으니까.
김연진이 초범이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기 시작한, 이번 사건과 유사한 영아 유기 사건들.
그리고 결국 미제로 남았던 한 사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3년 전 강원도의 어느 해수욕장 화장실에서 발견된 영아의 시신.
종혁은 곧장 당시 채취했던 영아의 DNA와 김연진의 DNA를 비교 분석을 의뢰했고, 99% 확률로 생물학적 친자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미 김연진이 재범이라는 증거는 확보한 상황.
하지만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찰칵! 치이익!
종혁은 담배에 불을 붙인 후 테이블 위에 사진을 뿌렸다.
촤락!
“이 중 누구야? 누가 너한테 그 새끼를 소개시켜 줬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내린 김연진의 눈이 부릅떠진다.
“아, 그래. 이놈이야?”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에요!”
“모르기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여대생이 무슨 수로 그런 권력가랑 연결이 됐겠어? 그렇다고 업소에서 일했던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업소에서 일했다면, 그곳을 찾은 권력가와 안면을 트고 그대로 밖에서도 관계를 쭉 이어 나갔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랬다면 연진의 금융거래 기록은 다른 모양새가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가능성은 일명 스폰뿐.
그에 더러운 권력가들에게 젊은 여성들을 연결시켜 주는 브로커들의 사진을 보여 줬던 것인데, 연진이 기가 막히게 물은 것이다.
사진을 정리한 종혁은 낯빛이 검게 죽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드륵! 쾅!
갑자기 열리는 문에 고개를 돌린 종혁이 미소를 짓는다.
“오, 이게 누구십니까?”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마침 근처셨나 봅니다? 아니면 근처에서 감시하고 계셨나?”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습니다만?”
딱딱하게 굳어 있는 민영우의 얼굴에 종혁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여기 김연진씨가 변호사님과 통화조차, 문자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변호사님이 그 먼 신안까지 갑자기 나타나신 게 좀 의문이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죠.”
그러다 결론이 나왔다.
“여기 김연진 씨를 아끼는 누군가가 민영우 변호사님을 보낸 게 아닌가 하고요.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억측은 삼가해 주시죠.”
피식 웃은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경고도 할 겸 찾아온 겁니다. 믿고 있는 게 대단한 것 같은데, 나란 새끼는 그딴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서요.”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라면?”
“어쩔 수 없죠. 저도 제 나름의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오! 싸우자고요? 재밌네. 이봐요, 민영우 변호사님. 당신하고 나하고 싸우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예상과 다른 저돌적인 대답에 민영우의 낯빛이 굳는다. 눈빛이 흔들린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연진도 흔들린다.
‘아차!’
“무시하십시오, 김연진 씨. 이봐요, 최 서장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지금 행동과 발언, 협박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민영우 변호사가 녹음 기능을 켠 채 핸드폰을 내려놓자, 종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맘대로 생각하시고. 그런데…….”
어깨를 으쓱인 종혁은 민영우 변호사를 스쳐 지나가며 말을 이었다.
“정말 어떻게 온 겁니까? 당신 사무실은 잠실에 있잖아? 그런데 1시간 거리를 이렇게 빨리 왔다라……. 정말 김연진 씨를 감시하고 계셨나?”
종혁은 힐끔 김연진을 봤고, 민영우는 주먹을 쥐었다.
‘이 자식이?!’
종혁이 독을 풀었다.
“음식 시켜 놨으니까 나 대신 먹고 가요. 여기 음식이 괜찮더라고.”
씩 웃은 종혁은 민영우 변호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룸을 나섰고, 김연진은 민영우 변호사를 바라봤다.
“저, 정말이에요? 정말 저를 감시했어요?”
‘빌어먹을!’
민영우 변호사는 속으로 얼굴을 구겼다.
‘그냥 죽일까?’
아니다. 죽여도 지금 죽여선 안 된다.
최종혁이 김연진을 찍었다.
‘인사이동 전 마지막 강력 사건이라고 신경을 쓰나 보군.’
종혁이 주시하고 있는 이상, 김연진을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가는 들통이 날 수밖에 없었다.
민영우 변호사는 푸근히 웃었다.
“김연진 씨, 이건 경찰의 수작입니다.”
“……수작이요?”
“예. 잠시만요?”
스윽! 슥!
종혁이 앉았던 자리의 테이블 아래를 손으로 훑던 민영우가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작은 기기를 빼 들어 보여 준다.
“이게 뭔지 아시겠어요? 잘 들리십니까, 서장님?”
“헉! 서, 설마?”
고개를 끄덕인 민영우가 도청 장치를 떨어트린 후 발로 짓밟는다.
콱! 콱콱!
“후우. 방금 전처럼 김연진 씨를 흔들고, 김연진 씨가 말실수를 하기를 기다리는 거죠. 경찰의 아주 전통적인 수사 방식 중 하나입니다.”
“그런!”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아차린 김연진이 얼굴을 구기자 고개를 끄덕인 민영우 변호사가 눈을 빛낸다.
“그래서 최종혁 서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이제 막 자리에 앉은 거라 별 이야기는…….”
“후. 이보세요, 김연진씨. 제가 말했죠. 저를 믿어야 한다고.”
가끔, 아니 그에게는 자주 이런 의뢰인들이 있다.
변호사에겐 비밀이 없어야 함에도 숨기는 이들이.
움찔!
민영우 변호사의 목소리와 표정이 서늘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던 연진은 이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이전에 죽인 아이에 대해 언급했어요.”
쿵!
“……예? 그게 무슨 말이죠?”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 아저씨의 아기를 죽이고 버린 게.”
민영우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 * *
‘제발, 제발, 제발.’
눈을 꼭 감은 채 간절히 기도하던 연진이 슬그머니 실눈을 뜬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아…….”
연진은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에 나온 합격 발표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정말일까. 지금 환상을 보는 게 아닐까.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한국대학교에 연락을 했다.
“아.”
그녀는 귓가에 꽂히는 음성에 몸을 떨었다.
합격이었다.
그녀의 눈앞으로 지난 고생이 스쳐 지나간다.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며 집엔 쥐꼬리만큼 가져다주던 아빠. 이날 이때까지 용돈은커녕 친구들, 다른 학우들 다 가는 학원도 가 본 적 없고, 과외는 꿈도 못 꿨다.
오직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해야 했다.
매일같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이 악물고 공부한 건 모두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 드디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을 뛰쳐나갔다.
“엄마-!”
저녁에 파티가 열렸다.
“으하하핫! 딸, 많이 먹어! 아빠가 줄 서서 사 온 거야!”
“……응.”
식탁에 깔린 음식을 보는 연진의 표정이 굳는다.
한국대다. 대한민국에서 0.001퍼센트의 천재만 간다는 한국대학교.
그런데 파티 음식이 고작 치킨에 피자다.
‘오늘 같은 날은 외식 좀 할 수 있지 않아?’
한우를 바란 게 아니다. 그저 다른 친구들 다 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길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고작 치킨에 피자였다.
그날, 연진의 마음은 싸늘히 식어 버렸다.
‘아빠랑 엄마는 가망이 없구나.’
이런 집에서 계속 산다면 자신도 가망이 없을 터.
연진은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졌고…….
“……하, 한 달에 5백이 아니고, 하루에 5백이라고요?”
고액 보장이라는 글만 보고 만난 한 남성.
그가 제안한 아르바이트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곤 싶었던 김연진이 거절하기엔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었다.
“김연진 씨가 하기에 따라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겠죠.”
쿵!
며칠 후 연진은 아저씨를 만났고, 스폰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
처음엔 무서웠다.
하지만 돈의 위력이 너무도 컸다.
한 번 만날 때마다 5백만 원. 인생을 너무도 손쉽게 역전할 수 있는 액수였고, 그녀는 그렇게 돈의 망자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스폰서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무시했다.
담배는 피우냐, 술은 마시냐 등을 묻더니 가임기가 언제냐는 것까지 물어봤던 아저씨.
언제나 가임기에만 만나 관계를 맺길 원하던 아저씨.
그러다 보니 정말 임신을 하게 됐다.
두려웠다. 그런데 아저씨가 도와주자 연진은 자신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정실 부인이 아니라도 좋았다. 지금처럼 첩으로 살아도 좋았다.
돈만 있다면 모든 게 좋았다.
아저씨는 호주에서 지내게 해 줬고, 태교에 대한 모든 걸 지원해 줬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네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지.”
출산 후 다시 만난 아저씨는 너무도 싸늘했다.
어떤 서류 같은 걸 들고 있던 아저씨.
“하나는 이대로 네 아이를 처리하고 나한테 계속 지원을 받는 것. 다른 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이대로 미혼모로 힘들게 살아가는 것. 잘 선택하는 게 좋을 거야. 잘못된 선택을 하면 네 인생은, 아니 삶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
쿵!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리고 돈의 망자가 되어 버린 그녀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뿐이었다.
* * *
“그렇게 된 거였어요. 저,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정말 교도소에 가는 건가요?!”
“……후. 알겠습니다. 일단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룸을 나선 민영우는 얼굴을 구기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어르신. 민영우입니다. 제게 속이신 게 있더군요.”
민영우 변호사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일이 거지같이 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