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25화>
한여름의 햇살이 한풀 꺾인 오후, 수영복 위에 반바지와 얇은 바람막이나 티셔츠를 입은 네 명이 재잘거리며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와! 너희 집 정말 좋더라!”
저택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았던 넓고 포근한 느낌을 주던 고은의 집.
알고 보니 자신들의 친구 고은은 부잣집 딸내미였다.
“그런데 왜 집 두고 펜션에서 자고 있었어?”
“아까 봤잖아. 언니 친구들도 내려온 거.”
“아.”
“언니랑 언니 친구들이 차지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 치고 있던 거야.”
물론 친구들이 지낼 방은 충분히 있었기에 부모님 집에서 묵어도 상관은 없었겠지만, 그건 김고은 자신이 싫었다.
간만에 친구들과 놀려고 내려온 건데 부모님이 함께 있으면 껄끄러울 뿐이었다.
“난 상관없었는데…….”
“나도. 아버님, 어머님도 너무 친절하시고.”
‘내숭이야.’
차마 친구들 앞에서 부모님 욕을 할 수는 없었기에 하고 싶은 말을 꾹 삼킨 고은은 숲이 사라지고 드넓은 해변이 나타나자 잠시 멈춰 섰다.
어렸을 때는 정말 질리도록 보다 못해 벗어나고 싶었던 풍경이지만, 고작 몇 년 치열하고 바쁜 서울 생활을 했다고 새롭게 다가오는 대광해수욕장의 풍경.
“우와아아아! 바다다-!”
“헉! 애들아, 저기 봐! M-호텔이야! M-카페도 있어!”
“뭐? 어디? 허어억?!”
SNS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숙박하고 싶은 M-호텔과 M-카페. 그뿐만 아니라 동남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M-펜션도 있다.
친구들이 놀란 눈으로 김고은을 본다.
전국에서 메이저로 꼽히는 휴양지에만 있는 M-호텔이 왜 여기에 있냐는 듯한 눈빛.
“M 컴퍼니 테마 타운이래. 작년에 완공됐다더라. 아, 어제 둘러보니까 드바 로마노프도 있었어.”
“와.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솔직히 김고은이 아니었다면 있는지도 몰랐을 시골의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나 싶었더니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휴양지였던 것이다.
마치 TV에서나 보던 해운대나 광안리처럼 해변을 가득 채운 사람들.
‘상전벽해지.’
솔직히 작년에 증도대교가 놓이지 않았으면, 아무리 M 컴퍼니 타운이 생겼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진 못했을 것이다.
‘응?’
친구들이 슬금슬금 M 컴퍼니 타운으로 향하자 김고은은 눈살을 찌푸렸다.
“야, 너희 수영하러 왔다며.”
“……아, 맞다.”
“그럼 뭐해?”
김고은이 바다를 턱으로 가리킨다.
“저기는 언제든 가도 되잖아.”
“……꺄아아아아악!”
여성들은 순간 모든 시름을 잊고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고, 김고은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렸다.
“흐아앙!”
M-카페의 테라스의 테이블 위로 김고은과 친구들이 엎어진다.
난생처음 느껴 본 바다의 진한 짠맛.
워터파크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놀게 돼 버렸다.
“여기 진짜 대박이다.”
김고은의 친구가 물기 하나 없이 뽀송뽀송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한다.
M 컴퍼니 락커룸이 상당한 규모로 설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락커룸 열쇠를 사용해 주변 시설을 이용한 다음 후불 결제도 가능했다.
이것 덕분에 별다른 짐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편리했다.
“이런 해수욕장은 진짜 처음 봐.”
“여기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야.”
고은이 이곳에 살 때까지만 해도 M 컴퍼니가 없었으니 당연히 락커룸도 없었고, 반강제로 파라솔이나 평상을 빌려야만 했다. 아니면 비싼 자릿세를 내고 텐트를 치거나.
“자릿세가 하루에 6만 원이었던가? 평상이 하루에 12만 원이고.”
“히익?! 뭐, 뭐가 그렇게 비싸?”
“거기서 자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청년회 아저씨들도 안 보이네.’
몸에 문신을 한 채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돌아다니는 껄렁한 오빠들.
“얘, 아까 그 소식 들었어? 어제 여기서 누가 아기를 죽이고 공용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대!”
“뭐, 진짜? 어디서?”
‘뭐?’
김고은이 다급히 옆 테이블을 본다.
지이잉! 지이잉!
“아, 커피 나왔다 보다! 갔다 올게!”
“같이 가!”
안으로 들어가 음료를 들고 나온 그들은 온몸을 적시는 달콤한 커피와 주스의 향기에 다시 늘어진다.
“아, 에어컨 밑에서 쉬고 싶어.”
M 컴퍼니에서 운영하는 샤워실에서 씻고 오긴 했지만,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에어컨 바람이 절실하다.
거기다 배까지 고프다.
“얼른 마시고 집에 가자. 지금쯤이면 아빠가…….”
말을 하던 김고은이 콧속으로 밀려드는 담배 냄새에 낯살을 찌푸린다.
“와, 이거 우연이네요!”
“그러게. 여기서 또 만나네.”
움찔!
머리를 물들인 채 껄렁거리며 다가오는 남성들의 모습에 김고은과 셋은 속으로 얼굴을 구겼다. 오늘 하루 내내 같이 밥 먹자고, 술 마시자고 치근대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얼굴이 빨갛고, 눈이 충혈된 게 술까지 마신 것 같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희끼리 놀려고요. 그럼 즐거운 여행 되세요. 가자.”
“응.”
김고은과 친구들이 일어나자 남성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중 한 명이 김고은 친구의 손을 덥석 잡는다.
“아, 씨발. 거 존나게 비싸게 구네.”
“씨발. 이 정도 했으면 미안해서라도 따라오겠다.”
철렁!
심장이 내려앉은 친구가 하얗게 질리자 김고은이 얼굴을 구겼다.
“싫다는데 자꾸 왜 이러세요!”
거리를 찢는 뾰족한 외침에 시선이 집중되자 주춤거렸던 남성들이 이를 악문다.
“……싫으면 싫은 거지,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씨발. 누가 보면 납치하는지 알겠네! 지들도 남자 꼬시러 왔으면서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냐, 이 걸레년들아?!”
“거, 걸레?”
친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낯빛이 굳은 김고은이 핸드폰을 들었다. 이런 놈들에게 즉효인 약이 있었다.
“네. 거기 112죠?”
“이 씨발년이 진짜!”
“꺄악!”
다급히 치켜든 손이 내려쳐지는 순간이었다.
빠아악!
순간 주변의 시간을 멈추게 만드는 커다란 소리.
뒤통수를 얻어맞은 남성이 그대로 고꾸라지자 그가 서 있던 자리로 종혁이 선다.
찰칵! 치이익!
“하, 이 씨발 새끼들은 어떻게 맨날 치워도 치워도 뒤지지 않고 기어 나오냐. 니들이 뭐 바퀴벌레냐?”
“넌 또 뭐…….”
뻑!
“짭새다, 씨발아.”
얼굴을 향해 휘둘러지는 주먹을 피하며 상대의 옆구리를 후려친 종혁은 이제야 머리의 열이 좀 빠지는지 주춤거리는 다른 남성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이리 와서 꿇어, 이 의리 없는 새끼들아. 나 때는 말이야. 친구가 맞으면 눈 돌아서 그대로 후려쳤는데, 요새 애새끼들은…… 쯧쯧쯧.”
“겨, 경찰이…….”
“왜? 뭐? 협박 및 성추행과 공무집행방해, 경관폭행미수와 방조로 교도소 구경을 해 보고 싶다고?”
“…….”
남성들은 슬그머니 종혁의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었고, 종혁은 그들의 머리를 후려치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수고하십니다. 여기 대광해수욕장 M-카페 2호점 앞인데, 주취자 5명이 있으니까 와서 좀 데려가세요. 예, 수고하십쇼.”
통화를 종료한 종혁이 김고은을 보며 싱긋 웃는다.
“경찰입니다. 많이 놀라셨죠? 이제 괜찮습니다. 아, 그런데 뭐 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어제 저쪽 화장실…….”
“어제 어떤 여자가 화장실에서 울고 있었어요.”
“……예?”
“아기 죽이고 쓰레기통에 버린 거 말하는 거 아니세요?”
멍해졌던 종혁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고은아!”
“응?”
“너 이 새끼……!”
종혁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발견하곤 얼굴을 구겼다.
* * *
“아이고, 죄송합니다! 서장님이신 줄 알았으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인디…….”
연신 고개를 숙이는 오십대 남성, 김고은 아버지의 모습에 종혁이 난처하단 표정을 짓는다.
“끄응. 저도 죄송합니다. 김 사장님이신 줄 알았더라면…….”
코에 휴지를 쑤셔 넣고 있는 김고은의 아버지. 반사적으로 주먹을 뻗은 게 이런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코는 좀 괜찮으십니까?”
“아따, 우리 서장님은 주먹도 이거구만이라!”
엄지를 치켜드는 그의 모습에 한시름 놓은 종혁은 서장이란 말에 경악하고 있는 김고은을 봤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신안경찰서 서장 최종혁입니다. 어제 그 화장실에서 거수자, 아니 이상한 사람을 보셨다고요.”
“네.”
옆 변기칸에 앉아 훌쩍이던 어떤 여자.
희미하게 ‘아가야, 미안해.’라고 말했던 여자.
뭔가 묵직한 걸 쓰레기통에 버리는 소리도 함께 들었고, 호기심이 생겨 그 변기칸에 직접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왜인지 헤집어 보기 싫었던 휴지와 쓰레기 더미.
꺼림칙했던 김고은은 그냥 그대로 돌아섰고, 방금 전에서야 진실을 알게 됐다.
어제 자신이 있었던 화장실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음을.
그리고 자신이 그 범인을 목격한 것 같음을.
그렇게 말한 김고은의 모습에 종혁이 다급히 핸드폰을 보여 준다.
“혹시 이 중 누군지 기억나십니까?”
김고은은 종혁이 보여 주는 사진을 보다가 한 여성을 찍었다.
“이 여자였어요! 이 여자!”
긴 생머리에 호리호리한 체격, NY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쓴 여성.
이제 겨우 20살이나 됐을까,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강아지 같은 귀여운 외모 때문에 기억이 난다.
앳된 외모의 여성을 보는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예, 서장입니다. 유력 용의자 목격 증언 확보. 144번입니다. 수사지원과에 추적해 달라고 전달해 주세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자신의 서늘한 음성에 얼어붙은 김고은과 그 친구들을 향해 웃어 주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나 나중에 전화를 드릴 수 있는데, 그때도 협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라! 그런 일이라믄 당연히 협조해 줘야지라! 그라제, 딸?”
“네, 네…….”
“그라고 나도 이 처자가 어디서 묵었는지 한번 알아볼게라.”
“아뇨. 그건 경찰인 저희가 해야죠.”
솔직히 혹하기는 한다. 펜션 사장인 김 사장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그가 나서 준다면 유력한 용의자의 동선을 찾기가 더 쉬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경찰을 싫어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괜히 김 사장에게 피해가 갈까 선뜻 승낙을 할 수가 없었다.
“CCTV가 쫙 깔려 있으니 며칠 안에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흐미. 그래도…….”
“아따, 형님! 여그서 뭐합……에이, 씨.”
이쪽을 향해 다가오다 종혁을 발견하곤 얼굴을 찌푸리는 중년인.
김고은의 아버지가 그를 보곤 활짝 웃는다.
“아야! 너 잘 왔다! 니 아직도 택시 하제? 너 혹시 이 여자 본적 있냐잉.”
“됐어라. 치우쇼.”
종혁에게서 핸드폰을 뺏어서 보여 주는 걸 보니, 분명 어떤 사건에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나 이제 경찰 싫어하는 거 모르요.”
“오메, 이 썩을 것! 니 친구가 개짓거리하다가 잡혀간 걸 가지고 아직도 꿍해 있는 거여?! 에라이! 니 새끼한티 니 삼촌이 사람을 납치해다가 부려먹었다 말할 수 있어?! 있으믄 돌아가, 이 못난 놈아! 나도 니 평생 안 볼 텡께!”
“……뭔 말을 또 그렇게 한다요.”
입술을 삐죽 내민 중년인은 슬그머니 사진을 봤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 알어? 봤어?!”
“…….”
짜악!
“아악!”
“얼른 말 안 혀! 뭔 이유인지 몰러도 지 새끼를 죽인 년이여! 넌 그런 짐승도 감싸 주고 싶어?!”
“끙. 본 것뿐만이 아니라…… 태워 주기도 했구마이라.”
“뭐시여?!”
종혁도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그런 종혁을 힐끔 본 중년인은 못마땅함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춘자네 펜션에서 머무는 거 쩌그 지도읍 버스터미널 근처까정 태워다 줬지라.”
“추, 춘자믄…….”
이번에 인신매매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눈앞 중년인의 친구 여동생이었다.
김고은의 아버지는 종혁의 눈치를 슬그머니 봤고, 중년인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마치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경찰 때문이 아니라는 듯 말이다.
“그란디 그 아가씨 표정이 쎄혀서 내려 주고 좀 지켜봤는디, 다시 택시를 타는 게 아니겠어라?”
“그, 그려서?”
“……있어 보쇼.”
중년인이 핸드폰을 든다.
“어! 나여! 니 어제 한 2시쯤에 아가씨 한 명 태웠제? 그 아가씨 어디다 내려 줬냐? 뭐? 영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고? 알았어. 끊어. 영암 터미널에 내려 줬다는디요?”
김고은의 아버지는 종혁을 봤고, 종혁은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협조는 무슨……. 그냥 그 나쁜년이나 얼른 잡으쇼. 에이, 퉤!”
“그, 그려! 다음에 봐!”
감사하다는 듯 김고은과 그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인 종혁은 김고은의 아버지에게서 핸드폰을 넘겨받고는 걸음을 바삐 옮겼다.
‘다행이네.’
김고은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찾기가 힘들었을 유력 용의자.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최종혁 신안서장입니다! 잘 계셨죠? 하하.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저희 관내에서 터진 사건 하나 때문에 협조 요청 좀 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 신생아 살해 및 유기 사건입니다. 예, 예.”
종혁은 다음 용의자 및 목격자를 찾아 움직였다.
유력 용의자는 유력 용의자일 뿐, 450여 명의 용의자 전체를 만나 봐야 했다.
그래도 이제 345명만, 아니 344명만 더 알아보면 됐다.
* * *
“그럼 얼른 들어와. 숯불 식어.”
“네!”
김고은의 아버지가 떠나자 김고은의 친구들이 방금 전 일에 대해 떠든다.
“어떻게 사람이…….”
“고등학생일까? 왜, 막 화장실에서 애기 낳고 버리는 애들도 있다잖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들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길게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였다.
“아, 그런데 고은아. 너 반년간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한 친구의 질문에 다른 친구의 눈이 도끼날처럼 매서워진다.
“맞아! 너 왜 말 안 했어!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중호 오빠랑 헤어지고 호주로 어학연수 갔어.”
“……어? 우, 우리 오빠?”
“응. 뻔뻔하게 바람피운 너희 작은 오빠.”
그녀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또 어디 숨었나! 맘에 들어왔나! 나나나나나!
-내가 제일 잘나가!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거리.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지나다니며 느릿하게 몰아치는 파도를 만들어 낸다.
그런 사람들 중 몇 명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긴 생머리의 여성을 멍하니 바라본다.
살랑이는 샴푸향에 코를 벌름거린다.
“연진아!”
“어?”
고개를 돌리며 환하게 웃는 여성.
그 모습은 아주 예쁜 강아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