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23화>
웅성웅성.
“иди сейчас.”
“Я на пути к воротам 13.”
모스크바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
-아쉽군요.
“휴가를 더 즐기지 못해서요?”
-……최도 관리자이니 제 고충을 아시잖습니까.
“하하핫!”
종혁은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또 봬요.”
-부디 그땐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봤으면 합니다.
“정치인이 바빠야 국민들이 편하죠.”
-저런. 투정을 부렸다가 혼이 나 버렸군요. 그래도 바이칼에서 오믈 낚시와 보드카를 즐길 수는 있겠죠?
“제 요트로 모실게요.”
-하하핫!
한참을 웃던 메드베제프도 이내 미소를 짓는다.
-최의 앞날에 신의 축복이 가득하길.
“러시아의 앞날에도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친구.”
-……감사합니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 최.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기지개를 쭉 켜며 주위를 둘러봤다.
“붉은 광장까지 갑니다!”
“히, 힘키로 가는데…….”
“타!”
“으, 으아!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 간다니!”
“야! 얼른 와! 늦었어!”
“도착하면 연락하고.”
“응. 엄마도 조심히 들어가요.”
떠나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으로 가득한 공항의 풍경을 둘러본 종혁의 입가에 사람들과 똑같은 미소가 어린다.
‘그래. 이들도 다 똑같은 사람들이지.’
그러니 훗날 미래의 그 아픔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어 버린 아들과 남편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는 그런 미래의 아픔이…….
‘부디…… 오지 않기를.’
찰칵! 치이익!
또각또각!
“고마워요, 최.”
“……가죠.”
종혁은 담배를 끄며 공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이른 아침, 운동 후 씻고 나온 종혁이 정장을 차려입는다.
때마침 안방을 나서던 고정숙이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곤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가는 거야?”
“마음 같아선 오늘 저녁에 출발하고 싶지만…….”
어머니 고정숙이 일을 마치는 시간이 오후 8시다.
그 시간에 함께 저녁을 먹고, 신안으로 내려가면 새벽이었다.
“그렇다고 일과 결혼하신 우리 여사님보고 쉬라고 할 수도 없고. 응?”
“…….”
솔직히 말리고 싶다.
세상 누구보다 강인하지만, 또 세상 누구보다 마음이 약한 아들. 원망을 보낼 사람만 가득한 그곳에서 마음이 다칠까 걱정이 된다.
“7월 말부터는 다시 서울에서 근무한다고?”
“정확히는 본청이죠.”
“과는? 정해졌고?”
“그건 아직이요.”
신안 인신매매 사건으로 인해 많은 경찰이 퇴직을 당했다. 진급 대상자들마저 목이 날아간 판이니 인사이동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외사국이나 수사국, 형사국으로 가고 싶지만…….”
광역수사대와 마약수사대, 사이버수사대, 특수범죄수사과가 소속된 수사국과 형사국.
특수범죄수사대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곳은 경찰청장 직속의 사냥개 부대이기에, 다음 경찰청장이 누가 될지 모르기에 일단은 사양하고 싶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오택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먼 미래를 생각하면 정보화장비국이나 생활안전국, 경무인사국도 나쁘지 않다.
솔직히 먼 미래와 종혁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경찰 개혁을 마무리 지으려면 경무인사국이 최고긴 했다.
‘그런데 내가 갈 수는 있을지…….’
이번 징계가 타격이 컸다.
어느 보직으로 이동이 되든 간에 앞으로 1년은 나 죽었소 하고 상부의 뜻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광수대와 마약대, 특수범죄수사과 등 수사과를 따로 독립시킨다는 말도 있고…….”
본청의 내부 사정이 이래저래 복잡했다.
“뭐, 그래도 7월 안에는 마무리될 거예요.”
7월 말이라고 해 봤자 이제 겨우 열흘 남았을 뿐이다.
잠시 시계를 확인한 고정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네, 다녀올게요.”
어머니 고정숙을 꼭 끌어안은 종혁은 차를 몰고 신안으로 향했다.
지이잉! 지이잉!
“응, 재수야. 왜.”
* * *
“알았어. 어, 어. 그려. 수고혔어.”
통화를 종료한 오십대 사내가 사람들을 둘러본다.
“지동이 전환디, 서장님이 방금 막 압해대교를 지났다고 하구마이라.”
그 말에 긴장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잘돼야 할 텐디…….”
“거시기 한다고 뭐라 하는 거 아녀? 서장님 성격이믄 뭐라 하실 것 같은디…….”
순간 찝찝해진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한다.
“……지, 지금이라도 치울까라?”
“됐어. 늦었어.”
“끄응. 뭐 이런 것을 해 봤어야 알제. 일단 서장님이 뭐시기 하시기까정 다들 흩어져 있드라고.”
“그랍시다.”
한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아쉬움과 기대를 뒤로하며 흩어졌고, 잠시 후 종혁의 차가 동네에 들어섰다.
스르륵!
동네에 들어서자 종혁의 차가 속도를 줄인다.
‘흠.’
종혁의 눈이 갑자기 가늘어진다.
‘시선이…….’
외지차량에 호기심을 보내던 사람들이 운전석에 앉은 종혁을 발견하곤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다.
누군가는 왔냐며 손을 흔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외면을 한다.
처음 신안에 부임을 했을 때보다 더 좋지 않은 모습.
“역시…….”
각오는 했지만, 입안이 절로 씁쓸해진다.
“그냥 시간만 보내다가 가야겠네.”
숙소 앞에 차를 세운 종혁은 그대로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이잉! 지이잉!
“또 왜, 인마.”
최재수다. 언제 올 거냐고, 언제 도착하냐고 전화했던 최재수가 또 귀찮게 하고 있다.
-왜긴요. 흐흐.
“알았다. 알았어. 퇴근하면 연락해.”
드드득! 철컥!
“목포 가서 한잔…… 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종혁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일본으로 떠날 때와 완전히 달라진 거실의 풍경.
[신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장님]
거실 벽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커다란 문구 아래 ‘서장님, 보고 싶습니다’ 등 손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현수막.
거실 소파 앞 테이블엔 예쁘게 포장이 된 선물상자들이 놓여 있다.
이제 알겠다.
자신의 스케줄을 모두 알고 있는 최재수가 왜 오늘 아침부터 계속 전화를 했는지.
“너 이거 주거침입 방조야…….”
-흐흐. 이따가 뵙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수습한 종혁은 소파로 걸어가 선물상자 하나를 조심히 뜯는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지숙이입니다.]
할머니가 종혁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해서 쓴다며, 아픈 종혁을 위해 자신이 아끼는 인형을 선물로 준 지숙이.
손때가 가득 탄 작은 토끼 인형의 꺼끌꺼끌한 털이 종혁의 크고 굳은살 가득한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종혁은 다른 선물상자를 조심스럽게 뜯어 봤다.
[안녕하셔요, 서장님. 지동이 애비 김동팔입니다. 그동안 많이 서운하셨죠?]
종혁의 귀에 닿은 모든 안 좋은 말들은 모두 경우 없는 사람들의 경우 없는 말이니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일본에서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라고 잘 말린 민어 한 묶음을 선물로 주신 김동팔 씨.
“……폭행이네.”
그것도 심장이 아플 만큼 두들겨 패는 폭행치상이다.
응어리진 감정이 녹아 버릴 뜨거운 폭행치상.
눈시울이 뜨거워진 종혁은 편지를 조심히 갈무리하고 다음 선물상자를 뜯어 보았다.
그렇게 그는 해가 질 때까지 탁자 위에 산처럼 쌓인 모든 선물상자와 그 속에 들어 있는 편지를 읽었다.
찰칵! 치이익!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뻐근하다.
달아오른 눈시울을 매만지며 물기로 꽉 찬 가슴을 어루만진 종혁은 몸을 일으켜 숙소를 빠져나갔다.
휙! 휙휙!
종혁이 나오자 얼른 시선을 돌리는 사람들.
종혁은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어서…… 오셨어라, 서장님.”
종혁은 자신을 발견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식당 주인을 향해 다정히 말을 건넸다.
“식사 되죠?”
“……당연하지라! 뭐 드릴까라!”
“전부 주세요.”
“예?”
“밖에서 저 염탐하시는 분들도 모두 드실 수 있도록 메뉴판에 있는 음식 다 주세요. 그리고 술도 짝으로 가져다주시고요.”
“……아이고! 예! 얼른 대령해 드릴게라-!”
종혁은 식당 주인이 주방으로 뛰어가자 입을 크게 열었다.
“안 들어오시고 뭐 하십니까-! 해도 졌으니 술 한잔하시죠-!”
후다닥! 딸랑!
종혁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활짝 웃어 주었다.
* * *
“……!”
눈을 뜬 종혁이 천장을 보며 눈을 껌뻑인다.
안방이 아니라 거실의 천장.
주변을 둘러본 종혁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폭격을 맞은 것 같네.’
분명 어제 잠들기 전에 치운다고 치운 것 같은데, 5차 술자리의 흔적이 거실 가득 널려 있다.
“술들도 세시지.”
새벽 4시까지 달리다가 몇 명은 혼절하듯 잠들기까지 했는데, 아직 아침 7시밖에 안 됐음에도 잠들어 있는 사람이 없다. 다들 도중에 일어나 집으로 간 것 같다.
‘……이따가 치우자.’
뚜껑이 열린 빈 술병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머리를 더 아프게 하고 있지만, 지금은 피 대신 혈관을 흐르는 이 알코올들부터 뽑아내야 할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취했다.
“끄으으!”
몸을 일으킨 종혁은 지갑과 핸드폰만 챙겨 들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여름 바닷가의 후끈한 바람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아침, 신안경찰서의 로비에 긴장감이 감돈다. 오늘부터 종혁이 다시 출근을 하기 때문이다.
아닌 척 수시로 로비를 왔다 갔다 하는 경찰들.
“오, 오셨습니다!”
저 멀리서 종혁을 발견한 경찰들이 우르르 로비에 줄을 서며 경찰서 안으로 들어서는 종혁을 반긴다.
“충성-! 다녀오셨습니까-!”
“……어우.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모두 잘들 있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신안경찰서를 만든 장본인이자, 경찰 근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종혁.
안쓰러움과 존경이 가득한 그 시선들에 기분이 좋아진 종혁이 손을 젓는다.
“회포는 오늘 퇴근 이후에 풀도록 하고, 모두 자리로 돌아가 근무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계장들은 모두 올라오시고요.”
“예!”
“자자, 해산!”
“오늘도 수고합시다!”
그렇게 각자의 과로 돌아가는 경찰들을 뒤로한 종혁과 각 계의 계장들은 서장실로 향했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서 있는 계장들에게까지 커피를 전달한 종혁이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짓는다.
“다들 저 없는 동안 편하셨나 봅니다. 얼굴에 기름들이 아주 그냥…….”
“흐흐. 그러니께 얼른 오시지 그랬어라.”
“아이고, 편하긴요. 여름입니다, 여름.”
“그보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일본 동부 해안가가 방사능으로 인해 아주 난리가 아니라는데?”
“아, 제가 있는 곳은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곳이라서요. 여러분들께서 걱정해 주신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두런두런 풀어낸 종혁이 일순간 낯빛을 굳힌다.
“곧 인사이동이네요.”
움찔!
“……그렇죠잉.”
계장들의 표정이 심란해진다.
위에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게 공무원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이 시즌이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교통계장님은 전남청으로 보직 이동을 신청하셨다고요.”
“뭐, 저도 이제 곧 정년인께라.”
비록 직급은 한 단계 낮아질지언정 이런 작은 경찰서보다는 그래도 전남경찰청의 과장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고, 정년까지 아직 2년은 더 남은 일이어라!”
“수사계장님도 전남청으로 가신다고요.”
신안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을 해결하며 진급을 하게 된 수사계장은 영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형사계장도 진급을 하여 목포경찰서로 간다. 원래는 전남경찰청으로 갈 수 있었지만, 그가 목포경찰서로 가기를 희망한 것이다.
아동청소년계장도 이번에 진급을 하여 광주광역시로 간다.
“이거 저희 경찰서의 중추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군요.”
종혁은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형사의 존재 의의는 사건을 해결하여 억울한 피해자를 구원하는 것. 능력 있는 이들일수록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 많은 곳으로 향해야 했다.
“그럼 서장님은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일단 본청 복귀는 정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테러 사건으로 말이 많다지만, 그래도 그 전에 해 놓은 것들이 너무 많다. 본청 복귀까지 막을 순 없었다.
“경무관 진급도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따. 그건 참말로 다행이구마이라…….”
아닌 척했지만, 이번 테러 사태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그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음흉하게 웃는다.
“그런디 이러믄 최연소 경무관 아니어라?”
“총경도 최연소셨는디, 당연히 경무관도 최연소제!”
“크! 이게 영화지, 영화야!”
“어디 만화에서 이런 걸 봤던 것 같은데…….”
“하하.”
어색하게 웃은 종혁이 두 눈에 고마움을 가득 담아 계장들을 응시한다.
서장이라는 수장이 자리에 없음에도 경찰서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노력해 준 계장들.
그리고 새로 전입해 온 신안군 모든 파출소 직원들을 다독이며 신안군민들의 마음을 달래려 노력해 준 그들.
이들이 아니었다면 종혁은 더 빨리 돌아와야 했을 거다.
‘뭐 그래도 좋았겠지만…….’
어제의 환대를 떠올린 종혁은 이후 계장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동안 일감이 쌓이지 않도록 계속 처리해서 바쁠 건 없지만, 그래도 어제 하루 사이 쌓인 일감들이 많았다.
달칵! 달칵!
업무 시작 전의 의식이나 다름없는 담배 한 모금도 빨지 않은 채 마우스를 클릭하던 종혁이 한 사건의 보고서를 발견하곤 그대로 굳어 버린다.
마우스를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아니…….”
일어나선 안 될 처참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놈의 신안은 정말 수맥이라도 흐르는 건가…….”
얼굴을 쓸어내린 종혁은 전화기를 들었다.
“아청계장님입니까? 어제 증도 대광해수욕장에서 발생한 사건 담당자 좀 올라오라고 하세요.”
다시 사건 보고서를 살피는 종혁의 눈이 흔들렸다.
* * *
종혁이 주민들의 편지에 눈물을 흘리던 시각, 해가 어스름히 저물어 가려는 늦은 오후가 되자 증도의 대광해수욕장의 주차장에 정차한 경찰 버스에서 신안경찰서 소속의 의경들이 내려선다.
“다들 힘들겠지만 오늘도 파이팅 하자고!”
“예!”
어젯밤 술에 취한 남성 두 명이 여성들끼리 온 텐트에 침입하려다가 순찰하던 의경들에게 검거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술에 취해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 텐트 안에서 고기를 굽다가 화재가 발생한 일도 있었으며, 술에 취해 바다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된 익사자가 오늘 새벽에 발견됐다.
여름의 해변은 정말 최악이었다.
“1조부터 3조는 쩌그 끝에서부터 훑어 오고, 4조부터 8조는 쩌쪽에서…….”
인솔자는 의경들에게 순찰 경로를 알려 주기 시작했고, 먼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년의 여성 청소부가 미소를 짓는다.
“든든하구마잉.”
“그랑께 말이여. 재작년까지만 혀도 저런 대규모 순찰은 한 달에 한 번이나 겨우 했었는디…….”
그런데 지금은 해수욕장이 개장하자마자 매일 하루 세 번씩 하고 있다.
낮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그로 인해 언제나 골칫거리였으나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사고들도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언제나 해변 전체에 널려 있던 쓰레기도 많이 줄었다.
“작년엔 왜 반대했을까 몰러.”
경찰들이 자주 돌아다니면 혹여 관광객들이 기분이 상해 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던 증도 주민들.
그러나 아니었다. 오히려 경찰들 덕분에 안심이 된다고 작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자자! 그럼 우리도 얼른 일하드라고! 새로 오신 면장님 말 들었제?”
신안 인신매매 사건으로 인해 군수뿐만 아니라 읍장, 면장, 이장들의 목이 줄줄이 날아갔다.
그래서 증도에도 면장이 새로 왔는데, 기합이 어찌나 바짝 들었는지 쓰레기 하나 발견되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엄포를 놓았다.
노인 복지의 일환인 노인 일자리로 해변 쓰레기 청소를 맡은 그들 노인들에게 있어 참으로 무서운 엄포가 아닐 수 없었다.
“괜히 농땡이 부려서 다른 사람 피해 주지 말고, 맡은 구역을 열심히 청소하자고! 자, 그럼 하나, 둘, 셋!”
“어이-!”
중앙에서 집게를 부딪친 그들은 조를 짜 해변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건 김출자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한 손엔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른 손으론 집게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조원과 쓰레기를 줍는 그녀.
-자옥아-!
“자옥아아아.”
“크. 역시 노래는 상철 오빠가 잘 불러. 그쵸잉?”
“근디 야는 노래가 별루 없어서 문제여.”
김출자 할머니가 목걸이처럼 목에 건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둘.
“역시 형님 손녀가 최고인 거 같어라. 월급 탔다고 지 할매 핸드폰도 딱 사 주고.”
어디 그뿐인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스마트폰에 넣어서 버튼 두 개만 누르면 바로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해 줬다. 효손도 이런 효손이 없었다.
“그럼 난 이쪽을 할랑께, 넌 그쪽 혀.”
“예. 이따가 봅시다잉.”
공용화장실의 여자칸으로 들어간 김출자 할머니가 인상을 찌푸린다.
“염병 오살할 것들. 쓰레기는 좀 쓰레기통에 버리랑께.”
세면대에 가득 쌓인 일회용 컵들이나 물티슈, 생리대, 휴지 등에 인상을 찌푸린 김출자 할머니가 모래로 가득한 바닥을 보며 심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쓰레기를 모두 봉투에 집어넣는다.
텅!
“어이고, 지럴.”
바닥이 휴지로 가득한 변기칸.
이 먼 곳까지 놀러 와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툴툴거리며 쓰레기들을 봉투에 담고, 봉투가 꽉 차면 화장실 바깥에 내다 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마지막 칸 앞에 선 김출자 할머니가 변기칸의 문고리를 붙잡은 채 눈을 가늘게 뜬다.
“느낌이 쎄헌디.”
갑자기 문을 열고 싶지가 않다. 누군가 큰일을 보고 물을 안 내린 듯한 그런 찝찝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기에 혀를 차며 변기칸의 문을 연 김출자 할머니는 웬일로 깨끗한 변기칸의 모습에 인중을 늘어트린다. 이 정도면 물청소만 하면 될 것 같다.
흐뭇하게 웃은 그녀는 쓰레기통을 잡았다.
“응?”
마치 큰 돌덩이라도 들어 있는 듯 묵직한 쓰레기통.
“아이고. 또 뭘 여기다 쑤셔 넣었…… 어?”
자칫 쓰레기봉투가 찢어질 수 있기에 큰 쓰레기를 따로 빼내려 안을 헤집던 그녀가 손끝에 닿는 싸늘한 느낌에 그대로 굳는다.
그저 만지기만 했을 뿐인데 토악질이 올라오고, 질겁하게 되는 끔찍한 감촉. 언젠가 느껴 본 낯익은 감촉.
의아해하며 쓰레기통을 안을 바라본 김출자 할머니가 입을 떡 벌린다.
파랗게 질리기 시작한 그녀의 낯빛.
“……으아악!”
쿠당탕!
뒤로 넘어지며 함께 넘어진 쓰레기통 안에서 시퍼렇게 질린 살덩이가 굴러 나온다.
그것은 아기, 신생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