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22화 (822/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22화>

메드베제프가 종혁을 와락 끌어안는다.

“잘 있었습니까, 최!”

“아니, 메드베제프 씨께서 여긴 어떻게…….”

실제로는 처음 보는 메드베제프.

옷 안에 감춰진 단단한 근육이 뜨겁게 느껴진다.

“하하. 최가 오랜만에 러시아에 왔다고 하니 참을 수가 있어야죠. 많이 놀랐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종혁의 작은 핀잔에 짓궂게 웃은 메드베제프가 종혁의 눈을 또렷이 응시하며 입을 연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최.”

러시아가 종혁과 친구가 된 이후 참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뽑자면, 세계의 흐름에 편승을 했다는 것.

그의 진심은 묵직하게 전해질 수밖에 없었고, 종혁의 표정도 진지해진다.

“저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메드베제프 씨. 아니, 대통령님.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모두 최 덕분입니다. 그럼 이동하실까요?”

“……괜찮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건 비밀 스케줄이니 말입니다.”

“음. 그렇다면야…….”

메드베제프의 마음을 알아차린 종혁은 차마 거부할 수 없었고, 둘은 메드베제프가 타고 온 차에 올랐다.

대통령 전용차가 아니라 따로 제작된 방탄차. 똑같이 생긴 방탄차들이 줄줄이 열을 지어 대저택을 빠져나간다.

부우우웅!

“한국에서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습니까?”

움찔!

종혁이 씁쓸히 웃는다.

당연히 괜찮지가 않다.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손수 키우다시피 한 아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체포해 중형을 받게 했다. 괜찮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한국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 총기 소지를 엄격히 금지하고, 폭발물 소지, 제작도 어려운 나라다.

또한 종교적, 인종적 등 사회적 대립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없는 덕분에 테러 청정국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친분이 있다고 해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저지른 일이라고 하여 범죄를, 테러를 용납한다?

기준이란 건 한 번 기울어진 순간, 끝도 없이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종혁은 가슴이 찢기는 슬픔과 아픔을 억지로 참아 낼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라면, 모든 걸 반성하고 출소한 이후였다.

메드베제프는 씁쓸히 웃는 종혁을 보며 눈을 빛냈다.

“러시아에서 돕겠습니다.”

“예?”

“어차피 그 친구들은 이제 한국과 일본에서 지낼 수 없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테러를 저질렀다.

일본은 아예 입국조차 시키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종혁이 일자리를 알아봐 주긴 하겠지만, 여러모로 불편한 점은 있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리고 우리 러시아는 아직도 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하죠.”

쿵!

메드베제프의 맑은 눈에 종혁의 심장이 설렌다.

“대, 대통령님…….”

“당신이 해 준 것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선물입니다.”

“……그 선물, 받을 수밖에 없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이렇게라도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으니 좋군요! 아, 그런데 그 목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아, 그놈이요?”

오싹!

심장을 찌르는 살의에 메드베제프가 환희 가득한 미소를 짓는다.

이젠 젊다고도 말할 수 없는 러시아의 괴물 친구 종혁.

코앞에서 본 종혁의 본모습은, 매너 안에 숨겨져 있는 짐승은 이토록 거대하고 무지막지한 괴물이었다.

종혁은 보드카로 혀를 적시며 입술을 비틀었다.

“아마 죽기 전에는 절대 교도소를 나오지 못할 겁니다.”

무기징역 따위가 아니다.

종혁은 놈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출소라는 희망을.

그리고 그 희망을 매번 짓밟을 것이다.

늙고 병들어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는 그 순간까지도, 그 코앞에 희망을 드리우고 짓밟을 것이다.

청송이라는 교도소의 독방에서 그렇게 절망 속에서 죽어 가게 만들 것이다.

“하하. 그럼 이제 최도 안심하고 변화한 러시아의 거리를 즐길 수 있겠군요.”

“변화한 러시아의 거리요?”

창밖을 본 종혁은 이내 피식 웃었다.

따뜻한 드바 로마노프의 옷을 입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 채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러시아의 거리.

여느 도시와 다를 것 없는 일반적인 풍경이지만,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삶과 추위에 지쳐 무표정하게 살아가는, 또 그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러시아인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로…….’

종혁의 전신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몰아친다.

종혁은 멍하니 모스크바의 시민들을 바라봤고, 메드베제프는 그런 종혁의 모습에 은은히 웃으며 보드카를 홀짝였다.

그렇게 그들은 모스크바의 외곽으로 향했다.

“환영합니다, 최. 이곳이 당신이 우리 러시아에 만든, 러시아를 변화시킨 첫 번째 조각입니다.”

종혁은 거대한, 끝이 눈에 보이질 않을 정도로 거대한 스마트폰 제조 공장의 모습에 입을 벌린다.

“와…….”

러시아답지 않은 뜨거운 바람이 종혁의 전신을 적셨다.

* * *

그날 저녁, 모스크바의 한 술집.

메드베제프와 나탈리아, 종혁, 그리고 술집 주인만이 있는 조용한 술집에서 종혁이 멍한 얼굴로 술을 기울인다.

그만큼 오늘 본 것이 너무도 크게 다가온 탓이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리가 불편한 남편과 아빠의 직장 동료들을 위해 음식을 싸 온 어느 일가족의 모습이었다.

먼지와 떼가 가득한 옷을 보여 줘서 그런지 안절부절못하던 가장과 그런 남편과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인지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올랐던 가족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코를 쓱 훑던 동료들.

정과 사랑이 가득한 그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월급을 깎아도 되니 제발 해고만은 말아 달라는 산업 재해를 입은 직원을 걱정 말라며 병원에 데려가던 모습도 인상 깊었고, 날씨와 도로 상태 확인용 어플리케이션이나 방범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도 인상 깊었다.

‘러시아가 살아나고 있구나.’

“모두 최 덕분입니다.”

움찔!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한 메드베제프의 말에 머쓱해진 종혁이 이내 눈을 가늘게 뜬다.

“대통령께서 이렇게 하루 종일 공무를 비우셔도 되는 겁니까?”

“하하. 최에게 변화한 러시아를 보여 주는 일인데요. 이보다 중요한 스케줄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 십수 년간 종혁 덕분에 발생한 일자리의 숫자가 무려 수천만 개다.

중요한 건 일자리보다 노동자의 숫자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임금도 저절로 높아지고, 경제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활이 안정될 뿐만 아니라 여유까진 생기기 시작하자 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더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양질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두 최 덕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종혁의 정보로 진행한 합작 프로젝트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수익을 전부 국민들을 위해 사용했다.

세상에 다시없을 엄청난 규모의 도박.

그리고 그 도박은 이렇게 성공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굳이 예전처럼 여론을 통제하고, 애써 세뇌시키지 않아도 정부를 향한 지지율이 천장을 뚫을 정도다.

그래서 이전 대통령, 러시아의 지배자가 법 때문에 연임하지 못하게 됐을 때 도리어 시위가 벌어졌을 만큼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지지는 옛 소비에트 연방 시절보다 더 굳건하고 열정적이었다.

종혁은 그런 그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역시 불곰의 나라답네요.”

영리하고, 저돌적이다.

종혁과 메드베제프, 나탈리아는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그러다 돌연 메드베제프의 낯빛이 진지해진다.

“최, 앞으로 우리 러시아가 가야 할 길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언젠가 그가 했던 물음.

술잔을 내려놓은 종혁이 마치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연히 하나입니다. 경제의 점령.”

옛 소비에트 연방 때처럼 군사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다른 나라의 땅을 점령하여 국력을 늘리는 시대는 끝났다.

독보적인 기술력과 자금력으로 타국이 경제적으로 자국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현대의 전쟁. 즉, 외교다.

“외교…….”

“총, 쇠, 균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굳이 소비에트의 부활을 부르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회상하는 냉전의 시대의 제왕.

그러나 그건 술자리에서나 곱씹는 과거의 역사일 뿐이다. 옛 영광일 뿐이다.

지금은 세계가 알아주지도 않는 과거보다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경제대국 러시아를, 지금의 러시아를 경제제국을 만드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주변 나라들은 알아서 러시아를 따를 수밖에 없다. 총탄과 미사일을 들이밀지 않아도, 알아서 러시아를 대변해 줄 것이다.

쿵!

새삼 다시 크게 다가오는 종혁의 조언에 메드베제프의 눈이 크게 떨렸다.

그리고 그건 먼 곳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는 러시아의 지배자도 마찬가지였다.

‘제국…….’

연방이 아니라 제국.

심장이 절로 떨리는 단어에 러시아의 지배자이자 몇 년 후 러시아의 법령을 바꾸며 다시 대통령이 될 러시아의 전 대통령이 홍차를 홀짝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 * *

수군수군.

목포의 한 술집.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내는 시선에 신안에서 차량 견인 업체를 운영하는 김지동이 친구를 원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오살할 놈은 왜 뜬금없이 내가 신안 출신이라고 말한디야!’

그에 그의 친구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린다.

“……갑자기 해야 할 일 생겼응께 난중에 보자잉.”

“그, 그려. 그려. 얼른 가.”

술집을 나선 김지동이 얼굴을 구긴다.

“염병할. 아주 죄인이네, 죄인이여.”

혀를 차며 주차장으로 향한 그는 차키를 꺼내 들다 멈칫한다.

“……에이. 씨부럴.”

주말 오후다.

이 시간이면 압해대교에서 음주단속을 하고 있을 것이고, 평범한 대리기사는 그가 끌고 온 견인차를 운전하기가 힘들다.

‘예전이었으믄 단속도 안 했을 것인디…….’

거리로 나간 그가 택시를 잡아탄다.

“압해읍으로 가 주쇼잉.”

“……알겠습니다!”

한 박자 늦는 택시기사의 모습에 김지동은 무어라 쏘아붙이려다가 관두며 핸드폰을 꺼내 든다.

“어, 나여. 뭐혀. 나와. 술이나 한잔하게!”

그렇게 압해도의 술집으로 향한 김지동이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는다.

“그 육시랄 놈들 때문에 대체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겄네!”

염전주들 때문에 신안의 이미지가 박살이 났다.

예전엔 목포에 가도 그냥 시골에서 올라온 시골 촌놈 취급을 받았다면, 지금은 아예 쓰레기 폐기물 수준의 시선을 받는다.

차라리 앞에서 욕을 한다면 맞서 싸우기라도 할 것이다. 그런데 뒤에서 얌생이처럼 수군거리기나 하니 사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마치 세상 전체가 손가락질하는 암담한 기분.

김지동과 마찬가지 취급을 당했던 같은 차량 견인 업체의 직원이자 친구, 후배인 두 명도 씁쓸하게 웃는다.

터엉!

“그랑께 말이여! 지동이 너 말 잘했다!”

술집 밖의 테이블.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벌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이 풀린 장년인이 옆에 앉은 김지동을 보며 손가락질을 한다.

“이게 다 최 서장 때문이잖여!”

“그럼. 이게 다 최 서장 때문이제! 어디 시골 사정도 모르는 서울 놈이 기어 들어와서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여!”

“에이, 오살할 새끼. 마셔.”

김지동과 그 친구들이 입을 떡 벌린다.

“뭐, 뭐라고라?”

“왜 그렇게 쳐다보냐잉? 너도 그라고 생각 안 혀?!”

“당연히 생각 안 하지라! 말을 해도 뭔 말을 그렇게 혀요! 아닌 말로 까놓고 말해서 인간이 아닌 것들이 저지른 짓 때문에 엄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것인디, 그게 왜 서장님 탓이데요?!”

“뭐, 뭐시여?!”

“예! 솔직히 그 인간 아닌 것들이 다른 사람을 데려다 쓰는 거 알고 있었지라!”

그런데 정말 노예 취급을 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임금을 조금 적게 주는 수준으로 알았다.

“지금이 뭐 조선시대다요? 어떻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데꾸다가 그렇게 굴린다요? 그게 사람이 할 짓이다요?”

사람이 아닌 것들이 그동안 저지른 죗값을 이제야 치르는 것뿐이다. 최소한 사람이라면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해선 안 되고, 옹호해서도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도 혼내고, 잡아 주지 못한 자신들의 무신경함을 질책해야 한다.

“아, 글고 봉께 쩌그 대천리 염전 사장이 아저씨 동생분이지라? 그래서 그라고 말하는 것이여라?”

움찔!

“……이놈의 새끼가! 야, 이 새끼야! 너 몇 살이여!”

“먹을 만큼 먹었어라! 왜요!”

나이 차이가 20살은 족히 나는 두 남자가 서로 목청을 높이며 싸우자 시선들이 집중된다.

“야, 야. 지동아. 그만혀. 그래도 어른이여. 니 그러다 니 아부지한티 터진당께?”

흠칫!

김지동이 입을 다물자 장년인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나가 말이여! 니 애비 동팔이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여! 니가 그런디 나한테 욕을 혀?! 동네가 어찌 될라고 이런데! 아주 망둥이가 뛰니께 꼴뚜기도 뛰는구마잉!”

“…….”

“솔직히 최 서장이 와서 한 게 뭐 있데? 평소라면 좋게좋게 넘어갈 일을 죄다 뒤엎어서 사람들 쌍놈으로 만들고 말이여! 최 서장 때문에 동네가 쑥대밭이 된 거 알어, 몰러!”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는 일을 괜히 크게 부풀리는 바람에 어딜 가서 신안 사람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다.

“이번에 결혼할 내 막내딸이 최 서장 때문에 결혼을 못하게 됐어!”

염전 사건이 터지자, 그런 악독 염전주가 사돈 될 사람의 동생이라고 하자 그쪽에서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말을 해 왔다.

그로 인해 막내딸은 식음을 전폐한 채 맨날 울고만 있었다.

그 처절한 외침에 김지동이나 친구들, 그리고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이 숙연해진다.

그때였다.

“사돈 될 사람이 잘 생각혔네. 조상님들이 도왔어.”

갑자기 끼어든 음성에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돌린 장년인이 웬 할머니를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관계자 아닌 사람은 빠지셔라.”

“나도 관계자인디?”

“아따, 읍 사람도 아닌 것 같은디 뭐가 관계자셔라!”

할머니가 손을 잡고 있는 어린 소녀, 지숙을 힐끔 보곤 장년인을 향해 가슴을 편다.

“나 가룡리 사람이여.”

장년인과 구경꾼들이 깜짝 놀라 할머니를 본다.

“최 서장이 해 준 것이 없다고? 아따, 사람이 그렇게 염치없이 씨부려 블믄 안 되제. 최 서장님이 온 뒤로 동네가 을매나 좋아지고, 깔끔해졌어? 맨날 동네 시끄럽게 사고 치는 여그 이놈도 정신 차렸제, CC 뭐시기가 쫙 깔려서 도둑 들 걱정 없제…….”

작년엔 신안의 해수욕장 모두가 문전성시를 이뤘다. 모두 종혁이 가수들을 불러다 공연을 벌여서 그렇다는 걸 모르는 신안 군민은 없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혀서, 이번 일만 봐도 그려. 니 새끼가 어디 모르는 곳에서 그렇게 종놈처럼 살았어도 그따위로 씨부릴 수 있냐잉.”

“……그, 그거랑 이거는 다르제라!”

“뭐시 다르데? 그리고 그 전에 수항리에서 일어난 일도 그려. 니 딸내미가 그 꼴을 당했어도 그라고 씨부릴 수 있어?! 씨부릴 수 있으믄 어디 씨부려 봐야-!”

할머니의 희번덕 떠진 눈이 주변을 훑자 장년인들과 구경꾼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그에 할머니가 그래도 양심은 있다며 혀를 찬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사람들이 말여 그라고 살믄 안 뒤야. 니들이 그라고 사람처럼 안 사니께 최 서장님도 좆같아서 안 오는 거 아녀! 무릎 꿇고 모셔 와도 모자랄 분을! 니들의 그 좆같은 생각 때문에! 최 서장님이 이번 달이믄 다시 서울로 올라가신다더라, 이 육시랄 것들아-!”

움찔!

사람들이 눈을 부릅뜬다.

“뭐, 뭐시어라? 서, 서장님이 곧 가신다고라?”

“왜, 왜! 왜 가신답니까!”

“왜긴 왜여! 다 너희 같은 놈들 때문이제! 은혜를 모르는 니놈들 짐승들 때문에-!”

할머니의 손가락질에 사람들이 입을 다문다.

“어디 한 번만 더 그따위로 지껄여 봐! 내가 아주 대갈통을 부숴 버릴랑께! 가자, 지숙아!”

“응, 할머니. 그런데 할머니 화났어?”

“……화 안 났어. 할미 목소리가 원래 큰 거 알잖여.”

멀어지는 할머니와 그 손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에 불똥이 튄다.

“어르신께서 맞는 말했구만! 아재요! 어뜨케 그렇게 말한데요!”

“쯧쯧. 세상이 어떤 세상인디…….”

심상치 않아지는 사람들의 눈빛에 어깨를 움츠린 장년인과 그 일행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저 아재 누군지 알제?”

“내 동생한티 저 집 사람하고 상종도 하지 말라고 해야겄네잉.”

사람들의 눈이 혹여 장년인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훑고, 몇몇 이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그에 다시 혀를 차는 사람들.

“그, 그런디 그보다 서장님 정말 가시는겨?”

“……가시겄제. 우리가 진절머리 나서 안 오시는 분인디……. 나라도 더 안 있겄네.”

사람들이 우울해진다.

그동안 신안을 위해 참 많은 것을 해 줬던 종혁.

이렇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에 숨이 막히고, 손발이 차갑게 변한다.

“……뭐 어쩌자고? 가서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자고? 그라믄 안 뒤야. 그것도 사람이 할 짓이 아녀.”

명분도 없다.

그리고 종혁은 이런 시골에서 썩을 만한 인재가 아니다. 더 넓고 큰 곳으로 가서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능력을 펼치도록 보내 줘야 한다.

이것마저 막는다면 정말 사람 새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그래도 그냥 이렇게 보내면 쓰간디! 보낼 땐 보내더라도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가시게 해야제-!”

“이렇게 하는 게 어뗘?”

사람들은 머리를 모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신안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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