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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21화 (82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21화>

    141. 유전자

    기이이잉!

    아침부터 동네를 흔들어 깨우는 그라인더 소리에 잔뜩 피로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던 박 대리의 미간이 좁혀진다.

    이내 무시하며 업무를 보려 하지만, 또다시 귀를 때리는 소리에 결국 몸을 일으키고 마는 그.

    “에이, 씨!”

    “어디 가!”

    “잠깐 밖에요!”

    ‘진짜 아침부터 너무하네!’

    건물을 빠져나온 박 대리가 공사 소음이 울려 퍼지는 옆 건물로 향한다. 소음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공사 현장을 구경한다.

    박 대리는 옆의 주민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여기 뭐가 들어오나 봐요?”

    “몰러. 무슨 빅 모터스? 그런 이름이던디…….”

    “빅 모터스요? 아, 빅 모터스 그룹?”

    “알어?”

    “중고차 매매 기업이에요.”

    ‘그런데 중고차 매매 기업이 여길 왜 들어와?’

    중고차뿐만 아니라 부품, 그리고 그 외 여러 분야로 확장을 하고 있는 빅 모터스 그룹.

    박 대리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여기 중고차가 그렇게 좋다고 했지?’

    확실히 기업이라서 그런지 여타 중고차 판매 업체와는 차량 상태부터 다르다고 했다.

    10만 킬로미터 탄 차도 3만 킬로미터 탄 차처럼 정비가 완벽하게 된다는 빅 모터스. 서울과 수도권 쪽에선 아예 번호표까지 뽑을 정도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아, 지은 씨.”

    박 대리는 다가오는 이십대 아가씨, 서울 쪽 지부에서 지원을 나온 직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뭐 구경하세요?”

    “별거 아니…… 지은 씨, 혹시 차 있어요?”

    “네, 있어요! 작년에 빅 모터스에서 중고로 산 건데…….”

    “아, 그래요? 들어갑시다.”

    “네? 아, 네!”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공사가 벌어지는 건물의 4층.

    옆 건물로 들어가는 박 대리와 지은을 바라보던 한 동남아 남성이 핸드폰을 들었다.

    “특이 사항 없습니다.”

    -라져. 계속 감시 요망.

    “수신.”

    “블랑카! 블랑카-! 아, 이 새끼는 또 어디로 간 거야!”

    건물을 쩌렁쩌렁 울리는 작업반장의 목소리.

    한숨을 내쉰 동남아 사내는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싸장님! 나 여기 있다! 왜 부르냐!”

    * * *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대저택. 커다란 수영장을 종혁이 가로지른다.

    촤악! 촤악!

    마치 범고래처럼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나아가는 종혁.

    또각또각!

    붉은 구두의 구둣발 소리가 그를 따라 걷는다.

    “푸하!”

    “15분 31초…….”

    “아, 나탈리아.”

    나탈리아가 얼굴에 피로함이 하나도 비치지 않는 종혁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종혁이 언제부터 수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본 것만 해도 1500미터다. 그 1500미터를 15분대에 끊은 것이다.

    프로 선수급, 아니 세계 최정상의 선수보다 몸무게가 30킬로그램 가까이 더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말도 안 되는 기록이었다. 여전히 경이로운 몸뚱이였다.

    수영장 풀을 빠져나온 종혁은 나탈리아가 건네는 음료를 받아 들며 미소를 지었고, 그녀는 그런 그를 향해 태블릿 PC를 내민다.

    “세 곳의 포인트에 SVR과 CIA 요원들이 자리 잡았어요.”

    태블릿 PC 속에 띄워진 위성 사진들에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지금 보는 그곳이 바로 일본에서 도망친 놈이 들어간 장소예요.”

    “형제요양원…….”

    “저번에도 말했지만, 수련원도 같이 겸하고 있는 곳이에요.”

    그건 예전에 이름을 듣자마자 알았다.

    여긴 옛날 강원도에서 발견했던 연수원과 같은 기능을 하는 장소다. 범죄를 끝낸 놈들의 얼굴을 바꾸고, 사상 교육 및 처형을 하는 장소.

    꼬리도, 거의 몸통에 준하는 꼬리를 잡았다.

    종혁은 다시 터지려는 웃음을 참아 내며 다음 사진을 확인했다.

    “여긴 지도읍이네요?”

    “네. 그곳 외에도 목포에도 놈들이 세 들어 사는 건물이 있어요.”

    “……지점이군요.”

    놈들 회사의 최소 단위인 지점.

    “출장소가 아닐까 했지만, 조사해 보니 놈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은 지 최소 2년은 됐더군요. 그리고 다음 사진은 추가로 요원들이 자리 잡은 포인트예요.”

    “추가요?”

    “한 곳은 김지원.”

    쿵!

    “참고로 김지원도 형제요양원을 이용한 걸로 추정되고 있어요.”

    그 덕분에 김지원이 소속된 지부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최가 다른 사람에게 의뢰했던 그 여대생이 일했던 업체예요.”

    몸을 굳힌 종혁이 나탈리아의 눈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SVR도 있는데 왜 흥신소에 의뢰한 것이냐는 살짝 실망한 얼굴.

    입맛을 다시던 종혁은 이내 다시 태블릿 PC를 바라봤다.

    순간 그의 눈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현재 디자인 및 인테리어 회사로 위장하고 있으며, 직원 수는 총 67명.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서울의 지부인 걸로 판명되고 있어요. 몇 번째 지부인지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후원사기꾼 백종명에게 접근했던 대전의 후원단체까지.

    지난 1년 사이 총 여섯 개의 꼬리를 찾아낸 것이다.

    “진짜…… 징글징글하네요. 그런데 국내에 들어와 있는 요원들만으로 충분한가요?”

    “국정원도 돕고 있어요.”

    “아, 그렇다면야…….”

    고개를 끄덕인 종혁이 이를 악문다.

    ‘형제요양원…….’

    드디어 놈들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냈다. 형제요양원만 가만히 감시하고 있으면 알아서 놈들이 찾아올 터.

    빠드득!

    ‘조금……. 아주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이 분노를, 들끓는 이 살의를 참아 내면 된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놈들을 완전히 지워 버릴 수 있었다.

    종혁의 두 눈이 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짜악!

    놀란 종혁이 나탈리아를 봤다가 고개를 털고, 나탈리아는 마치 핏물이라도 떨어질 듯 살벌했던 종혁의 두 눈과 끔찍했던 살의에 떨리는 심장을 감추고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러면 이제 경제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요?”

    말 그대로 정말 경제적인 이야기.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도 벌써 4개월이 흘렀다. 이젠 정산을 볼 시간이었다.

    “……헨리는요?”

    “위층에 있어요. 정확히는 컴퓨터 속에. 권과 박도 함께 있답니다.”

    “하핫! 올라가시죠.”

    BUY JAPAN이 드디어 끝났다.

    * * *

    -휘유.

    -와우.

    서로의 정산 금액을 오픈한 사람들이 혀를 내두른다.

    대략적인 액수지만, 그럼에도 눈앞이 아찔해지다 못해 현실감이 없는 숫자.

    그건 예산을 블랙홀처럼 잡아먹는 거대 기관, CIA와 SVR에 속한 헨리와 나탈리아라고 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액수였다.

    -……축하드립니다, 최. 이로써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되셨군요.

    “아직은 아니죠.”

    이른바 오일머니들이 있다.

    “중동 왕가들의 재산에 비하면 아직 모자라지 않을까요? 음, 요만큼?”

    -그쪽은 말 그대로 왕가, 가문입니다만…….

    “그리고 숨겨진 가문들의 재산에도 비할 바는 못 될 테고요.”

    -그쪽의 역사도 최소 수백 년입니다…….

    “있긴 있단 소리네요.”

    종혁도 그런 가문 중 하나를 알고 있다.

    바로 빅토르의 로마노프 가문.

    겉으로 드러난 재산만, 아니 빅토르의 드바 로마노프만 해도 기업 가치가 한화로 100조 원 육박하는 무지막지한 가문.

    종혁은 입을 꾹 다무는 헨리와 나탈리아에 빙그레 웃었고, 그런 그들의 이 세상이 아닌 대화를 듣고 있던 권아영이 갑자기 혀를 내두른다.

    -솔직히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이긴 한데…….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한국인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일본은 경제 대국이다.

    잃어버린 10년이 30년이 되고, 40년이 되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기초체력이 대단한 나라다.

    회귀 전 동일본 대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고작 10년 안에 이겨 낸 것으로도 모자라, 재앙이 들이닥치기 전의 경제 지표를 회복할 정도로 저력이 있는 나라.

    ‘물론 계속된 재앙으로 그 이상이 되진 못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치열하고 잔인하게 물어뜯었지만, 이후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일본은 20년 안에 다시 재앙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조금 더 뜯어내도 되죠.”

    움찔!

    권아영과 박태규, 나탈리아와 헨리가 입을 떡 벌리며 종혁을 보자 종혁은 피식 웃었다.

    “소소한 용돈벌이 수준입니다.”

    -……그 용돈벌이의 수준이 한화로 조 단위일 것 같다는 건 제 억측일까요?

    떨떠름한 권아영의 물음에 종혁은 미소로 답했고, 뭔가를 알아차린 헨리와 나탈리아는 질린 눈으로 종혁을 봤다.

    “최, 혹시 그 용돈벌이가…….”

    “예. 일본 정부가 숨겨 둔 해외 자산들입니다.”

    쿵!

    CIA조차 그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아니 빙산의 일각조차 알 수 없는 일본 정부의 숨겨진 해외 자산들.

    종혁은 나탈리아와 헨리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완전히 파악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의심 가는 부분들이 있긴 하시죠?”

    -……하핫!

    그렇다. 그 정도도 못한다면 정보기관이라는 딱지를 떼야 한다.

    어색하게 웃은 둘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확실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 숨겨 둔 자산들을 매각할 수밖에 없겠군요.

    “예. 무조건 현재의 가치보다 싼값에 매각을 하겠죠.”

    일본 정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고르고 고른 알짜배기들. 비록 앞으로 그 가치가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을지라도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이거 일본 정보국을 예의주시해야겠군요.

    “SVR은 일본의 외무성을 주목하도록 하죠.”

    든든한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권아영과 박태규를 봤다.

    “작년부터 유럽의 정세가 흔들리고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정확히는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받은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계속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사 중에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 그리스는 이미 진입해 있는 상태예요, 보스.

    그 외에도 여러 나라에 자금이 들어가 있는 상태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더해 방글라데시도 더 뜯어먹을 게 있을 겁니다.”

    권아영과 박태규가 혀를 내두른다.

    작년부터 올해 초 사이 발생한 방글라데시 주식 신용 사기.

    이에 어마어마한 돈이 증발해 버린 방글라데시 주식 시장은 아직도 그 충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도 소소한 용돈벌이 수준은 될 겁니다.”

    -흠. 스페인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보스?

    “그곳은…….”

    종혁과 권아영, 박태규는 이번에 큰 도움을 준 CIA와 SVR을 위해 권&박 홀딩스의 정보들을 아낌없이 풀었고, 나탈리아와 헨리는 귀를 활짝 열고 그 말들을 경청했다.

    그를 보며 종혁은 미소를 지었다.

    ‘세계는 넓고, 그만큼 뜯어먹을 건 많다.’

    이것은 진리였다.

    * * *

    “원래는 가장 설레고 기분이 좋은 날이 바로 정산하는 날인데요…….”

    마음껏 축배를 들고 싶은데, 마더 러시아가 친애하는 친구인 종혁이 또 다른 숙제를 안겨 줬다.

    그런데 그 열매가 너무 달콤해 보여서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하하.”

    어색하게 웃은 종혁이 두 개의 넥타이를 들어 올린다.

    “이게 나아요, 이게 나아요?”

    “둘 다 아니에요. 차라리 타이를 하지 않는 건 어때요?”

    “음. 그래도…….”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오늘을 위해 러시아에 왔을 정도라고 할 만큼 중요한 날.

    “깔끔하게 파란색이 나으려나.”

    “흰색 슈트는 어떤가요? 넥타이는 붉은색으로.”

    “이제 아이반은 졸업하고 싶습니다만…….”

    그 말에 나탈리아가 빵 터져 버리고, 종혁은 고개를 젓는다. 왜 흰색 정장만 입었다 하면 마피아 보스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띠리링! 띠리링!

    “받으세요.”

    “고마워요, 최. 그래, 무슨 일이야? 뭐?! 벌써 도착하셨다고?”

    ‘응?’

    “알았어. 곧 내려갈게.”

    통화를 종료한 나탈리아는 얼른 둘둘 말린 넥타이들이 담긴 서랍장 앞에 서며 한 넥타이를 골라 직접 매어 주기 시작했다.

    “빅토르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예요?”

    “음. 당신의 친구?”

    “제 친구들 가운데 나탈리아를 곤란하게 만들 사람이 있었던가요?”

    거기다 방금 전부터 저택 전체에 지독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대체 어떤 거물이 왔기에…….’

    “후후. 자, 됐네요.”

    “흠.”

    직접 확인해 보라는 나탈리아의 모습에 종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갈까요?”

    “……부탁드립니다, 공주님.”

    둘은 키득키득 웃으며 방을 나섰다.

    그리고…….

    “오, 최! 러시아에 온 걸 환영합니다! 하하하하하!”

    대저택의 로비에서 양팔을 벌려 종혁을 환영하는, 푸근한 인상과 악동의 그것처럼 짓궂은 입매가 인상적인 중년인.

    종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메드베제프 씨-?!”

    마더 러시아의 이인자이자, 현 대통령.

    종혁을 반기는 이는 메드베제프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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