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09화>
타다닥!
종혁이 빠르게 스타디움의 주차장을 내달린다.
“의뢰인!”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그게…….”
철거전문업자를 미행하고 있다가 갑자기 끼어든 와쿠 순사부장에 짜증이 났었던 흥신소 직원은 상황을 설명했고, 종혁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졌다.
‘이 개새끼가!’
종혁은 방사능 전문가인 CIA 요원을 봤다.
“수술이 끝나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안 좋은 부위를 찔렸다.
“죄, 죄송합니다. 최, 최대한 빠르게 데려오려고 했지만…….”
혹시나 놈들이 알아차릴까 의료 헬기를 띄우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구급차로 내달리지도 못했다.
쓰레기 매립지 관리자와 공범인 것 같은 상황에서 흥신소 직원은 그런 모험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직접 와쿠 순사부장을 둘러업고 안전한 장소까지 가겠다고 말한 그.
“아닙니다. 저도 허락한 일이잖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이 직원이 아니었다면 와쿠 순사부장은 이미 시체가 됐을 거다.
종혁은 카드를 넘겨줬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흘 동안 마음껏 사세요. 명품이든, 차든, 집이든.”
한 생명을 구하려 애써 준 대가다.
“허어억!”
“집이나 건물을 살 거면 미야기현에선 사지 말고요. 사장에겐 제가 말해 놓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카드를 꼭 쥔 흥신소 직원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멀어졌고, 종혁은 와쿠 순사부장이 수술을 받고 있는 컨테이너 하우스를 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거기가 어디라고 혼자 갑니까. 경찰은 무조건 2인 1조잖아요…….”
이건 자신의 잘못이다. 증거를 공유하며 수사 협조를 요청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 테니까 제발 이겨 내세요.’
“종혁!”
무로이 코헤이가 달려온다.
“무슨 일이야?”
무로이 코헤이는 종혁의 표정을 보곤 낯빛을 굳혔다. 종혁의 표정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음을 읽어 낸 것이다.
종혁은 주위를 둘러보곤 목소리를 낮췄다.
“와쿠 씨가 당했습니다.”
움찔!
“……그때 호텔 로비에서 본 남녀 중 누구지?”
이번엔 종혁이 몸을 굳혔다가 씁쓸히 웃는다.
‘하긴 몰라볼 리가 없지.’
한국에서의 연수 이후 프로파일링과 최첨단 과학수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일본 최초의 프로파일링 수사과와 과학수사대를 창설한 무로이 코헤이다.
“……그건 와쿠 씨가 깨어난 이후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와쿠 순사부장도 이 판에 참가하게 됐다. 그러다 못해 중상을 입었다.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면 그가 가장 먼저 들어야 했다.
종혁은 수술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입술을 깨물었다.
‘부디 이겨 내시길.’
* * *
부르릉!
어두운 밤, 폐기물과 폐자재들을 실은 트럭이 쓰레기 매립지를 가로지른다.
그러다 한 곳에 잠시 멈춰 선 철거전문업자가 산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보며 히죽 웃는다.
“경찰들도 반응이 없었지.”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경찰 중 그 누구도 와쿠 순수부장이 안 보이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정신없이 바쁜 탓도 있었지만, 정년이 코앞인 그였기에 어디 숨어 있더라도 눈치껏 배려하려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크크. 나중에 향은 피워 줄게.”
다시 트럭을 몰아 조립식 건물 근처에 주차한 그가 짐칸을 올린다.
텅!
차에서 내린 그가 의아해한다.
“왜 이렇게 조용…….”
오싹!
“빌어먹을!”
본능적으로 느낀 위험에 그는 다급히 트럭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부왁! 꽈아앙!
귀를 스쳐 지나가 트럭의 문을 후려친 돌덩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린 그는 도깨비처럼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고 있는 와쿠 순사부장에 경악했다.
“귀, 귀신?!”
* * *
“귀신 이 지랄하고 있네.”
빠아악!
“크흑!”
종혁은 철거전문업자의 뒤통수를 후린 뒤 먼저 체포해 무릎 꿇려 놓은 쓰레기 매립지 관리인들 앞으로 걷어찼다. 그리곤 와쿠 순사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수술대에서 내려와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말한 와쿠 순사부장.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위험한 부위는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다고는 하지만…….”
철거전문업자가 아마추어라서 다행이었다. 프로였다면 수술대에 눕기도 전에 사망했을 정도로 찔린 부위가 위험했다.
“난 괜찮습니다.”
현장을 누빌 땐 이보다 더한 상처도 입었다. 그때도 이겨 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까.
최소한 저놈이 교도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 전까진 죽을 수 없었다.
“그러면 이제 듣도록 하지.”
배우들이 모두 모였으니 시나리오를 들어야 했다.
무로이 코헤이가 얼른 말하라는 듯 노려보자 종혁은 조립식 건물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사진 뭉치를 던졌다.
촤악!
“음?”
“그때 호텔에서 이 여자가 손해 배상에 대해 말했던 거 기억합니까?”
“……설마?”
“예. 전 그때 그게 사기가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움찔!
종혁과 무로이 코헤이, 와쿠 순사부장의 시선이 철거전문업자에게로 향한다.
흔들리는 눈을 다급히 감추는 그.
선수들 앞에서 애를 쓰는 범죄자를 일견한 종혁이 다시 말을 잇는다.
“그래서 따로 흥신소를 이용해 조사를 해 봤는데, 마츠다 리츠코 이 여자, 마지막 변호 이후 1년여 동안 행방이 묘연했더군요.”
“마츠다 리츠코? 설마 마츠다 법률 사무소를 말하는 겁니까? 거긴…….”
“예. 한 사건의 변호를 잘못 맡는 바람에 점점 쇠락해 가다가 1년 전 망했죠.”
정식으로 폐업 신고를 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그녀가 마지막으로 변호를 맡은 사건이 사기 사건. 이후 마츠다 리츠코는 웬 남성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목격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전 마츠다 리츠코와 함께 자취를 감춘 남성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변호를 맡은 사기꾼이라고 판단하고 있고요.”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 직후, 이 센다이시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타이밍이 공교롭군.”
“그렇게 확신이 깊어지던 와중에…….”
마츠다 리츠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한 저 철거전문업자가 와쿠 순사부장을 찌른 거다. 그것도 살의를 가지고.
그 말에 와쿠 순사부장이 의아해한다.
“그것과 이번 일이 무슨 상관입니까? 저놈 그냥 무너진 빈집에서 금고를 빼내 물건을 훔친 것뿐인데…….”
“……음? 잠깐, 잠깐.”
와쿠 순사부장의 말을 끊은 무로이 코헤이가 두 장의 사진을 집어 든다.
마츠다 리츠코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우에다 신죠 교수의 사진들, 날짜가 다른 사진들을.
“이건 왜 이렇지?”
두 사진 속 우에다 신죠 교수의 표정이 너무 다르다.
다른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이게 맞는지는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지. 그리고 만약 그게 맞다면 그년은 정말 사기꾼이 된 거고.”
종혁이 다시 철거전문업자를 바라본다.
그에 화들짝 놀라 다시 시선을 피하는 그.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
“여긴 내게 맡겨 주겠어요?”
“와쿠 씨?”
목을 꺾으며 다가가던 종혁은 와쿠 순사부장의 얼굴을 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고맙다는 듯 인사를 한 와쿠 순사부장이 의자를 끌고 와 철거전문업자 앞에 놓으며 앉는다.
“어구구. 나이가 드니 이젠 오래 서 있기도 힘들구만. 그러니 너도 젊었을 때 관리해, 이케다.”
“와, 와쿠 씨.”
“우리가 긴말할 사이는 아닌 것 같으니 나도 짧게 말할게. 우발적으로 갈 거야, 아니면 의도적으로 갈 거야?”
“……와쿠 씨!”
“의도적이면 경관 살해미수 및 유기 혐의로 무기징역 혹은 사형이고, 우발적이면…… 길어야 스무 바퀴 아니겠어?”
“와쿠 씨-!”
짜악!
나약한 노인의 손이 철거전문업자의 볼을 후려친다. 정년을 앞둔 늙은 경찰의 눈이 불타오른다.
“빨리 말해! 지금 네놈들이 누구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으려는 건지 알아!”
재난에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다.
재난이 아니었다면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면서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고, 칭얼거리며 넘어가지 않는 밥을 먹고, 만원 지하철에 답답해하다 저녁에 가족들에게 잘 자라고 말하며 잠들었을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눈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시민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경찰 인생 42년을 모두 걸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진심이 가득 담긴 그의 말과 눈빛에 철거전문업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저도 뭐가 뭔지는 잘 모릅니다.”
자신은 그저 금고를 훔쳐서 그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마츠다 리츠코에게 전달한 것밖에 없다. 그 이상은 듣지도 못했다.
“다만 제가 그렇게 금고를 훔치니, 도난당한 사람들이 더 큰돈을 들고 마츠다 씨를 만나는 것 같더군요.”
쿵!
눈썹이 크게 흔들린 무로이 코헤이가 종혁을 본다.
“이거?”
“예.”
“……끄응. 정말 사기꾼이 맞았군.”
“누구 이 늙은이를 위해 설명해 줄 사람 없습니까?”
“간단하지만 이보다 악질일 수 없는 심리적인 장치입니다.”
고작 두 달 만에 수백억 엔을 가로채고 자취를 감춘 마츠다 리츠코.
이제야 온전히 이해가 간다.
제아무리 재난 상황이지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했는지.
피해액이 왜 그렇게 컸는지.
“마츠다 리츠코는 저놈을 이용해 사람들에게서 최후의 보루를 없애버린 겁니다.”
그것이 단순히 돈일 수도 있고, 추억이 서린 물건일 수도 있다.
“이, 이……! 당장 그년을 체포……!”
“아직 안 됩니다.”
종혁은 미간을 좁힌 채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와쿠 순사부장을 바라봤다.
“저놈의 증언을 앞세워 압박해도,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한 마츠다 리츠코가 발뺌하면 아무런 처벌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뭇 여론의 몰매를 맞게 될 것이다.
“그녀가 내세운 명분은 대의이자 민의니까요.”
대외적으로 마츠다 리츠코는 이번 동일본 대지진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을 구제해 주기 나선 변호사였다.
그것도 무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 배상 소송.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변호사 커리어에 흠집으로 남을 수도 있는 소송이다.
실제로 회귀 전 일본 정부는 여러 이유를 들어 재난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 주지 않았다.
물론 이런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난으로 입은 피해를 온전히 보상해 주는 나라가 있겠냐마는, 일본 정부의 대처는 그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송에 먼저 나서서 도움을 주겠다고 손길을 내밀어 준 마츠다 리츠코에게 피해자들은 맹목적인 감사를 표했다.
그런 그녀를 경찰이 명백한 증거도 없이 체포하려고 든다?
모두 거짓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피해자들은 경찰에게 분노를 표출할 터였다.
“그런…….”
와쿠 순사부장이 좌절한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없긴요.”
당연히 있다.
종혁의 입술이 비틀어지자 무로이 코헤이가 철거전문업자를 본다.
“살고 싶나?”
무로이 코헤이의 입술도 비틀렸다.
* * *
철그럭, 철그럭!
큰 가방을 든 철거전문업자가 마츠다 리츠코가 머무는 호텔 방문을 두드린다.
“왔어?”
“시원한 거 있습니까?”
“얼굴은 왜 그래?”
“실랑이가 좀 있었습니다. 그보다 시원한 거는요? 목말라 죽겠습니다.”
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철거전문업자가 서슴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를 꺼내 든다.
꿀꺽꿀꺽!
“크으으! 꺼흐윽!”
그런 그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마츠다 리츠코와 사십대 사내, 아니 그녀에게 사기를 가르쳐 준 사기꾼.
마츠다 리츠코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가방을 열어젖혔다.
“……오늘은 좀 적네?”
“오늘은 죄다 대기하고 있습디다. 에휴. 자기 금고부터 찾아 달라고 어찌나 난동을 부리던지.”
“아무래도 공포에서 벗어난 듯싶습니다.”
아니면 정말 간절해져 생각이 났거나.
사기꾼의 말에 마츠다 리츠코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보이네.”
생각보다 빠르다. 그녀는 최소한 앞으로 일주일은 더 정신없을 거라고 판단했었다.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바람잡이들은 준비됐지?”
“그건 걱정 마십시오.”
든든한 말에 마츠다 리츠코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 최소 한 달은 더 혼란이 이어져야 해.’
그래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자, 여기. 오늘 일당.”
“흐흐.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마츠다 씨.”
“왜?”
“그런데 이 짓은 왜 하시는 겁니까? 나야 뭐 돈을 버니까 몰라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알면 더 열심히 하지 않겠냐는 듯한 뉘앙스에 마츠다 리츠코가 피식 웃는다.
“그런 건 묻지 않는 게 우리의 룰 아니었어?”
본인이 맡은 포지션에서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한다. 다른 사람의 일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룰이었다.
사기꾼은 예외지만 말이다.
“에이. 그러면 됐습니다. 나야 돈만 벌면 되지.”
입술을 삐죽인 철거전문업자는 남은 맥주를 들이켰고, 그런 그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마츠다 리츠코는 돌연 한숨을 쉬었다.
“……뭐 상관없으려나?”
그녀는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고, 철거전문업자는 눈과 입을 떡 벌렸다.
“와, 역시 변호사……. 그런 건 어떻게 배우는 겁니까?”
“호호. 배우긴. 타고나는 거지. 이제 알았으면 가 봐.”
“흐흐.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쓰레기통은 저쪽.”
“수고하십쇼.”
철거전문업자는 돈다발로 엉덩이를 툭툭 치며 방을 빠져나갔고, 사기꾼은 그런 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흐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