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08화>
“저, 정말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한 변호사가 자신의 앞에 몰려들어 간절히 눈을 빛내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팔에 부목을 댄 허리 굽은 노인.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여성.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청년.
크게 다친 부모를 대신해 찾아온 어린 학생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 바라보고 있다.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이건만, 그들 모두 집과 재산을 잃은 채 이렇게 추운 체육관에서 골판지 매트에 의지해 재난을 이겨 내려 발버둥을 치고 있다.
변호사는 가슴을 쑤시는 아픔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흰 충분히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 그렇다면 배상은 얼마나?”
“아마 잃어버린 집을 다시 얻을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헉!”
사람들의 눈이 돌변하자 변호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충분히 생각해 보신 후 이 번호로 연락을 주십시오.”
아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마음 같아선 강제적으로라도 소송에 합류시키고 싶지만, 변호사로서 그래선 안 된다. 좋은 의도로 일을 하고도 끝이 안 좋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찰칵! 치이익!
“후우.”
담배 연기가 뿌옇게 뿜어지자 변호사의 가슴속에서 마츠다 리츠코를 향한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져 간다.
이번 재난에 집과 사무실을 모두 잃은 그.
챙긴 거라곤 고작 연락처 수첩과 2천 엔이 든 지갑뿐.
재난이 언제 수습될지 몰라 담배조차 함부로 피울 수 없었는데, 마츠다 리츠코 덕분에 이렇게 다시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됐다.
그는 또 한 번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
“응?”
고개를 돌린 변호사는 눈을 크게 떴다.
“너는?”
* * *
“그럼 가 보겠습니다, 대표님.”
변호사들이 방을 빠져나간다.
“그래요. 잘 가요. ……응?”
그들을 배웅하던 마츠다 리츠코는 함께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변호사에 의아해했다.
“저기…… 대표님.”
“차 한 잔 더 줄까요?”
“아뇨. 아닙니다.”
고개를 저은 변호사는 이내 한숨을 길게 내쉰다.
이걸 말해도 될까.
고민을 하던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오늘 이토를 만났습니다.”
흠칫!
“잘살고 있대?”
마츠다 법률 사무소가 어려워지자마자 가장 먼저 사직서를 내고 센다이시 유명 로펌으로 이직했던 변호사, 이토.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일 데려와.”
“대, 대표님!”
“이토도 우리 가족이었잖아.”
“크흑! 죄송합니다. 다니던 사무소 대표가 사망하면서 갈 곳이 없어졌다는 말에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서…….”
3월 11일, 대지진이 발생했던 그날 센다이시 로펌의 몇몇 대표들이 모여서 모임을 가졌었고, 그때 화를 피하지 못했다고 한다.
‘뭣?!’
깜짝 놀란 마츠다 리츠코가 떨리는 심장을 애써 다독인다.
“저런…….”
“정말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인 변호사는 혹여 그녀의 마음이 바뀔까 얼른 방을 빠져나갔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마츠다 리츠코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안 그래도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푸흡!”
하지만 다른 로펌 소속이라서, 혹여 다른 로펌에서 자신을 따라 할까 싶어서 선뜻 연락을 하지 못했던 그녀.
하지만 이젠 괜찮을 듯싶다.
꽤 많은 변호사들이 FA로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호호호호호!”
대박이다.
이렇게 되면 센다이시 전체를, 아니 미야기현 전체를 뜯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자축을 위해 술을 찾는 순간이었다.
쿵쿵쿵!
“누구지?”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던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에다 교수님?”
몰골이 말이 아닌 그의 모습에 그녀는 단숨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금고가 사라졌단 걸 알아차렸구나!’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내 건강은 됐습니다. 그보다 마츠다 대표.”
“예, 교수님.”
“배상을 더 받을 수는 없는 겁니까?”
쿵!
순간 그녀의 전신에 전율이 내달린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겠어요?”
“내 말에 일단 대답부터 해 주세요.”
“……호호. 의뢰비만 더 내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답니다.”
“저, 정말입니까?”
“예. 손해 규모를 조금 더 잡으면 될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돈을 써야 한다.
“……얼마나 더 내야 합니까?”
“그건 교수님의 결단에 따라 달라지겠죠.”
100만 엔을 더 배상받고 싶으면 30만 엔을.
1억 엔을 더 배상받고 싶으면 3천만 엔을.
“어쩌면 그 이상이 들어갈 수도 있고요.”
물론 의뢰비는 선불이다.
“무, 무슨…….”
“모든 게 망가진 재난이잖아요. 그쪽에서 공수표를 받지 않을 거라서요. 커피는 어떠신가요? 아니면 차?”
“……술로 합시다. 잠을 푹 잘 수 있게 독한 걸로!”
마츠다 리츠코는 자신을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이거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네.’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았다.
* * *
삐이! 삐!
커다란 트럭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후진을 한다.
“다녀올게.”
“다녀오십쇼, 사장님!”
폐기물이 가득 실린 트럭의 운전대를 잡은 철거전문업자가 센다이시 외각의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쿵짝쿵짝!
“으흐응.”
담배를 문 채 경쾌한 엔카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드는 그.
어두운 도로를 달려 쓰레기 매립지에 도착한 철거전문업자가 눈살을 찌푸린다.
“크. 냄새.”
언제 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쓰레기가 썩는 냄새.
앞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트럭들에, 자신처럼 센다이시에서 수거한 폐기물들을 가득 실은 트럭들에 그는 조용히 차례를 기다린다.
똑똑!
“어디에서…… 아, 또 사장님이 오셨어요?”
“손이 노는 놈이 오는 거지.”
“하하. 예, 확인했습니다! 차례 되시면 저울로 가시면 돼요!”
“그걸 모르겠냐.”
센다이시와 톤당 얼마라는 계약을 맺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그들. 하지만 이 양을 속일 수 있기에 이런 교차 검증은 필수였다.
툴툴거린 그가 다시 차창을 올린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자신의 차례가 되자 액셀을 밟는 그. 저울을 통과하며 수거한 폐기물의 양을 기록한 영수증을 받은 그가 쓰레기 매립지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입구에서 멈추지 않고 더 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매립지를 가로질러 끝에 있는 조립식 건물 앞에 트럭을 세운 그.
그으으으윽!
트럭의 짐칸이 들리며 안에 있던 폐기물들을 쏟아 낸다.
그러자 사무실 안에서 사십대 남성이 튀어나온다.
“아, 거 아무 데나 쏟지 말라니까!”
“괜찮아. 냄새 안 나는 것들이야.”
“미관이 안 좋잖아, 미관이!”
“풉!”
미관이란 말에 웃음을 터트린 철거전문업자가 트럭에서 내린다.
그에 사십대 사내가 한쪽을 향해 손을 젓고, 이내 어둠 속에서 굴삭기 한 대가 다가와 폐기물 더미를 헤집는다.
“멈춰!”
폐기물 더미 안에서 드러난 금고 하나.
“오, 이 모델은?”
“잔말 말고 장비나 가져와.”
“거참 말 거지같이 하네.”
“돈 받기 싫다고?”
“그건 아니지. 기다려!”
사내는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 여러 가지 장비들을 가지고 나온다. 다이아몬드 드릴부터 용접기, 케이블 카메라 등 최첨단 장비들.
키이이이잉!
사내가 다이아몬드 드릴로 금고에 구멍을 뚫자 케이블 카메라와 액체질소 등을 든 철거전문업자가 금고 앞에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됐다.”
철컹!
“……휘유. 이번에도 엄청난데?”
금괴에 귀금속, 달러, 지폐들이 영롱하게 빛나자 사십대 사내의 눈이 번들거린다.
철거전문업자는 그런 그에게 달러 한 다발을 넘긴다.
“수고비.”
“언제나 감사! 커피 한잔할래?”
“커피 좋지. 잠깐 이것만 챙기고.”
챙겨 온 가방에 금고 안 내용물을 모두 담은 그는 그걸 트럭의 보조석에 놔둔 후 사내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사무실 바깥에 침묵이 내려앉자 사무실 앞 쓰레기 더미에서 그림자가 하나가 걸어 나온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말 귀에 염불을 외웠지.”
예전에 한 번 검거한 이후 다신 이런 짓을 하지 말라며 직업도 알선해 주고, 좋은 말도 해 줬던 와쿠 순사부장.
하지만 이후에도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 검거가 됐던 철거전문업자.
그러다 후에 마음을 고쳐먹었단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변함없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치미는 배신감에 이를 간 와쿠 순사부장은 트럭의 보조석으로 올라가 핸드폰을 들었다.
찰칵! 찰칵!
금고도 찍은 와쿠 순사부장은 사무실을 노려보다 몸을 돌렸다.
‘나 혼자선 무리지.’
이젠 비만 오면 얼마 전 수술한 관절이 시큰거리는 노인이다.
‘내일 보자, 자식아.’
와쿠 순사부장은 이를 악물며 걸음을 옮겼다.
이 큰 쓰레기 매립지를 걸어서 빠져나갈 걸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달은 또 밝네. 에휴.”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부르릉!
한 3분의 1쯤 걸은 와쿠 순사부장은 뒤에서 들리는 트럭 소리에 얼른 근처의 쓰레기 더미 안으로 몸을 날린다.
‘커피는 좀 느긋하게 마시란 말이야!’
얼굴을 구기며 쓰레기더미 안에 몸을 숨기는 그.
끔찍한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 낸다.
부르르릉!
점점 가까워지는 트럭의 소리.
눈만 살짝 내민 와쿠 순사부장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트럭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빨리 좀 지나…… 어?”
부아앙!
갑자기 굉음을 내더니 이쪽을 향해 틀어지는 트럭의 머리.
와쿠 순사부장은 눈을 부릅떴다.
콰지지지직!
“커허억?!”
막대한 충격이 와쿠 순사부장의 몸을 덮쳤다.
* * *
저벅저벅.
추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찾아온 흥신소 사장이 떠나자, 종혁은 차량에 올라 그에게 전달받은 사진을 꺼내 들었다.
만 엔짜리 지폐가 가득 든 종이백을 들고 마츠다 리츠코의 방 안으로 들어간 한 노인.
조사를 해 보니 우에다 신죠라는 도호쿠 대학의 물리학 교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이후로 4명이 더 가방 따위를 들고 마츠다 리츠코의 방으로 들어갔다.
‘돈, 사기꾼, 금고전문털이범…….’
둘씩 짝지어 놓으면 서로 교집합이 생기지만, 셋을 놓고 보니 잘 생기지 않는다.
“음. 다시 생각해 보자.”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서 손해 배상을 받게 하겠다는 명목으로 수백억 엔을 의뢰비로 받아 그대로 날라 버린 마에다 리츠코.
피해자의 숫자만 약 7만여 명.
‘그런 년이 왜 금고털이범과 짝짜꿍하고 있을까.’
“쉽게 연결이 안 되네…… 에라이.”
금고털이범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하지만 그것과 마츠다 리츠코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한참을 생각하던 종혁은 이내 혀를 차며 생각을 그만뒀다.
“일단 이 금고털이범 새끼부터 조져 봐야겠어.”
본인의 의지가 아닌 속아서 사기에 가담한 수많은 변호사들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
종혁은 흥신소 직원을 더 붙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차에서 내렸다.
‘분명 이놈에게서 마츠다 리츠코를 몰아넣을 단서가 나올 거야.’
그럼 게임은 끝이었다.
“그런데 와쿠 씨는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거야?”
금고털이범에 대해 뭔가 더 들을 수 있을까 계속 연락을 해 봤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음? 설마?’
오늘 아침 철거전문업자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던 와쿠 순사부장.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든 종혁은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저예요, 나탈리아. 지금 위치 추적 좀 해 줄 수 있어요?”
종혁의 표정이 간절해졌다.
‘제발 혼자 움직이지 않았기를!’
* * *
“끄으으으!”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
눈앞이 침침해진다.
삐이! 삐! 탁!
“와쿠 씨! 오랜만입니다!”
“너, 너 이 자식……!”
“그런데 우리 와쿠 씨도 많이 늙으셨네. 고작 나 따위에게 미행을 들키고 말이야. 아무리 모른 척하려고 해도 그렇게 티 나게 숨으면 모른 척해 줄 수가 없잖아요.”
그 말에 와쿠 순사부장이 눈을 부릅뜬다.
“서, 설마? 너, 너 그래서 가방을…….”
“골목에 숨어 노려보던 눈이 어찌나 뜨겁던지…… 어휴. 그나저나 진짜 감이 많이 떨어지셨다. 그걸 봤으면 바로 지원을 불렀어야지.”
그럴 걸 그랬다.
‘저놈들이 서로를 믿을 리가 없는데!’
견물생심. 그런 막대한 돈을 보여 줬는데, 그걸 아무렇게나 방치할 리가 없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역시 현장에서 멀어져 있다 보니 감이 떨어진 것 같다.
“역시 늙으면 죽어야 해, 그쵸?”
“이, 이 자식!”
와쿠 순사부장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일어나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철거전문업자는 가볍게 피하며 그의 배에 발을 내지른다.
“크헉!”
다시 악취가 나는 쓰레기 더미에 처박힌 와쿠 순사부장. 그의 앞에 선 철거전문업자가 허리춤에서 칼을 빼 든다.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고, 성불하쇼.”
“아, 안…….”
푸우욱!
“끄어억!”
푹!
“끄으읍!”
“음. 됐다.”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는 와쿠 순사부장의 모습에 한 번 더 찌를까 했던 그는 이내 관두며 와쿠 순사부장의 품을 뒤져 핸드폰을 빼 든다.
“크. 누가 옛날 사람 아니랄까 봐.”
참 옛날 핸드폰을 쓰고 있다.
방금 와쿠 순사부장이 찍은 사진을 삭제하고, 배터리를 분리한 그는 핸드폰과 칼을 와쿠 순사부장에게 쥐여 준다.
그리고 와쿠 순사부장의 머리 쪽에 있는 쓰레기를 잡아 그대로 끌어내린다.
와르르!
양옆의 쓰레기도 끌어와 와쿠 순사부장을 완전히 가린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됐군.”
한 번 쓰레기를 버리면 그 누구도 뒤지지 않는 쓰레기 매립지. 이러면 아무도 찾지 못할 거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트럭에 오른 그는 액셀을 밟았고, 이내 곧 그들이 있던 자리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편 쓰레기 더미에 매장된 와쿠 순사부장의 몸이 꿈틀거린다.
‘아, 알려야 하는데…….’
하지만, 눈이 감긴다. 몸에서 힘이 사라진다.
‘하. 드디어 가는구나. 오래 기다렸지?’
먼저 간 아내를 떠올린 그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콧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깨끗한 공기.
“……! ……까?!”
와쿠 순사부장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