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05화>
‘저년의 주 무대가 여기였나.’
마츠다 리츠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끔찍한 재앙 탓에 가족과 친구, 재산 등 많은 것을 잃으며 정신적으로 약해진 이들을 노리고 그나마 남은 것마저 모두 빼앗은 사기꾼.
‘끝까지 잡히지 않았었지?’
국제 수배까지 떨어졌으나 결국 회귀 전까지도 잡히지 않았던 마츠다 리츠코.
간질거리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야.’
아가리를 터는 게 딱 봐도 밑밥을 까는 단계다. 지금 털어 봤자 엄한 사람을 사기꾼 취급한다는 소리만 듣게 될 것이다.
지이잉! 지이잉!
“음.”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에 무로이 코헤이는 잠시 떨어져서 전화를 받는다.
‘응?’
갑자기 딱딱하게 굳는 그의 표정.
물론 평상시에도 굳은 얼굴이지만, 종혁은 그 미세한 표정 변화를 알아챘다.
“뭔 일이기에 저렇게 심각해?”
후다닥!
“헉! 헉! 부본부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그냥 무전을 보내시지……. 무슨 일입니까?”
“자, 잠시 본부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본부로요? 잠시만요.”
종혁은 통화를 하고 있는 무로이 코헤이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아, 벌써 통화 끝내셨어요?”
“본부로 간다고? 혹시 동행해도 되나?”
“예, 뭐…….”
눈을 껌뻑인 종혁은 찾아온 형사를 따라나섰다.
* * *
“예? 뭐라고요?”
종혁이 잠시 귀를 후빈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 맞는 걸까.
구조본부의 본부장이자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파견된 공사(公使)가 헛기침을 한다.
“그러니까 의료 시설이 부족해서…….”
말을 하는 공사를 일견한 종혁의 시선이 그의 뒤에 서 있는 중장년인들에게 향한다.
죄다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가슴팍에 금배지를 단 그들.
‘하!’
“네. 좆까는 소리는 잘 들었습니다.”
“……뭐, 뭐?”
“눈깔이 달렸는데도 안 보입니까?”
종혁이 컨테이너 하우스를 가리킨다.
절반이 채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코 고는 소리가 가득한 컨테이너 하우스.
밤사이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일본 경찰들과 주변 순찰을 하고, 플래시 하나에 의지한 채 밤새 사람들을 구한 소방구급대원들이 잠들어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천막이 아니라 단단한 지붕과 벽으로 차단된 소음에 이제야 숙면을 취하고 있다.
저 컨테이너 하우스는 단순한 바람막이가 아니라 경찰과 소방구급대원들이 무사히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게 도와줄 보금자리였다.
붕대나 연고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요한 안식처.
그런데 외교부가 저걸 내놓으라고 한다.
“크흠. 양국 간의 관계가 있으니…….”
“인도적인 차원으로 양보하라고요? 환자들을 위해? 예, 그럼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종혁의 눈이 사나워진다.
“이곳에 일본 정치인 및 일본 정부, 지자체 관계자, 그들의 가족이 단 한 명이라도 들어오면 싹 다 엎어 버릴 겁니다.”
“…….”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진짜 지랄하네.”
“어허! 최 총경! 말이 심하지 않습니까! 그들도 엄연한 수재민입니다!”
“수재민은 지랄!”
의료 시설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양보해 줄 수 있다. 구호품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몇몇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절대 내줄 수 없다.
이들이 앉은 자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만들어진 자리였다.
이런 국가 재난 상황에선 누구보다 국민들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됐다.
그런데 저 꼬라지를 봐라.
피난민들은 씻지도 먹지도 못해 초췌한 반면, 저들은 깔끔하다 못해 얼굴에서 개기름이 흘렀다.
“어차피 도와주러 왔으니까 쓸개까지 다 내놓으라고? 이런 씨발. 내가 계속 웃으며 퍼 주니까 호구로 보이냐, 새끼야!”
종혁의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자 모두가 기겁하며 달려든다.
“워워. 최 총경, 진정해.”
“아니, 소방감님! 저 새끼가 말하는 것 좀 보십쇼!”
“어허. 무슨 말인지 알아. 그래도 본부장이야.”
“본부장이라면 저딴 개소리를 지껄여도 된답니까! 너 이 씨발, 저기다 저 새끼들만 들여 봐! 내가 너 잘 때 뒤통수를…… 웁! 우웁!”
“그만하라니까 그러네.”
종혁은 소방감에게 끌려가면서 눈으로 쌍욕을 퍼부었고, 공사는 얼굴을 뻘겋게 붉히며 이를 갈았다.
그렇게 멀리 끌려간 종혁은 자신의 입을 막은 손을 툭툭 쳤다.
“거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알 만하니까 이렇게 한 겁니다.”
“응?”
“아까 제가 한 말 못 들으셨습니까?”
“……설마?”
“설마가 아닙니다.”
아마 처음엔 저들도 눈치가 있으니 정말 진료와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컨테이너 하우스를 배분해 줄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처음뿐. 그러다 슬그머니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을 집어넣을 거다.
그리고 한 가정당 하나의 컨테이너 하우스를 차지할 거다.
오직 구조대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참 많은 것을 집어넣은 컨테이너 하우스. 금속제 외관을 제외하면 일반 집과 똑같다.
거기다 방사능 전문의와 외과의들이 포진해 있다.
그래서 욕심을 내는 것이다.
“이러다 본부장이 요구한 50퍼센트의 하우스에 환자들이 꽉 차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내놓으라고 하겠지.”
당장 스타디움에서도 쪽잠을 자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들만 넘어와도 컨테이너 하우스는 모두 뺏긴다고 봐야 한다.
“예. 그러다가 싹 다 쫓겨나서 다시 천막에서 자겠죠.”
그땐 주차장이 아니라 센다이시 서쪽이나 북쪽의 산 아래에서 자게 될 거다.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정말 순수하게 그런 의도라면 수백 개의 컨테이너 하우스를 모두 내놓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그곳에 일본인이 꽉 찼을 때 찾아올 일본 정부의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다.
“아마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서 공수한 거라고 떠들어 댈 겁니다. 일본 정부의 발 빠른 대책이라고 전국에 보도를 때려 국민들을 현혹시킬 겁니다.”
어쩌면 한국에서 가져온 구호품도 전부 일본 정부에서 보낸 것으로 둔갑할지도 몰랐다.
여기까지도 종혁은 참을 수 있었다.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지, 명예를 위해 일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이 일본 정부에서 마련한 것으로 둔갑되면, 도리어 자신들이 일본의 구호품을 축내고 있다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본 국민들과 소통할 길이 없는 우리는 그냥 닥치고 당하게 될 겁니다.”
본부장인 공사도 이미 일본 편인 것 같은데, 자신들의 이야기가 전해질까.
“서, 설마! 사람이 어떻게 그러려고!”
“정말 설마라고 생각하십니까? 소방감님도 아시잖습니까.”
뻔뻔하기 그지없는 일부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부 관계자들과 정치인들.
이건 전 세계 공통이었다.
절대 믿을 수 없었다.
“하아……. 하지만 최 총경. 지금 당장 지탄을 받을 수 있어. 우리만 깨끗한 곳에서 잔다고 말이야.”
“차라리 그러라죠. 그냥 확 철수해 버리게. 아직 다친 사람은 적으니 그게 훨씬 깔끔하겠습니다.”
본격적인 구조 활동이 벌어지면 얼마나 다칠지 모른다. 어쩌면 사망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었다.
도처에 위험이 널려 있는 거리.
사람을 구하러 왔는데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면, 선의가 이기적인 이들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라면 그냥 관두는 게 낫다.
“최 총경…….”
종혁은 고개를 돌렸고, 소방감은 난처해했다.
하지만 마냥 설득할 순 없었다. 다 떠나서 현재 컨테이너 하우스가 소방구급대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둘의 마음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쿄 형?”
종혁은 다가온 무로이 코헤이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 * *
“확실히 한국은 저희 일본과 기조가 다르군요. 역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답게 효율성을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
칭찬인 듯 칭찬이 아닌 말.
아니, 그냥 돌려 까는 것이다. 저딴 애송이가 왜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냐고 말이다.
노회한 정치인이 공사의 손을 꼭 잡는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지금도 저희 센다이시 시민들이 추위와 병마에 떨고 있습니다.”
많이도 바라지 않는다. 딱 절반.
“그것이 안 된다면, 의료진들의 도움만 이라도 받게 해 주십시오.”
이미 포화 상태가 된 센다이시의 병원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다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가까운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물꼬만 트면 나머지 컨테이너 하우스를 모두 집어삼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럼 내 가족들도 안심하고 쉴 수 있겠지!’
현재 집이 아니라 호텔에서 지내고 있는 가족들.
남편이, 아버지가 정치인이라서 저 험하고 위험한 곳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시민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며 구호 활동을 해야 하는 가족들.
그들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들, 자신의 지인들, 동료 정치인들의 가족들도 케어가 필요했다.
물론 그렇게 모두 불러 모으면 일반 시민들이 치료받을 공간이 없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일단 자신들부터 살고 봐야 했다. 그러며 자신들이 이런 길거리에서 시민들과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중요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공사는 난처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의료진과 컨테이너 하우스 모두 종혁의 사비로 준비된 것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본부장이라고 한들 거기에 간섭할 권한은 없었다.
‘거기다…….’
정계 인맥이 무시무시한 종혁.
그래서 방금 전 폭언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도 일본 정치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의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때였다.
저벅저벅!
천막 안으로 들어온 사내가 공사에게 다가간다.
“본부장님.”
공사에게 귓속말을 하는 그.
“뭣?!”
눈을 부릅뜬 공사는 다급히 컨테이너 하우스들이 놓인 곳으로 달려갔고, 일본 정치인도 의아해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둘 모두 그대로 굳어 버렸다.
“Thank you, Sir.”
“Спасибо, Choi.”
종혁과 인사를 나누는 백인들과 그들의 뒤에 있는 다양한 인종들, 아니 어젯밤 날아왔던 미국과 러시아의 선발대들.
그들이 각자의 짐을 들고 컨테이너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이게……!”
“아, 오셨습니까.”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그게…….”
종혁이 말을 하려고 하자 무로이 코헤이가 한 발 앞으로 나선다.
“반갑습니다.”
“……당신은?”
방금 전 종혁의 곁에 있던 일본인이다.
“무로이 코헤이 경시정입니다. 경시청에서 선발대로 파견됐습니다.”
흠칫!
“한국 구조본부의 본부장이라고 들었습니다. 본 경시청이 이곳의 한 귀퉁이를 빌려 썼으면 합니다만…….”
말은 허가를 구하고 있었지만, 어조나 표정 모두 명령조인 무로이 코헤이의 모습에 말을 잃은 공사는 종혁을 쳐다봤고,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을 본 공사가 헛숨을 삼킨다.
“예! 장관님!”
-방금 일본 정부와 협의가 끝났네. 본격적인 구조 작업에 돌입하게. 곧 방송국이 파견될 테니 허튼짓하지 말고.
공사는 고개를 푹 숙였다.
* * *
“한국의 양보를 잊지 않을 겁니다, 최.”
어젯밤 자신들에게 쉴 곳을 양보한 채 차량이나 복도에서 구겨 자던 센다이시 소방대원들을 보며 얼마나 미안해했던가.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여차하면 18명이 잘 수 있도록 제작된 컨테이너 하우스. 이들에게 자리를 내준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최.”
“우리 꼭 구하죠.”
“예. 한 명이라도 더.”
주먹을 꽉 쥔 미국의 선발대는 몸을 돌렸고, 러시아도 감사의 뜻을 표하며 현장으로 향한다.
종혁은 뒤를 돌아봤다.
일본 정부와의 협상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서 있는 한국의 구조대들.
종혁은 그들이 보내는 존경 어린 시선에 피식 웃다 이내 낯빛을 굳혔다.
그런 그의 눈에 무너지고 망가진 도시의 풍경이 들어온다.
“그러면 우리도 들어갑시다.”
저 지옥으로.
재앙이 휩쓸고 간 참사의 현장으로.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문 구조대원들이 지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한편 그 시각 센다이시의 동쪽.
“그럼 저흰 저쪽부터 치우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센다이시 소방대원들을 일견한 철거전문업자들이, 이번 재난에 센다이시와 계약을 맺은 그들이 한 주택가 앞에 멈춰 선다.
“휘유.”
멀쩡한 집이 보이질 않는 주택가.
“저희가 먼저 진입해 요구조자가 있는지 확인할 테니, 여러분들은 뒤를 따라오시면서 저희가 치운 잔해들을 처리해 주십시오.”
“예. 걱정 마십시오.”
“……진입한다.”
“예!”
우르르!
산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끔찍한 현장.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0.001퍼센트의 확률이라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에, 자신들의 구조를 바라는 요구조자들이 있을 수 있음에 그들은 이를 악물며 나아간다.
그렇게 센다이시 소방대원들이 움직이자 철거전문업자 중 한 명이 입을 연다.
“우에다 신죠 교수의 집이 어디라고?”
“주소는 저쪽입니다.”
부하 직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철거전문업자는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