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04화 (80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04화>

138. 재난 특수

그날의 날씨는 참 화창했다.

-벌레는 안 나오는 거 맞지?

“그렇다니까! 걱정 좀 그만해요. 딸 못 믿어?”

-……믿겠니? 네가 때려잡은 동네 남자애들만 해도…….

“우와아아악!”

도시로 보낸 딸이 걱정되어 매일같이 전화를 하는 어머니.

-장아찌 좀 보내 줄까?

“가지로! 붉은 된장도! 된장 안 가져왔어요!”

-누구랑 통화해?

“아빠!”

그렇게 아빠와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통화를 종료한 일본 최고의 대학 중 도호쿠 대학교의 법대생인 아사미가 자신의 자취방을 둘러본다.

“히힛!”

외관은 허름하고 안은 좁지만 깔끔한 맨션.

독립. 그 정적이고 재미없는 시골에서 벗어난 지 벌써 1년 가까이 됐건만 매일이 꽃밭을 구르는 기분이었다.

“……바이트를 해야 하나?”

사법 시험을 준비하긴 위해선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에 책 한 글자라도 더 봐야 했지만, 슬슬 돈이 떨어져 간다.

부모님께 말씀드린다면 분명 도움을 주시겠지만, 이미 딸을 도호쿠 대학에 보내기 위해 많은 걸 희생하신 부모님께 더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단기 과외면 괜찮을 거야!”

명문대인 도호쿠 대학에, 그것도 법대생인 그녀.

단기 과외로도 당분간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은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럼 가 볼까?”

쿠르릉!

“쯧. 또 지진…… 어?”

쿠콰과과과과과과광!

“꺄아아악!”

기존의 익숙하다 못해 일상인 지진이 아니다.

땅이,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끼기긱!

맨션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빠, 빨리 나가야 해!’

지진이 일어났을 땐 집 안에 있어야 한다. 하늘에서 무엇이 떨어져 내릴지 모르기에 집 안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집이 무너질 것 같다.

아사미는 다급히 맨션을 뛰쳐나왔다.

그 순간…….

콰과광!

아사미는 자신을 향해 쓰러지는 건물의 잔해에 두 눈을 부릅떴다.

“으으.”

눈을 뜬 아사미가 멍하니 하늘을 본다.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건지, 아니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 눈에 초점이 없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으윽!”

겨우 정신을 차린 아사미가 맨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린다.

“……웨엑! 우웨에엑!”

무너져 버린 맨션. 그리고 그 잔해 사이로 튀어나온 피투성이의 팔.

자신도 모르게 구토를 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잔해를 향해 걸어간다.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 누, 누구 없어요! 누가 이 사람 좀……!”

“꺄악!”

“도, 도망쳐!”

다급한 그녀를 흔들어 깨우는 비명 소리들.

아니다. 저쪽은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내가 구해야 해!’

그래야 살릴 수 있다.

그녀가 잔해를 치우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

“아.”

뒤에서 들리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몸을 돌린 아사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괴물에 절망하고 말았다.

* * *

“허어억!”

기겁하며 일어난 아사미가 주위를 둘러본다.

호텔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처투성이의 여성들.

아사미는 마찬가지로 군데군데 붕대가 감긴 자신의 팔다리를 내려다본다.

정말 천운이었다.

쓰러진 맨션의 잔해가 한 끗 차이로 비껴갔을 뿐만 아니라, 정신줄을 놓고 사력을 다해 뛴 끝에 갑자기 들이닥친 해일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온몸에 남아 있는 상처는 처음 맨션의 잔해가 떨어져 내렸을 때 튄 파편에 의한 것들뿐이었다.

짧은 머리를 매만진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지옥, 그 자체였던 병원.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중환자들이 병원에 가득했고, 그에 그녀는 CT나 X-RAY를 찍어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간단히 찰과상만 치료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경찰과 구조대의 인도에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꼬르륵!

“후우. 식사를 받으러 가야지.”

그녀는 화장실로 향해 물티슈로 몸을 단정히 한 후 신분증을 챙겨 호텔 로비로 향했다.

“또 빵인가…….”

평소 빵을 좋아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것도 감지덕지지만 눈물이 솟는다.

엄마가 보내 준 붉은 된장으로 만든 된장국과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쌀밥에 폭신한 계란말이를 얹어 먹고 싶다.

아빠가 만든 짭짤하고 새콤한 장아찌를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싶다.

“흑!”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내민 그녀는 바깥으로 나갔다. 너무 안에만 있으니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저기…….”

“네?”

“혹시 저 알지 않아요?”

깔끔한 정장에 광이 나는 구두를 신은,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의 중년 여성.

어지러운 재난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그녀의 모습에 아사미는 순간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호쿠 법대생 맞죠? 마츠다 법률 사무소의 리츠코예요. 기억 안 나세요?”

“앗!”

마츠다 법률 사무소의 변호사, 마츠다 리츠코.

법조계 선배로서 대학에 강연을 온 적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도호쿠 법대 1학년 스즈키 아사미입니다!”

“그래요, 스즈키 짱. 지금 식사하러 가는 거예요?”

“아, 네…….”

“쇠도 씹어 먹을 나이인데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따라와요.”

“네? 아뇨, 아니요!”

“괜찮아요.”

마츠다 리츠코는 아사미의 손목을 잡고, 호텔의 최상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우선 좀 씻고 나오세요. 옷도 이걸로 갈아입고요.”

떠밀리듯 욕실로 향한 아사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탱크에 보존된 물의 양이 적다며 하루 24시간 중 22시간은 단수가 됐었는데, 지금은 단수된 시간이었는데 물이 펑펑 나왔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사미는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돼…….’

방금 막 지은 따뜻한 밥과 된장국.

어서 먹으라는 손짓에 포근하고, 달콤한 계란말이를 입에 가져간 그녀의 목이 막힌다.

“흐윽! 흐으윽!”

맛있다. 그래서 더 서럽다.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건지, 왜 이렇게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은 채 갇혀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마츠다 리츠코는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돌아갈 집은 있어요?”

아사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돈은요?”

대답 대신 아사미의 얼굴이 붉어진다.

은행에 저금할 돈은 애당초 없었고, 가진 재산이라곤 보증금이 전부였는데 이런 상황에 돌려받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고향에 다녀와야겠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에 그녀에게 남은 방법이 없었다.

아사미는 씁쓸히 웃었고, 마츠다 리츠코는 그런 그녀를 보며 눈을 빛냈다.

“스즈키짱.”

“네, 마츠다 씨.”

“아르바이트 하나 안 해 볼래요?”

“……?”

띵동!

“잠시만요.”

마츠다 리츠코가 호텔 룸의 문을 열어 준다.

우르르!

“왜 이렇게 여는 게 늦어?”

“사람이 있어서 그래.”

아사미는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그러니까…….”

순간 시끄러워지는 룸.

아사미는 그들이 뱉어 내는 법률 용어와 법률이 아닌 전문 용어들에 눈이 핑핑 돌아간다.

담배 연기와 함께 뿜어내는 박력.

이런 재난 속에서도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이게 성공한 사회인의 모습인가 싶었다.

마츠다 리츠코는 그런 그녀를 밖으로 이끈다.

“미안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지 몰랐네요.”

“아, 아니에요. 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래요. 언제든 밥 먹고 싶으면 올라와요. 아, 맞아. 내 정신 좀 봐. 가장 중요한 아르바이트 비용 이야기를 안 했네요. 하루에 2만 엔. 어때요?”

쿵!

“네?”

“잘 생각해 보고 연락 줘요. 이건 내 연락처.”

“아, 아니…….”

“다음에 또 봐요.”

아사미의 어깨를 두드린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고, 아사미는 받아 든 명함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루에 2만 엔, 한 달이면 60만 엔.

아직 대학생인 그녀로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에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 * *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아사미는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어, 어려운 일은 아니죠?”

“호호. 스즈키 짱이 할 일은 별거 없어요.”

병풍처럼 뒤에 서 있다가 자신이 지시하는 것만 해내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

“사무관이라는 단어는 들어 봤죠?”

“아, 네!”

“일종의 비서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원래라면 담당 사무관에게 시킬 일이지만…… 연락이 되질 않아서요.”

이놈의 재난 때문에 연락이 되질 않는다. 솔직히 살아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아.”

“하지만 어쩔 수 있겠어요?”

재난은 재난이고, 일은 일이었다.

공무원이나 직장인처럼 일을 못해도 돈이 나오는 게 아닌, 일감을 찾아 돌아다니고 계약을 성사시켜야 돈을 벌 수 있는 그녀. 재난이라고 정신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어차피 재난은 수습될 테니까.”

아사미의 눈이 몽롱해진다.

‘이, 이게 성공한 여성이구나!’

자신보다 키가 작음에도 훨씬 커 보이는 마츠다 리츠코의 모습에 아사미는 한 발 물러서 고개를 숙였고, 마츠다 리츠코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들고 있는 가방을 맡겼다.

그리고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십니까.”

“마츠다 법률 사무소의 마츠다 리츠코입니다. 우에다 신죠 교수님 되시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됐습니다.”

너무 의외의 손님이라서 그럴까.

잠시 침묵을 했던 방의 주인이 이내 문을 연다.

급히 옷을 차려입은 듯 옷차림이 흐트러진 노인이 나타나자 마츠다 리츠코가 곱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마츠다 법률 사무소의 대표 변호사 마츠다 리츠코입니다.”

아사미도 다급히 고개를 숙인다.

“우에다 신죠입니다. 법률 사무소의 주인께서 날 왜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안의 테이블로 안내한 우에다 교수가 차를 내온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대접할 게 없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날 왜 찾아온 겁니까.”

일본인답지 않은 직설적인 화법.

마츠다 리츠코는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재난으로 인해 많은 손해를 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크흠.”

우에다 교수가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처음 본 사람에게 드러낼 이야기가 아니긴 했지만, 정말 엄청난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바다가 좋아 센다이시 동쪽에 집을 지었던 그.

그러나 이번 재난에 의해 모두 쓸려가 버렸다.

금고야 멀쩡할 테지만, 집안 곳곳에 전시해 둔 미술품들은 어쩌란 말인가.

또 쓰나미에 쓸려 잔해만 남은 집은 어떡하란 말인가.

안 그래도 속이 쓰려 죽겠는데, 그 상처를 헤집는 말에 당연히 그는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마츠다 리츠코는 그런 그를 또렷이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손해 배상을 미야기현 지자체와 정부에 청구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움찔!

“……그게 가능하겠소?”

말 그대로 재앙이고, 재난이다. 인간은 어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란 말이다.

물론 정부가 어느 정도 배상은 해 줄 것이고, 보험사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에다 교수가 본 손실과 비교하면 티끌만큼도 안 되는 돈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손해 배상을 받는다? 말도 안 됐다.

“만약 이 재앙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면요?”

다시 몸을 굳힌 우에다 교수가 입을 다물자 마츠다 리츠코가 뒤로 손을 뻗는다.

“가방 안에서 노란색 큰 봉투를 주겠어, 스즈키?”

“네, 대표님.”

아사미는 얼른 그녀가 말하는 것을 넘겨줬고, 우에다 교수는 넘겨받은 자료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건?”

“지난 10년간의 환태평양, 소위 불의 고리라 말하는 지진대의 활동 기록입니다.”

사락! 사락! 사라락! 탁!

자료를 내려놓은 우에다 교수의 눈이 흔들린다.

“이 자료가 정말이오?”

“세계 유명 지질연구소에서 입수한 자료입니다.”

“그, 그렇다면 정말로…….”

“네. 일본 정부는 이번 재난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던 거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 겁니다. 그건 제 눈앞에 계신 우에다 신죠 교수님께서도 마찬가지실 테고요.”

“……내가 뭘 하면 되겠소?”

“손해 배상 청구에 대한 실사 확인을 위한 교수님의 자택 주소와 자금 현황, 그리고 소정의 의뢰비면 충분하답니다, 교수님.”

마츠다 리츠코는 환하게 웃었다.

* * *

이후 마츠다 리츠코는 호텔을 누비며 소위 돈 있는 존재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러다 결국 종혁과 무로이 코헤이의 눈에도 띈 그녀.

“으음. 어려울 텐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무로이 코헤이의 우려에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종혁, 설마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햐. 저년을 여기서 보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끔찍한 재난을 이용한 희대의 사기꾼 마츠다 리츠코.

종혁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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