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03화 (80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03화>

    삐이! 삐이!

    “천천히! 천천히!”

    첫 번째 컨테이너 하우스가 곧바로 내려지자 구조본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전기는 물론이고 수도까지 문제가 생긴 센다이시.

    씻는 건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기만을 바랐는데, 드디어 그럴 수 있게 됐다.

    이젠 누가 먼저 잘 것이냐 하는 눈치 게임이었다.

    쿵!

    “자자, 안으로!”

    “억?! 아, 아니!”

    말없이 종혁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나탈리아와 헨리가 첫 번째 컨테이너 하우스 안으로 종혁을 집어넣는다.

    “이, 이건?”

    종혁의 눈이 동그래진다.

    새하얀 공간에, 바닥에 고정된 책상. 그리고 하우스 안을 꽉 채운 고가의 의료 기기들.

    컨테이너 하우스 안으로 의사 가운을 입은 백인 의사가 들어온다.

    “이 친구부터 검사해 줘.”

    “예, 알겠습니다.”

    “검사?”

    “반갑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까레 이블라이비치 박사입니다. 방사능 전문이죠.”

    “그리고 CIA의 요원이죠.”

    “처음 뵙겠습니다, 최.”

    종혁이 놀라 나탈리아와 헨리를 본다.

    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진다.

    “……하하. 미안해요.”

    “당신은 자각을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 오, 맙소사. 어떻게 그런 곳에!”

    후쿠시마 원전에 문제가 생긴 것도 경악스러운데, 그 방사능 오염 지역에 가장 소중한 친구가 가 있었다.

    거기서 땅을 밟고, 공기를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짓을 했단 말인가.

    “이 친구들이 눈에 밟히진 않던가요?”

    “아하하. 미안하다니까요.”

    “됐고, 일단 이것부터 먹어요.”

    나탈리아의 손이 종혁의 입안으로 거침없이 밀려든다.

    뒤이어 헨리의 손도 들어온다.

    “우읍?! 푸하아!”

    당황하는 종혁의 표정에 둘은 그제야 안심을 한다.

    수사기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의 마야크와 시베리아 화학공단,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등에 숨어서 범죄를 공모하는 놈들을 쫓기 위해 KGB가 개발하고, SVR이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 온 방사능 중화제.

    헨리가 준 것 역시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개발한 방사능 중화제다.

    모두 국가 기밀. 범죄 단체의 악용 때문에 결코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면 이제 닥치고 검사받으세요.”

    “옙!”

    종혁은 얼른 CIA 요원인 의사를 봤고, 그는 싱긋 웃으며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일단 피부터 뽑아 볼까요?”

    참으로 두껍고 굵은 주사기.

    종혁이 흐뭇하게 웃는다.

    “……살려 주세요.”

    “따끔합니다.”

    “으윽!”

    차가운 쇠바늘이 몸을 헤집고 들어오는 고통.

    종혁의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검사 결과는 3시간 후에 나오게 될 겁니다.”

    “후우. 감사합니다.”

    폭풍이 몰아친 기분.

    종혁은 작은 원망을 담아 친구들을 봤다가 얼른 시선을 피했다. 경찰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친구로선 혼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안하다니까요.”

    “하아. 진짜 어디에 감금시켜 놓을 수도 없고.”

    할 말이 없었다.

    나탈리아와 헨리는 고개를 숙이는 종혁을 보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의 반격이 심상치 않습니다, 최.”

    헨리의 말에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렇겠죠. 일본으로선 어떻게든 이 재앙이 아무것도 아님을 국제사회에 보여야 할 테니까요.”

    그래야 하이에나들에게 사냥을 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죠.”

    동일본 대지진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이틀 앞에 있었던 전진(前震)이 발생했을 때까지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

    회귀 전, 그걸 노리고 전 세계의 하이에나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지어 하나하나가 공룡급인,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종혁과 러시아, 미국의 사냥개들이 재앙이 터지자마자 일본 사냥에 나섰다.

    사상 최대의 지진이라는 어퍼컷을 맞고 이미 그로기 상태였던 일본으로선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20년이 더욱 길어지게 되겠군요.”

    “잃어버린 백 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후로도 일본엔 수많은 재앙이 이어진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들이 일본을 계속해서 몰아붙인다.

    이미 이번 재앙만으로도 구멍이 숭숭 뚫린 함선이 된 일본은 그것들을 막아 낼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숨통은 붙여 놔야겠죠?”

    “예. 그래야 차후에 배가 고플 때 뜯어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냉동실에 넣어 둔 후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먹는 명절 음식처럼.

    셋은 서로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게 이후로도 얼마나 이야기를 나눴을까.

    찌지직! 찌지직!

    “음?”

    셋이 맹렬하게 종이를 뱉어 내는 프린터기를 바라본다.

    재빨리 검사 자료를 뽑아 든 나탈리아가 한숨을 내쉬고, 헨리와 종혁이 안심을 한다.

    “다신 그런 곳에 가지 마세요, 최.”

    “하하. 노력해…… 으악!”

    “그럼 한국에서 봐요.”

    “어? 벌써 가시려고요?”

    꼬집힌 옆구리를 벅벅 문지르던 종혁이 깜짝 놀라자 나탈리아와 헨리가 푸근하게 웃는다.

    종혁 때문에 무리해서 시간을 냈다. 이젠 돌아가야 했다.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 둘은 밖으로 나갔고, 종혁은 곧바로 트럭에 올라 사라지는 둘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걱정을 많이 시켰네.”

    그래서 이렇게 무리하게 만든 것일 터.

    빚이 나날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여보세요? 쿄 형! 어디…….”

    -그쪽! 그쪽으로! 거기서라-!

    수화기 너머뿐만 아니라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무로이 코헤이의 목소리.

    종혁은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후다다다닥!

    종혁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웬 거지 한 명의 목을 향해 팔뚝을 들이밀었다.

    “으랏챠!”

    “컥!”

    쿠웅!

    “……으아아아악!”

    거지 몰골의 사내는 뒤통수를 붙잡은 채 바닥을 뒹굴었고, 뒤이어 도착한 무로이 코헤이가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거, 구두 따윈 벗으라니까.”

    “크흠.”

    종혁은 피식 웃었다. 정장과 구두는 경시청의 캐리어 형사로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태풍이 불어도 경시청의 위엄은 흐트러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경시청이 정장과 구두, 차갑고도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유였다.

    참 쓸데없는 곳에서 멋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지금 바쁜 거 아니에요?”

    “아아, 그게…….”

    종혁은 이어진 무로이 코헤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지진에, 일본 각지의 정부 기관들은 하나같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도쿄도를 관할하고 있는 경시청도 마찬가지였다.

    경시청의 최고위 간부들이 모인 회의실.

    둥글게 놓인 탁자에 앉은 경시총감을 비롯한 경시청의 최고위 간부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로 회의실이 자욱하다.

    “후쿠시마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제대로 된 구조 작업도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인해 현재 후쿠시마에는 대피령을 비롯해 접근 금지령이 내려졌고, 그 탓에 사망, 실종자 수색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야기현, 이와테현도 여전히 난리라고 합니다.”

    해안 지역인 탓에 피해가 가장 컸던 이와테와 미야기현은 지금도 계속해서 행방불명 신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텅!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나!”

    정부에서 경찰은 왜 지원에 나서지 않고 있냐고 질책을 해 왔다.

    “소방청에선 이미 긴급구조지원대를 조직해 파견했는데, 왜 우리 경시청은 가만히 있느냐는 말이 나왔단 말이야!”

    경시총감의 외침에 최고위 간부들의 이마에 힘줄이 돋는다.

    “경시청의 관할은 어디까지나 도쿄도입니다! 당장 이곳의 혼란도 수습되지 않았는데, 지원을 나갈 여력이 어디 있다는 겁니까!”

    도호쿠 지방의 도시들에 비하면 미미하다 할 수 있겠지만, 도쿄 또한 대규모 정전에 화재 등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없지 않았다.

    관할지의 혼란이 채 수습되기도 전에 다른 곳에 지원을 나갈 여력은 없었다.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저기 한국을 보세요!”

    한국에선 소방구급대원과 경찰 모두 합쳐 3천여 명의 구조본부를 파견했다.

    심지어 일본 정부가 이제야 겨우 확보한 양과 맞먹는 구호품과 일본 정부가 확보한 것의 3배가 넘는 수의 중장비까지 동원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 한국 경찰이 서 있다.

    한국 소방청이 선두였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을 거다. 이건 망신이었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DNA 기술이나 구걸하던…….”

    “아, 그건 오류가 좀 있군요.”

    “이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선 안 됩니다. 여긴 경시청입니다.”

    경시청은 이 일본을 대표하는 가장 고귀한 기관. 정부의 개가 되어선 안 된다.

    이건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쯧.”

    그래도 사과는 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서 그곳에 갈 사람을 정하란 말입니다!”

    “어흠.”

    “큼!”

    방금 전 목소리에 날을 세웠던 최고위 간부들이 시선을 피한다.

    동일본에서 속속들이 들어오는 정보를 뒤로하더라도 언론 매체로 나오는 것만 봐도 현재 동일본은 지옥이다.

    경시청의 최고위 간부인 그들이 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파벌의 부하 직원들을 파견 보내야 하는데, 자칫 파견을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골치 아팠다.

    서로의 세력을 깎아 먹어야 경시총감이라는 경시청의 정점에 설 수 있는 그들로서는 너무 큰 모험이다.

    하지만 엄청난 명예가 걸려 있다. 방금 말한 손해를 모두 상충시키다 못해 경찰 권력의 정점으로 향하게 만들 분기점.

    그렇기에 이렇게 서로 눈치만 보는 것이다. 서로의 파벌을 더 많이 보내기 위해.

    그때였다.

    띠리링! 띠리링!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모두가 굳는다.

    경시총감이 눈을 가늘게 뜨며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다.

    “경시총감입니다.”

    -나요.

    “헛!”

    총리의 전화.

    몸을 들썩인 최고위 간부들이 이를 악문다. 이 이른 시간 왜 전화를 해 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시청은 아직입니까?

    “죄송합니다, 총리. 현재 엘리트들을 모으고 있으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지금 내가 세계 각국에서 무슨 전화를 받는 줄 알아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선 구조팀을 보냈는데, 정작 일본에선 제대로 된 구조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국가 재난 상황 속에서 관할지를 지킨다는 이유로 가만히 있었다는 건 변명거리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지금 증시가 어떤 난리를 겪고 있는데!

    전 세계가 공격을 해 오고 있다. 언제 증시가 무너질지 모른다.

    -이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예?! 말을…….

    경시총감이 귀를 막을 때 중후한 인상의 노인이 그에게 쪽지 한 장을 내민다.

    그걸 본 경시총감과 최고위 간부들이 눈을 부릅뜬다.

    ‘무, 무로이 경시감, 당신 설마……?!’

    무로이 코헤이의 아버지인 무로이 경시감이 얼른 말하라는 듯 손짓을 했고, 경시총감은 얼굴을 구겼다.

    “큼. 다행히 그쪽에 파견을 가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총리님. 차기 경시총감으로 거론될 정도로 유능한 저희 경시청의 엘리트 중 엘리트입니다.”

    쿵!

    -흠?

    “총리께서도 이름 정도는 들어 보셨을 겁니다. 무로이 코헤이 경시정. 일본 최초의 프로파일링수사과를 창설하였고, 현재는 경시청 과학수사대를 지휘하는 친구입니다.”

    -호오……. 바깥으로 내보일 얼굴로는 괜찮겠군요. 시나리오는 경시청에 맡기겠습니다.

    “각국과의 협상이 끝나기 전까지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달칵!

    통화가 종료된 전화기에서 시선을 돌린 그들은 무로이 경시감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 이 늙은 너구리가!”

    “정말 이럴 겁니까, 무로이 경시감!”

    무로이 경시감은 옅게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한국의 최종혁과 제 아들놈이 친구 사이임을 다들 알고 계시잖습니까. 최종혁 총경이 후쿠시마로 들어갔단 소리를 듣자마자 휴가계를 내고 달려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쾅쾅쾅!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최고위 간부들이 테이블을 내려치며 위협을 한다.

    그러나 저들처럼 산전수전 모두 겪은 너구리인 무로이 경시감에겐 통하지 않는 위협이었다.

    “그럼 이렇게 계속 가만히 두고만 보실 겁니까? 여러분께서 원한다면 본부장과 부본부장 자리를 내놓도록 하죠.”

    원하는 대로 무로이 코헤이를 이용해라. 그로 인해 얻어질 모든 명예도 당신들의 넘기겠다는 말.

    즉, 재주는 무로이 코헤이가 부릴 테니, 그 이득은 너희들이 챙기라는 뜻이었다.

    움찔!

    “어흠. 뭐 그런 것이라면…….”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로이 경시감.”

    “쯧. 그래도 덕분에 면은 섰군요.”

    “일단 방송부터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산 좀 빼서 중장비를 확보하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정부에서 갈음해 줄 테니까!”

    그렇게 경시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그 동네도 참…….”

    “큼큼.”

    “아무튼 이 동생이 걱정돼서 휴가 쓰고 달려왔다는 거네요?”

    “…….”

    입을 꾹 다문 무로이 코헤이가 미간을 좁히자 종혁이 키득키득 웃는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의 얼굴이 나오고 있는 그.

    좁혀진 미간과 꾹 다문 입술로 차가운 카리스마를 뿜어댔던 그.

    고마웠다. 감사했다.

    종혁은 온몸으로 그 뜻을 전달했고, 둘은 지옥이 된 거리를 말없이 걸었다.

    “처참하군.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

    “쉿.”

    어느새 딱딱하게 굳은 종혁의 표정.

    종혁은 옆 호텔의 로비를 바라보며 낯빛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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