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02화>
재앙 앞에서 인간은 너무도 무력했다.
“으아아앙!”
“효고! 효고, 어디 있니!”
“어, 얼른 건물로!”
“배고파.”
물에 잠긴 갈라진 도로. 금이 간 건물. 쓰러진 나무와 전신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흙탕물을 사람들이 망연히 바라본다.
모든 걸 휩쓸어 가 버린 괴물.
박살 난 나무 지붕을, 담벼락의 벽을, 찌그러진 차를 품은 괴물.
집 안에 갇힌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얼른 저 괴물이 물러나기만을 메말라 갈라진 목으로 기원할 뿐이다.
그리고 부디 물 한 모금을.
물에 젖지 않은 담요 한 장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빌어먹을!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왜 구조대가 안 오는 거야!”
“어, 엄마. 나 추워.”
“괜찮아. 쉬이. 괜찮아. 엄마가 곁에 있잖니.”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은 어둠 속에서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부르릉!
“어? 어?”
저 멀리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
침묵하는 밤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와 불빛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급히 창가로 달라붙는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장 위험한 곳이 창가와 같은 유리가 있는 곳임에도 사람들이 달라붙는다.
“구, 구명보트다!”
“구조대예요, 구조대! 여기요, 여기!”
희망을 얻은 사람이 어떻게든 불을 피우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곳에도 사람이 살아 있음을 외친다.
-한국 구조대입니다! 모두 창가에서 물러나십시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과르릉!
새벽녘, 지쳐 잠든 사람들을 깨우는 굉음.
안개를 헤치며 거대한 괴물이 도로를 향해 진입한다.
재앙이 휩쓸고 지나가고 남은 잔해들로 어지러운 도로를 거대한 불도저들이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고, 그 뒤를 각양각색의 차량들이 따른다.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차량들.
-3부본부장님! 저흰 이쪽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잠은 오면서 잤습니다!
‘겨우 두 시간 잤잖습니까.’
무라타마치라는 작은 마을을 거쳐 지나온 그들.
일본 시민들에겐 손대지 말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은 탓에, 마을 주민들을 고지대로 이끈 후 구호품과 의료품만 주고 지나쳤던 그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밖에 없음에 그들은 분통과 눈물을 삼켰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한국 가면 찐하게 한잔하시죠. 하하!
소방구급대원들의 차량들이 떨어져 나가자 종혁은 피로에 젖은 눈을 누르며 핸드폰을 들었다.
습관처럼 입을 열었다.
“8팀, 이와누마시 진입 가능합니까?”
-지금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번쩍!
종혁과 이동본부에 탄 경찰들의 눈이, 밤사이 계속된 구조에 감기던 눈이 부릅떠진다.
미야기현 남부 해안에 인접한 도시, 이와누마시.
지금까지 침수되어 있던 탓에 구조 활동에 나서지 못했는데, 드디어 물이 빠져 진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진입이 가능하다면, 즉 다른 해안 도시들도 이제는 진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알겠습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것도 아니고, 인구수가 4만여 명에 불과한 도시이기에 한국인 관광객이나 재일 한국인이 없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가능성이 0%가 아니라면 찾아야 한다.
그렇게 각 팀이 담당 구역으로 향하자, 종혁은 갑자기 풀리는 긴장에 어깨를 늘어트리며 담배를 물었다.
그렇게 불을 붙이려 할 때였다.
“부본부장님! 센다이시입니다!”
앞을 보는 종혁과 사람들. 저 멀리 어스름히 보이는 무너진 도시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힌다.
“천천히 진입합시다. 그리고…….”
종혁이 무전기를 든다.
“지금부터 모든 차량은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세요.”
지금부터는 두 눈을 부릅뜨고 무엇 하나도 그냥 지나쳐서 안 됐다.
어떤 위험물이 널브러진 잔해 속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혹여 물에 떠밀려온 시체가 있을 수 있었다.
“몇 번 해 봤으니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그들은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 * *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센다이 스타디움.
해조차 뜨지 않은 새벽, 그 꼭대기에 오른 남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바다 쪽을 바라본다.
주황색 소방복을 입은 사내.
“물이…… 많이 빠졌네요.”
이젠 가시권 내에 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센다이시를 휩쓴 해일도 물러나는 것이다.
들이칠 때는 폭풍 같더니, 빠져나갈 때는 거북이가 따로 없는 괴물. 모두 센다이시의 지대가 낮기 때문이다.
“좀 있으면 구조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빠드득!
해일 들이친 이후 발만 동동 굴러야 했던 재난 현장.
보유한 구명보트들을 모두 움직여 어떻게든 구조 활동을 벌였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저곳에서 구조를 바라고 있다.
그런 그들을, 센다이시의 시민들을 이젠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동료는 냉소를 터트린다.
흙먼지와 땀, 피로에 절어 있는 그의 동료.
“저길?”
물은 빠졌지만, 일대의 건물들이 무너져 내려 사방을 틀어막은 탓에 차량 진입이 불가능했다.
만약 섣불리 구조 차량을 진입시켰다가 뾰족한 것에 바퀴가 터지기라도 하면, 구조가 더욱 지연될지도 몰랐다.
구조 차량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잔해들을 치울 중장비가 필요했다.
“그러면 일단 우리들만 먼저 들어가면 되지 않습니까! 뭐라도 해 봐야죠!”
“알아! 뭐라도 해야지! 하지만……!”
그러다 자신들이 다치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시민을 구조해야 할 자신들이 도리어 다치면, 저 지옥 속에서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이들은 누가 구한단 말인가.
“대체 정부는 뭐한답니까! 현에선 왜 움직이지 않는 건데요!”
항거할 수 없는 재앙이 미야기현의 절반을 휩쓸었다.
미야기현 지자체가 나설 수 없다면 정부라도, 정부가 너무 혼란스럽다면 옆 야마가타, 아키타, 오모테현에서라도 인력과 물자를 보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저기 한국은 재앙이 터지자마자 날아와서 저렇게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데요-!”
수많은 물자를 가지고 야마가타현을 거쳐 진입하여, 구명보트들을 이용해 한국인들과 재일 한국인들을 구한 한국의 구조본부.
일본 정부의 방침 때문에 일본 시민들을 구할 수 없다고 눈물 흘리며 사과한 그들.
그때 얼마나 허탈했던가.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과 척을 지려는 일본 정부에 얼마나 분노를 터트렸던가.
“중장비와 물자들이 저렇게 있잖아요! 저것들을 빌리면 되잖습니까!”
사내가 옆의 주차장을 가리키며 분노를 토해 낸다.
한국 구조본부가 저것들을 끌고 왔을 때, 도움을 요청하자고 상부에 건의를 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그러나 상부는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았으니 지켜보자는 입장을 내놓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물이 가득 차 있었기에 중장비가 있다 한들 운용하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물이 거의 다 빠진 지금은 아니다.
“빌어먹을! 제 목이라도 걸겠습니다! 제가 빌리고 옷 벗는다고요! 교도소 가라면 간다고요!”
“……조금만 참아 보자. 그렇지 않아도 오늘 8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은 구조대원들과 물자가 오기로 했잖아.”
“그거 다 후쿠시마로 향했잖아요! 온다고 해도 저희 쪽에 뭐 얼마나 온다고요!”
원전에 이상이 생긴 후쿠시마.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원전을 폐쇄해야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인력이 투입된다고 해도 그쪽에 먼저 투입이 돼야 한다.
이쪽도 시급하지만, 그쪽은 정말 1분 1초가 소중했다. 그래서 정부에서 긁어모은 구급대원들도 죄다 그쪽으로 향했다.
“아아아아악!”
쿠르릉!
“어?”
어둠을 흔들어 깨우는 굉음.
“저, 저기!”
어둠을 헤치며 불빛들이 다가온다.
‘정부에서 보낸 구조대인가!’
그렇다면 왜 진입하기 쉬운 서쪽이 아니라 후쿠시마현이 있는 남쪽에서 올라오는가.
-아, 아사기!
“……왜 그러십니까?”
-어, 얼른 내려와! 한국 구조본부에서 중장비들을 팔아 주기로 했어! 대당 100엔에!
“예?”
-얼른 내려오라고! 빨리-!
“예, 예! 가, 가자!”
“예!”
해가 어스름히 떠오르며 희망이란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 * *
“와아아아아아!”
“최 총경!”
후쿠시마현을 훑고 올라와 남쪽으로 진입한 제3부본부를 오십대 초반의 사내들이 다급히 다가와 맞이한다.
“충성. 제3부본부장 외 324명 중 127명 구조본부에 도착했음을 신고합니다.”
나머지는 물이 빠져 어느 정도 진입이 가능해진 후쿠시마현 북쪽의 해안 도시들을 훑으며 올라올 예정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구해 도쿄의 공항으로 보낸 한국인이 총 938명, 구해 내 이쪽으로 데려오거나 다른 대도시들로 보낸 재일 한국인의 숫자가 총 5800여 명이었다.
한국인 최선봉에서 자국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는 소식에 지리적으로 먼 곳에 위치한 타국에서 도움을 요청하여 구조한 외국인들까지 합하면 제3부본부에서 어젯밤 구해 낸 이들의 숫자는 무려 1만 5천여 명에 달했다.
그 압도적인 성과에 소방청에서 구조대원을 이끌고 파견된 소방감이 차량에서 내린 종혁을 와락 끌어안았다.
“수고했네! 수고했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소방감의 모습에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재난 속에서 구조만을 바라고 있을 후쿠시마.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엔 아직 일렀다.
“아, 아니 피폭은! 몸은 괜찮아?!”
“방사능 측정 장비로 계속 살피고 다녔기에 피폭이 됐을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 제4부본부는 어떻습니까?”
후쿠시마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의 남쪽으로 향한 제4부본부.
“일단 검사 중이긴 한데…….”
노출된 시간이 짧다고 한들 방사능이다. 현재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어떤 후유증이 생길지 모른다.
“대원들은 상부와 정부에서 케어해 줄 테니 너무 걱정 마.”
다치거나 사망한다고 해도 유공자가 될 그들.
대한민국 정부는 위험한 곳으로 향한 자신들에게 그런 약속을 해 주었다.
“여야 양당 대표들께서 VIP의 멱살을 잡았다는 말이 있어! 으하핫!”
“그거 다행이네요.”
현몽준과 홍정필이 제때 움직여 준 것 같다.
‘이러면 더 힘내서 구조 활동을 할 수 있겠지.’
혹여 피해를 입은 구조대원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이 갈 수 있을 거다.
“음?”
척척척척!
주황색 소방복을 입은 십여 명의 일본 소방구급대원들이 다가온다. 그들의 앞에 서자 거수경례를 하는 그들.
그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일본 정부와 국민들을 대표해 감사하다는 말을 올리고 싶습니다.”
“……위험한 발언은 그만하시고, 가서 구하십시오.”
“……정부가 한국의 도움을 외면하더라도 저흰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전체 차렷!”
척!
“경례!”
척!
“……오늘 8시까지 일본 정부와 협의가 이뤄질 거라고 합니다. 승인이 떨어지면 저희도 곧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충성.”
그 말에 입술을 꽉 깨문 일본 소방구급대원들은 몸을 돌렸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집중하여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1958년 A.W. Smokey Linn이라는 미국의 소방관이 구할 수 있었으나 구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자책감에 기록한 시.
이젠 전 세계 모든 소방관들의 복무신조가 된 구절.
드디어 장비를 쓸 수 있음에, 어떤 위험이 있지 모르는 현장으로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그들을 보며 한국 측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재앙과 재난에선 나라의 관계를 따지기 싫은데, 안전한 곳에 있는 놈들이 따지고 있으니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부디 이번엔 구하시길.’
회귀 전, 중장비의 부족으로 인해 구할 수 있었을 생명을 구하지 못했단 말을 들었다.
부디 이번엔 그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최 총경, 잘했어.”
중장비를 더 쥐고 있었다면 사람을 구하러 왔다가 욕만 먹을 뻔했다.
“그런데 괜찮겠어?”
구조본부와 함께 이곳 센다이시에 투입됐던 중장비들의 가격만 해도 천억은 훌쩍 넘을 거다. 그걸 대당 100엔에 판매한 것이다.
한국의 도움을 못마땅해하는 일본 정부. 센다이시 관계자들이 그런 정부에게 미움을 받지 않게 하고자 공짜로 넘겨도 되는 걸 굳이 100엔을 받고 판매한 거다.
“이런 재난에서 돈을 따질 수 있나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본 국민들에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싹 다 청구할 거고요.”
아니다. 말만 이렇게 하는 거다.
현재 수재민들에게 나눠 주는 구호품들은 종혁이 일본 국민들에게 주는 사죄의 선물이기도 했다. 바이 재팬 프로젝트를 발동시킨 것에 대한 사죄의 선물.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건 이곳 어딘가에서 호시탐탐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놈들 회사의 귀에 들어가라고 하는 소리였다.
‘내가 돈이 부족하단 소리가 퍼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아직 자신은 건재하고, 쓴 돈도 회수될 테니까 덤빌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래. 잠 못 잤지? 일단 가서 쉬자. 저쪽에 침낭 깔아 놨어.”
“자자! 일단 눈이라도 붙입시다!”
본부장들이 사지에서 돌아온 대원들을 다독이자 종혁은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숙소는 저것뿐입니까?”
주차장의 3분의 1을 채운 24인용 군용 천막들.
두꺼운 부직포로 겨우 찬바람만 막는 막사들.
“뭐, 어쩔 수 없지. 사람이 잘 만한 곳들은 죄다 수재민들에게 나눠졌으니까.”
호텔과 모텔, 학교, 체육관 등 역시 이 재난에 징발되어 수재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자란 잠자리. 구조하러 와서 구조 대상이 누울 곳을 뺏을 순 없었다.
“그런 곳들에서도 수용하지 못한 인원들은 저 스타디움 안에 모여 있으니까 조금만 참자고.”
이번 재난에 피해를 별로 입지 않은 큰 건물들에 수재민들을 모두 수용했지만, 그래도 공간이 부족하다.
곧 센다이시 소방서들에서 구한 사람들이 도착하면 저 공간도 내놔야 할지 몰랐다.
“흠. 이상하네. 벌써 도착했어야 하는데…….”
“뭘……?”
쿠르릉!
-보, 본부장님! 지금 서쪽에서! 서쪽에서-!
“아, 이제 왔나 보네요.”
움찔!
“대체 또 뭐가…….”
고개를 돌린 구조본부의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린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수백 대의 트레일러.
그 차량들에 1.5층 크기의 컨테이너 하우스가 실려 있다.
쿠르릉!
“늦어서 미안해요, 최! 내가 늦었죠?”
“하하! 늦었습니다!”
종혁은 선두에서 내린 사람들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생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목소리가 너무 익숙하다.
‘나탈리아? 헨리?’
부아아앙! 끼이익! 탁!
“종혁!”
“……쿄 형?”
무로이 코헤이까지 등장하자 종혁은 눈을 끔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