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00화>
137. 일본으로
짹짹짹짹!
창문을 통해 포근한 햇살과 이름 모를 새의 노랫소리가 스며들자, 후쿠시마현에 거주하는 삼십대 사내 미야기 히데이로가 눈을 번쩍 뜬다.
“으악! 늦었다!”
다급히 일어나 옷을 갈아입다 넘어진 미야기.
그러나 아프지 않은지 벌떡 일어나 집을 뛰쳐나간다.
그런 그가 도착한 곳은 시내 상점가의 한 청과상이었다.
십대부터 정말 죽어라 노력하며 돈을 모아서 어제야 겨우 차린 가게.
문이 열린 청과상 안으로 미야기가 뛰어 들어간다.
향긋한 과일 냄새와 샴푸 냄새가 그를 반긴다.
“일어났어?”
불룩하게 부어오른 배 때문인지 허리를 손으로 짚은 긴 생머리의 여인이 맑게 웃으며 그를 반긴다.
“왜 안 깨운 거야, 미야코!”
그의 아내, 그의 반려 미야코.
“어제 축하주 많이 마셨잖아.”
“그래도…….”
“자자, 불평은 그만!”
“너무 미안해서 그렇지.”
미야코를 꼭 안아 준 미야기가 이내 곧 그녀의 부푼 배에 귀를 가져간다.
“잘 잤니, 스미레? 아빠가 늦게 일어나서 미안해용?”
“못 말려. 됐으니까 얼른 매출이나 확인해!”
“넵!”
카운터로 달려가 장부를 펼친 미야기의 눈이 동그래진다.
“이렇게나 많이 팔았어?”
“새로 오픈했으니까 당연한 거야. 이 매출을 정착시키는 게 너랑 내가 해야 될 일이고.”
“……나 진짜 결혼 잘한 것 같아.”
소학교 시절 옆집에 이사를 왔던 왈가닥 소녀 미야코.
동네 또래 아이들을 비롯해 두 살, 세 살 많은 형들을 쥐 잡듯 패고 다녔던 골목대장이었던 그녀.
미야기와 미야코, 마치 남매처럼 비슷한 이름에 처음엔 서로를 참 싫어했었다.
“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가 당신에 대해 잘 모를 때 이야기?”
그녀는 결코 왈가닥이 아니었다. 성격이 조금 드셀 뿐, 이렇게 현명한 여자였다.
“시끄러워!”
삐진 듯 미야코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미야기는 먼지털이와 깨끗한 천을 들고 가게 이곳저곳을 정리한다.
아내 때문에 정리할 구석이 하나도 없지만 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기를 위해 문을 활짝 열은 그.
“끄으!”
“살아 있네?”
“앗! 안녕하세요!”
“아무리 기쁘다지만 적당히 마셔.”
“하하. 예! 앗! 안녕하세요, 할머니!”
“그래, 미야기도 잘 잤어?”
그를 반기는 상점가의 사람들.
미야기는 겨울이 다 지나가서 그런지 부쩍 따뜻해진 햇살에 포근히 웃으며 출입구 옆에 놔둔 의자에 앉는다.
가끔 이렇게 시간이 여유로울 때 앉아서 휴식을 즐기자는 의미로 가져다 놓은 의자들.
“하아.”
그가 다시 가게를 돌아본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응. 땡큐.”
미야코가 넘겨준 커피를 받아 든 미야기가 다시 자신의 가게를 본다.
“넌 믿겨?”
“……솔직히 나도 안 믿겨.”
그래도 남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
학교를 다니는 와중에도 야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은 남편. 이 가게는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앞으로 우리 더 열심히 살자. 그래야 우리 스미레에게 자랑스러운 아빠, 엄마가 되지.”
“하하하!”
엄마, 아빠.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온 세상이 축복을 하는 것 같다.
“아직 춥다. 안으로 들어가자.”
“응.”
손을 꼭 잡은 둘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쿠구궁!
세상이 뒤집히는 충격이 그들을 강타한다.
“미야코!”
미야기는 다급히 넘어지는 아내를 끌어안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구궁!
“으악! 꺄악!”
카운터 아래에 몸을 숨긴 둘은 눈을 꼭 감았다.
이 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콰과광!
그들의 머리 위로 과일과 온갖 것들이 쏟아졌다.
“으으윽!”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 눈앞이 흐리다.
그러나 미야기는 다급히 아내부터 살핀다.
“미야코! 괜찮아?! 미야코!”
“나, 난 괜찮은 것 같아……. 우, 우리 스미레도…….”
다행이다.
미야기는 이를 악물며 부서진 잔해를 빠져나왔다.
“아.”
난리가 난 가게.
심장이 내려앉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나, 난 일단 병원부터 다녀올게.”
“그래. 얼른 가자.”
어렵사리 차린 가게지만, 건물은 멀쩡한 것 같으니 나중에 치워도 된다.
하지만 아내의 배 속에서 자라는 스미레가 잘못되는 건 두고 볼 수 없다.
“차키 챙겨서 나갈게.”
“으응.”
미야기는 밖으로 나가는 아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도 난리다.
‘여진은 없어야 할 텐데…….’
지금까지 느껴 본 지진 중 최고로 강했던 지진.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충격.
무너진 가게보다는 차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기에 그는 빠르게 차키를 찾는다.
“미, 미야기……미야기-!”
갑작스런 아내의 부름.
“왜 그래?”
“저, 저기…… 저기!”
의아해하며 밖으로 나간 미야기가 그대로 얼어붙는다.
저 멀리서 이상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매일 보던 풍경이 달라져 있다.
해수면이 원래 저렇게 높았던가.
또 왜 점점 커지는가.
꺄아아악! 으아아악!
저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비명 소리.
미야기의 낯빛이 하얗게 질린다.
“도, 도망쳐-!”
미야기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몸을 돌렸다.
높이 10미터의 파도가 그들이 있던 장소를 향해 밀려들었다.
* * *
다각다각!
“끄으!”
업무를 처리하던 종혁이 기지개를 켜다 앞을 보곤 피식 웃는다.
“이불 깔아 드려요?”
“습! 아, 아닙니다!”
깜짝 놀라 입을 훔치는 방송국 사람들과 본청 홍보부 경찰들.
“전 괜찮으니까 그냥 고정해 두고 볼일 보세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고작 1년도 안 된 사이에 신안에서 터진 굵직한 사건만 무려 4건이다.
한우 투자 사기부터 이번 인신매매 사건까지. 그 모두 종혁이 깊이 개입해 있었다.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들로선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또 사건만 하나 터진다면!’
그땐 정말 대박이다.
여기에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압해도에서도 인신매매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을 보는 군민들의 시선에 어려움이 서렸기 때문이다.
미안함과 죄책감, 더러는 적개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 눈치 어린 시선이 그들로 하여금 쉽사리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종혁은 어색하게 웃는 그들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건 신안 군민들이 평생토록 가져가야 할 업보다. 그동안 알고도 못 본 척한 죄에 대한 업보.
종혁은 이 부분에서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저도 잠시 쉬려고 하는데, 커피?”
“아이구. 감사합니다.”
종혁은 사람 숫자대로 커피를 가져와 나눠 줬다.
짙은 블루마운틴의 향기에 그들의 표정이 느슨해진다.
“햐. 진짜 경찰 복지가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요. 공무원 하면 거의 믹스커피지 않아요?”
은근히 물어 오는 그들의 모습에 종혁은 이쪽을 향한 카메라를 발견하곤 피식 웃었다.
“솔직히 이곳 신안경찰서가 전라남도에서 마지막으로 세워진 경찰서다 보니 많은 예산이 내려진 건 사실이죠.”
물론 이 서장실, 아니 신안서 전체에 있는 물건 중 컴퓨터를 제외한 모든 물품을 사비로 구매했다. 인테리어까지 말이다.
하지만, 종혁은 경찰 지원율 증가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또 제가 서장이다 보니 품위 유지를 위한 예산이 별도로 내려진 것도 있습니다. 거기에 관사도 있겠다, 유류비도 지원이 되겠다, 미혼이다 보니 딱히 돈 들어갈 곳이 없는 부분도 있고요.”
-오! 오오오! 오빠를 사랑해!
“아, 잠시만요. 예, 최종혁입니다.”
순간 종혁의 표정이 가라앉는다.
“알겠습니다.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어? 이거 설마?’
종혁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방송국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런 그들을 무시한 종혁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그러자…….
“어? 어어어?!”
종혁을 제외한 모두가 일어서 TV를 보며 경악한다.
저 멀리서 다가온 거대한 무언가가 도로를 집어삼킨다. 차를 집어삼킨다. 집을 집어삼킨다.
‘시작됐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잃어버린 30년, 40년으로 만들 재앙이.
얼어붙어 버린 사람들을 일견하며 핸드폰을 들고 일어서 서장실을 나선 종혁이 권아영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시작합시다.”
바이 재팬 프로젝트를.
-예, 보스.
수화기 너머의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후우.”
신안경찰서 옥상에서 담배 연기가 퍼진다.
무슨 생각인지 무심한 종혁의 표정.
자세히 보면 그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쯧.”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충성. 최종혁 총경입니다.”
장희락 경찰청장이다.
-뉴스 봤나?
“동일본 대지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방금 확인했습니다.”
-외교부에서 회의를 소집했어. 올라와.
“외교부…… 말입니까?”
-그곳에도 우리나라 국민이 있으니까.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담배를 비벼 끈 종혁은 곧바로 옥상을 빠져나갔다.
그의 눈이 걱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외교부 청사의 회의실.
얼굴을 붉게 달아오른 외교부 장관이 스피커 모드로 돌려진 전화기에 대고 항의를 한다.
-……여진이 일어날 수도 있고, 또 다칠 위험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구조대를 파견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국민들을 구하면서 일본 국민들도 돕기 위해서요!”
-허허. 괜찮습니다. 저희 구조대원들로도 충분합니다.
“그럼 대사관 직원들이라도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가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실종된 사람은 없는지, 사망한 사람은 없는지 확인 정도는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오셔서 다치면 저희가 무슨 망신입니까.
“다쳐도 그쪽에 항의를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을 말합니까!”
-좋은 뜻으로 오시려는 분들께서 다치면 국제사회가 저희를 지탄할 겁니다.
‘지랄 났네.’
계속 도돌이표인 대화를 들으며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최 서장.”
장희락 경찰청장이 옆구리를 찌르자 종혁은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전 왜 부르신 겁니까?”
자신이 본청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말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근무지는 멀고 먼 신안이다. 굳이 이 자리에 참석할 이유가 없었다.
그 말에 장희락이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인다.
“알잖아.”
“……크흠.”
그랬다. 이미 눈치챘다.
종혁은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경무관 진급자는 몇 명이나 가는 겁니까?”
“최 서장까지 셋.”
곧 경무관으로 진급할 이들에게 그럴듯한 감투를 씌워 주려고 하는 것이다.
재해 현장에서 우리나라 국민을 무사히 구출했다는, 구출하려 노력했다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경찰 조직 내에서의 정치적 입지가 커질 거다.
그리고 국민들의 시선도 좋아질 테니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이번에 신안에서 터진 사건 때문에라도 이런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그 정도는 가 줘야 면이 서겠지. 그런데 상황이 이래서야…….”
대한민국 국민들을 구출하기는커녕 출발도 못할 것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거 진짜 무쟈게 보여 주기 싫은가 보네.”
“음?”
회의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종혁을 본다.
외교부 장관도 잠시 말을 멈추고 종혁을 응시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으로 묻는 그.
“기자들을 대동하지 않겠다고 말해 보십쇼.”
“……설마?”
입을 떡 벌린 외교부 장관이 전화기를 향해 입을 연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재해 현장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 이를테면 사무 요원이나 기자들이 다칠까 걱정이 되어서 걱정을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경찰과 소방청의 정예들만 추려서 파견하겠습니다.”
-…….
‘진짜냐?!’
-크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기자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종혁을 봤다. 대체 어떻게 알아차렸냐는 듯한 눈빛들.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회귀 전에도 저 지랄을 떨었지.’
세계 각국 외신기자들의 출입을 금지했던 일본 정부.
정말 사건 현장이 위험해서가 아니다. 후에 밝혀지길 자신들의 땅에서 발생한 재해 현장의 참상을 보여 주기 싫어서, 그로 인해 일본이란 나라의 이미지가 망가질까 무서워서 출입을 막았다고 했다.
‘또 자국민들에게 피해 사실을 축소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그 참상도 축소시켜 방송했었고, 그에 후쿠시마 등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일본국민들이 정말 많았다.
종혁은 멍청한 그들의 결정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그렇게 그들은 몇 가지 제약을 가지고 일본으로 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