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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94화 (79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94화>

“몸은 좀 고되겠지만, 최소한 잘 걱정 밥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상관없었다.

1998년, 다니던 작은 공장이 망한 이후 하루 한 끼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그녀에게 몸이 좀 고달픈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으니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대기업도 망해 버리고, 누구나 아는 대학을 나온 사람도 퇴직을 당하던 세상.

그런 세상에서, 심지어 장애가 있는 그녀로서는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따라나서면 안 됐다.

“얘야?”

“하하. 어떠십니까?”

그녀는 눈매가 뾰족한 아주머니를, 앞으로 사장님이 될 아주머니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말도 못하고, 고아라서 찾을 사람도 없습니다.”

그녀는 의아해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미색도 이만하면 괜찮고…… 좋네. 자, 여기.”

신문지에 말린 돈뭉치가 건네지자 그녀를 여기까지 끌고 왔던 브로커가 허리를 숙인다.

“그럼 다음에도 또 이용해 주십시오. 아가씨, 열심히 살아. 한 몇 년 일하면 목돈을 쥘 수 있을 테니까 꾹 참고.”

그녀를 토닥인 브로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고, 그녀는 브로커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자신이 말을 못한다는 것을 안 이후 참 이것저것 사 주며 다정하게 대해 줬던 브로커.

정말 감사했다.

“흥! 따라와.”

그녀는 동네를 둘러보며 아주머니의 종종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섬이니까 물고기를 잡는 것일까.

‘숙소에 곰팡이는 없겠지? 아니야.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됐지.’

그녀는 작은 불안과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멈칫!

‘어?’

유흥주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그녀의 머리가 굳는다.

“뭐해! 안 들어오고!”

그녀는 다급히 수첩을 꺼내어 글자를 적는다.

여기서 일을 하는 건가요? 주방 일을 하는 건가요?

아주머니가 얼굴을 구긴다.

“지랄 염병을 하네. 내가 고작 주방 찬모 구하려고 그런 큰돈을 쓴 줄 알아?!”

그녀가 하얗게 질린다.

주춤주춤!

“어쭈? 상택이 아빠!”

“왜?”

건장한 장년인이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얘야?”

“어. 적당히 손 좀 봐 줘. 도망친다.”

“알았어.”

하품을 하며 다가오는 장년인에 그녀는 다급히 몸을 돌렸다.

덥썩!

“악!”

잡아채진 머리채.

퍼어억!

“커허억!”

옆구리에 주먹이 틀어박힌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았고, 그녀의 전신으로 주먹과 발이 쏟아졌다.

“얼굴은 때리지 말고!”

그렇게 그녀에게 지옥이 찾아들었다.

* * *

스윽!

허벅지를 타고 들어와 안쪽으로 향하는 손에 그녀는 기겁하며 쳐 냈다.

몸을 감싸며 물러섰다.

“악! 뭐야, 씨발! 박 사장! 박 사장-!”

“호호.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가씨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아가씨가 손님을 거부해도 되는 거야?! 이거 봐! 빨갛게 달아올랐잖아!”

아주머니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철렁.

그녀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호호. 그래요? 에고, 서울에서 온 아가씨라 그런지 여기가 좀 낯선가 봐요. 잠시만요?”

나오라는 손짓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가기 싫었다. 나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알기에 나갈 수 없었다.

“아이, 진짜 왜 이러지?”

“에이. 이거 이래서 술맛 나겠어?!”

“어머. 지영이 아빠! 지영이 아빠!”

손님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상택이 아빠!”

“으?!”

“아, 또 왜?”

“쟤 교육 똑바로 안 해? 손님을 때렸다잖아!”

“아, 씨발년.”

장년인은 얼굴을 구기며 룸 안으로 들어왔고, 파랗게 질린 그녀는 다급히 물러섰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 * *

달칵!

룸의 문을 닫고 나온 그녀가 흐트러진 옷을 추스른다.

“잘했어?”

그녀는 대답 대신 손에 쥔 돈을 내밀었다.

손님이 준 화대. 몸이 짓밟히고, 영혼이 짓밟힌 값, 5만 원.

돈을 받아 든 아주머니가 그녀의 위아래를 훑는다.

“흥. 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먹네. 그래, 이러니까 얼마나 좋아? 따라와.”

그녀가 아주머니의 뒤를 따른다.

악독한 기운을 가득 내뿜는 뒤통수를 보며 갈등에 휩싸인다.

그렇게 후문에서 씻은 후 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스스로 개목걸이를 목에 채운다. 자물쇠를 채운다.

찰그락.

안쪽에 쇠사슬이 고정된 개목걸이.

“쉬고 있어.”

끼익!

문이 닫힌다. 바깥에서 잠기는 문.

그녀는 공허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다 몸을 뉘었다.

저녁 10시. 도시는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이곳은 거의 다 잠이 드는 시각. 그녀도 잠을 청했다.

“으.”

잠에서 깬 그녀가 방 한쪽에 놓인 요강으로 비척비척 걸어간다.

찰그락! 찰그락!

쇠사슬이 흔들리는 소리가 그녀의 잠을 살짝 더 깨운다.

쏴아아아!

“흐우우. 흑!”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온다.

참고 참았던, 쌓이고 쌓였던 것이 터져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것일까.

방금 전 스스로 개목걸이를 찬 자신의 모습에, 길들여진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설움이 쏟아져 나온다.

“흐윽! 흑!”

그녀는 양손으로 입을 꽉 막은 채 소리 없이 울었다.

어제처럼.

그제처럼.

“후우우.”

한참을 쪼그려 앉아 운 그녀는 오늘도 목을 옥죄는 개목걸이에 포기를 하며 몸을 일으킨다.

휘청!

‘어?’

너무 쪼그려 앉아 있었던 탓일까.

그녀는 넘어지는 몸에 다급히 문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런데…….

쿠당탕!

“케엑! 켁!”

쇠사슬이 당겨진 충격에 숨통이 틀어막혔던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일어선다. 다시 터져 나오려는 슬픔을 틀어막으며 일어선다.

그 순간이었다.

“으?”

열려 있는 문. 분명 바깥에서 잠기기에 결코 열릴 리가 없는 문이 열려 있다.

크게 떠진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그녀는 다급히 개목걸이를 위로 들어 올린다.

목이 죄면 너무 아프기에 언제나 느슨하게 차는 개목걸이. 낑낑거리다 보니 결국 개목걸이가 벗겨진다.

그렇게 자유를 찾은 그녀는 다급히 가게 문을 열고 도망쳐 나왔다. 사장 내외가 저녁엔 집에서 잔다는 것을 알기에 거침없이 가게를 빠져나온다.

어둠으로 물든 거리.

듬성듬성 세워진 가로등만이 불을 밝히는 거리.

그녀는 자신이 맨발이라는 것도 있고 그대로 달린다.

어디로 가야 할까. 선착장으로 가야 할까. 어디서, 언제까지 숨어 있어야 할까.

헐레벌떡 뛰는 그녀의 눈에 환한 불빛이 비친다.

파출소.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뛰어들었다.

“뭐, 뭐야?!”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 두 남성.

그녀는 경악한다.

‘손님?’

유흥주점에 들렀던 손님이다.

자신을 짓밟았던 손님이다.

그 손님이 경찰이었다.

“어? 너는?!”

다행이다. 그녀는 다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메모지와 볼펜을 찾아 글을 적는다.

살려 주세요. 감금당하고 있어요.

“뭐?”

딱딱하게 굳는 경찰 손님.

“……김 순경, 이 아가씨 안쪽으로 데려가서 달달한 것 좀 먹여.”

“예? 아, 예! 저, 아가씨……?!”

휘청!

“어이쿠! 아가씨! 괜찮아요?! 오메. 이게 무슨 일이여.”

살았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깜짝 놀란 순경은 그녀를 추슬러 안쪽으로 데려갔다.

모포가 씌워진 그녀.

따뜻한 커피가 몸을 데운다. 삭막해지고 피폐해진 정신에 단비를 내린다.

스륵!

문이 열리며 경찰 손님이 들어온다.

“왔으니까 나와요.”

이제 가는구나. 이제 정말 살았구나.

그녀는 억지로 힘을 내며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호호. 감사해요, 김 경사님!”

“에이, 뭘. 정신에 좀 문제가 있다고 했지? 다음부턴 간수 잘해.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쿵!

그렇게 그녀의 희망이 무너져 내렸다.

* * *

“어휴. 요새 매출이 왜 이래.”

예전엔 하루 몇 십만 원도 벌었는데, 지금은 하루에 5만 원 벌기도 힘들다.

카운터에서 한숨을 푹푹 쉬는 아주머니를 힐끔 본 그녀가 정수기에서 물을 뜬다.

“작작 마셔! 물값 네가 낼 거야!”

탁!

그녀가 성큼성큼 아주머니를 향해 다가간다.

“뭐, 뭐!”

움찔하며 물러서는 아주머니.

재작년에 그 무섭던 아저씨가 사망하고, 더 부쩍 늙어 버린 아주머니의 손에서 펜을 낚아챈 그녀가 장부에 글을 적는다.

평생 물값, 밥값, 방값 다 냈잖아요.

십여 년 동안 자신이 벌어다 준 돈이 얼마던가.

브로커에게 준 몸값은 이미 옛적에 다 갚았다.

“흥!”

“저, 저……! 그래! 이제 나 따윈 안 무섭다는 거지! 썩을 년! 개 같은 년-!”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설움을 무시한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연습장에 무언가를 그리다 환하게 웃는 딸.

오늘도 짜증이 울컥하고 차오른다.

한참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아도 시원치 않을 텐데도 엄마를 잘못 만나 학교조차 못 가는 딸.

그녀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을 움직인다.

“엄마 그리고 있었어!”

이 못난 엄마가 그렇게 좋을까.

그래도 잘했다. 잘 그렸다.

자신과 꼭 닮은 그림을 바라보던 그녀는 딸에게 물병을 넘기곤 누워서 TV를 틀었다.

오늘따라 유독 눈에 들어오는 벽의 구멍, 개목걸이가 고정되어 있던 구멍을 무시하며 TV를 쳐다봤다.

“손님 받아, 이년아-!”

스륵!

그림을 그리다 잠든 딸에게 이불을 덮어 준 그녀가 화장대 앞에 서서 얼굴을 점검한다.

살짝 눌린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옷을 갈아입는다.

팬티처럼 짧은 반바지에 딱 달라붙는 탱크톱 상의.

새빨간 립스틱을 덧칠한 그녀가 룸으로 들어간다.

흠칫!

깜짝 놀란 그녀.

오늘 오후의 그 경찰이다.

꾸벅 고개를 숙인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준 최재수가 옆으로 오라며 손짓을 한다.

똑똑!

“호호! 우리 가게 에이스가 마음에 드세요? 어떻게 마음에 안 드시면 바꿔 드릴까?”

“아뇨.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호호호! 그럼 재밌게 노세요!”

술과 안주를 내려놓은 아주머니는 룸을 빠져나갔고, 최재수는 노래방 기기의 리모컨을 집어 든다.

그리고 이내 곧 흘러나오는 잔잔한 발라드.

최재수는 무심해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는 그녀를 향해 입을 가져갔다.

“이선영 씨 맞으시죠?”

움찔!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이름. 경악한 그녀가 최재수를 본다.

최재수는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이를 악문다.

이선영. 1998년, 한 남성을 따라나선 것을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여성.

이후 무려 13년 동안 본인 명의의 핸드폰도, 통장도 아무것도 이용된 내역이 없던 여성.

“다시 한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선영 씨, 경찰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륵!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삭막한 사막 속에서 살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희망이 다시 찾아들었다.

* * *

“아이고! 잘 노셨어요?”

“예. 덕분에 잘 놀았습니다.”

최재수의 서늘한 눈이 아주머니에게로 향한다.

능글맞게 웃는 얼굴을 박살 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그러면 안 된다.

“너무 재밌게 놀아서 그런데…… 저 아가씨 얼맙니까?”

“예?”

“제 가게에 데려가서 좀 쓸까 하거든요.”

최재수는 깜짝 놀라는 아주머니를 보며 싱긋 웃었다.

“썩을 년. 잘 살아. 도시로 간다고 또 도망치지 말고.”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손에 천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꽉 쥐고 있는 아주머니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딸의 손을 잡아끌며 가게를 나선다.

“할머니, 빠빠이!”

“……흥!”

딸랑! 탁!

유흥주점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다.

“아.”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온통 회백색이었던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물든다.

언제나 나와서 살폈던 동네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며 그녀를 단단히 옥죄던 모든 무형의 쇠사슬이 터져 나간다.

‘이렇게 쉬운 거였어……?’

그랬구나. 자신은 언제든 도망칠 수 있었던 거구나.

“흐으윽! 흑!”

“엄마? 울어? 이이잉!”

“일단 이동하죠.”

최재수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어두워진 거리를 걸었고, 이내 선착장에 도착했다.

어둠에 물든 바다가 그녀의 가슴을 적신다.

13년 만에 느끼는 자유의 냄새.

그녀가 다시 울음을 터트린다.

부우우웅!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다가왔다.

* * *

압해도에 도착해서야 겨우 울음을 멈춘 그녀.

최재수는 그녀를 M-모텔로 데려갔다.

“와아! 엄마, 엄마!”

넓고 깨끗하며 밝은 방과 욕실의 월풀에 팔짝팔짝 뛰는 딸.

얼떨떨해하는 그녀를 향해 최재수가 손짓을 한다.

그런 최재수를 보는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무시했다. 믿지 않았다.

또다시 희망을 품기엔 겪은 일이 너무 많았기에, 경찰은 다 똑같기에 이미 포기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경찰은 달랐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까.

대체 뭘 어떡해야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후두둑!

메모지에 눈물이 쏟아진다.

최재수가 손수건을 내밀어 그녀를 위로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그 지옥 속에서 살았을까.

“제게…… 들려주시겠습니까?”

당신이 겪은 지옥을.

포기해야 했던 희망을.

최재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빠드득!

이게 사람일까.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수많은 인간군상을 만나 온 최재수로서도 피가 거꾸로 솟는 그녀의 이야기.

두툼하게 쌓여 있던 메모지도 부족한 그녀가 겪은 지옥.

이젠 최재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죄송합니다. 경찰이 죄송합니다.”

견찰. 견찰. 견찰!

대체 왜 여기도! 왜 또!

이제야 종혁의 그 과했던 결단이 이해가 된다.

신안경찰서 산하 모든 파출소에 감찰을 진행했던 종혁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쿵!

무릎을 꿇은 최재수가 머리를 숙인다.

“같은 경찰로서 정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이 가득한 그의 모습에 이선영의 눈이 흔들린다.

최재수가 준 형사수첩에 글자를 적는 그녀의 손이 흔들린다.

그러면 다른 애들도 구해 줄 수 있나요?

자신이 있던 유흥주점을 거쳐 신안의 다른 섬으로 팔려 간 여성들을.

자신이 낳은 딸의 아빠를.

쿵!

고개를 든 최재수가 앞으로 내밀어진 글귀에 하얗게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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