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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93화 (79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93화>

    136. 언제나 여기에 있었다

    찰칵! 치이익!

    불이 꺼진 거실, 담배가 타들어 가며 어둠에 붉은 점을 찍는다.

    구해야 한다.

    지금도 무저갱 같은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애타게 구원을 바라고 있을 피해자들.

    하지만…….

    “미치겠네.”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이 터진다.

    장애인들을 향해 드리운 덫!

    꽃뱀 사기! 가해자는 장애인? 장애인도 피해자!

    그 아래로 주르륵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이 있다.

    이미 종혁이 해결한 일련의 사건들로 신안을 주목하고 있는 언론들.

    지금까지야 꽃뱀 사기만 부각이 되기에 괜찮지만, 그렇게 기사를 쓰도록 필사적으로 컨트롤하고 있지만 아슬아슬하다.

    사락!

    종혁이 앞 테이블에 놓인 두 장의 서류를 본다.

    브로커에 의해 신안으로 팔려 온 장애인 여성들. 이들의 현재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신안으로 온 것은 분명한데, 이후 행적이 전혀 파악되질 않고 있었다.

    “빌어먹을…….”

    종혁은 술을 들이켜며 이를 악물었다. 거실 창문을 통해 비치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다른 서류를 응시했다.

    혹여 피해자들과 관련이 있는 사건이 있을까 해서 자신에게 먼저 보고하라고 한 사건들.

    신안 모든 파출소를 감찰한 결과들.

    그리고 종배수와 이태흥 등이 노력해 준 결과들.

    덕분에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는 얼추 정리가 끝났다.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무조건 동시에 몰아쳐야 하는데…….”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면 이들은 구할 수 있겠지만, 인신매매를 당한 여성 장애인들은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녀들을 감금하고 있는 놈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입막음을 위해 무슨 짓을 저지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모두 구하기 위해선, 수많은 병력을 동원해 양쪽을 동시에 몰아쳐야 한다.

    그것이 지금 종혁이 고민에 빠진 이유였다.

    달칵!

    종혁의 고개가 현관으로 들어간다.

    열리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다 멈칫하는 최재수.

    “들어와.”

    “아, 계셨습니까?”

    “후우. 불이나 켜.”

    “옙!”

    불을 켠 최재수가 수많은 서류가 널브러져 있는 테이블을 보며 낯빛을 굳힌다.

    “무슨 일이야?”

    “……힘드시죠?”

    “까분다.”

    혀를 차는 종혁의 모습에 피식 웃은 최재수가 낯빛을 굳힌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대체 무슨 일이기에 종혁 자신의 숙소를 찾아온 걸까.

    서로 안면만 익힌 사이 정도로 꾸민 둘의 관계. 둘 사이의 친분이 깊다는 것이 밝혀지면 꽤 골치 아파진다.

    물론 지금이야 신안서를 완전히 장악했기에 들통이 난다고 해도 약간의 배신감을 주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그래도 신안을 떠날 때까지 들통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럼에도, 최재수 역시 이것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종혁은 그 이유가 궁금했고, 최재수는 그 위험을 감수한 이유를 말한다.

    “아무래도 관련 피해자를 찾은 것 같습니다.”

    쿵!

    “……뭐?”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승아 씨가 제보해 주셨습니다.”

    “최승아 씨?”

    도초도에서 끔찍한 악몽을 겪을 뻔했던 도초초등학교의 신임교사 최승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종혁은 이어지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 * *

    시간을 되돌려 이장 부인 등이 검거된 지 나흘 후.

    “선배님!”

    “승아야!”

    목포의 평화광장. 광주교육대학교의 몇 년 선배였던 여성, 박지영을 발견한 최승아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고, 박지영은 다급히 승아의 어깨를 잡으며 이곳저곳을 살핀다.

    “넌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아…….”

    ‘들었구나.’

    하긴 교육계가,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뒤집어졌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괜찮아요. 전 다행히 나쁜 일을 당하기 전에 경찰이 구해 줬거든요.”

    하지만 이미 피해를 입은 다른 선배 선생님들이 있다. 그들 때문에 최승아도 마음이 아팠다.

    “이 개새끼들! 개씨발 새끼들!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박지영이 발을 구르며 분노를 터트리고, 최승아는 씁쓸히 웃었다.

    “하아.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술을 마셔야 뒤집어지고 있는 속이 진정될 것 같다.

    둘은 근처의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챙! 꿀꺽꿀꺽!

    “크아!”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는 박지영의 모습에 최승아는 의아해한다.

    자신이 당할 뻔했던, 수항리에서 일어난 일은 같은 여자들에게 공분을 일으킬 만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박지영의 분노는 조금 과한 측면이 있었다.

    ‘물론 이렇게 화를 내 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박지영이 그런 최승아의 눈빛을 보곤 씁쓸히 웃는다.

    “……나도 사람한테 데서 그래.”

    “선배님이요?”

    “응.”

    지숙이. 가룡리의 악마들에게 시달렸던 지숙이.

    지금이야 맨날 웃고 있지만, 매일같이 연락해 오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사람에게 환멸이 날 정도다.

    그런 그녀의 말에 최승아가 깜짝 놀란다.

    “그, 그 사건의 피해자가 선배님 제자였어요?!”

    “응. 지금도 그렇고.”

    해가 바뀌며 한 학년 진급을 한 지숙이. 박지영은 다시 한번 지숙이의 담임이 될 수 있었다.

    “정말 최종혁 서장님이 아니었으면…….”

    지숙이가, 자신의 제자가 그런 일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 지나갔을 거다.

    움찔!

    “신안경찰서의 서장님이요?”

    “어? 알아?”

    “네. 절 구해 주신 경찰분께서…….”

    정중히 사과도 했지만, 최재수와 격의 없는 사이 같아서 특별히 기억하고 있다.

    “아, 맞아. 신안경찰서에서 개입을 했겠구나. 다행이다…….”

    종혁이라면 믿을 수가 있었다.

    “그럼 수항리? 거기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마을 전체가 한통속이었다며?”

    “……일단 이장 아내를 비롯해 제게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분들은 모두 체포됐고, 마을 사람들도 체포가 되거나 신안경찰서와 도초파출소로 소환? 조사? 그런 걸 받는 것 같더라고요.”

    “괜찮아? 마을 사람들은 뭐라고 안 해?”

    “합의를 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있는데…….”

    거의 상주하다시피 수시로 찾아오는 최재수 때문에 관사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합의?! 와, 진짜 사람들 왜 그러냐!”

    쿵!

    테이블을 내려치며 다시 술을 들이켠 박지영의 표정이 돌연 조심스러워진다.

    “도초초등학교랑 교육청은 뭐래?”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아요.”

    도초초등학교도 꺼림칙해하고 있고, 교육부에서도 발령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역시 그렇게 되는구나…….”

    전교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교육부에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여성 교직원들은 다리가 놓이지 않은 섬에 발령을 내지 않겠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이게 아니라도 그런 피해를 입은 사람을 계속 그곳에 둘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데?”

    “광주로 보내 준다고 하더라고요.”

    “뭐? 진짜? 그게 가능해?”

    임용고시는 두 가지가 있다.

    광주처럼 대도시나 도시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임용고시와 그 외 지방에서 근무를 할 수 있는 임용고시.

    즉, 지방임용고시를 치르고 합격한다면, 다시 임용고시를 치지 않는 이상 도시로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교육부는 그 원칙을 깨 버린 것이다.

    “근데 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돼,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 돼?”

    “그, 글쎄요?”

    최승아로선 그저 씁쓸하고, 얼른 잊어버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에휴. 마시자.”

    “네…….”

    둘은 한숨을 내쉬며 잔을 부딪쳤다.

    “지영 언니! 승아야!”

    잔을 입에 가져가던 박지영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 일어선다. 그건 최승아도 마찬가지다.

    “명지야!”

    같은 교대의 후배인 여성.

    셋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방방 뛰었다.

    “네가 여긴 웬일이야? 너 목포에서 교사 하고 있었어?”

    “몰랐어요? 저 하의초등학교에 있잖아요.”

    “뭐? 언제부터?”

    신안군 하의면. 도초도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큰 섬이다.

    “한 2년 됐나?”

    “그랬어? 몰라서 미안. 아, 앉아.”

    “그럴까요? 잠시만요?”

    잠시 밖으로 나간 명지가 일행인 남성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 명지를 황망하게 쳐다보다 이내 헛웃음을 터트리며 사라지는 사내.

    박지영과 최승아의 눈이 궁금증으로 물든다.

    “아, 오늘 소개팅 한 남자인데 매너가 꽝이라서요. 그래도 주선자의 얼굴을 봐서 밥은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둘을 만나게 됐다.

    “그렇게 아니었어?”

    “몰라요. 거지 같아.”

    지금까지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들 중 최악이었다.

    “그보다 승아 넌 괜찮아?”

    “아…….”

    걱정과 눈물이 들어차는 명지의 모습에 최승아는 씁쓸히 웃었다.

    터엉!

    박지영의 이야기까지 들은 명지가 테이블을 내려친다.

    “와, 진짜 사람들 왜 그러냐. 와, 진짜…….”

    꿀꺽꿀꺽! 타앙!

    “진짜 이러다 인간 혐오 걸리겠네. 아니 신안 사람들만 이러나?”

    치를 떠는 그녀의 모습에 최승아와 박지영이 의아해한다. 뭔가 일이 있어 보이는 듯한 그녀의 말투.

    “무슨 일 있어요?”

    “하의도에도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있죠.”

    있다. 아주 좆같고, 거지 같은 일이 있다.

    명지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우리 하의도엔 유령인 아이가 한 명 있거든요.”

    “유령?”

    “네. 출생 신고조차 안 된 10살짜리 아이가요.”

    마을 사람들 모두 쉬쉬하는 소녀가.

    쿵!

    최승아와 명지는 눈을 부릅떴다.

    * * *

    부스럭!

    암막 커튼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면 아이의 하루가 시작된다.

    눈을 떠 옆을 바라보는 소녀.

    오늘도 술 냄새가 가득한 엄마의 주름지고 화장을 칠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소녀는 이내 자신의 배 위에 올려진 엄마의 손을 치우며 일어선다.

    달칵!

    문을 열고 나가니 빛 한 점 없는 적막한 복도가 소녀를 반긴다.

    매일 소녀를 반기는 어둠.

    소녀는 능숙히 걸어가 다른 문을 열고 나간다.

    이번엔 햇빛이 소녀를 반긴다.

    한쪽엔 수돗가가 있고, 그 옆엔 버너와 냄비가 있고, 반대쪽엔 화장실이 있다. 이 건물에서 소녀와 소녀의 엄마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여기뿐.

    쏴아아아!

    “어푸어푸!”

    일어나면 세수와 양치부터.

    깔끔하게 씻은 소녀는 수돗가와 화장실 사이에 있는 철문을 열고 나간다. 그제야 탁 트인 세상이, 하의면 웅곡리가 소녀를 반긴다.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와아!”

    “꺄르르!”

    골목에 쪼그려 앉은 소녀가 앞을 스쳐 지나가는 또래의 아이들을 멍하니 응시한다.

    그런 소녀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안녕? 넌 누구야?”

    “야, 야. 안 돼. 엄마가 쟤랑은 말하지 말랬어.”

    “왜?”

    “몰라. 아무튼 말 걸면 혼나. 가자.”

    “으응.”

    친구에게 끌려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던 소녀는 이내 한숨을 내쉰다.

    그런 소녀의 머리에 따뜻한 손길이 닿는다.

    “……엄마!”

    “아으.”

    잘 잤냐고 묻는 엄마.

    말을 하지 못하지만, 말을 가르쳐 준 엄마.

    얼굴에 가득한 주름이 포근하게 구겨지자 소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난다.

    “아으으.”

    이리저리 움직이는 엄마의 손에 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밥? 알았어! 반찬이 뭐야?”

    “아아으.”

    “김치? 또 김치야? 계란은 없어? 있어?! 와아!”

    소녀의 얼굴에 환한 꽃이 피자 소녀의 엄마도 활짝 웃는다.

    엄마는 소녀의 등을 다독이며 건물로 이끈다.

    그 순간이었다.

    “실례합니다.”

    “으?”

    한 남성이 모녀의 앞을 가로막는다. 최재수다.

    ‘처음 보는 아저씨…….’

    이 동네 아저씨가 아니다.

    ‘이 아이가…….’

    최재수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소녀를, 최승아가 말한 소녀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그녀의 모친을 본다.

    “안녕하십니까. 신안경찰서 생활안전과의 최재수 경사입니다.”

    움찔!

    순간 주위를 둘러보는 소녀의 모친. 이내 아무도 없는 걸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흥!”

    재수를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던 소녀의 모친은 이내 콧방귀를 뀌며 돌아선다. 소녀의 팔을 잡아끈다.

    “앗!”

    “으으!”

    얼른 오라는 듯 더 거칠게 잡아끄는 소녀의 모친.

    “아, 아니…….”

    당황한 최재수가 손을 뻗다가 그대로 굳는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들다 이런저런 손짓을 하는 소녀의 행동 때문이다.

    그것이 재수의 발길을 붙든다.

    “엄마…… SOS.”

    엄마를 구해 주세요.

    소녀의 손짓은, 수화는 분명 그것이었다.

    ‘장애인. 출생 신고가 안 된 딸…….’

    최승아가 말하길 소녀의 모친은 유흥주점에서 일했다고 했다.

    순간 최재수의 머릿속에 현재 종혁이 구하려 애쓰는 사람들, 빚에 의해 팔려 간 장애인들이 스쳐 지나간다.

    “……철아. 나 재수 형인데, 신원 조회 좀 해 줄 수 있을까? 몽타주는 금방 보내 줄게.”

    최재수의 시선이 소녀와 소녀의 모친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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