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90화>
따악! 딱!
핸들을 통해 느껴지는 친구, 복순이의 흔들림에 여성이 미소를 짓는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네.’
언제나 침묵과 인내가 강요되는 시각장애인 보조견, 복순이.
눈이 보이지 않지만, 함께 살아온 세월이 벌써 3년이다. 흔들림, 숨소리에서도 복순이의 감정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산책을 나와서 그런지 계속 기분이 좋았던 복순이. 방금 그런 복순이의 기쁨이 커졌다.
정확히는 설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왜일까?’
의아해하던 그녀는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붕어빵의 냄새.
“못 말려, 진짜.”
옅게 웃은 그녀가 붕어빵의 냄새와 붕어빵 틀을 뒤집는 소리를 쫓아 걸음을 옮긴다.
주인의 뜻을 짐작한 복순이가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며 붕어빵 장수에게로 안내한다.
정확히 붕어빵 천막 앞에 서자 엉덩이를 땅에 붙이며 다 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복순.
그녀가 붕어빵 장수에게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오늘도 붕어빵 사러 온 거야?!”
“복순이가 먹고 싶어 해서요. 2천 원어치만 주세요.”
“복순이 짱! 짱짱! 알았어요!”
붕어빵 장수가 포장을 하는 사이 여성이 자신의 몸을 더듬는다.
‘천 원짜리가…… 아, 맞아.’
바지 앞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든 그녀.
“여기 있습니다.”
돈과 붕어빵이 담긴 봉지를 교환한 그녀가 대각선으로 메고 있는 에코백에 봉지를 집어넣는다.
“많이 파세요.”
“안녕히 가세요! 복순이도 잘 가!”
복순이가 꼬리를 맹렬하게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복순아, 공원으로 가자.”
공원이라는 단어에 복순이의 걸음이 빨라진다.
소음이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시원한 바람 소리가 대신하는 공원이 나타난다.
벤치에 앉은 여성이 복순이에게 적당히 식은 붕어빵을 물려 주며 잠시 허공을 바라본다.
“……따뜻해.”
어제는 매섭도록 춥더니 오늘은 포근하다.
살갗에 닿는 따사로운 햇살. 손끝을 감싸는 서늘한 바람.
그녀는 에코백에서 작은 책 한 권을 꺼내 든다.
요새 잘 읽고 있는 점자 소설책.
그녀는 어제에 이어 다시 주인공의 모험에 빠져든다.
“끼잉.”
“아, 너무 오래 있었네.”
이제 그만 가자는 복순이의 부름에 그녀는 뒤늦게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었다는 걸 깨닫곤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평온하고 좋았던 나들이였다.
“집으로 가자.”
따악! 딱!
그녀는 복순과 함께 다시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향한다.
띠리링! 띠리링!
잠시 그녀의 걸음을 멈춰 세우는 핸드폰 벨소리.
“네, 여보세요. 아, 언니!”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저야 잘 지내죠. 언니는요? 그러니까요. 우리 한번 봐야 하는데……. 그럼 토요일에? 오케이! 토요일 천안역에서. 아, 저요? 이번 달엔…….”
그녀의 얼굴이 잠시 흐려진다.
“600이요. 언니는요?”
-난 1800!
“……그래요?”
-하! 이걸로 뭘 살까? 버킨백? 아니, 보증금 보태서 더 큰 집으로 갈까?
그녀는 그렇게 상대방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공기가, 내딛는 발바닥에 닿는 땅이 익숙해진다.
‘집에 다 왔구나.’
걸어오는 사이 더 얼어붙은 몸.
피부 아래서 뜨거운 열기가 솟고, 머리가 살짝 멍해진다.
감기가 가까이 와서 문을 두드리는 기분. 아무래도 집에 들어가면 뜨거운 물로 씻어야 할 것 같다.
“오늘 저녁은 귤 먹자.”
보일러도 강하게 틀고, 못다 읽은 부분도 마저 읽어야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앞의 공기가 달라진다.
복순도 좌우로 움직이다 멈춰 선다.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 옳지. 똑똑하구나?”
“……누구시죠?”
“경찰입니다. 김규리 씨라고 불러 드려야 할까요?”
쿵!
그녀의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그려진다.
왔구나. 드디어 온 거구나.
“감사합니다.”
날 말려 줘서 감사합니다.
나를 잡아 줘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 * *
‘고맙다고?’
종혁의 눈이 흔들린다.
짙은 후회의 얼굴, 안도의 얼굴.
무너지고 있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종혁이 그녀의 옷차림을 살핀다.
구매한 지 족히 10년은 된 것처럼 허름한 패딩과 2000년 초반에 유행했던 때가 타지 않은 부분을 찾을 수 없는 어그부츠. 끼고 있는 벙거지 장갑도 올이 모두 나가 있는 상태다.
말이 안 된다. 지난 4년간 그녀가 장성준에게 받은 돈이 무려 1억 6천만여 원이다.
“당신, 그 돈 다 어쨌어?”
“뺏겼어요. 모두 다.”
쿵!
“……뭐?”
서글피 웃은 그녀가 4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다.
* * *
그녀의 세상은 처음부터 좁았고, 흐릿했다.
선천적인 장애.
사물을 눈에 가까이 가져가지 않으면 적힌 글자조차도 읽을 수 없는 하얀 세상.
빨갛고, 파란 건 알지만 그게 어떤 사물인지 알 수 없는 세상.
부아앙! 빵빵!
우글우글. 와글와글. 퍼억!
위험한 것으로 가득한 세상.
그래도 좋았다.
“사랑해, 딸.”
“우리 딸, 잘한다!”
남들도 다 똑같은 세상 속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참 좋았다.
하지만 학교란 곳에 등교를 하고 나서부터 달라졌다.
학교엔 친구란 존재가 많다고 했다.
친구가 무엇이냐고 엄마한테 물으니, 함께 있으면 재밌고 행복한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야! 눈 병신!”
“아, 씨발. 걸리적거린다고. 꺼지라고.”
학교는 지옥이었다.
그녀는 학교에 가기 싫었다. 부모님께 울고불고 매달렸다.
그에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장애인 복지관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비로소 안식과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친구들. 언니, 오빠, 동생들. 몸이 불편한 오빠도 있고, 정신이 불편한 언니도 있었다. 가끔 혼자서 떼를 쓰는 동생도 있었다.
참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딸, 미안해.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데리러 올게.”
몇 년 사이 부쩍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던 어느 날 저녁, 잠에 들던 그녀는 엄마의 말에 번쩍 깰 수밖에 없었다.
“얼른 나와! 그러다 깰라!”
“알았어요!”
우당탕!
“엄마! 아빠!”
놀라 굳은 몸을 겨우 이끌며 쫓았다.
방문에 부딪쳐 이마를 다치고, 벽에 무릎이 찍혀 넘어졌다.
닫히는 현관문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현관문은 매정하게 닫히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는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됐다.
“아이고, 썩을 연놈들. 어떻게 지 자식을……. 그것도 이런 자식을……. 그런데 미안한데, 방을 빼 줘야겠어. 월세가 너무 밀렸어.”
“아, 꺼져!”
“저흰 장애인 알바 안 씁니다.”
부모란 담벼락이 사라진 세상은 너무도 냉혹했다.
그게 18살 때의 일이었다.
스윽!
코를 찌르는 술 냄새, 엉덩이를 움켜쥐는 손을 떼어 낸다.
뜨겁게 달아오른 손님의 등을 누른다.
다시 거칠고 커다란 손이 허리를 파고든다. 다시 떼어 낸다.
지잉! 지잉!
“수고하셨습니다.”
“아가씨는 얼마야?”
“전 안마사라서요. 그럼.”
“에이. 5만 원이면 돼? 10만 원? 그래, 10만 원으로 하자.”
화악!
거칠게 자신을 잡아끄는 손길에 결국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10만 원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린 그녀는 묵묵히 견디며 숫자를 셌다.
짜아악!
“아, 씨발. 손님이랑 하지 말라고 몇 번 말해? 네가 그러면 다른 애들한테도 손님들이 질척대잖아!”
좆같다. 거지 같다. 관두고 싶다.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자신도 이런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꽉 채운다.
“아, 됐고. 내일부턴 나오지 마. 오늘 손님이 준 돈은…… 쯧. 그냥 가지고 가고.”
여길 그만두면 다음 달 월세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 되면서도, 이렇게 등이 떠밀려서라도 그만둘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스스로를 내던지면서까지 번 10만 원을 손에 꽉 쥔 채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딱! 따악!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다시 시끄럽고 위험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 내던져진 그녀는 주저앉아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며 자신을 말리던 언니들의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그녀의 전신을 내리누른다.
하지만 계속 좌절하고 있을 순 없다.
내일부터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따뜻한 국물을 먹을 수 있고, 핸드폰 요금을 낼 수 있고, TV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주 잠시나마 이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
그리고 울지 말라며 볼을 핥는 복순이의 밥을 줄 수 있다.
“우리 복순이…….”
냉혹하고, 잔인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 준 가족.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와 가족이 되어 준 존재.
입술을 깨문 그녀가 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돈을 많이 받았으니 복순이와 소시지를 먹어야지.
애써 행복한 생각을 하며 걷는다.
그리고 다음 날 일자리를 얻기 위해 복지관을 찾는다.
콰장창!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부서지는 소리.
“꺄악!”
뭔지 모른다. 하지만 뭔가 잘못됐다.
“미, 민영아! 도망쳐!”
그녀는 다급히 몸을 돌렸다.
“어딜. 씨발.”
콰악!
“아악!”
내팽개쳐진다. 복지관의 오빠가 그녀를 끌어안아 불한당들에게서 보호한다.
“형님, 여자가 또 있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형님?”
“뭐? 아, 씨발. 병신년들은 더 안 받아 준다고 했는데……. 일단 놔둬 봐. 자, 다들 조용!”
복지관이 조용해진다.
흐느끼는 소리조차 억지로 틀어막으며 조용해지려 애쓴다.
“새로운 멤버가 왔으니 다시 말한다. 여기 복지관의 관장이 너희들 명의로 우리 캐피탈에서 돈을 빌렸다.”
쿵!
‘과, 관장님이?’
말도 안 된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돌봐 줬던 관장님이다.
“그런데 관장이 없네? 토꼈네?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너희가 갚아야지 않을까?”
쿠궁!
“마, 말도 안 돼요! 겨, 경찰에 신고할 겁니…….”
뻐억!
“크악!”
“이 씨발놈이. 사장님께서 얘기하시는데 어딜……. 이제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사장님.”
“경찰에 신고하고 싶으면 해. 하지만 너희도 알잖아. 이 좆같은 세상이 너희 병신들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경찰에 신고를 한들 제대로 조사할까. 혹시나 자신들이 잡혀 들어간다고 해도 금방 나오게 될 거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해. 우리한텐 차용증이 있다는 걸.”
한 사람당 무려 2억의 차용증이.
내년이면 2억이 2억 5천만 원이 되고, 그다음 해엔 4억이 된다.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 봐. 우린 지구 끝까지 너흴 쫓아서 이 돈 받아 낼 테니까.”
“……훌쩍!”
포기한다. 모두처럼 민영도 포기해 버린다.
“알아들은 것 같으니까…… 대가리 병신 말고는 모두 차에 실어. 안마사나 생산직으로 돌리면 되겠지.”
“옙!”
“따라와!”
“아악!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사람들이 끌려 나간다. 언니, 오빠, 동생들이 끌려 나간다.
보호해 주고 있던 오빠마저 끌려 나가자 민영은 바들바들 떤다.
그런 그녀의 앞에 한 사람이 주저앉는다.
그와 동시에 코를 찌르는 알싸한 담배 냄새.
“최 사장! 눈깔 병신년이랑 귀머거리, 아가리 병신 셋 더 있는데…… 아니, 와꾸들은 괜찮……. 어차피 쑤시면 똑같잖아! 에이, 씨발. 알았어. 그래, 박 사장. 나야! 병신년들 좀 더 있는…….”
떠는 것 말고는 민영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 씨발.”
“왜 그러십니까?”
“진짜 다 안 받는다네. 이것들을 어쩌지? 통나무로 만들기는 좀 그렇고…….”
“사장님, 제가 아주 기가 막힌 생각이 있는데 말입니다. 제가 작년에 깜빵에 있을 때 같은 방 사기꾼 새끼가 짠 아이템이 있거든요?”
속닥속닥!
“오! 이야, 박 대리! 아니, 너 오늘부터 과장 해!”
“흐흐. 감사합니다!”
턱!
턱이 잡혀 고개가 들린다.
“아가씨, 돈을 갚을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밥은 먹고 살게 해 줄게. 인센티브도 주고.”
“……뭔데요?”
그렇게 그녀는 장성준과 연인이 되어야 했다.
* * *
처음엔 너무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등 뒤에서 들리던 묵직한 소리.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머리를 찌르던 쇳덩이.
퀴퀴한 곰팡내와 담배, 술 찌든 내가 가득한 나는 작은 방에서 민영은 사채업자들의 감시를 받으며 장성준과 통화를 했고, 연인이 됐다.
너무도 순박했던 사람.
웃음이 헤펐던 사람.
아무것도 아닌 작은 글귀에도 기뻐하고, 작은 선물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하던 사람.
그래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어느새 사랑에 빠져 버린 자신을 보게 됐다.
감히 그런 사람을 사랑해 버리고 만 거다.
그러나 진실을 밝힐 순 없었다.
“미안해서…… 떠나갈 것 같아서…….”
속이기 싫지만, 속일 수밖에 없던 4년의 시간.
앞으로 평생 속죄해야 되는 4년의 속임.
“흑!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콰득!
민영의 집 안, 종혁이 쥔 컵에 금이 간다.
“후. 오민영 씨.”
“네.”
“당신을 사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체포가 부당하다 생각되면 법원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제길.’
종혁은 후련하게 웃는 그녀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강압에 의한 사기를 저지를 수밖에 없던 그녀.
하지만 오민영에게 완전히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어쩌면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한 거짓일 수도 있는 그녀의 말. 종혁이 작은 시험을 던진다.
“오민영 씨.”
“네, 형사님.”
“협조를 해 주신다면, 양형에 선처를 구해 볼 겁니다.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그냥 협조할게요.”
양형의 선처 따윈 필요 없다. 그냥 법대로 처벌을 받고 싶다.
그 안에서 속죄하고 회개하고 싶다.
그 말에 종혁은 깨달았다. 그녀의 말이 모두 진심임을.
‘아, 씨발. 진짜 빌어먹을 좆같네.’
참 좆같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