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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89화 (789/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89화>

    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장성준의 아침도 일찍 시작된다.

    아직 해조차 뜨지도 않은 새벽.

    부스스 잠자리에서 일어난 장성준이 멍하니 어두운 방 안을 본다.

    오늘도 찾아온 아침.

    그는 습관적으로 방의 불부터 켠다.

    “오늘은 비가 오려나.”

    방 안 공기가 습하고 추운 걸 보니 뭐가 와도 올 것 같다.

    그렇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얼른 씻고 밥도 간단히 차려 먹은 장성준은 집을 나서려다 잠시 멈칫한다.

    신발장 위에 올려져 있는 핑크색 방한용 장갑.

    여자친구가 겨울이라고, 아끼지 말고 편하게 쓰라고 선물해 준 장갑이다.

    “흐흐. 아차!”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다녀올게라!”

    “비 올 것 같다! 조심혀!”

    “예!”

    부르릉!

    집이 골목 안에 있기에 먼 곳에 주차해 놓은 차에 올라탄 그는 다시 아차 하며 핸드폰을 꺼내 든다.

    찰칵!

    오늘도 네가 준 선물과 함께.

    오늘도 파이팅!

    장갑을 끼고 있는 손을 찍어 여자친구에게 문자로 보낸 그는 라디오를 켜며 바다로 향했다.

    -올래! 올래! 튕기지 말고 내게 다가올래!

    오늘도 즐거운 아침의 시작이었다.

    * * *

    터벅터벅!

    “푸후.”

    한숨을 내쉰 장성준이 집을 향해 걷는다.

    그런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봉지.

    “응?”

    도초초등학교 관사 대문 앞을 서성이는 웬 노인을 발견한 그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허리 굽은 노인.

    “어흠. 일 끝나고 오는 거여? 밥은 먹었고?”

    “예. 어르신도 식사하셨습니까.”

    “나도 먹었제. 시간이 몇 신디.”

    “근디 여기서 뭐하십니까?”

    “여그 선생님하고 할 말 있어서 온 것잉께 난 신경 쓰지 말고 갈 길 가.”

    “……어르신, 그러다 큰일 납니다.”

    “아, 신경 쓰지 말고 가라니께.”

    “그러다 어르신마저 잡혀간다고라.”

    “……그럼 어쩐디야! 내 안 사람이랑 며느리는 빼 와야 할 거 아녀!”

    부인과 며느리가 잡혀가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아들은 평생 마시지도 않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손주들은 나날이 의기소침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무릎을 꿇어서라도 합의를 해야 됐다.

    “어르신,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을 하고 있어라. 지금 선생님 괴롭혀 블믄 외지에 나가 있는 어르신 자식들에다가 손주들까지 욕먹는당께요.”

    지금도 기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수항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아마 이 근처에도 숨어 있을지 모른다.

    움찔!

    “……옘병할! 노망이 났으믄 관짝에 들어갈 생각을 해야제! 뭐헌다고! 아이고! 아이고!”

    노인은 가슴을 치며 몸을 돌렸고, 장성준은 멀어지는 노인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다 업보제. 쯧쯧쯧.”

    다시 한숨을 내쉰 그는 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어라.”

    “왔냐? 니 앞으로 택배 왔다잉.”

    “무슨 택배요?”

    “니 여자친구한티 온 것이던디?”

    눈이 동그래진 장성준이 얼른 방으로 달려간다.

    책상에 놓인 작은 박스.

    재빨리 박스의 테이프를 뜯은 그의 입이 주욱 찢어진다.

    퓨마 한 마리가 그려진 옷 한 벌과 그 위에 놓인 핑크색 아기자기한 편지 한 통.

    그는 옷보다 편지부터 뜯어 본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가 찍힌 사진이 붙여져 있는 편지.

    To. 오빠.

    사진 보이죠?

    벌써 봄이 오려나 봐요!

    …….

    길을 걷다 오빠 생각이 나서 샀어요.

    또 아낀다고 놔두다 버리지 말고, 막 입고 다녀요.

    사랑해요.

    “아따, 뭘 또 이런 것을 보내고 그런데…….”

    그래도 고맙다. 언제나 자신을 생각해 주는 여자친구가 참 고맙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믄 소원이 없겄는디…….”

    매번 만나려 할 때마다 일을 만들어 버리는 하늘이 원망스럽다.

    “진짜 난중에 올라가믄 단단히 따질 것잉께 각오 하쇼잉.”

    혀를 찬 그는 편지를 곱게 접어 책상 위에 있는 박스에 넣는다.

    이미 수십 통의 편지가 있는 박스.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편지들을 쓸어내리던 그는 이내 화장실로 가서 몸을 씻고 나온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보내 준 옷을 입고 어머니에게 다가간다.

    “엄니! 나 좀 찍어 줘요!”

    “……옘병. 또 그 지랄이냐?”

    참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의 여자친구. 그런데 이런 정성 때문에 미워할 수가 없다.

    “에휴.”

    ‘그려. 언젠간 만나겄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있으니 자신이 죽기 전에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희망을 가졌다.

    “거기 서 봐.”

    그녀는 곧 노총각이 될 아들을 위해 오늘도 협조를 해 주기로 했다.

    찰칵!

    “자.”

    “감사합니다!”

    냉큼 방으로 돌아온 장성준이 사진을 여자친구에게 전송한다.

    그리고 다시 옷을 벗고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집을 나서는 그.

    “룰루.”

    지이잉! 지이잉!

    “응?”

    장성준의 얼굴이 다시 활짝 핀다. 여자친구였다.

    “사진 본 겨? 지금 근무 시간 아니여?”

    -오, 오빠…… 흑!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다.

    “뭐, 뭐여! 뭔 일이여!”

    -나, 나 어떡해!

    “뭔 일이냐니께!”

    -그, 그게……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끊을게요!

    “씁! 얼른 말 안 혀?! 정말 나 화낸다잉!”

    -……나 점심 먹고 오다가 차를 박았어요.

    “또?!”

    이미 전적이 화려한 여자친구. 벌써 몇 번째 차를 박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을 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다.

    “어이구, 다친 곳은? 병원은 가 봤어?”

    -내가 다친 곳은 없는데…….

    문제가 있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가 있다.

    -내가 박은 차가 외제차예요…….

    ‘오메.’

    “수리비가 얼마나 나왔는디? 보험 처리는 된데?”

    -저쪽에선 그냥 보험 처리는 하지 말고, 그냥 800만 원만 달라는데…….

    장성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체 뭘 어떻게 박았기에 800만 원을 달라는 걸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에휴. 얼마가 부족한디?”

    -……600만 원이요.

    “알았어. 기다려. 곧 보내 줄 테니께.”

    아직 은행이 문 닫으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흑! 흐으윽!

    “뭘 또 울고 그런디야. 뚝!”

    -미안해서……. 진짜 맨날 이런 부탁만 하는 내가 너무 짜증 나고 오빠한테 미안해서…….

    “됐어. 돈 부치고 연락할게. 일단 근처 아무 다방, 아니 카페에 들어가서 달달한 것 좀 마시고 있어. 지금 회사믄 잠깐 나오고.

    -응……. 미안해요. 사랑해요.

    “그려. 나도.”

    통화를 종료한 장성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업보제. 업보여.”

    여자친구는 대체 전생에 뭔 죄를 그렇게 많이 저질렀기에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 걸까.

    그는 옷을 챙겨 들고 은행으로 향했다.

    “어? 성준 씨.”

    “서장님?”

    여자친구에게 돈을 부치고 은행을 나선 장성준은 종혁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그럼 수고하셔라.”

    “예, 성준 씨도 수고하세요.”

    장성준을 떠나보낸 종혁이 눈빛을 가라앉힌다.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장성준의 집을 찾았던 종혁.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예, 지원과장님. 접니다. 계좌번호도 좀 따 주십시오.”

    종혁은 다시 신안서로 향했다.

    똑똑!

    “예. 들어오세요.”

    수사지원과장이 안에 들어오자 종혁이 몸을 일으킨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이구. 감사합니다.”

    커피를 따른 종혁이 수사지원과장 앞에 내려놓으며 소파에 앉는다.

    후룩!

    “음. 뭔가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좀 더 각별한 것 같습니다. 특별한 비법이라도?”

    “지원과장님을 향한 제 마음?”

    “으하핫!”

    종혁도 웃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수사지원과장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나왔습니다.”

    “어딥니까?”

    “천안입니다.”

    전화번호 발신 위치 추적과 계좌 추적 결과, 종혁이 부탁한 인물이 경기도 천안에 거주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후. 멀리도 산다.”

    천안과 신안을 왔다 갔다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허리가 아파 오는 기분이다.

    “혹시 장성준 씨가 범죄에 연루된 겁니까?”

    곧 표창장을 받을 장성준. 만약 그가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면 골치가 아파진다.

    “다행히 가해자는 아닙니다.”

    “그럼 피해자라는 건데…… 사기입니까? 협박입니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바로 이 두 가지 혐의다.

    “아무래도 사기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사람의, 남자의 순정을 가지고 노는 악질적인 사기. 꽃뱀 사기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꽃뱀 사기와 다른 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얼굴조차 못 봤다는 것이다.

    “음. 이번엔 그냥 다른 직원들에게 맡기시죠.”

    현재 상황에서 서장이 자꾸 자리를 비우면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른다. 우려가 들 수밖에 없었다.

    “저도 직원들에게 맡기고 싶지만…….”

    이미 여유가 있는 경찰들 전부 수항리에 가 있는 상태다.

    “하아. 죄송합니다.”

    “지원과장님이 미안할 게 뭐 있습니까.”

    도초파출소 경찰들이 싹 다 개새끼다.

    “마음 같아선 저라도 돕고 싶지만…….”

    “지원과장님은 자리를 지키셔야죠.”

    “그쪽 관할에 연락해 CCTV 영상을 보내 달라고 할까요?”

    “괜찮습니다. 그냥 찬 공기 좀 쐬고 온다고 생각하면 되죠.”

    이번 사건을 직접 맡으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솔직히 지금은 신안에 붙어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충성.”

    수사지원과장이 서장실을 나가자 종혁도 몸을 일으켰다.

    “가자, 가.”

    * * *

    부우웅!

    천안의 한 건물 앞에 차를 멈춰 세운 종혁이 건물 1층에 있는 은행을 본다.

    “이곳이란 말이지…….”

    이곳에서 장성준이 이체한 돈이 인출됐다.

    즉, 장성준을 속이고 있는 여성에 대한 단서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종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종혁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이야.”

    보통 범죄자들은 본능적으로 인적이 드문 곳을 찾는데, 이곳은 번화가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사람이 많다.

    굉장히 대범한 놈이었다.

    “그만큼 안 걸릴 자신이 있다는 거냐.”

    눈빛이 흉흉해진 종혁이 은행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딱! 딱!

    “문 열었습니다. 조심히 나오세요.”

    “감사합니다.”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다른 손엔 안내견의 몸통과 연결된 핸들을 잡은 시각장애인 여성.

    그녀는 문을 열어 준 경비원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종혁을 지나쳐 은행을 빠져나갔다.

    타고나길 친절한 것인지, 아니면 교육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종혁은 방금 전 시각장애인 여성을 배웅해 주었던 경비원에게 다가서서 경찰공무원증을 내밀었다.

    “경찰입니다. CCTV를 좀 열람하고 싶은데요.”

    “……경찰이요? 자, 잠시만요.”

    경비원은 곧장 안쪽으로 향해 상황을 설명했고, 잠시 후 다시 돌아와 종혁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종혁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내가 종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로 CCTV를 보려고 하시는지…….”

    “좋은 일로 찾아뵙지 못해 미안합니다. 신안서 최종혁 총경입니다.”

    경계심과 짜증이 뒤섞인 그의 모습에 종혁은 사정은 설명했고,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니, 하필이면 우리 지점에서…….”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아. 이쪽으로 오시죠. 아, 일단 계좌번호부터 알려 주시겠습니까?”

    출금 시간을 알 수 있다면, 용의자를 특정 짓는 건 수월할 거다.

    “여기 이 번호입니다.”

    “김 주임, 이거 조회 좀 해 줘.”

    “네, 과장님…… 어머?”

    김 주임이라 불린 여성이 쪽지를 받아 들고 깜짝 놀란다.

    “음? 왜 그래? 아는 고객이야?”

    “예…….”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계좌를 들여다보는 게 일인 은행원.

    보통 계좌번호를 보고 그게 누구인지 알아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계좌만큼은 기억에 남았다. 계좌 주인에게 뚜렷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도 왔다 가셨는데…….”

    “예?!”

    “아까 1시 30분쯤에…… 그 왜 있잖아요, 과장님. 시각장애인인 여성분이요.”

    쿵!

    “아아, 그 아가씨? 그분이라면 알…… 어? 어, 어디 가십니까?!”

    다급히 몸을 날리는 종혁의 모습에 놀라는 둘.

    그들이 그러건 말건 은행을 뛰쳐나온 종혁은 은행 주변을 둘러보다 가로수를 걷어찼다.

    “아오, 씨!”

    눈앞에서 놓쳤다.

    종혁은 머리를 벅벅 긁다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

    어떠한 가능성이라도 결코 배제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래도 시각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런 사기를 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건 하나였다.

    ‘공범이 있는 건가…….’

    “그건 곧 알게 되겠지.”

    종혁은 눈빛을 가라앉히며 다시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 * *

    휘이잉!

    “아…….”

    춥다. 옷을 여민 그녀의 손에 안주머니 속 두툼한 봉투가 만져진다.

    잠시 멍한 눈으로 가슴팍을 쓰다듬던 그녀는 느슨한 핸들에 아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아니야. 괜찮아. 가자.”

    “끙.”

    청각이 예민한 그녀만이 겨우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

    미소를 짓은 그녀는 다시 걷는 안내견의 안내를 받는다.

    탁! 탁! 탁!

    바닥에 난 점자 도로를 따라 걷는 그녀.

    그 순간이었다.

    빵!

    “여기야, 여기!”

    골목 안에 세워진 차에서 들려오는 소리.

    입술을 닫은 그녀는 차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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