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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88화 (78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88화>

수항리에 하나뿐인 중국집.

요리와 술을 내려놓은 사장이 입술을 달싹이다 돌아선다.

“잘 먹겠습니다.”

움찔!

“……맛있게 드십시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번에 폭언에 의한 모욕죄로 경찰의 조사를 받은 아들, 범죄를 은닉한 죄로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은 자신.

그러나 말할 수가 없다. 인간인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종혁은 담배를 물며 가게를 나서는 사장의 모습에 다시 한번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장성준을 봤다.

불편하고 어색한지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그.

종혁이 그의 잔에 술을 따른다.

“일단 장성준 씨의 용감한 행동에 경찰로서 감사드립니다.”

범인을 제압하려 했고, 피해자를 구하려고 했다.

더욱이 그 대상이 같은 동네에서 형, 동생을 하던 사람이었다. 표창장을 받을 만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곧 표창장과 포상금도 수여될 예정입니다.”

“아, 아녀라! 지, 지가 무슨……!”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사람이라면 저질러선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고향 마을이 창피해서 차마 받을 수 없다.

“아닙니다. 장성준 씨는 표창장을 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장성준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을 실천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세상에 많지 않다.

세상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들이 더욱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민망하네요잉.”

“하하. 일단 드시죠.”

솔직히 불편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데, 종혁이 시킨 게 중국 술이다. 평소엔 너무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중국 술. 게다가 난자완스 등 난생처음 보는 요리들.

군침을 삼킨 장성준은 딱 한 입씩만 먹자는 생각에 잔을 들었다.

챙!

“아따, 우리 서장님이 바닷일을 잘 모르시구마잉!”

“그렇습니까?”

“그렇당께요. 서장님, 어뜨케 1년에 딱 하나 가지고만 돈을 벌 수 있당께요. 우리가 뭐 백 마지기, 천 마지기 그렇게 땅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고.”

바닷사람 중 육지보다 바다에 있는 시간이 더 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절반을 바다에서 일했다면, 나머지 절반은 육지에서 일을 한다.

바다에 나가 있지 않을 때는 대파도 심고, 양파도 심고, 고추도 심으며 밭일을 하는 거다.

자신도 김과 시금치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사계절 내내 겨울을 가리지 않고 할 일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조금씩이나마 통장에 돈이 쌓인다.

“그라고 여그도 돈 있는 사람들만 돈을 번당께요.”

논밭을 크게 가지고 있으면 많은 돈을 버는 거고, 아니라면 적게 버는 거다.

바다 일도 마찬가지다. 돈이 많으면 많은 바다를 빌려 농사를 짓는 거고, 아니면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거다.

“이런. 이거 경찰 관두고 어촌에 들어와 살까 했는데 안 되겠네요.”

“어휴.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셔라. 도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덤벼 볼 만한 일이 아닝께.”

자신도 어려서부터 했기에 이렇게 먹고사는 거다.

“하하. 그래야 할 것 같네요. 한잔 받으시죠.”

“어이쿠. 예, 예.”

종혁은 처음보다 많이 풀어진 그의 경계심과 긴장에 눈을 빛냈다.

“아, 이거 술이 다 떨어졌네요. 여기…… 아니, 더 드시면 사모님께 혼나실 수 있겠네요. 술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에이. 사모님은 무슨…….”

“어? 안 계십니까?”

“뭐…… 여자친구는 있는디 여기 안 살고 있응께 괜찮여라. 요샌 전화도 잘 안 하고…….”

“오! 장거리 연애 하십니까? 그거 쉬운 거 아닌데? 예쁩니까?”

“예쁘지라.”

장성준이 헤벌쭉 웃는다.

“이야. 대체 얼마나 미녀시기에……. 몇 년 사귀셨는데요? 사진 좀 볼 수 있을까요?”

“사귄 지 한 4년쯤 됐지라…….”

장성준이 지갑을 꺼내 명함사진을 보여 준다.

“와, 예쁘신데요? 다른 사진은 없습니까?”

“다른 사진도 있지라.”

이번엔 그가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보여 준다.

“요건 꽃구경 가서 찍은 사진이고, 요건 일하다 찍은 사진이고…….”

자랑하듯 보여 주는 사진들에 종혁이 속으로 눈을 가늘게 뜬다.

모두 여성 혼자서 찍은 사진들.

“정말 부럽네요. 이런 미녀분과는 어떻게 만나시게 된 겁니까?”

“……참말로 우연이었지라.”

“우연이요?”

“예. 우연.”

장성준의 눈이 몽롱해지며 4년 전으로 돌아간다.

* * *

그날도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다녀왔어라.”

걸레 같은 수건으로 흙먼지를 털며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장성준.

“왔어? 밥은?”

“먹었죠. 시간이 몇 신디.”

“별일은 없고?”

“있으면 안 되지라. 씻을게라.”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나온 그가 거실 바닥에 눕는다.

“아고고. 이제 좀 살겄네.”

“뭔 젊은 놈이 벌써부터 앓는 소리를 낸디야.”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그러지 맙시다.”

“뭐여?”

장성준은 어머니를 향해 씩 웃었고,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깎아 온 과일을 내민다.

“먹고 누워.”

“오메. 울 엄니가 또 뭔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싸비스를 해 준디야.”

“깎아다 줘도 지랄이네. 그럼 처먹지 말든가!”

“에헤이.”

얼른 접시를 사수한 그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TV를 본다.

-하하하!

“낄낄낄!”

“……옆 동네 기철이가 결혼했다더라.”

움찔!

이거였다. 왜 평소와 달리 과일을 깎아 주나 했더니 결국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마누라가 베트남 사람이라는디, 식장 가서 봉께 그라고 예쁘더라.”

“어허! 거 신성한 과일 먹는디! 걱정 딱 붙들어 매쇼! 아들도 곧 참한 색시 데려올 텡께! 물론 지금은 없지만!”

“……염병. 참한 색시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관짝에 들어가겄네.”

“오올. 울 엄니 말장난 쥑이는디? 울 아빠가 울 엄니 이런 센스에 반했을까?”

“닥치고 처먹어.”

“옙!”

얼른 입을 다문 장성준은 TV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 아직 스물아홉밖에 안 먹었구만.’

이런 시골의 결혼 연령대는 평균 삼십대 중반이다.

물론 일찍 가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죄다 아는 얼굴에다가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겪으며 자라 오다 보니 같은 동네 친구라면 서로를 거의 동성으로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결국 외지에서 여자를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어머니를 모시며 1년 내내 일하는 장성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급하다, 급해. 쯧쯧쯧.’

그래도 결혼하고 연애하는 친구 선후배들을 보면 부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띠리링! 띠리링!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한디야.”

“너 또 술 처먹으러 나가기만 혀!”

“에헤이. 누가 보면 아들이 매일 술 먹는지 알겄네.”

“아녔냐?”

“예. 전화 받았습니다. 김옥순 씨네 집인디, 누구시다요?”

-아, 안녕하세요……?

“잉?”

목소리가 살벌하게 예쁘다.

그렇게 장성준의 연애가 시작됐다.

* * *

아직도 기억이 난다. 2007년 4월 8일, 오후 8시.

너무 운명적이었기에 기억이 난다.

“거 뭐시냐 펜팔있잖여라. 그거였다고 하더랑께라. 으응. 전화친구.”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종혁은 눈을 크게 떴다.

“와! 이건 거의 영화인데요? 그래서요? 어떻게 사귀게 됐는데요?”

“아따, 우리 서장님은 연애 한번 안 해 보셨습니까. 남녀가 뭐 계기가 있어서 사귄데요. 그냥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자연스럽게 사귀는 거제.”

콧대를 세우는 그의 모습에 종혁이 눈을 빛낸다.

“그래서 언제 만나셨는데요? 장성준 씨가 먼저 찾아간 겁니까?”

움찔!

방금 전까지 자존감과 행복이 넘쳐흐르던 장성준의 몸이 살짝 굳는다.

“그러려고 했는디…….”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고, 어쩌다 보니 한번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대전에 사는 여자친구.

때 빼고 광을 낸 후 찾아갔다.

너무 심장이 두근거려 전날 밤부터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만남.

사귄 지 딱 100일째 되던 날이기에, 인터넷으로도 찾아보고 결혼하고 연애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며 참 많은 걸 준비했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 여자친구가 다니는 직장에 일이 터진 거다.

“저런……. 많이 아쉬우셨겠네요.”

“그래도 어쩌겄어라. 일이 터졌다는디.”

수습만 거의 일주일 정도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만나 보지도 못한 채 다시 신안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럼 다음엔 언제 만나셨는데요? 그땐 괜찮았죠? 실물로 보니까 사진보다 더 예쁘시던가요?”

“…….”

장성준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에휴.”

꿀꺽!

“크으!”

다음에라도 만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한 번이라도 만나 봤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일이 있어서 만날 수 없었던 여자친구.

그렇게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거다.

“어이구. 힘든 연애를 하고 계시네요.”

“뭐, 그래도…… 아녀라. 잘 마셨어라. 글고 표창장은 한번 생각해 볼게라.”

“벌써 가시려고요?”

“더 마시면 정말 취할 것 같아서요. 잘 먹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잉.”

고개를 꾸벅 숙인 장성준은 중국집을 나섰고, 문이 닫히자 종혁은 당황하던 표정을 지우며 술을 들이켰다.

탁!

“정말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는 건가…….”

그것도 무려 4년을.

‘그런데 돈을 가져다 바쳤다라…….’

몇 십만 원 수준이면 소문도 나지 않았을 터.

코를 긁적이던 종혁은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향했다. 그러다 뒤에 앉은 사람을 툭 쳤다.

“녹음 파일은 지웁시다.”

흠칫!

“예?”

차갑게 식다 못해 퉁퉁 불은 짜장면을 앞에 두고 있는 삼십대 사내. 종혁이 그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스마트폰을 본다.

“세상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는 게 있습니다, 기자님.”

“……협박하시는 겁니까?”

“경고지. 솔직히 뭔 개소리를 지껄여도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나를 건드릴 거면 각오는 하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 말 보복을 하시겠다는 거군요.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채!”

“보복은 무슨. 경찰이 범죄자를 잡는 건 당연하잖아요?”

아무것도 찔리는 게 없다면 종혁의 말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

“다음엔 좋은 일로 봅시다.”

기자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계산을 하고 중국집을 나섰다.

찰칵! 치이익!

“후우. 예, 지원과장님. 전화번호 하나만 조회 좀 했으면 하는데요.”

종혁은 걸음을 옮기며 몽타주를 그릴 준비도 해 달라고 말했다.

* * *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때려치워!”

촤락!

허공을 날아 얼굴에 부딪친 서류에 이십대 후반의 여성, 김규리가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다시 해 와!”

마치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표정 변화 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서류를 주섬주섬 챙겨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

곧바로 컴퓨터 모니터에 메신저 알람이 표시된다.

-또 언니네 과장님 지랄하신 거예요?

-이번엔 무슨 일인데?

타라라락!

-이번엔 띄어쓰기.

고작 딱 한 곳 실수로 스페이스를 두 번 눌렀을 뿐이다.

-와! 진짜 너무하네!

-그게 보여? 와, 씨. 이건 거의 억지로 까는 건데?

-언니네 과장님은 왜 그런데요?

-이 정도면 네가 그냥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다.’

-진짜 이럴 때마다 때려치우고 싶다니까!

-맞아. 대기업은 이렇지 않다던데…….

‘나도…….’

그러나 이 중소기업을 때려치우고 갈 곳이 없다.

어차피 이직해 봤자 결국 중소기업. 이곳과 다를 건 없을 거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다 거기서 거기니 말이다.

한숨을 내쉰 김규리는 대기업의 찬양에 한창인 동료 여직원들의 메신저를 뒤로한 채 서류를 수정했다.

“여기 있습니다, 과장님.”

“……쯧. 진즉에 이렇게 하지. 이러니까 전문대는 안 되는 거라니까. 한 번에 딱 하는 경우가 없어요.”

울컥!

띄어쓰기, 아니 사소한 실수와 전문대가 무슨 상관일까.

‘그러는 너는 뭐 어디 좋은 대학 나왔냐?’

수능 등급이 7등급, 8등급이라도 갈 수 있는 그런 대학교 출신이다. 자신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대학이 고작 4년제라는 것뿐.

“가 봐. 그리고 커피 한 잔 타 오고.”

“……예.”

고개를 숙인 김규리가 탕비실로 향한다.

“아, 진짜 퇴사하고 싶네.”

지이잉!

“아.”

남자친구다.

우중충한 그녀의 얼굴에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자 혹여 과장이 잡을까 재빨리 회사를 빠져나온 김규리가 기지개를 켠다.

“끄앙!”

오늘도 버텨 낸 자신이 참 대견했다.

그리고 내일을 버틸 자신도 파이팅이다.

한숨을 내쉰 그녀가 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저기…….”

“꺅?!”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전봇대, 아니 거구의 사내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든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어머?’

미남이다. 그것도 등빨도 좋은 A급 미남.

‘꺄아! 이놈의 인기는!’

“네. 무슨 일이세요?”

“김규리 씨 맞으시죠?”

깜짝 놀란 김규리가 주춤 물러선다.

“이야! 맞네. 안녕하세요. 성준이 형님의 동네 동생 최종혁이라고 합니다. 와, 이런 우연이!”

“……성준 오빠요?”

“네. 장성준 형님 말입니다. 김규리 씨 남자친구인!”

김규리의 표정이 오묘하게 구겨진다.

“저기 뭔가 착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남자친구는 그런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도 없다.

“어, 어? 그렇습니까? 아, 아닌데?”

“죄송한데 전 그런 사람 몰라요. 그럼.”

“아, 아닌데. 맞는데…….”

김규리는 종혁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고, 남겨진 종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정말 아니네.”

종혁이 장성준의 핸드폰에서 봤던 사진 속 얼굴과 전혀 다른 김규리의 외모.

그녀의 얼굴도, 눈동자도, 심지어 말투까지 장성준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씨발, 대포폰.”

다른 사람 명의를 무단으로 도용해 개통한 대포폰.

얼굴을 구긴 종혁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예, 지원과장님. 서장입니다. 전화번호 발신 위치 추적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장성준을 만나, 그가 알고 있는 여자친구에 대한 모든 걸 알아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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