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87화 (78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87화>

“예,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가해자와 피해자가 신안으로 이송되고 있다는 보고.

통화를 종료한 종혁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얼굴을 쓸어내린다.

피해자의 숫자는 최승아를 제외하고도 총 16명. 12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벌어진 계획적인 범죄였고, 그중 12명이 교사였다.

사건이 벌어진 도초면 수항리의 주민들 대다수가 이 일을 묵인 및 동조하고 있었고, 도초면의 학교 관계자들도 이 일을 눈감아 주고 있었다.

도초파출소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동네 전체에 체포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똑똑!

“예,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최재수가 들어온다.

“전남청에서 파견된 인력이 도착했습니다.”

“……알았어.”

몸을 일으킨 종혁이 정복을 차려입고 서장실을 나선다.

그러자 서장실 앞 복도에 서 있던 전남청 소속 경찰들이 경례를 한다.

“충성!”

“충성…….”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그들.

너무도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공범이 경찰이라는 것이다. 도초파출소를 산하로 두고 있는 신안경찰서의 서장인 종혁에게도 피해가 갈 수밖에 없었다.

“후우. 갑시다.”

그들은 걸음을 옮겨 신안경찰서 안에 있는 대회의실로 향한다.

“왔다!”

촤라라라라!

‘많이도 왔다.’

대회의실을 꽉 채우고 있는 기자들.

단상에 선 종혁이 경례를 한다.

“충성. 신안경찰서장 최종혁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현 사건, 일명 수항리 결혼 사기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 * *

12년 동안 펼쳐진 끔찍한 덫!

그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마을 주민 전체가 얽힌 거대한 사기극! 사람이 아닌 악마들!

주민들까지 대다수 체포! 학교 관계자들도?!

도초파출소 임시 폐쇄! 경찰도 동조했다!

신안경찰서장,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

전남경찰청장, 관련자 전원 징계 천명!

신안군 소속 모든 파출소를 대상으로 내사 시작!

신안경찰서 설립이 아니었으면 들통나지 않았을 거대한 덫!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게 아니다! 이제라도 밝혀 줘서 고맙다!

드라마에서도 쓰지 않을 판타지 같은 내용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이잉! 지이잉!

“예, 최종혁입니다.”

-니 괘안나.

강철선의 우려에 종혁의 얼굴이 무너진다.

“안 괜찮죠. 안 괜찮습니다.”

어느 정도 문제가 발견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얽힌 사람들이 많았다. 하마터면 책임을 지고 신안경찰서장직을 내려놓아야만 할 뻔했다.

서장직을 내려놓는 건 딱히 상관없었다. 앞으로도 신안에서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그건 서장직을 내려놓아도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방조하고 공조한 경찰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느낀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이 흔들리겠네.

종혁이 경찰에 들어간 이후 구축했던 경찰의 이미지가.

수년간의 공이.

“어쩔 수 있습니까.”

일은 이미 벌어졌다. 최대한 수습을 할 뿐이다.

-아이고…… 뭐라고 변명하드나?

“하나같이 똑같죠.”

수항리 주민 전원을 체포 및 소환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은 몰랐다, 뜬소문인 줄 알았다며 발뺌을 하고 있었다.

눈이, 몸이 그 말이 거짓임을 외치는데도 그렇게 오리발을 내밀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질 정도였다.

-에휴. 그러면 이제 우얄끼고?

“뭘 별거 있겠습니까. 관련자 모두 최고형을 받게 해야죠.”

그 외에는 딱히 할 게 없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들은 어차피 알아서 마을을 떠나게 될 테니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 배척할 기란 말이가?

“그저 남의 일이기에 무시를 했던 사람들이 파출소로, 경찰서로 불려 와서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얼마나 관련됐는지에 따라 그 처벌이 달라질 거고, 최소 벌금형이다. 19살 이하의 아이들을 제외한 수항리 주민 전원이 처벌을 받는 거다.

그런 유무형적 손해를 본 수항리 주민들이 피의자들을 가만 놔둘까.

“그런다면 저도 성범죄 치료 센터 등 마을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도움을 줄 테고요.”

-만약 똥 밟은 셈 친다면?

또 피의자들을 조지되,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콰직!

종혁의 손에 들린 볼펜이 부서진다.

“그러면 뭐…… 고사시켜야죠.”

수항리 인근에 마을을 조성하고, 수항리에 있는 은행들부터 빼 버린다.

‘몇 천억 예치시켜 놓으면 은행들도 빠져나올 수밖에 없겠지.’

교육부와 협의해 학교도 이전시키고, 도로도 새로 뚫는다. 그 외에도 수항리를 고사시킬 방법은 무궁무진했고, 이미 이 문제에 관해선 박명후 대통령과 이야기도 끝내 놓은 상태다.

언제든 막대한 예산을 투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그 공사는 삼전건설과 계림건설, M-컴퍼니, 태흥건설에서 맡을 거다.

그들을 이용해 전주의 한옥마을을 모티브로 삼아 한옥마을을 조성하거나 놀이공원, 테마공원 등 사람들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그런 관광타운을 만들면 된다.

-왐마야. 그럼 애꿎은 사람들은 우얄 낀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학생들.

“그분들은 당연히 새로 조성할 마을로 이주시켜야죠. 아무 조건 없이. 집도 공짜로 드리면서.”

마을 이미지가 박살이 날 텐데,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을 거다.

-……설마 시민단체들까지 이용할 생각인 거가?

“예. 그들을 지원해서 마을의 입구들에 성범죄자들, 사기꾼의 마을이라는 플래카드를 걸 겁니다.”

시민단체를 썩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비석도 세우게 할 거다.

물론 철거되겠지만, 또 세우게 할 거다.

“제가 죽을 때까지.”

그렇게 박살을 낼 것이고, 마지막 가해자, 마지막 공범이 죽을 때까지 계속 이 일을 국민들로 하여금 상기시키게 만들 거다.

그게 수항리가 본인들의 잘못을 모를 때 내릴 종혁의 처벌이었다.

-……돈이 감당되겠나?

“제 돈이 들어가겠습니까? 기업 이미지 향상을 위해 수백억씩 투자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군수도 적극 협력해 줄 거다.

수항리로 들어가는 혜택과 예산을 대폭 삭감시킬 것이고, 군의 모든 일에서 배제될 거다.

“그리고 부동산은 불패잖습니까.”

투자한 돈이 몇 년이면 몇 배가 되어 돌아올 거다. 돈이 부족할 걱정은 없다.

-수항리 생각 잘해야겠네…….

아니면 몇 년 안에 유령 마을이 생길 판이다.

“그땐 헐값에 인수해서 그냥 밀어 버려야죠.”

깔끔하게. 주춧돌 하나 남김없이. 그런 마을이 있었다는 걸 잊어버리게.

그렇게 몇 십 년이 흐르면, 도초도는 대한민국의 관광지 중 한 곳으로만 기억되지 않을까.

-독한 놈……. 알았데이.

우울해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욕보래이. 어휴휴. 진짜 이게 뭔 일이고.

“검사님도 수고하십쇼.”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도초도에 파견된 전남청 경찰들이 인수인계는 잘 받고 있나 둘러보러 가야 했다.

* * *

수군수군!

도초도로 향하는 배의 대기실.

사람들이 종혁을 보며 이야기들을 나누고, 종혁은 씁쓸히 웃는다.

‘그냥 요트를 타고 올 걸 그랬나.’

차 때문에 선박을 이용했는데 괜히 그런 것 같다.

“저…… 서장님? 최 서장님 맞지라?”

“예, 어르신.”

“잘했어라. 욕봤소.”

“예?”

와락 끌어안아 등을 두드리는 노인에 종혁이 깜짝 놀라고, 노인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을매나 마음이 상했쓸까잉.”

부하 경찰들을 싹 다 자신의 손으로 잡아 처넣었다고 한다.

아무리 사람이 젊고 단호하다고 한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데, 오직 신안군민들을 위해서, 피해자들을 위해서 그런 결단을 내린 거다.

아마 장기 몇 개를 떼어 내는 심정이었을 거다.

젊은 사람이 그런 아픔을 참아 낸 거다.

그런데 언론과 신안 바깥의 사람들은 경찰이 부패한 거라고, 서장인 종혁이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떠들고 있다.

“차라리 그 몹쓸 것들은 그냥 모가지를 돌려 버리지 그랬소! 그랬으믄 조금이라도 덜 아플 것인디! 아이고. 아이고.”

“……옳소! 그런 육시랄 놈들을 살려 둬서 뭐한데!”

“그라지라! 내가 수항리 썩을 잡것들 땜시 어디 밖에 나가서 신안 사람이라고 말을 못한당께요!”

“맞어, 맞어. 가만 보믄 우리 서장님, 덩치에 안 맞게 참 소심혀. 안 그려?”

“그랑께 말여. 나라믄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 브렀을 것인디. 서장님! 우린 서장님 편인께 딴 새끼들 말은 신경 쓰지 말고, 가슴 펴고 다녀라! 다들 그러제?!”

“그럼요!”

“와아아아아!”

‘하하.’

고맙다.

자신의 애환과 결단을, 과할 수 있다고 생각할 처벌을 이해해 줘서 고맙다.

‘그래, 이런 맛에 경찰 하는 거지.’

“매점 이모님-!”

“예! 서장님!”

“매점 간식들 싹 다 가지고 나오세요! 제가 오늘 다 쏩니다!”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 *

뿌우웅!

“잘 가요!”

“파이팅입니다, 서장님!”

군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도초도 선박터미널에서 내린 종혁이 수항리를 향해 차를 몬다.

도초도의 중앙에 위치한 수항리. 마을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순찰차 한 대가 다가온다.

그런 순찰차를 바라보는 수항리 주민들. 누군가는 침을 뱉고,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고, 누군가는 하늘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다행이라면 얼굴을 붉히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도 마을 전체가 인면수심은 아니네.’

참 다행이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이 도초파출소에 차를 세우고서 내린다.

“서, 서장님!”

얼굴과 머리가 떡이 진 노인이 달려와 종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이장님. 아니, 전 이장님이겠군요.”

“죄, 죄송합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죽겠다. 죽을 것 같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맞아 죽을 것 같고, 사람들 눈빛에 말라 죽을 것 같다.

이러다간 건강원을 폐업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동네를 떠나야 할 것 같다.

거기다 피해자들이 걸어온 민사 소송까지. 그 액수만 40억이 훌쩍 넘는다. 건강원뿐만 아니라 가산을 모두 정리해도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제 아내가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는 줄 알았다면 저도…….”

“이장님.”

“예, 예!”

“저 안에 거짓말 탐지기가 있습니다.”

움찔!

“하도 거짓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가져다 놨죠.”

“…….”

“더 이상 아가리 털지 마시고, 남은 생을 피해자들에게 사과한다는 마음으로 사세요. 다신 제 앞에 나타나지 마시고요.”

그랬다간 정말 찢어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이미 이장도 다 알고 있다고 진술한 이장 부인.

툭툭!

이장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다.

“엇?! 충성!”

“충성-!”

“아이고, 수고들 하십니다. 간식들 좀 드시고 하세요.”

“우오오오오오!”

종혁이 내려놓는 박스들에 피죽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한 사람처럼 퀭한 눈빛을 짓고 있던 경찰들이 다급히 달려 나온다.

“커, 커피! 사랑방 카페 커피다! 누가 얼음 좀 가져와!”

“빵! 헉! 신화호텔 빵-!”

“이거 과자인가? 상표가 없는데?”

지난 며칠간 주민들을 소환해 진술을 받느라, 지난 10년간의 사건을 재검토하느라 죽어 가던 경찰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이고, 이거 매번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 매일같이 도초도로 들어와 자신들을 살피는 종혁.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 지원과장님. 좀 어떻습니까?”

“어제보다 3건 더 발견했습니다.”

도초파출소에서 묵인시켜 버린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신안경찰서로 이송시키지 않고 누락시킨 사건 자료를.

지금까지 총 16건을 발견한 상태다.

뿌득!

“그것들은 따로 모아서 일단 스테이 하세요.”

“바로 재수사에 들어가지 않는 겁니까?”

“재수사는 일단 모두 검토한 후에 들어가는 걸로 하죠.”

“예? 음. 예, 알겠습니다.”

수사지원과장은 종혁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다 생각이 있겠거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최재수 팀장은 어디 갔습니까? 안 보이네요?”

경찰 지원율 향상 프로젝트를 위해 학교들과의 협의를 끝내야 하고, 또 지원을 위해 도초도에 남은 최재수와 박칠봉.

“아, 잠시 순찰 나갔습니다. 뭐…… 순찰일 겁니다. 아마도.”

“하하.”

어딜 갔는지 알 것 같다.

‘진짜 이놈한테도 봄이 오려나.’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고 계십시오. 저녁엔 삼겹살 먹다 죽을 각오하시고요.”

“으하핫! 걱정 마십시오!”

피식 웃으며 도초파출소를 나선 종혁이 도초초등학교의 관사로 향한다.

“아, 안 잡아 주셔도 됩니다.”

“하지만 위험하잖아요.”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이가 썩는 듯한 달달한 분위기.

열려 있는 현관문 안으로 들어간 종혁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다.

“뭐하냐?”

“엇?! 충성.”

“아,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최승아를 향해 따스하게 웃어 준 종혁이 의자에 올라서서 천장의 전등을 가는 최재수를 본다.

“아, 아니 전등 하나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말입니다!”

“난 뭐라고 안 했는데?”

“…….”

“세라는 정말 포기하는 거야?”

“아, 진짜!”

“아, 진짜는 반말이고, 짜샤.”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들을 번갈아 보는 최승아를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털어 낸 것 같네.’

그래도 혼자 남겨지면, 저녁에 잘 때가 되면, 어느 날 바람이 불면 울컥울컥 기억이 날 거다.

심장을 옥죄며 괴롭힐 거다.

‘후…… 거지 같네.’

이 이상 뭘 해 줄 수가 없기에 더 미안하다.

“잘해.”

“걱정 마세요.”

지금 이 관계가 연애로 이어질지, 도중에 관두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최승아는 치유를 받는 것이기에 성실히 그녀를 케어할 생각이었다.

최재수의 단단한 눈빛을 본 종혁은 최승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더 이상 자신이 여기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도초초등학교 관사를 나서는 순간이었다.

사부작!

녹색 병이 든 하얀 봉지를 든 채 앞을 스쳐 지나가는 삼십대 사내.

종혁이 눈을 빛냈다.

“장성준 씨.”

“예? 아, 서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예?”

‘얼굴 한 번 못 본 여자한테 돈을 가져다 바친다고 했지.’

이장 부인이 했던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코도 마치 머리카락이 떨어진 듯 간질간질하다.

종혁은 어리둥절해하는 그의 어깨를 감쌌다.

“자, 자. 여기 수항리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딥니까?”

“어? 어어어?”

장성준은 속절없이 종혁에게 끌려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