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86화>
철렁!
와락 일그러진 종혁의 표정에 뒤늦게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이장 부인의 두 눈이 흔들린다.
“아, 아니 난…….”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아니어라. 이, 이건 그런 게 아니라……!”
“불어.”
찢어 버리기 전에 모두.
종혁의 전신에서 끔찍한 살의가 쏟아져 나왔다.
* * *
웅성웅성.
갑자기 바깥이 시끄러워진다.
똑똑똑!
“들어와.”
“서에서 직원들이 도착했습니다.”
몸을 일으킨 종혁이 넋을 놓은 이장 부인을 강제로 일으켜 세우며 회의실을 나선다.
양손에 수갑을 찬 그녀.
파출소장과 오십대 장년인, 사십대 중년인이 경악을 하며 쳐다본다.
“충성!”
“……충성.”
정신적인 충격이 크다.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인가.
이는 강간보다 더 악질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자기들 맘대로 정하게 만든 거다.
너무도 치졸하고 참혹한 사기극.
“아, 아주머니! 차, 참말로 그랬던 거여라?! 어떻게 사람이 그랄 수 있어라!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요!”
파출소를 나갈 수가 없어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첫 번째 목격자, 삼십대 사내가 경악하며 외치자 넋을 놓고 있던 이장 부인이 눈을 부릅떴다.
“다, 닥쳐야! 어디 얼굴 한번 못 본 여자한티 돈 가져다 바치는 병신 놈이 나를 욕혀!”
움찔!
몸을 굳히는 삼십대 사내의 모습에 종혁은 뒷목을 주물렀다.
이건 또 무슨 말인 걸까.
‘아니, 일단은…….’
“후. 지원과장님.”
“충성.”
“이 사람과 저 둘을 형사과로 인계하세요. 혐의는…… 일단 범죄단체조직과 사기로 합시다. 그리고 여기 명단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체포해서 데려가시고요.”
이장 부인과 함께 바람잡이를 한 사람들.
노총각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 이장 부인들에게 돈을 준 사람들.
그리고 모든 걸 알고 있었으면서 묵인한 이장까지.
“그리고 저기 도초소장…… 아니, 도초파출소 소속 경찰들 모두 연행하세요.”
“예에?!”
물론 방조하거나 가담한 경찰 외에 상사의 압박 등 여러 이유로 보고도 못 본 척한 경찰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어떤 불의와도 타협을 하면 안 되는 경찰이다. 경찰은 불의를 못 본 척한 것만으로도 유죄였다.
“아, 알겠습니다! 뭐, 뭣들 해! 움직여!”
“예, 예!”
“후. 김순호 순경, 당신을…….”
“아! 아! 아, 아닙니다! 전 절대 모르는 일입니다-!”
안 들린다. 듣고 싶지 않았다.
귀를 막고 도초파출소를 나선 종혁이 핸드폰을 꺼내 든다.
“충성. 신안경찰서장 최종혁 총경입니다, 함경필 전남청장님.”
-……무슨 일이야?
“현 시간부로 본 신안경찰서 산하 도초파출소 소속 경찰 전원의 직무를 정지시키겠습니다. 사유는 소속 경찰 전원의 범죄 방조 및 공모입니다. 그리고 신안경찰서 산하 모든 파출소에 내사를 요청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쿵!
-……지금 통화하기 힘들지? 조속히 인력을 꾸려서 내려보낼게.
“감사…… 합니다. 충성.”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대체 왜. 왜. 왜.
왜 아직도.
“아아아아악!”
너무 부끄러워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 * *
달그락! 달그락!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에 삼십대 중반의 여성이 기겁하며 눈을 뜬다.
“허억! 헉!”
자신도 모르게 옆을 향해 손을 뻗는 여성.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자 뽀얀 피부가 더 하얗게 변한다.
하지만 곧 귀를 울리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째서 그날 일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날.
무릎을 끌어안은 그녀는 자신을 감싼 어둠을 응시한다.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삐비비! 삐비비!
“……후우.”
알람이 울리는 핸드폰을 보는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래. 씻자, 씻어.”
그녀가 안방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부엌의 풍경과 코를 찌르는 된장국의 냄새.
싱크대 앞에 서 있던 피부가 까맣고, 몸이 마른 사십대 중반의 남성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본다.
“일어났어?”
푸근히 웃는 주름진 얼굴에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또 혼자 먼저 먹었어요?”
왜 남편은 맨날 혼자 밥을 차려 먹는 것일까.
그녀가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먼저 밥을 차려 먹는 남편. 그 본인이 일찍 일어났다 싶으면 그냥 밥을 차려 먹는 남편.
다른 유부녀들은 부럽다 말할 수 있다.
알아서 밥을 차려 먹는 남편이라니. 아마 이 말을 하면 부러워 미칠 거다.
하지만 결혼을 한 이후 남편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그녀로선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내가 아침잠이 많으면 이런 생각도 안 하지.’
남편은 좋게 말하면 부지런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개인주의적이다.
“일 가야지. 씻어. 국 아직 따뜻해.”
“후우……. 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샤워기를 틀며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자신과 맞지 않는 남편과 처음 만났던 그때를 떠올린다.
임용시험에서 4번이나 떨어졌던 그녀의 첫 발령지는 도초도라는 발음하기조차 힘든 전라남도 신안의 섬이었다.
광주광역시 임용은 너무 경쟁이 치열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전라남도로 시선을 돌린 그녀.
부우웅!
별거 아닌 뱃고동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조차 새롭게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어휴. 잘 왔어요. 잘 왔어.”
너무도 반갑게 맞이해 주던 이장님의 아내와 동네 아주머니들.
김치건 나물이건 반찬을 바리바리 싸 와 축하해 주는 그분들의 모습에 그녀는 시골의 정이 이런 거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안심이 됐고,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그녀의 미소는 박살이 나고 말았다.
“어으. 시원하다.”
그녀를 제외하면 아무도 살지 않는 도초초등학교의 관사.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알몸의 장년인을 발견한 순간 그녀의 심장은 멈춰 버렸다.
“꺄아아아아악!”
“뭔 일이여! 무슨 일이여! 이런 씨부럴! 형님! 거기서 뭐하요!”
“아, 아니 난…….”
“변명하지 말고 싸게 나오쇼! 얼른!”
“어, 어!”
옷가지를 챙겨 후다닥 관사를 빠져나가는 장년인과 안으로 들어온 삼십대 후반의 중년인.
“괜찮습니까, 선생님?”
바닷사람인 걸 자랑이라도 하듯 까만 피부.
푸석하고 주름진 얼굴.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남성용 스킨의 냄새.
그렇게 남편과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됐다.
퇴근 후 관사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평상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노인들.
“아이고. 선생님. 얼른 와서 한잔혀!”
한여름, 러닝만 입은 채 손을 흔드는 모습에 그녀의 심장은 다시 멈췄다.
그러나 이건 약과였다.
저녁 10시고, 11시고 시간을 가리지 않고 대문이 두드려졌다.
잠시 화장실 좀 쓰겠다며 거침없이 관사 안으로 들어오더니, 자신의 방문까지 멋대로 열어 대며 추파를 던지던 사내들.
친해지는 데 제일 좋은 게 술 아니냐며 술을 들고 찾아와 한잔하자던 노인들.
심지어 어떤 노인은 하얀 정장에 백구두를 신고 꽃을 들고 찾아왔다. 오다 주었다며 개소주와 함께 내밀었다.
견딜 수 없었다.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경찰에도 말을 해 봤지만, 원래 시골이 이러니까 이해하라며, 유난 떨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이없게도 이후 도리어 그런 말을 한 경찰까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지옥의 나날들이었다.
마음 같아선 관사를 나가 도초도 밖에 머무르며 출퇴근을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여의찮았다.
그런 지옥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바로 동네 아주머니들 덕분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남자들을 모진 말로 내쫓아 주었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
그들이 있을 때만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배운 게 없어 정을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 못한다는 말에, 사람은 착하다는 말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결국 그날이 찾아왔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날이.
그날은 낮부터 아주머니와 할머니들과 술 파티를 벌였었다.
그러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결국 기절하듯 잠들었다.
주물럭! 주물럭!
마치 털이 숭숭 난 커다란 벌레가 가슴을 만지는 더럽고 끔찍한 느낌. 몽롱했던 정신이 번쩍 깼다.
“꺄, 꺄악! 누, 누구…… 웁?!”
“조용히 해.”
귓가를 때리던 섬뜩한 목소리와 끔찍한 숨결.
무서웠다. 두려웠다.
브래지어가 벗겨지고, 팬티가 내려지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절망에 빠지던 순간 구원자가 나타났다.
띵동!
“선생님! 계세요?! 어머니가 꿀물 좀 가져다 드리라 해서 왔는데…… 뭐여? 대문이 열려 있네? 선생님, 저 들어갑니다!”
“씨발!”
후다닥!
“뭐, 뭐야! 넌 뭐야! 거기 안 서냐, 새끼야!”
도망치는 발소리와 뒤쫓는 발소리. 그리고 이후 다시 관사로 돌아오는 발소리.
쿠당탕!
“선생님! 괜찮습니까!”
“……흑! 흐아아아아아앙!”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괜찮아요. 괜찮아. 쉬이. 괜찮아요.”
그렇게 그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그날, 10살이나 많은 남편을 얻게 됐다.
* * *
“휴우. 그때 조금만 참았어야 했는데.”
하루의 시작이 참 빨랐던 성실하고, 부지런한 남편.
동화 속 왕자님처럼 언제나 자신을 곤란에서 구해 주었던 남편.
남편이 관사에 살다시피 머무르자 결국 다른 남자들은 관사를 찾지 않게 됐다.
그런 든든함과 성실함에 반해 사귀게 됐고, 결혼을 하게 됐다.
‘이렇게 안 맞을 줄 알았겠냐고.’
“쯧.”
하지만 언제나 미안하고 고맙다.
많은 나이 차 탓에 반대하는 자신의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던 남편.
때가 되면 근무지를 옮겨 다녀야 하는 자신 때문에 고향마저 뒤로하고 모든 재산과 인연을 정리한 남편.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나온 그녀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여보.”
“아, 다 씻었어?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현관 앞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는 둘.
남편이 그녀를 보며 푸근히 웃는다.
“오늘도 파이팅.”
“여보도 파이팅.”
탁! 띠리릭!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던 그녀는 아차 하며 얼른 식탁으로 달려갔다.
얼른 밥 먹고 담양으로 출근을 해야 됐다.
* * *
“푸후우.”
해가 거의 저문 오후.
기름때와 흙먼지가 가득한 옷을 입은 채 차에서 내린 남편이 피로가 잔뜩 스민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아, 진짜 익숙해지지 않네.”
차량 정비소에서 일을 하는 그.
벌써 5년째이지만, 도통 일이 익숙해지질 않는다.
도초도에 있을 땐 여기저기 시간 날 때마다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계속 정비소에 붙어 있어야 해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늘 하루도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이제 곧 도착할 아내를 생각하면 모든 피로가 씻겨 나간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평생 말하지 말아야겠지?”
그가 아내와 사귀게 됐던 결정적인 순간을 떠올린다.
본래 닫혀 있어야 함에도 열려 있었던 대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았기에, 그래서 더 자신의 차례가 아닌 것이 화가 났기에 눈을 꼭 감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오던 동네 형님의 눈빛에 깃들어 있던 배신감.
이후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키 작고 무식한 노총각이 어디서 그렇게 예쁜 선생님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겠는가.
죄책감이 오늘도 그의 심장을 두드렸지만, 그는 애써 외면하며 웃었다.
“어?”
스르륵!
때마침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 한 대.
아내다.
“여보!”
차를 세우며 창문을 내리는 아내의 모습에 그는 다급히 담배를 버린다.
“바, 방금 딱 한 대 피운 거야!”
“……집에 들어가서 봐요.”
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스윽!
남편을 감싸는 두 명의 험상궂은 사내.
“박세오 씨?”
“그, 그렇습니다만?”
“경찰입니다. 종정선 씨 아시죠?”
쿵!
종정선. 이장님의 아내.
“뭐, 뭐예요. 무슨 일이에요! 당신들 누구신데요!”
다급히 차에서 내린 아내의 모습에 남편의 심장이 떨어져 내린다.
안 된다. 들으면 안 된다.
“벼, 별일 아니니까 얼른 들어가! 얼른!”
“뭐가 별일이 아닌데요! 이보세요, 당신들…….”
“김선영 씨 되십니까?”
움찔!
“그, 그런데요?”
“아…….”
경찰들이 서로를 보며 난처해한다.
안 된다. 말하지 마라. 제발. 제발.
“혀, 형사님 그냥 저를 잡아가세요! 제발! 제발!”
“여, 여보?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자신을 잡아가라며 소리치는 남편의 모습에 김선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김선영 씨, 혹시 도초초등학교 관사에 머무르실 때 남성들이 멋대로 관사를 드나들며 추파를 던지지 않았습니까?”
“아, 네. 그건 맞는데, 그게 왜…….”
“그리고 강간을 당할 뻔 적도 있으셨을 겁니다. 그 상황에서 여기 남편분에게 도움을 받으셨을 테고요. 맞으시죠?”
“그, 그걸 어떻게……?”
김선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저 눈을 껌뻑인다.
“그게 전부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박세오 씨가 김선영 씨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꾸민 연극이었습니다.”
“어…… 어……. 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털썩!
그녀의 시선이 주저앉는 남편에게로 향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너무 혼란스럽다.
“여, 여보?”
끝났다. 다 끝났다.
고개를 숙이는 남편의 모습에 그녀의 전신이 바들바들 떨린다.
짙은 배신의 눈물이 차오른다.
“여, 여보. 뭐라고 말 좀 해 봐. 아니라고 말 좀 해 보라고-! 아니잖아! 아니잖아-!”
콰장창!
그녀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