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81화>
“어흐! 4차! 4차 가야지!”
침대 위에서 버둥거리는 종배수.
“그래요! 4차 가야지!”
“이 회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옙!”
허리를 꾸벅 숙인 이태흥도 물러나자 호텔을 빠져나온 종혁이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눈빛이 딱딱하게 굳은 최재수가 담뱃불을 붙여 주자 종혁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조금만 더…….”
어디서 어떻게 말이 새어 나갈지 모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번 일.
약간의 실수라도 있다간 억울한 희생이 발생한다.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참아 주길 바랄 뿐이다.
다만 다행이라면, 이태흥의 합류로 일이 더 쉬워졌다는 점이다.
“가자.”
“……예.”
최재수는 주먹을 꽉 쥐며 종혁의 뒤를 따랐다.
* * *
드르륵! 드르륵!
밤사이 쌓인 눈을 눈삽으로 밀어낸 장년인이 욱신거리는 허리를 펴며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닦는다.
흐리다 못해 까만 하늘에서 내리는 새하얀 눈.
“아따, 올해도 지랄이구마잉.”
작년에도 눈이 제법 내려 사람 골치를 아프게 하더니 올해도 아침부터 사람을 수고스럽게 만든다.
퍼억! 퍽!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장년인은 골목에다가 다 타 버린 연탄을 던지는 남학생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아야! 벌써 연탄 뿌려 봐야 의미 없당께!”
“할부지가 뿌리라고 했어라! 이제 곧 그친다고!”
“오메, 그래야?”
비나 눈과 관련해서는 기상청보다 더 정확한 남학생의 할아버지.
기상청이 날이 맑다고 해도 남학생의 할아버지가 비가 올 것 같다 하면 무조건 비가 내렸기에 장년인은 슬그머니 화제를 돌린다.
“아따, 뭔 아직까정 연탄보일러를 쓴데. 니들은 가스나 기름보일러 안 들여놓는 겨?”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디요?”
“……그려. 니가 뭘 알겄냐. 수고혀. 이따 넘어와서 반찬 좀 가져가고!”
“예! 수고하셔요!”
“장덕아! 장덕아이!”
손을 흔들며 돌아서던 장년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냉큼 옆집으로 옮긴다.
“아이고, 또 뭐가 그리 급하셔서 날 불렀을까라. 뭔 일 있당께요?”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옛날 집.
이미 옛적에 자식들과 연락이 끊긴 것도 모자라, 얼마 전 크게 넘어져 거동까지 불편한 작은 키의 노인이 TV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저, 저거! 저거! 저거시 뭔 소리데!”
-부산저축은행의 거대 부실이 드러나면서, 그걸 시작으로 다른 여러 저축은행들의 부실도…….
털썩!
“뭐, 뭐여, 저건.”
거대한 공포가 폭풍처럼 그들에게 몰려들었다.
* * *
“헉! 헉!”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배가 남산처럼 부푼 임산부가 어딘가를 향해 잰걸음을 옮긴다.
배가 아파 오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 안 돼.”
지난밤의 뉴스 때문에 넋이 나간 그녀.
안 된다. 이럴 수는 없다.
“안 된다, 이놈들아!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얼른 문 열어! 문 열라고!”
아직 목적지가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귀를 때리는 절규.
힘이 풀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더 빠르게 걸음을 옮긴 그녀는 결국 주저앉고 만다.
한 저축은행의 앞에서 셔터를 흔들며 절규를 하는 사람들.
“아, 아아아!”
안 된다. 그 돈이 어떤 돈이던가.
남편의 사망보험금이다.
덜컥 애만 만들어 놓고 바다로 나갔다가 시신으로 돌아온 나쁜 남편의 사망보험금.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은행원이 제안한 상품에 넣어 둔 남편의 사망보험금.
눈물을 쏟아 낸 그녀가 무릎걸음으로 은행을 향해 기어가는 순간이었다.
펄럭!
그녀의 몸을 감싸는 담요와 그녀를 일으키는 손길.
“괜찮으십니까!”
“아?”
경찰이다.
“여기 핫팩과 따뜻한 음료입니다!”
손에 쥐어지는 따뜻한 핫팩에 정신을 약간 차린 그녀가 주변을 둘러본다.
은행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경찰들과 신안군민들을 인근에 세워 둔 천막으로 데려가는 경찰들.
“이 순경! 이분 번호표 드리고 천막으로 모셔!”
“예! 사모님, 이쪽으로 오세요.”
-신안경찰서장 최종혁입니다! 은행은 제가 책임지고 정상적으로, 예정된 시각에 열리게 할 테니 신안군민 여러분들께서는 천막에 가셔서 기다리고 계셔 주십시오! 이러다 큰일 나십니다!
경찰이 은행의 편에 서서 신안군민들을 막는 게 아니다. 이 추운 날, 신안군민들이 탈이 나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거다.
겨우 차린 정신을 붙은 그녀는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천막으로 들어갔고, 확성기를 내린 종혁은 수사계장을 바라봤다.
“지점장과 은행 직원들의 숙소 앞에 직원들 파견됐죠?”
“예, 서장님.”
“어디로 튀지 못하게 감시하다가 잡아…… 아니, 조심히 데려와요. 혹여 튀면 그대로 체포하시고.”
자칫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사안. 하지만 종혁의 얼굴을 본 수사계장은 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예!”
수사계장이 웃으며 돌아서자 종혁이 천막들을 둘러보며 얼굴을 구긴다.
평생 모은 돈을 믿고 맡긴 노부부.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투자한 임산부.
거래는 의리라며 일평생 한 은행만 고집해 온 상인.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통장을 개설한 이후 계속 세뱃돈과 용돈을 집어넣은 학생.
수많은 사람이 은행을 향해 울부짖고 있다.
“지랄이네, 진짜.”
이놈의 은행들은 왜 배우는 게 없단 말인가.
왜 이놈들은 아직까지도 방만하단 말인가.
한숨을 푹 내쉰 종혁이 담배를 몸을 돌리며 담배를 문다.
그 순간이었다.
“응?”
이쪽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다 돌아서는 이십대 중반의 여성.
“이 새벽에 도시 사람이 왜?”
바닷가 시골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얀 피부와 세련된 옷차림.
‘겨울 바다를 보러 온 건가?’
그렇다고 치기엔 벌써 2월 하순이다. 곧 3월, 봄이었다.
종혁은 캐리어를 끌며 멀어지는 여성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 * *
뿌우웅!
넓고 높게 울리는 뱃고동 소리.
신안군 도초면으로 향하는 커다란 선박의 대기실에 앉은 이십대 여성이 뒤를 바라본다.
“무슨 일 있는 건가…….”
실의와 절망이 가득했던 어느 저축은행의 앞.
오십여 명이 넘는 경찰이 은행 앞을 지키고 서 있었고, 은행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을 부축해 천막으로 이동시켰다.
난생처음 본 광경에 여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멀리 가까워져 가는 섬을 보는 그녀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한다.
“어이구. 처음 보는 처자 같은디, 어디로 가는 겨?”
“아, 안녕하세요. 도초초등학교로 가요, 할머니.”
“도초면에? 이 겨울에 뭐헌디?”
염전을 제외하면 딱히 이렇다 할 게 없는 도초면.
이렇게 어리고 뽀얀 아가씨가 그런 시골 섬으로 향한다고 하니 할머니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아! 가족이 거기 있는 거여?”
“아, 아뇨. 제가 이번에 도초초등학교로 발령이 났거든요.”
얼굴이 빨개진 여성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다.
“초등학교 교사로요…….”
“오메! 오메메! 선상님이었구만! 다들 여기 보랑께요! 여기 이분께서 선상님이랴!”
‘앗!’
여성이 화들짝 놀랄 때, 새벽잠에 취해 꾸벅꾸벅 졸던 사람들이 고개를 번쩍 든다.
“뭣이여? 선상님? 어디, 어디?”
“오메! 선상님이셨어요?!”
“캬아! 내가 얼굴이 뽀얀 거 봤을 때부터 알아봤당께!”
“난 뭔 선녀가 여기에 있다냐, 이제 나도 갈 때가 됐나 했제! 어느 학교로 가?”
“아, 아니…….”
“아이고. 잘 왔네요, 잘 왔어. 그래서 어떻게 우리 선상님은 식사를 하셨을까?”
“아, 아뇨. 아직…….”
“다이어튼가 뭐시긴가 때문이어요? 아따, 그람 안 된당께라. 자자,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하루가 든든한 벱이여.”
손에 쥐어지는 찐 옥수수에 여성이 화들짝 놀란다.
“아따, 요로코롬 젊은디 그거 쪼까 먹는다고 된당께라? 자자, 우리 슨상님. 이것도 드셔라.”
“그려, 이것도 좀 들어요.”
계란에 찐 감자. 찐 고구마, 군밤, 빵, 음료수 등이 그녀의 손위에 수북하게 쌓인다.
그녀는 부담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어제 읍에서 볼일을 보고 이른 새벽에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배에 올라탄 사람들이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그녀는 이내 옥수수를 입에 가져갔고, 그제야 사람들이 고개를 돌린다.
“이번에 해보저축은행 소식 들었어?”
“듣기만 했겠어라? 아까 보기도 했제. 아주 지랄 염병이드만.”
“아따, 이게 뭔 일이여. 수협은 괜찮을라나 모르겄네.”
“수협은 괜찮제. 바닷사람들 델다가 돈놀이하는디, 거시기 해 블믄 되겄어? 기냥 대굴빡 깨져 불제?”
“그렇겄제?”
“그보다…… 캬아! 우리 최 서장이 일은 참 잘혀! 아까 본 사람 있어?”
“봤어! 봤어! 아까 경찰 선상님들이 쭉 늘어서 있어서 뭔가 해서 물어보니께, 글씨 최 서장이 돈 찾으러 오는 사람들 춥겄다고 천막을 세웠다 하잖여! 핫팩이랑 난로도 가져다 놨디야!”
“역시 우리 최 서장! 아주 칭찬혀!”
여성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을 보며 입술을 꿈틀거린다.
‘이게 시골의 정이구나.’
작년에 임용고시를 패스하고, 도초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최승아.
다리는커녕 배편도 하루에 몇 개 없는 시골 섬에서 지내야 한다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그녀는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시골의 정에 안도할 수 있었다.
최승아는 가까워지는 도초도를 보며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을 살짝 눌렀다.
드디어 자신도 선생님이다.
오랫동안 키워 왔던 꿈을 드디어 이룬 것이다.
그녀의 입가에 이른 봄이 찾아들었다.
* * *
“근디 진짜 뭐헌디 요로코롬 빨리 왔디야. 국민핵교는 3월달부터 거시기 아녀?”
움찔!
밤사이 내린 눈 때문에 느릿하게 달리는 택시 안, 최승아가 몸을 움츠리며 어색하게 웃는다.
맞다. 초등학교 교사는 보통 초등학교 개강에 맞춰, 혹은 그 며칠 전에 학교에 도착해 회의를 하고 수업을 준비한다.
빨라도 일주일 전에 모이는데, 그녀는 무려 열흘 전에 도착을 한 것이었다.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자취방 계약이 어제부로 끝났기 때문이다.
물론 교사 소집일까지 친구집이나 본가에서 지내도 됐지만…….
“그런데 견딜 수가 없어서요. 더 빨리 오고 싶은 거 참고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온 거예요.”
“으하핫! 그려요? 아따, 예쁜 분께서 말도 예쁘게 하시네. 아, 도착했네. 저쪽으로 쭉 가믄 초등학교 관사여.”
“가, 감사합니다!”
“그려요. 열심히 하쇼잉! 파이팅!”
“넵!”
택시에서 내린 최승아가 정문이 닫힌 초등학교를 바라본다.
다음 달부터 자신이 근무할,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칠 도초초등학교.
그녀의 전신으로 열의와 걱정 등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후아……!”
드르르륵!
기합을 넣은 최승아는 택시 기사가 알려 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관사.
‘이, 일반 주택이네?’
상상했던 것과 다른 관사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최승아는 활짝 열린 대문을 넘어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다가간다.
똑똑똑!
“계, 계세요?”
드륵!
“잉?”
일반 주택의 창문이 열리며 수염이 덥수룩한 삼십대 남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번에 임용되어 발령을 받은 최승아 입니다!”
“아…… 아아!”
잠이 덜 깬 듯 눈을 껌뻑이다 손가락을 튕긴 그.
“이번에 새로 오신다는 선생님이시구나!”
드륵! 탁! 쿠당탕!
“아이고! 어서 오세…….”
요란한 소음을 내며 문을 연 남성. 방금 전 끼지 않았던 안경을 낀 채 반갑게 맞이하던 남성이 최승아를 보곤 말을 줄인다.
‘응?’
“……혹시 나이가?”
“올해 스물다섯 살 입니다!”
“아, 그래요……. 아니, 왜 이렇게 젊은 분이…… 쯧. 아무튼 잘 왔어요. 들어와요.”
“네? 네.”
의아해하며 안으로 들어선 최승아는 너저분한 거실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박스들과 가방.
“저것들은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오늘 다 뺄 것들이니까.”
“네?”
“아아, 난 신학기부터 여기에 없거든요. 저기 장성으로 부임됐어요. 지금은 그쪽에 방이 없어서 잠깐 여기서 머무는 중이고.”
“아, 네……. 그러시구나…….”
좀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건물을 남자 선생과 함께 쓰는 건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 방을 안내해 드려야지? 최승아 선생이라고 했죠?”
“네, 선배님!”
“아무 방이나 골라잡아요.”
“네?”
“어차피 오늘 오후부터 이 관사는 최승아 선생만 쓰게 될 테니까 마음에 드는 방이 있으면 거기다 짐 풀라고요.”
남성은 그렇게 말하며 최승아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봤다.
* * *
신안경찰서의 회의실.
“……이렇게 할 예정입니다.”
짝짝짝!
브리핑을 마친 생활안전과장을 향해 박수를 친 종혁이 입을 연다.
“가거도부터 훑고 넘어온다는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기상청과 해경에 문의해 본 결과, 앞으로 일주일 동안 해상 날씨가 좋다기에 먼 곳부터 훑으며 넘어오는 쪽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으아…….”
종혁이 진저리를 친다.
압해도에서 출발해도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리는 흑산도. 가거도는 그런 흑산도에서도 훨씬 더 들어가야 도착하는 섬이다.
초등학교와 파출 분소만 겨우 있는 가거도.
고개를 저은 종혁이 다시 입을 연다.
“누가 가기로 했습니까?”
가거도부터 흑산도를 걸쳐 비금도와 도초도까지 향하는 긴 루트. 시간이 자칫 보름이 넘게 소요될 수도 있는 장기 출장이다.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최 팀장과 2팀이 직원 한 명이 자원을 했습니다, 서장님!”
“최 팀장이요?”
종혁의 시선이 한쪽에 앉아 있는 최재수에게로 향한다. 꿍한 표정을 보니 자원이 아니라 짬밥에서 밀린 듯한 최재수.
‘큭큭.’
속으로 웃은 종혁이 품에서 하얀색 봉투를 꺼내어 흔든다.
“이걸로 맛난 거 사 먹어요, 최 팀장.”
“감사…… 합니다, 서장님.”
씩 웃는 종혁의 모습에 최재수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