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78화 (77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78화>

“다들 순천고에 대해 알지?”

“네!”

“이번에 시험적으로 그 순천고와 우리 학교가 연계해서 10박 11일 합숙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작년 성적을 기준으로 총 30명을 뽑았는데…… 우리 반에선 선우.”

“네, 네!”

“그리고 지수랑 철종이가 포함된다.”

“오오오!”

선우의 눈이 동그래진다.

‘10박 11일? 엄마가 허락해 줄까?’

놀라우면서도 얼떨떨하지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바로 어머니 오향숙의 허락이었다.

하지만 가고 싶다.

숨이 막히는 집.

아주 잠시라도 떠나고 싶었다.

“이따가 교무실 와서 부모님께 드릴 통지서 가져가. 그리고 이건 오늘 시험 답안지다. 여기다 붙여 놓을 테니까 확인해.”

“차렷! 경례!”

“안녕히 계세요!”

“그래, 내일 보자.”

담임이 나가자 학생들이 우르르 칠판 앞으로 모여든다.

“야, 야! 내가 말할 테니까 다들 채점해! 국어 1번에 3!”

“그렇지. 3번 말곤 답이 없지.”

“아자!”

당연하다는 듯 심드렁하게 정답 체크를 하는 많은 수의 아이들.

선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답을 체크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 어어?”

흔들리기 시작하는 선우의 눈빛.

“아.”

채점을 마친 시험지들을 응시하는 선우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 * *

부우웅! 빵빵!

저녁 9시 50분이 되자 오향숙이 선우의 학원 앞에 도착한다.

따뜻한 찻물이 담긴 보온병을 꼭 끌어안은 그녀가 주변을 둘러본다.

“아으, 추워.”

“올해는 유독 추운 것 같네.”

자신처럼 자식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

차가 있는 부모는 차 안에서 대기하고, 그렇지 못한 부모는 거리에서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식을 기다린다.

고개를 돌린 오향숙이 오늘 걸려 온 전화를 떠올린다.

푸드코리아에서 온 전화.

‘빠른 시일 내에 가부를 결정지어 주면 좋다고 했지.’

“후우.”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선우를 데려가야 하는데…….’

중앙고등학교라는 곳이 그나마 명문이라 불린다고 하지만, 오향숙의 성에 차지 않는다.

‘이 김에 서울의 명문고로 전학을 시키는 게 가능하면 좋을 텐데…….’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선우를 목포고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하고 자신만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말마다 와서 점검을 하면 된다.

다만 문제는 선우다.

이전까지라면 충분히 믿고 혼자 올라갔겠지만, 최근 보여 준 모습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아들 선우.

“뒤늦게 사춘기라도 온 건가…….”

그렇다면 더 믿을 수가 없다.

자신이 옆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한눈을 팔 게 분명했다.

웅성웅성!

“아, 끝났나 보네.”

오향숙은 방금까지 하던 생각을 가슴 깊은 곳에 밀어 놓은 채 지친 모습으로 나올 선우를 기다렸다.

그런데…….

‘뭐, 뭐지?’

어느새 조용해진 거리에 오향숙이 당황한다.

그녀는 얼른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아, 김선우 학생이요. 잠시만요? 어? 오늘 안 왔는데요?”

“……네?”

오향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다급히 핸드폰을 들어 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달칵!

“아들! 지금 어디야!”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얘, 얘가?”

당황했던 오향숙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들 선우에게 정말로 사춘기가 온 것 같다.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이건 배신이다. 며칠 전 오해로 밝혀졌던 일에 버금가는 지독한 배신.

“까드득!”

그녀의 눈이 분노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선우가 갈 만한 곳을 찾아 목포시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 * *

“하아.”

뽀얀 입김이 어두운 밤하늘로 퍼진다.

“내가…… 왜 그랬지?”

선우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한다.

평상시보다 몇 개나 더 많이 틀렸다.

2학년 기말고사와 난이도 차이가 거의 없는 시험을.

이 시험지를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않았기에 그게 무서워 이렇게 도망쳐 버렸다.

그런데 잠시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시험지는 그냥 숨기면 되는 거였다.

“어차피 집으로 통보도 안 가는 시험이었는데…….”

투욱! 툭!

선우는 자신의 머리를 치며 자책을 했다.

‘지,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선우의 낯빛이 검게 죽는다.

총 30통의 부재중 전화.

발신자가 모두 엄마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려 놔서 전화를 받지 못한 거다.

“아, 안 돼.”

이러면 돌아갈 수 없다. 지금 돌아가면 어떤 벌을 받을지 모른다.

“어, 어쩌면…….”

순간 선우의 코끝으로 퀴퀴한 곰팡내가 스친다.

“끄흑?! 끅!”

좁고 어둡고 곰팡내가 가득한 지옥, 장롱.

눈앞이 아찔해지며 숨통이 막힌다.

선우는 익숙하다는 듯 가슴을 후려친다.

꽉 막혀 오는 숨통에 기계적으로 가슴을 두드린다.

그런데…….

‘어? 어?’

평소와 다르게 트이지 않는 숨통.

이제 트일 때가 됐는데 트이지 않는 숨통.

‘왜? 왜!’

손이 다급해지는 선우의 눈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한다.

“끄흡! 끄흐읍?!”

‘뭐, 뭐야. 나, 나 죽어? 죽는 거야?’

이젠 눈앞이 흐릿해진다. 소리가 멀어진다.

선우가 패닉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선우야!”

타다닥!

‘아저…… 씨?’

선우는 고개를 돌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 * *

삐익! 삑!

정신을 차린 선우가 천장을 보며 눈을 껌뻑인다.

높고도 새하얀 천장.

‘여긴 어디…….’

“일어났어?”

얼굴을 덮은 무언가를 떼어 내는 손길에 기겁하며 고개를 돌린 선우가 깜짝 놀란다.

“아저씨?”

종혁은 아저씨가 왜 여기 있냐는 듯 쳐다보는 선우의 시선에 이를 악문다.

공황장애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인 과호흡.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던 선우. 그런데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선우는 지금 당장 조치가 취해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선우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어떡할래. 이대로 집에 돌아갈래? 집에 가고 싶어?”

쿵!

선우의 가슴이 탁 틀어막힌다.

“……아, 아니요.”

들어가기 싫다. 최소한 오늘은 들어가기 싫었다.

‘된다면 영원히…….’

엄마가 없는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방금 전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게 됐다.

이러다간 죽는다는 걸.

“그러면 혹시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 있니?”

“기, 기숙사요? 어, 어떻게요?”

“그건 이 아저씨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정말 그러고 싶니?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어?”

“……네.”

엄마가 없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것이 설령 지옥이더라도.

“그래.”

종혁의 표정이 낮아진다.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이번에 합숙을 마치고 돌아오면 기숙사에 자리가 나 있을 테니까.”

“네?”

“대신 오늘은 아저씨가 하자는 대로 좀 하자.”

“뭐, 뭘요? 어떻게요?”

“일단 이거 받고, 핸드폰 줘 봐.”

종혁에게서 만년필을 받은 선우가 얼떨떨해하며 핸드폰을 내민다. 그걸 받아 들자마자 바닥에 떨어트리며 밟아 버리는 종혁.

콰직!

“힉?!”

“넌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는 길에 넘어져서 정신을 잃고 여기 병원에 실려 온 거야. 어머니 전화번호는 기억하지?”

“네, 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연락드려. 그리고 어머니가 전화를 받자마자 사과부터 해. 이제 정신을 차렸다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연락을 한 거라고.”

선우의 눈이 흔들린다.

“……그, 그래도 될까요?”

그런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걸까.

이미 전자사전을 숨기는 것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진하게 받고 있는 그.

“그래야 혼나지 않을 거야.”

움찔!

“……네.”

“그리고 그 만년필은 일종의 도청 장치니까 잘 간직해.”

“네, 네? 네에?!”

“합숙 가기 전까지 그걸 꼭 몸에 지니고 있어. 그래야 오늘 같은 일이 있을 때 바로 널 찾아갈 수 있으니까. 그거 GPS도 되는 거거든.”

“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거기다 말해. 아저씨가 언제나 이걸 한쪽 귀에 꽂고 있을 테니까.”

이어폰을 보여 준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선우에겐 지금 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스스로 원하는 걸 결정할 수 있을 시간이.

“선우야.”

“네.”

“힘들면 꼭 말을 해 줘. 그럼 이 아저씨가 널 찾아갈 테니까.”

구해 줄 테니까.

종혁은 뒷말을 삼킨다.

“그럼 쉬어라.”

“아, 아저씨!”

정신없이 몰아침에 당황하던 선우가 반사적으로 종혁을 불러 세운다.

왜 불렀냐고 묻는 시선에 선우가 입술을 깨문다.

왜일까. 대체 왜일까.

“아저씨는…… 왜 제게 이렇게 잘해 주세요?”

“그러고 싶으니까.”

“네?”

“또 그래야 하니까. 오히려 늦어서 미안하지. 푹 쉬어.”

“네? 네, 네?”

드륵! 탁!

선우는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병상에 누운 선우가 웅크리며 눈을 감는다.

따뜻하다. 왜인지 가슴이 참 따뜻하고, 편하다.

“고마워요…….”

선우의 입가에 떨리는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 * *

오향숙이 망연히 아들을 본다.

하루 온종일 찾아다녔음에도 보이지 않던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다행히 외상은 없어 보이는 아들.

선우는 그런 엄마의 눈빛에 안절부절못했다.

“기, 길을 지나려다가 차가 오는 바람에 노, 놀라서 넘어졌어요.”

당황하고 무서워 종혁이 말한 것에 살을 덧붙인 선우.

움찔!

오향숙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정신을 차렸다고? 그럼 어제는 공부를 못했겠네?”

“네?”

선우는 눈을 껌뻑였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은 걸까.

화를 참는 듯한 엄마의 눈빛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는 걸.

“일단 학교에 가. 그리고 오늘은 학원에 가지 말고 집으로 와.”

“네?!”

선우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했다.

하지만 이내 곧 그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그래도 내 걱정을 하시는구나…….’

울컥 무언가가 차오른다.

“아, 엄마!”

선우가 가방을 뒤져 통지서를 내민다.

“합숙? 순천고 학생들이랑?”

“으응. 작년 성적을 기준으로 상위 30명을 뽑아서 진행하는 거래요.”

순천고는 그녀도 많이 들어 본 명문고다.

“……알았어. 이런 건 무조건 가야지. 엄마가 선생님께 연락해 볼게.”

선생님들이 일어날 때부터 잠잘 때까지 감시할 합숙. 이런 곳이라면 믿을 만했다.

“얼른 옷 입고 1층으로 나와. 학교 가야지.”

선우를 내버려 두고 나온 그녀가 원무과로 향했고, 남겨진 선우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 숨을 탁 토해 낸다.

“후, 후아!”

심장이 떨려 혼났다.

“……다행이야.”

이 거짓말에 엄마가 넘어가 줘서.

엄마를 속인 죄책감이 가슴을 두드리지만, 선우는 혼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선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아저씨, 듣고 계세요?”

“모두 수납이 됐다고요?”

“네. 어제 환자분과 함께 오신 분께서 모두 수납을 하셨어요.”

오향숙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혹시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개인정보는 알려 드리지 않는 게 원칙이라서요.”

“그래도…… 하아. 네, 감사합니다.”

몸을 돌린 오향숙이 핸드폰을 든다.

“네, 최종혁 과장님. 제가 너무 이른 아침에 연락을 드렸을까요? 네. 저 할게요. 숙소는 따로 지원해 주는 거 맞죠? 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그녀는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거기 복덕방이죠?”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으흐응.”

하교를 하는 선우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언제나 천근만근 무거웠던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난생처음이었다.

그 기분을 만끽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아파트 앞에 도착한 그.

잠시 아파트 입구에 멈춰 선 선우가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다음 주 합숙을 다녀오면…….”

이제 저 집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답답하고도 지옥 같은 집에서.

“미안해요, 엄마.”

엄마가 많이 아쉬워할 테지만, 살고 싶었다. 숨을 돌리고 싶었다.

선우는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죄책감을 누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씻고 나오렴.”

“네!”

선우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나온다.

식탁에 앉은 두 사람.

선우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할까, 또 걱정을 해 주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품어 본다.

“후우. 선우야. 아들.”

“네, 엄마.”

“엄마에게 이번에 아주 좋은 기회가 왔어. 엄마 음식 솜씨가 좋은 거 알지?”

이어진 그녀의 설명에 선우가 눈을 크게 뜬다.

“저, 정말요?!”

“응. 별다른 일이 없으면 다음 달부터 경기도 광주로 가게 될 거야.”

“와아!”

왜일까.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선우는 치밀어 오르는 격동을 숨기고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엄마가 실망하지 않을까 시선을 피했다.

“그래서 엄마가 많이 생각하고 결론을 내린 건데…… 우리 아들도 전학을 가야겠다.”

쿵!

“네?!”

“알아보니까 광주에서 성남으로도 등교할 수 있는데, 성남에도 꽤 괜찮은 학교들이 있더라고. 네 성적이면 거기서도 당연히 반길 테고…….”

뒷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맑았던 하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아들, 들리니? 엄마 말 들려?”

“……왜, 왜요?”

선우가 떨리는 눈으로 엄마를 본다.

오향숙은 그런 아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왜긴 왜야. 내가 널 어떻게 믿고 여기에 놔두겠니.”

이미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런 사고까지 났다. 제 아빠와 같은 모습으로 갈 뻔했다.

목포의 터가 안 좋은 것이었다.

“아.”

아침에 넘어간 건 넘어갔던 게 아니었다.

선우는 이 순간 깨달았다.

자신은 뭘 어떻게 해도 어머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끄흡! 끄흐윽?!”

“아들? 아들!”

선우는 가슴을 잡고 무너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