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76화>
이건 선우의 이야기다.
또 다른 선우의 이야기이자, 지금의 선우가 앞으로 저지를지도 모를 이야기.
종혁은 벌벌 떨리는 선우를 응시했다.
‘주, 죽었다고?’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과 비슷한 삶을, 아니 똑같은 삶을 살았던 종혁의 이야기 속 인물.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버렸다니.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나, 나도 죽는 거야?’
스윽!
손등을 감싸는 따뜻한 손길에 정신을 차린 선우의 귀로 스쳐 지나간 종혁의 말이 떠오른다.
“선우야, 너 힘드니?”
쿠웅!
“……네.”
힘들어요.
이러다간 죽을 것 같아요.
선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 * *
“그, 그래서 그분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였어요?”
하염없이 울던 선우가 정신을 차린 후 처음으로 던진 질문.
종혁의 표정이 낮아진다.
이제부터 하는 말은 종혁이 선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예전에는 가정폭력이 그저 부모의 훈육으로 치부되기도 했었어. 그런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칠 행복의 쉼터 같은 곳도 없었고.”
자립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로서는 부모의 말을 따르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목적도 꿈도 없이 그냥 부모님이 시키니, 하라고 하니 공부를 하는 거지.”
종혁은 이러한 교육을 무작정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십대부터 뚜렷한 목표를 지니고 있는 이들은 매우 드물고, 당장 목표로 하는 꿈이 없다면 수험 공부를 해서 명문대를 가는 것이 미래에 유리한 건 맞으니까.
명문대라는 학력이 훗날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의 폭을 넓혀 줄 테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학대가 더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수능을 망치고 자살을 한 수험생들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 본 적 있을 거야.”
“……네, 들어 본 적 있어요.”
“그 사람들은 도대체 왜 자살을 했던 걸까?”
모두 무섭기 때문이다.
이 한 번의 실패로 자신의 인생 전체가 망가진 것 같아서.
실패한 자신을 향해 쏟아질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서.
또다시 1년을 더 공부할 자신이 없어서.
“고작 시험이 뭐라고. 성적이 뭐라고.”
쿵!
“시, 시험이 중요하지 않다고요?!”
선우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시험이 중요하지 않다면 지금 자신은 왜 이토록 힘들어야만 한단 말인가.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는 거야. 고작 19살이잖아.”
한 문제, 두 문제 차이로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바뀔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을 포기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의 실패는 완전한 실패가 아니다.
한 번 넘어진 것뿐이다.
다시 일어서서 달리면 되는 것이었다.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 좋은 대학을 가면 좋고.”
다만 그게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부모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수험 성적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듯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을 하고 한다.
그것이 아이들을 끝내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종혁은 이제야 자신이 하려는 말을 알아듣는 선우의 손을 다시 잡았다.
“선우야.”
“네, 네.”
“살자, 우리. 살아 줘.”
자신도 도울 테니까 부디.
“흐으으윽!”
선우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 * *
“죄, 죄송해요.”
한참을 울다 그친 선우가 볼을 붉힌다.
그럴수록 종혁의 가슴은 찢어진다.
이렇게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가 어머니를 살해한 거다.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그렇게 됐을까.
왜 이 아이가 그렇게까지 궁지에 몰릴 때까지 그 누구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을까.
왜 부모의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지 않았을까.
“괴로웠니?”
“……네.”
괴롭고, 힘들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사연이었다.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는 성공을 하려면 친구도 가려 사귀어야 한다면서 당시 노는 걸 더 좋아했던 친구들을 멀리하게 했다.
그렇게 친구들이 떠나갔고, 새로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쟤는 어머니가 좋아해 줄까. 쟤는 허락해 줄까.
결국 주위엔 어머니밖에 남지 않게 됐다.
그렇게 선우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 버렸다.
“이젠 어떻게 하고 싶니?”
“모르겠어요.”
“어머니와 계속 살고 싶은 거야?”
“……그것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싫다. 엄마가 무섭다.
하지만 좋다.
공부에 대한 것만 제외하면 참 좋은 어머니.
딱 그 하나가 이렇게 숨을 막히게 하지만, 그 외에는 너무도 자신을 위해 준다. 자신을 위해 헌신해 준다.
종혁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선우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지.’
선우의 인터뷰 내용도 그랬다.
어머니께 미안하다. 어머니를 보고 싶다.
선우에게 있어 오향숙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야 하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전했다. 선우에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종혁은 전자사전을 내밀었다.
“핸드폰도 검사받지?”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눈에 종혁은 다 안다는 듯 웃어 줬다.
“이걸로 통화랑 문자도 할 수 있어.”
선우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리고 여기 버튼들 보이지?”
전자사전 옆구리에 튀어나온 하나의 버튼.
“한 번 짧게 누르면 그때부터 녹음이 시작될 거야.”
“네?”
“그리고 짧게 두 번 누르면 녹음 종료. 한 번 길게 누르면 내게 전화가 연결이 될 거야.”
그러니 힘들고 아픈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줬으면 좋겠다.
그릇된 선택을 하기 전에.
“……감사합니다.”
“먹자. 이미 식었지만.”
아니라는 듯 딱딱한 피자를 입에 가져간 선우는 맛있다며 활짝 웃었다.
-우리의 함성은 신화가 되리라!
“와.”
전자사전에서 재생되는 축제 영상에 선우의 눈이 흔들린다.
“참 재밌게 놀지?”
“네…….”
분명 우리나라 상위 1퍼센트의 학생들이, 수재와 천재들이 가는 대학임에도 열기가 넘친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한국대에 입학한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종점이 아니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이지.”
보다 좋은, 그리고 편한 길로 만들 수 있기에 갈 뿐, 인생이란 길고 긴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갈림길에 불과한 장소.
“스쳐 지나가는 갈림길…….”
“지나가면 좋지만, 꼭 지나갈 필요가 있는 곳은 아니란 거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 봐. 힘들거나 심심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네!”
종혁은 멀어지는 선우를 바라보다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이제 시간을 벌었고.’
버팀목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알려 줬다. 그 심리적 안정이 선우의 그릇된 선택을 한 번쯤 말려 줄 거다.
“후우. 그럼 가 보실까.”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오향숙을 보러 가야 했다.
종혁은 오향숙이 다니는 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를 마친 오향숙이 기지개를 켠다.
‘오늘 경찰대를 나온 경찰 간부의 강연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공부할 시간 뺏긴 거 아니야?”
오향숙의 눈이 뾰족했다가 가라앉는다.
아들이라면 그런 시간에도 공부를 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명문고에 진학한 건 참 다행이지만…….”
고교평준화로 인해 그 위상이 좀 줄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목포고다. 학생들과 수업의 수준이 높은 명문고.
그래서 다행이지만, 이런 강연들로 아들이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그녀였다.
어차피 선우는 한국대에 입학할 테니 말이다.
한국대 외에 다른 대학은 갈 필요도 없고, 가서도 안 됐다.
“선우 엄마.”
“응, 지민이 엄마. 왜?”
“선우가 작년 모의고사 때 전국에서 천 등 안에 들었다며?”
“정확히는 852등이었지.”
위로 아직 851명이 남아 있다. 한국대에 가려면 앞으로 끌어내려야 할 학생들이 많았다.
“대체 비결이 뭐야?”
흠칫!
오향숙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내가 말할 땐 콧등으로도 안 듣더니?”
“아니, 미진이도 이제 2학년이고 하니까…….”
“왜? 전남대 과외 선생이 시원치 않나 봐?”
광주를 포함해 전라남도 최고 명문대인 전남대학교.
자신의 조카가 그 명문대의 경영학과생이라고, 그 조카가 딸을 과외해 준다고 얼마나 잰 척을 했던가.
“뭐, 시원치 않은 건 아니고…….”
‘그럼 지민이 머리가 나쁜 거네. 지 딸 머리가 나쁜 걸 나보고 어쩌란 거야?’
학원 같은 거 보낼 필요 없다고, 과외가 최고라고 자랑질을 하던 지민이 엄마에게 한바탕 쏘아붙이고 싶다.
하지만 앞으로도 수십 년간 함께 봐야 할 사이다.
“흐응. 맨입으로?”
“앞에 카페에서 커피 마실래? 내가 살게!”
“뭐, 곧 쉬는 시간이니까…… 얘, 너도 갈래?”
“네? 저도요?”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이십대 여성이 화들짝 놀라고, 지민이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선우 엄마!”
오향숙이 갑자기 주방으로 들어오는 사장에 의아해한다.
“방금 3번 룸으로 들어간 회덮밥이랑 동태탕 누가 만들었어?”
“제가 만들었는데요?”
“그래? 그럼 얼른 손님한테 가 봐. 손님이 할 말이 있데!”
“……또요?”
요 며칠 사이 자신을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오향숙의 미소가 서린다. 이렇게 불려 갈 때마다 팁을 받았기 때문이다.
“얼른 가. 얼른!”
“아, 네…….”
오향숙은 얼른 손을 닦으며 주방을 나섰다.
“이번엔 엄청난 부자인 것 같으니까 특별히 언행에 조심하고!”
“네.”
똑똑똑!
“예,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오향숙이 살짝 놀란다. 사장의 말처럼 정말 있어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절 부르셨다고요.”
“아, 이 동태탕을 만드신 분입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
“아뇨. 아니요.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맛있어서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됐습니다. 혹시 비법 양념 같은 게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없어요.”
그저 있는 조미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넣어 만드는 것뿐이다. 비법 양념은커녕 육수랄 것도 딱히 없다.
“오! 손맛이 대단하시네요.”
“호호. 아니에요.”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반갑습니다. 푸드코리아의 최종혁 과장입니다.”
명함을 내민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아주머님을 저희 푸드코리아에서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쿵!
“……네?”
오향숙은 입을 떡 벌렸다.
* * *
“선우 엄마, 오늘은 이만하고 가 봐.”
“네?”
“왜 그렇게 놀라? 오늘은 장사가 잘 안 되는 것 같으니까 가 보라고.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아, 아니…….”
강제적으로 식당 밖으로 쫓겨난 오향숙이 얼른 가라고 손을 흔들다 들어가는 사장의 모습에 피식 웃는다.
‘들었나 보네.’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주방 찬모들의 손맛에 따라 달라지는 가게 매출.
이 식당에서 일한 지 벌써 10년이다. 이 식당의 매출 중 30퍼센트는 자신 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래도 그 때문에 환심을 사려는 것 같다.
“이런 날이 많으면 좋겠네, 호호.”
그녀는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끼며 몸을 돌렸다.
“잠깐 아들만 보고 집에 들어갈까?”
지금쯤이면 학교에 있을 선우를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오향숙이 종혁이 준 명함이 생각나 꺼내어 바라본다.
‘푸드코리아.’
“식품개발부라고 했지?”
맛 조절 능력. 그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능력을 알아봐 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런 그녀를 더 기분 좋게 만드는 건 바로 연봉이었다.
최소 월 400만 원.
식당에서 뼈 빠지게 일해 봤자 겨우 200만 원 언저리를 버는 그녀에게 400만 원은 지금의 월급보다 두 배나 많은 엄청난 돈이었다.
아들을 한국대에 보내기 위해선 무조건 필요한 돈.
그녀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푸드코리아가 경기도 광주에 있다는 건데…….’
이것이 많이 걸린다. 그곳엔 목포고만 한 명문고가 없으니까.
오향숙은 인상을 찌푸리며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목포고에 도착해 얼마나 기다렸을까.
웅성웅성.
해가 지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하교를 시작한다.
“호오. 호오.”
1월, 맹추위에 얼어붙은 손을 불던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오는 선우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선우야!”
“어? 어, 엄마?”
고개를 든 선우가 딱딱하게 굳는다.
반사적으로 종혁이 준 전자사전을 주머니에 숨기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함성은 신화가 되리라!
“응?”
오향숙의 시선이 선우의 손에 들린 전자사전으로 향하고, 선우의 얼굴이 하얗게 굳는다.
그리고 이내 차갑게 가라앉은 오향숙이 눈이 아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