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75화 (77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75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가 부엌에 서서 김밥 재료를 다듬는 모습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보였던 어머니의 뒷모습.

어머니의 젊었을 적 얼굴은 이젠 떠오르지 않지만, 그 뒷모습만큼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시절엔 무엇 하나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고, 모든 게 그냥 다 좋았다.

방 한구석에 핀 곰팡이도, 집 안에 가득한 습하고 퀴퀴한 냄새도.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특별한 날이 있을 때만 먹는 김밥을 자신은 매일같이 먹을 수 있어서 좋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싸 준 김밥과 어묵 꼬치를 한 손에 쥐면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런 김밥이 물리고 싫어진 건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였다.

“가난은 사람을 일찍 철들게 한다죠?”

1980년대 말.

그 당시엔 지금처럼 PC방이나 코인 노래방도 없었고, 어린아이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곤 오락실 하나가 전부였다.

게임 한 번에 50원짜리 오락실.

그곳에 드나들며 자신의 집이 다른 아이들의 집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은 고작 50원도 없어서 매일 다른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했으니까.

그로 인한 자격지심과 분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져만 갔고,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깔보는 듯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죠.”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지?

“하지만 더 화가 났던 건, 제가 뭔가를 잘못하면 저를 욕하는 게 아니라 제 어머니를 욕한다는 거였습니다.”

종혁처럼 편부모 가정의 학생들의 눈이 흔들린다. 자신들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었죠.”

홀로 자신을 키우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고생하시던 어머니.

가난은 원망할지언정 어머니를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가 자신 탓에 허리를 굽히는 모습을 보자, 세상만 탓하던 한심한 자신을 향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비록 없이 살아도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사람이 되자고.”

그날부터 무엇을 하더라도 독기를 품었다. 뭔가를 하나 잡으면 될 때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주변 친구들의, 선생님들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 유도라는 게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건 종혁에게 있어 다시없을 기회이자 행운이었다.

“제 몸 보이죠?”

“네!”

“6학년 때 180센티에 근접했습니다.”

“우와!”

“오!”

“다행히 재능도 있었죠.”

처음 나간 대회에서 8강까지 올랐다.

이후 유도부가 있는 온갖 중학교에서 스카우트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유도는 종혁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들 공부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거기 학생, 공부가 노력만으로 된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질문을 받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목포고 학생들 전체가 고개를 젓는다.

그들도 뼈저리게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진 밤을 새서 공부하는 것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결국 그들이 목표로 하는 꼭대기는 노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맞습니다. 공부도 재능이죠.”

종혁이 뒤에 세워진 화이트보드에 커다란 글자를 적는다.

[공부는 여러 가지 재능 중 하나]

[재능=선택지]

재능이 많을수록 선택할 수 있는 미래도 많아진다.

“제겐 유도라는 재능이 있었고, 그걸 택한 거죠.”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면 지금의 종혁은 없었을 터였다.

“살면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계속 올 겁니다. 그리고 그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 위해선 각자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어야겠죠.”

그 재능이 공부고, 그것을 계속 갈고닦는 것도 분명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법 중 하나일 뿐, 선택지가 그것 하나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가령 저 같은 경우엔…….”

회귀 후 종혁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

내 입맛대로 가기 위해 발악을 했던 과거를.

적당히 포장해서.

* * *

“재미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모두 재미없었죠?”

“네!”

“아니요!”

“재밌었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아직은 웃음이 헤픈 십대라서 그런지 웃음이 쉽게 터진다.

“그럼 우리 질문 시간을 가져 볼까요? 궁금한 게 있는 사람 손?”

처처처척!

수많은 손들이 올라온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우의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오케이. 거기 학생.”

“경찰이 되기 위해선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경찰에게 사명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사명감이라……. 음. 골목에 피투성이가 된 할머니가 쓰러져 있습니다. 학생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시, 신고를 하겠죠?”

“그리고요?

“괜찮나 살펴보겠죠?”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죠? 학생이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데?”

“어? 어……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연히 그래야 하는 마음. 경찰의 사명감이란 건 결국 그런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약자를 보호하며,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 것.

경찰의 사명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그 기본은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는 그러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뭐, 물론 단순 연봉은 판검사나 변호사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요새 경찰 복지가 엄청 좋아졌거든요.”

종혁이 화이트보드에 경찰의 복지와 월급, 호봉에 따른 월급의 변화들을 빠르게 적는다.

그에 학생들의 눈이 빛난다.

월급은 적지만 그 외적인 부분들이 빵빵했다.

“여러분이 경찰을 되기를 희망한다면 오직 이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설혹 범인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피해자는 만들지 말자. 경찰에게 있어서 사명감은 오직 이것뿐이고, 이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 경찰이 될 수 있습니다.”

“오오.”

“호.”

“그럼 다음 질문?”

다시 손들이 올라왔다.

* * *

“오늘의 강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아아아!”

“아, 왜지? 이제 더 이상 저 아저씨 말을 듣지 않아도 돼서 다행인 것 같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 주면 땡큐! 아, 다들 치킨 좋아합니까?”

“우왁!”

“네!”

“피자는?”

“없어서 못 먹어요!”

“아주 환장을 하네.”

“크크크.”

“이제부터 내가 할 말이 뭔지 다 아는 것 같으니까 더 이상 말 안 할게요. 다들 교실로 뛰어! 치킨과 피자는 거기 있다!”

“우와아아아아!”

종혁은 우르르 빠져나가는 학생들과 안으로 들어오는 피자와 치킨에 활짝 웃는 졸업생들을 일견하며 선생들에게 다가갔다.

“제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됐을 겁니다.”

편부모 가정 아이들에겐 희망이 됐을 거고, 경찰대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겐 자신의 꿈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을 거다.

그리고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마냥 좋은 성적만 받으려는 학생들에게도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을 거다.

“그렇게 말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종혁은 푸근히 웃으며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선우를 봤다.

* * *

‘달라.’

똑같이 편모 가정인데도 달랐다.

‘만약 내게도 그 아저씨 같은 엄마가 있었다면…….’

선우의 낯빛이 흐려진다.

“우와악!”

“미, 미쳤어! 각자 한 판씩이야!”

피자뿐만 아니라 치킨도 한 마리씩이다.

경악하는 학생들처럼 선우도 깜짝 놀란다.

밀가루와 튀김은 장에 트러블을 일으키고 컨디션을 저하시킬 수 있기에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을 수가 없는 치킨과 피자.

선우가 침을 꼴깍인다.

그때였다.

“김선우.”

“아, 네!”

“넌 좀 따라오고, 다들 맛있게 먹어라! 체하면 죽는다!”

“네!”

“와아악!”

난리가 난 교실.

선우는 아쉬움과 초조함을 품으며 담임의 뒤를 따른다.

“쌤, 무슨 일로…… 어?”

선우는 누군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고, 그 누군가인 종혁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금 시간 되지?”

이제 면담, 선우의 고통을 알아볼 시간이었다.

* * *

목포고 근처에서 치킨과 피자를 같이 파는 치킨피자 집.

“저, 공부해야 하는데…….”

“오늘 몇 시간쯤은 괜찮잖아요. 그날 이후로는 좀 어때요. 그놈들 친구들이 괴롭혀요?”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괴롭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피해 다녔다.

종혁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선 어땠어요? 어머님께 더 혼났어요?”

움찔!

“……아니요.”

“다행이네요.”

울컥!

테이블 아래로 늘어진 선우의 주먹이 쥐어진다.

다행히 아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어머니 오향숙의 간섭이 더 심해졌다. 이젠 매 순간순간이 숨 막혔다.

학교에서조차도 편히 쉴 수 없는 숨.

이러다간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종혁은 고개를 숙인 그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봤다.

선우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지워 버린다.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확실히 알겠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선우는 이미 궁지에, 그것도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숨 막히지?”

“흡?!”

선우가 경악하며 고개를 든다.

종혁이 다 이해한다는 듯 바라본다.

“아주 예전에 너와 비슷한 아이가 있었어.”

웃는 게 참 맑은 아이였다.

“이 친구의 아버지는 10살 때 돌아가셨지. 그것도 교통사고로.”

선우의 눈이 크게 떠진다. 자신의 아버지도 10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말하길, 가장 기억이 남는 어린 시절이 바로 엄마 앞에서 구구단을 외우는 거였대.”

“흐읍?!”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그리고 식당에서 낮 타임만 일하는 어머니.

선우의 눈이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떻게 5살짜리가 구구단을 외울 수 있겠어. 자신의 생각도 제대로 뱉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그런데 못 외운다고 맞았다고 한다.

사정없이 맞다 못해 눈이 오는 겨울날 팬티도 입지 못한 채 쫓겨났다.

그 말을 듣자 선우의 숨통이 탁 틀어막힌다.

자신도 비슷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겨울, 시험 성적이 나쁘다고 팬티만 입은 채 쫓겨났었다.

너무도 변해 버린 어머니의 모습에 선우는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어머니 앞에서 구구단을 외워야 했대.”

선우도 그랬다. 언제나 학교가 끝나면 엄마 앞에서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그리고 못 외우면 사정없이 맞고 쫓겨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쩔 땐 장롱에 갇히기도 했어.”

“자, 장롱에요?”

장롱이란 단어에 선우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엄마 잘못했어요! 꺼내 주세요! 공부 열심히 할게요! 안 틀릴게요!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른다.

종혁은 잠시, 아주 잠시 선우를 외면했다.

“아이에겐 집이 지옥이었던 거야. 그러던 와중에 언제나 자신의 편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지.”

그때부터 어머니는 더 지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있기에 선을 지켰던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들을 쥐 잡듯 잡기 시작했다.

자식만큼은 성공시키고 싶어서.

중학교도 나오지 못해 빌빌거리는 자신과는 다르게 성공시키고 싶어서 그렇게 학대를 했다.

선우의 몸이 덜덜 떨린다.

이것 역시도 똑같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그 아이도 어느새 고등학생이 됐지. 고3, 수험생이 된 거야.”

그럼에도 학대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터져 버리고 말았어.”

“그, 그래서요?”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산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종혁은 집요하기까지 한 선우의 눈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해 버리고 만 거야.”

쿠당탕!

선우가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이 경악과 공포로 물들었다.

종혁은 그런 선우의 손을 꼭 잡았다.

“다시 물어볼게, 선우야. 너 힘드니?”

그렇다고 말해 주기를.

종혁은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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