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73화>
저녁 10시,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선우의 모친, 오향숙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
혹여 아들이 신경을 쓸까 몸에 가득한 음식 냄새를 씻어 내고, 공부에 지치고 배고파 할 아들이 힘을 낼 음식을 준비한다.
덜컹!
“오늘은…….”
온갖 식재료들이 들어 있는 냉장고.
빛나는 오향숙의 눈이 몇 가지에 고정된다.
“이게 좋겠네.”
아몬드와 땅콩, 블루베리를 꺼낸 그녀가 블루베리를 갈기 시작한다.
눈과 두뇌에 좋은 블루베리. 혹여 몸이 비대해져 체력이 떨어질까 저지방 우유와 꿀을 넣어 함께 간다.
카가가가가가!
믹서기를 한 손으로 잡은 오향숙이 다른 손으론 볼펜을 들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시 체크한다.
아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다.
부모와 대화가 단절된 아이보다 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아이가 더 향상심과 정신 안정도가 높다라는 어느 연구 결과 때문이다.
육아는 다그치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교감하는 것.
아들 선우가 10살 때,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이후 매일같이 해 온 일과였다.
혹여 아비 없이 자란 애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욱씬!
“흡?!”
양팔을 끌어안으며 몸을 웅크린 그녀가 식은땀을 흘린다.
누가 면도칼로 저미는 것 같은 손가락들.
누가 인대를 잡아 찢는 것 같은 손목과 팔꿈치, 어깨.
자신도 모르게 안방으로 달려가 보일러 온도를 올리려던 오향숙이 이를 악물며 참아 낸다.
‘방이 따뜻하면 졸려…….’
아들도 그 힘들고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부모가 돼서 도와주지 못할망정 방해할 수 있을까.
한참을 주무르던 그녀가 겨우 한숨을 내쉬며 싱크대를 붙잡는다.
애써 눈물을 닦는 그녀.
이럴 때마다 먼저 가 버린 남편이 떠오른다.
“여보…….”
그녀의 기억이 먼 옛날로 향한다.
* * *
“여보!”
어두운 밤, 오향숙이 버스에서 내리는 남편을 향해 활짝 웃는다.
그런 그녀를 향해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검은 봉지를 들어 올리며 배시시 웃는 남편.
“추운데 뭐하러 기다리고 있어. 먼저 들어가지. 선우도 기다릴 텐데.”
“우리 남편이랑 함께 들어가려고 기다렸지?”
발갛게 달아오른 오향숙의 귀를 보는 남편의 속이 쓰리다.
자신이 벌어 오는 것으로는 부족해 저녁 시간대에 식당에서 일을 하는 아내.
“씁. 또 이상한 생각한다.”
“크흠. 그건 뭐야?”
아내의 손에 들린 검은 봉지에 시선이 간다. 자신처럼 치킨을 산 게 아닐까 걱정이 든다.
“이거? 우리 선우 문제집.”
“……에휴. 적당히 하라니까.”
중학교만 졸업해서 그런지 아들의 공부에 꽤 진심인 아내.
지금이야 선우가 초등학생이라 선을 지키고 있다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자고로 애들은 나무 같은 곳에 기어 올라가다가 떨어져 머리가 터져 보기도 하고…….”
“싸우기 싫은데?”
“……예, 마님.”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둘은 이내 웃으며 신호등으로 향한다.
“오늘 별일 없었어?”
“오늘? 별일 없었지. 여보는?”
“나야 뭐…….”
별일은 많았다.
하지만 아내에겐 내색할 수 없었다.
“별일 없었지. 아, 신호다.”
남편은 오향숙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그 손을 잡으며 횡단보도 위에 발을 내딛는다.
그 순간이었다.
빠아아아앙!
그들을 덮치는 커다랗게 하얀 불빛.
남편은 반사적으로 오향숙을 바라본다.
둘 사이의 시간이 한없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사랑해.’
‘아, 안……!’
투욱!
밀쳐지는 몸에 오향숙의 눈앞이 아찔해진다.
미소를 짓는 남편의 모습에 눈물이 차오른다.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
꽈아아아앙!
“여보-!”
삐용! 삐용!
“다, 당신…… 그날 기억나?”
“마, 말하지 마! 말하지 말라고!”
오향숙이 피투성이가 된 남편을 붙들며 애원한다.
말하게 해선 안 된다. 이렇게 말할 힘도 아껴야 살 수 있다.
“저,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서 당신한테 고백했잖아.”
기억난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민주화를 위해 시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광주의 도청 앞을 쩌렁쩌렁하게 울린 외침.
-향숙 씨! 결혼합시다-!
-미, 미쳤어! 그만해!
오향숙은 그렇게 용감하면서도 무모한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됐다.
“손에 무,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러지 못했네.”
“말하지 말라니까, 좀!”
흐려지는 남편의 눈동자에 오향숙의 눈앞이 흐려진다.
“미안해……. 이, 이런 못난 사람과 결혼해 줘서 고맙고…… 호, 혼자 남겨 둬서 미안해……. 쿨룩! 컥!”
“좀! 좀!”
“우, 우리 선우……. 우리 선우…… 결혼하는 건 봐야 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연애를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제발! 제바알!”
콱!
손을 거칠게 잡는 남편의 손에 오향숙이 헛숨을 삼킨다.
남편의 눈빛이 또렷해지자 온몸에서 힘이 풀린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진다.
남편은 그런 오향숙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자신이 떠나면 혼자가 될 아내.
엄마랑 단둘이 남겨질 아들, 선우.
미안했다. 너무도 미안했다.
“우리 선우 내 몫까지 사랑해 줘. 이런 짐 혼자 지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정말 사랑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향숙 씨…….”
급격히 흐려지는 눈.
툭!
힘없이 풀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손에 그녀의 심장도 함께 저 아래 나락으로 떨어진다.
“여보-!”
* * *
“아빠, 일어나! 일어나서 나랑 놀자-!”
“아이고!”
“흐으으윽!”
관을 잡고 흔드는 선우의 모습에 모든 이들이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춘다.
오향숙은 떠나는 남편을 보며 망연히 바라본다.
너무 흘리고, 또 흘려서 나오지도 않는 눈물.
대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걸까.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엄마, 아빠가 안 일어나요! 일어나라고 좀 해 줘!”
오향숙은 자신의 손을 잡고 흔드는 아들 선우를 응시한다.
‘그래. 그렇구나.’
모두 성공하지 못해서다.
배움이 짧아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해서다.
‘그랬으면 차를 타고 다녔을 텐데…… 그랬으면 이런 사고도 나지 않았을 텐데…….’
이 지독한 가난이 남편을 자신들에게서 떼어 놓은 거다.
‘그래. 더 슬퍼할 수 없겠구나.’
자신이 슬픔에 정신을 놓으면 하나뿐인 아들 선우는 어떡한단 말인가. 지켜야 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야 하고, 남편의 유언도 지켜야 한다.
‘우리 선우, 판검사로 키울게. 의사로 키울게. 그러니…… 하늘에서 지켜봐.’
그녀의 두 눈이 단단하게 굳어 갔다.
* * *
“휴우…….”
애써 얼굴에 흥건한 땀을 닦은 그녀는 다시 볼펜을 든다.
‘앞으로 10개월이야!’
수능까지 앞으로 10개월. 길고 길었던 달리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후로 논술이다 뭐다 준비를 해야 할 건 많지만, 지금보다는 덜 힘드리라.
‘10년을 버텼는데, 10개월을 못 버티겠어?!’
더욱이 앞으로 10개월이 아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지 않은가.
작은 방심, 작은 이기심으로 아들의 인생을 망칠 순 없었다.
아들을 한국대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온몸이 찢겨져 나간다고 해도 참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 있었던 일과 일하는 도중 짬짬이 읽은 명언책에서 발췌한 글귀를 적으니 어느덧 10시 30분.
아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오늘도 늦네. 또 뭘 사 먹고 오는 건가?”
오향숙이 한숨을 내쉰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도시락뿐만 아니라 간식까지 모두 식단을 맞춰 주고 싶다.
하지만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명문인 목포고다.
졸업생들 대부분이 명문대에 진학을 하는 목포고.
이런 짬짬이 시간에, 아주 작은 일탈을 하며 서로 먹을 걸 나누며 친해지는 게 십대이다 보니 참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들었던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휴우. 너무 늦는데…….”
이런 일이 없었던 아들이라서 그런지 더 걱정이 든다.
결국 아들에게 전화를 한 그녀.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놈이…….”
그녀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곧바로 전화하지 않았다.
혹여 친구와 토론을 하는 것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10분, 30분.
참다못한 그녀가 다시 아들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든다.
그 순간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갑자기 울리는 그녀의 핸드폰.
모르는 번호지만, 혹시 몰라 전화를 받은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네?”
쿵!
그녀의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 * *
짝! 짝짝짝!
형사과 사무실을 울리는 뺨 때리는 소리.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자신이 얼마나 참고 견뎠던가.
하지만 아들이 더 힘들 것이기에 애써 참았다. 아들을 위해 헌신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나쁜 놈! 나쁜 놈!”
작은 체구의 오향숙의 손길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선우의 모습에 종혁이 그녀의 손을 잡는다.
오향숙이 뿌리치려 하지만 허사로 돌아간다.
“진정하세요, 어머님. 선우 학생이 나쁜 짓을 한 게 아닙니다.”
움찔!
“……후우. 죄송합니다, 형사님. 제가 불민하여 아이를 잘못 키운 탓입니다. 모두 자식을 잘못 가르친 제 탓입니다!”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선우 어머니의 모습에 형사들이 펄쩍 뛴다.
“아이고,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아이를 잘못 키우시다니요!”
다급히 손을 젓는 담당 형사.
아이를 잘못 키운 건 선우가 아니라 도진태들의 부모였다.
“여기 선우 학생은 나쁜 아이들의 질 나쁜 행동에 당한 것밖에 없습니다, 어머님!”
“……예?”
담당 형사는 다급히 상황을 설명했고, 그제야 굳어 있던 오향숙의 표정이 풀린다.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싱긋 웃는다.
“그런가요? 그러면 공부를 계속하는 데 지장이 없단 말이죠?”
“예? 아, 예. 그렇습니다.”
“휴. 다행이다.”
쿵!
종혁과 형사들이 눈을 껌뻑인다.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며 반사적으로 선우를 본다.
아직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우.
그러는 사이 오향숙이 그들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알겠습니다. 제 아이가 잘못이 없다니 이만 데려가 보겠습니다. 저 아이들 처벌은 알아서 해 주세요. 뭐하니, 일어나지 않고.”
……스윽!
눈에서 초점이 사라진 선우가 몸을 일으켜 어머니의 뒤를 따른다. 그러며 종혁을 바라본다.
원망조차 스며 있지 않은 공허한 눈.
“빨리 안 와?! 공부 안 할 거야?!”
고개를 돌린 선우는 오향숙의 뒤를 빠짝 따라붙고, 남겨진 형사들은 그런 그들을 황망히 쳐다본다.
종혁은 팽팽하게 당겨지는 뒷목을 주무른다.
“아, 아니…… 이게 뭐야…….”
“와, 씨.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방금 무슨 태풍이 지나간 걸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해가 풀렸음에도 아들의 안위보다 공부란 단어를 먼저 입에 담은 어머니.
또 그런 어머니의 행동에 순응을 해 버린 아들의 모습.
도저히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들의 머릿속이 엉클어진다.
하지만 종혁의 두 눈은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다.
찰칵! 치이익!
종혁의 가슴처럼 탁한 담배 연기가 뿜어진다.
“생각보다 더 지랄맞네.”
왜 좀 더 일찍 개입할 생각을 못했을까.
왜 이제야 선우를 찾은 걸까.
주먹을 쥔 종혁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미안합니다, 선우 학생.”
비운의 살인범 김선우.
그의 죄목은 존속 살해였다.
* * *
부우웅!
어둠을 헤치며 달리는 택시 안.
오향숙이 반대쪽 차창을 보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문다.
언제나 자신을 봤던 아들이 시선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음에 가슴이 찢어진다.
위로를 해야 할까. 사과를 해야 할까.
‘안 돼.’
안 된다. 사과를 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앞으로 남은 열 달을 위해 달리고 달려도 모자랄 때다.
독하게 마음을 먹어도 모자랄 때다.
겨우 잠깐 넘어진 걸로 호들갑을 떨었다간 선우가 약해진다.
‘너도 언젠가 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겠지.’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될 거다.
나중에 성공해 아이를 낳으면 이해해 줄 거다.
악독하게 마음을 먹은 그녀는 아들을 외면했고, 선우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주먹을 쥔다.
삐비비빅! 덜컹!
“얼른 씻고 나오렴. 엄마랑 이야기하고 공부해야지.”
이런 순간이라도, 아니 이런 순간이기에 더 교감을 해야 한다.
그딴 일은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걸 아들은 알아야 한다.
움찔!
선우가 멍하니 오향숙을 본다.
아들이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눈빛을 빛내는 엄마. 머리와 심장을 꽉 채우다 못해 터지려 했던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엄마, 나 맞았어요. 맞았단 말이에요.’
“……예.”
몸을 돌리는 선우가 입술을 깨문다.
‘그런데 엄마는 왜…… 똑같아요?’
탁! 쏴아아아!
욕조에 앉은 선우는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무릎을 끌어안았다.
“나 아픈데……. 많이 아픈데…….”
가슴이, 마음이 시리도록 춥고 아팠다.
* * *
다음 날, 아침 목포경찰서 인근의 국밥집.
함필성이 종혁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이른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던 종혁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던가.
“어제 일이 있었다며?”
“예. 잠깐 볼일이 있어 목포에 나왔다가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말을 들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던데?”
함필성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어제 피해자로서 진술서를 쓴 김선우라는 고등학생에게 보디가드를 붙였다던 종혁.
“가해자로 체포한 놈들이 꽤 불량해 보여서 말입니다.”
“말을 들어 보니 그렇긴 하더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포 여러 폭력 조직들에게 스카웃 대상이었다던 도진태와 패거리.
지금이야 목포에 태흥파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들은 이미 예전부터 경찰의 레이더에 포착된 상태였다.
“잘했어.”
그리고 고맙다.
사비를 써서라도 시민을 지켜 줘서.
“이 일은 내가 수습하지.”
“감사합니다.”
종혁은 담백하게 고개를 숙였고, 함필성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종혁은 국물을 뜨는 모습 그대로 굳어 함필성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