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72화>
최수미가 다가오자 선우가 하얗게 질리며 물러난다.
자신보다 키가 작은 여학생이지만 무섭다.
최수미의 남자친구도 무섭고, 그녀도 무섭다.
멈칫!
명백하게 자신을 두려워하는 신우의 모습에 걸음을 멈춰 선 최수미의 낯빛이 흐려진다.
“저기…….”
“마, 말해. 왜? 무, 무슨 일이야?”
“……사, 사과하려고.”
그리고 오해를 풀고 싶다.
“오해?”
“일단 사과부터 할게. 미안해. 나도 남자친구가 그렇게까지 할지 몰랐어.”
헛소리다.
남자친구가 나타나자마자 쪼르르 달려가 안겼던 최수미.
애당초 그럴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던 것이 명백했기에 오해란 있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사과를 한다고 고소를 취하해 줄 거라곤 생각하진 않아.”
‘응?’
선우는 당황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녀가 먼저 이렇게 나오니 머릿속이 엉클어진다.
“하지만 오해는 풀고 싶었어.”
이것도 개소리인 게 분명하다.
“내 남자친구…… 걔가 목포공고 도진태야.”
“……도진태?”
들어 본 적 있다.
목포공고 3학년 도진태.
중학생 때부터 목포에서 학생들 사이에 꽤 유명한 일진이다.
“나 걔 안 좋아해. 아무한테나 주먹 휘두르고 난폭한 걜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남자친구라고 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최수미는 선우의 물음에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선우는 대답을 듣지 않았음에도 무슨 일인지 대략 직감할 수 있었다.
“설마……. 아니, 경찰에 신고를 하지…….”
“뭐라고?”
움찔!
자신이랑 사귀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아직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한 것도 아니고, 협박을 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그걸 누가 믿겠는가.
“경찰이 믿어 줘서 조사를 해 봤자 훈방 조치로 끝날 거고……. 그러면 나는…….”
최수미가 양팔로 본인의 몸을 감싸며 부들부들 떤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선우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다가선다.
정말일까.
거짓말이라기엔 너무 떨고 있다.
“흑!”
‘헉?!’
선우는 갑자기 안기는 최수미의 모습에 굳어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을 토닥여 줘야 할까,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할까.
선우는 안절부절못하다 이내 그녀의 등을 다독인다.
괜찮다, 괜찮다 다독인다.
학원을 들어가는 학생들의 음흉하고 부러워하는 시선들에 얼굴이 빨개진다.
“……휴. 고마워.”
“아, 아니야.”
“고소는 취하하지 않아도 돼. 내가 어떻게 그런 걸 요구할 자격이 되겠어. 그냥 내 사정이 이렇다는 것만 말해 주려고 했던 거야. 수업 잘 들어.”
선우는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에, 그녀의 처량하고 왜소한 어깨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뜨거운 게 울컥 올라왔다.
“하, 할게.”
“응?”
“넌 취하할게.”
“선우야!”
선우는 최수미가 다가오려고 하자 다시 한 발 물러섰다.
그에 최수미가 멈춰 서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우리 이제 친하게 지내는 거 맞지?”
“그, 그래.”
“고마워! 내가 사과 받아 준 기념으로 맛있는 거 사 줄게!”
“응?”
“하루쯤은 학원 빠져도 되잖아. 가자!”
잡아끄는 그녀의 행동에 선우의 몸이 덜컥 굳는다.
그러곤 그녀의 팔을 잡아 떼어 낸다.
“아, 안 돼.”
“뭐?”
“학원 빠져선 안 돼.”
절대 안 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사과는 받았으니까 됐어. 너도 수업 잘 들어.”
선우는 무언가에 쫓기듯 학원 안으로 들어갔고, 남겨진 최수미는 그런 선우를 멍하니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나 지금 까인 거야?”
최수미의 얼굴이 구겨졌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웅성웅성.
“후우.”
책가방을 정리하는 학원생들 사이 한숨을 내쉰 선우도 가방을 정리한다.
이걸로 오늘이 끝나면 좋으련만, 집에 가서 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콱 틀어막힌다.
지금도 이렇게 피곤한데, 본격적으로 수험 준비에 들어가면 얼마나 더 힘들까.
남은 10개월이 아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수능을 보는 날이 오긴 올까.’
선우가 힘없이 걸음을 옮긴다.
“선우야!”
덥썩!
“윽?!”
다시금 콧속으로 빨려드는 복숭아향과 신체에 닿는 뭉클한 감촉.
선우의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제 또 어디 가? 다른 학원 가?”
“……아니.”
집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웩! 집에서 공부가 돼? 난 집에선 공부 못하겠던데. 그래서 학원 다니는 거잖아.”
“나도 가고 싶어…….”
“응?”
“아니야.”
“응? 뭐…… 아무튼 다른 학원 안 간다는 거지? 그럼 나랑 밥 먹을 시간 있겠네?”
왜일까. 왜 이렇게 밥을 먹고 싶어 하는 걸까.
“싫어? 아, 내가 너무 나댔지? 용서를 해 줬다고 해도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최수미의 낯빛이 흐려지자 선우는 당황했다.
자신이 너무 매정하게 대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냐. 가. 밥 먹을 시간은 있어.”
가볍게 뭘 먹고 왔다고 하면 엄마도 이해할 것이다.
그런 선우의 말에 최수미가 환하게 웃는다.
“와아! 가자! 고고고!”
‘나쁜 애가…… 아니구나.’
최수미는 안심하는 선우를 이끌고 학원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
편의점 바깥 테이블을 본 선우가 그대로 굳는다.
코를 찌르는 담배 연기와 이쪽을 비릿한 눈으로 쳐다보는 얼굴이 퉁퉁 부은 사람들. 아니, 일진들.
그리고 최수미의 손이 빠져나간다.
“웩! 씨발, 이런 것 좀 시키지 마! 토 나오려는 거 참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오구, 오구. 그랬쪄?”
“나 정말로 기분 더럽거든? 건드리지 마라. 아, 씨발. 찐따 냄새나는 것 같아.”
도진태를 향해 눈을 흘기는 최수미.
선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랬구나. 하긴…….’
저렇게 예쁜 최수미가 자신 같은 찐따와 어울릴 이유가 없잖은가. 가슴 한구석에서 생각했던 일이 현실에 됨에 선우가 많은 걸 내려놓게 된다.
도진태는 도망을 치려 하기는커녕 공포에 굳어 버린 선우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자리 좀 옮길까?”
여기는 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에 선우는 그냥 여기서 말하라고 말하려다가 어깨를 잡는 두꺼운 손에 포기해 버리고 만다.
그렇게 그들은 근처의 골목으로 들어간다.
퍼어억!
“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배를 얻어맞은 선우.
무릎을 꿇은 그가 침과 함께 고통을 쏟아 낸다.
“어이, 찐따. 내가 왜 왔는지 알지?”
안다. 이젠 완전히 알 것 같다.
뻐어억!
발로 얼굴을 얻어맞은 선우가 땅바닥을 구르고, 도진태는 놀라고 겁먹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다 시선을 돌리는 선우의 앞에 쪼그려 앉는다.
너무도 익숙한 눈빛.
선우는 이제 자신의 밥이었다.
툭!
도진태의 손바닥이 선우의 볼을 두드린다.
“좋게 말로 할 때 그런 거 아니라고 해라. 그냥 친구끼리 장난한 거라고.”
툭!
“그냥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거 가지고 괜히 안 해서 뒤지면 너도 억울하잖아.”
뒤진다. 죽는다.
선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죽어? 내가? 내가 왜?’
선우의 눈이 흔들린다.
툭!
“엄마랑 둘이서 산다며? 네 엄마도 죽여 줄까?”
“어, 엄마?”
순간 숨통이 옥죄어진다. 그의 고개가 푹 숙여진다.
“……지도.”
“뭐, 이 새끼야? 똑바로 말을 해, 새끼야!”
짜아악!
골목을 울리는 거북한 소리.
“하, 이 새끼가 끝까지 말을 안 하네. 넌 뒤졌다.”
도진태가 주먹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하, 이런 상큼한 애새끼들.”
저벅저벅!
골목 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의 모습에 도진태와 그 친구들이 딱딱하게 굳는다. 너무도 익숙하다 못해 증오스럽기까지 한 데자뷰.
다급히 고개를 돌린 도진태와 최수미들은 종혁과 다른 체격을 가진 누군가임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씨발! 아저씬 또 뭐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겁을 먹은 자신들의 모습에 수치심이 차오른 도진태들이 이십대 중반의 사내에게 다가간다.
“씨바랄 아저씨야.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세요. 요새 애들 존나 무섭거든요? 괜히 나이 어린 새끼한테 처맞고 질질 짜지 말고…….”
뻐어억!
“꺼흑?! 꺽! 꺽!”
심장을 얻어맞은 일진이 가슴을 움켜쥔 채 무너진다.
그런 그의 얼굴에 사내의 정강이가 날아든다.
뻐어억!
“……끄허어어! 꺼어억!”
찰칵! 화르륵!
“후우. 애새끼가 말이라고 뱉으면 단 줄 아나 보네. 이래서 애새끼들은 3일에 한 번씩 자진모리로 패 버려야 한다니까.”
치이익!
“끄아아아악……!”
불을 붙인 담배를 일진의 볼에 비벼 버린 사내가 무심한 눈으로 도진태들을 본다. 그러며 시끄럽다는 듯 일진의 얼굴을 다시 까 버린다.
주춤!
다르다. 저번 주에 친구를 반병신으로 만든 종혁과 결이 다른 부류다.
폭력이 너무도 익숙한 부류.
“어이, 너희 목포공고지?”
“……그, 그런데요?”
“그런데요? 아, 이 씨발 새끼들이 선배한테 그런데요? 씨발 상필이 이 개새끼는 후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움찔!
상필이란 이름에 도진태들이 하얗게 질린다.
상필은 작년에 졸업한 2년 선배이자, 목포공고 통합 짱이었던 선배이기 때문이다.
사내는 굳어 버린 그들을 보며 핸드폰을 들었다.
“씨발아. 어디냐? 아니, 5분 준다. 여기로 튀어 와.”
신경질적으로 통화를 종료한 사내가 입술을 비튼다.
“어이, 후배 새끼들. 딱 5분만 기다려.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 그리고…… 아이고, 괜찮니?”
다급히 선우에게 달려가 부축을 하는 사내.
“예? 예?”
“휴. 얼굴을 안 다쳤네.”
볼이 살짝 붓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많이 무서웠지? 어휴, 떠는 것 좀 봐. 춥니? 그래, 춥겠지. 자, 이것 좀 걸치고.”
자신의 점퍼를 벗어 선우에게 입혀 주는 사내.
코끝에 닿는 알싸한 담배 냄새에 선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5분이 흐르자 저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다가온다.
부아아아앙! 끼이이익!
“헉! 헉! 부, 부르셨습니까, 선배님!”
“어이. 좆상필이.”
“예, 선배님!”
신호 따위 모두 무시하며 달려온 이십대 청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을 부른 사람은 자신의 3년 선배이자, 목포 최대 조직 태흥파의 조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대가리 박아.”
“예?”
“대가리 박으라고, 개새끼야. 왜? 푸닥거리 한 번 하고 박을래?”
“예, 예!”
쿵!
“아.”
망설임 없이 머리를 박는 그의 모습에 아득한 절망이 도진태들을 찾아들었다. 공포에 질려 주저앉은 최수미의 엉덩이 아래가 축축해졌다.
* * *
부우웅!
골목 앞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내린 종혁이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끄으.”
“끄으응.”
“하, 이 개새끼들. 겨우 이 정도로 힘들…… 헉! 오, 오셨습니까!”
태흥파 조직원의 인사를 무시한 종혁이 차디찬 바닥에 머리를 심고 있는 도진태들을 무심히 응시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선우를 본다.
배와 얼굴에 남은 구타의 흔적.
빡!
종혁의 구두 끝이 태흥파 조직원의 정강이를 때린다.
“큽?!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꺼져.”
허리를 깊이 숙인 태흥파 조직원은 다급히 사라졌고, 종혁은 아직도 멍해 있는 선우에게 다가갔다.
“선우 학생, 괜찮아?”
“……흑!”
안 괜찮다. 괜찮지 않았다.
종혁은 자신의 품에 안겨 펑펑 우는 선우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이태흥에게 맡기면 안 될 것 같다.
“예, 수고하십니다. 신안경찰서장 최종혁입니다. 지금 제가 있는 장소로 순마 두 대만 보내 주시겠습니까? 실어 날라야 할 새끼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목포서 형사과로 가야 하니까…….”
“아, 안 돼요!”
기겁한 선우가 고개를 들었지만, 종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신고를 마친 종혁이 선우를 본다.
“선우 학생, 어머님 전화번호가 어떻게 돼?”
파랗게 질린 선우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학생, 벌써 귀가 시간이 한참 늦었잖아. 이번 일 어머님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더 혼나게 될 거야.”
“예?”
지이잉! 지이잉!
종혁은 거보라는 듯 맹렬하게 울기 시작한 핸드폰을 가리켰고, 발신자를 확인한 선우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그의 두 눈이 공포에 질려 갔다.
지이잉! 지이잉!
선우는 핸드폰을 차마 잡지 못했다.
* * *
“아, 안 되는데…….”
손톱을 깨문 선우가 다리를 떤다.
“학생, 괜찮아요. 학생이 잘못한 거 없잖아요. 부모님도 다 이해해 주실 테…… 어이구. 자자, 이거 좀 마시면서 긴장 풀어요.”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선우는 더욱 몸을 움츠리며 떨었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 모습에 목포서 형사과 형사가 속으로 한숨을 쉰다.
그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도진태들을 노려본다.
대체 애를 어떻게 잡았으면 애가 이렇게 패닉에 빠져 있을까.
형사가 서류철을 움켜쥐며 드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저기, 여기에 제 아들 김선우가…….”
쿠당탕!
“어, 엄마!”
의자를 박차며 일어난 선우가 새파랗게 질리고, 선우의 어머니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는다.
또각또각!
“아이고, 선우 어머님 오셨…….”
짜아악!
목포경찰서 형사과 사무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멍하니 아들의 뺨을 후려친 어머니를 바라보는 형사들.
선우 어머니의 볼이 푸들부들 떨린다.
“네, 네가 감히…….”
‘아.’
또르륵!
선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럴 줄 알았다.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선우는 힘없이 주저앉았고, 종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짜아악!
선우의 고개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