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71화>
골목 안으로 들어선 종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손을 든 덩치 큰 남학생과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남학생.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킬킬 웃고 있는 다른 학생들.
심지어 방금 전 저 몸을 웅크린 학생의 팔을 이끌며 골목에 들어갔던 여학생은 킬킬 웃는 학생들 중 한 명에게 매달려 있다.
단숨에 모든 상황이 파악된다.
“와아.”
박수를 쳐 줄 정도로 창의적이다.
“왜 나쁜 새끼들은 이렇게 머리가 좋지?”
아주 범죄 꿈나무다. 그렇기에 더 짜증이 난다.
“아저씬 또 뭐야?”
“어이, 아저씨. 그냥 가지?”
“오?”
신선한 반응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덩치를 보면 겁먹어 잘 말하지 못하는데, 역시 눈에 뵈는 거 없는 십대라서 그런지 겁을 잘 먹질 않는다.
아무래도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학생을 위협하는 2미터 크기의 학생 때문인 것 같다.
“아저씨, 그냥 가시라고요. 예?”
쿡!
“요새 애들은 무섭거든요?”
종혁에게 다가온 학생 한 명이 검지를 세워 종혁의 가슴을 찌른다. 그에 종혁이 푸근히 웃는다.
“새끼.”
쩌어억! 쿵!
뭔가 터지면서 부서지는 듯한 소리에 골목 안이 침묵에 휩싸인다. 솥뚜껑만 한 종혁의 손바닥에 얻어맞고 옆 건물에 처박힌 자신들의 친구.
“이런 씨발!”
종혁을 향해 달려드는 무리 중 한 명.
종혁은 주먹을 피하며 그의 머리채를 잡아 꺾는다.
그리고…….
“바른 말. 고운 말. 새끼야.”
퍽퍽퍽퍽퍽!
“꺼흑! 꺼흐흑!”
순식간에 얻어맞은 복부를 움켜쥔 학생은 무릎을 꿇으며 흐느꼈고, 골목엔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에 선우를 상대하던 학생이 목을 꺾으며 다가온다.
“어디서 좀 노셨나 본데……!”
번개처럼 종혁의 옷깃을 향해 손을 뻗는 덩치 큰 학생.
‘유도?’
콱!
“걸렸어!”
종혁은 그대로 몸을 돌리며 엉덩이를 내미는 덩치 큰 학생의 모습에 이 학생이 유도를 배웠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도를 배웠는데도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다?’
이 유도 기술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괴롭혀 온 걸까.
“그렇다면 이 양팔은 필요가 없겠네.”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종혁이 옷깃을 잡은 손을 떼어 내며 양 옆구리에 낀다.
“어?”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을 거다.”
오싹!
“아, 안…….”
뿌드드드득!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종혁은 눈물, 콧물을 쏟아 내며 바닥을 구르는 학생을 일견하며 여학생과 함께 서 있는 남학생을 바라봤다.
키도 크고 몸도 탄탄한 게 딱 봐도 이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양아치.
“뭐냐? 넌 안 들어오냐? 네 친구들 다 뻗었잖아. 복수해야지.”
“다, 당신! 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여, 여기요! 경찰서죠!”
“에휴. 새끼야.”
왜 이런 새끼들은 지들 불리할 때만 어른을 찾는 걸까.
종혁이 그에게 발을 내딛는다.
“씨발! 한 발자국이라도 더 와 봐! 나 지금 신고 중…….”
쩌억!
“꺄아아악!”
“시끄러워요, 학생. 학생도 맞을래요?”
다급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최수미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인 종혁이 뺨을 맞고 넘어진 학생의 핸드폰을 집어 든다.
-여보세요? 괜찮습니까? 지금 어디십니까?
꿈틀!
‘이런 상황에선 곧바로 인근 순찰차를 급파하는 게 매뉴얼일 텐데?’
이딴 걸 물을 시간에 상황을 통제할 인력을 출동시킨다. 이것이 바뀐 매뉴얼이다.
아무래도 목포서장에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신안경찰서장 최종혁 총경입니다. 지금 여기가 평화광장 맞은편 꿈동산식당 옆 골목이거든요? 구급차 세 대 부탁드립니다.”
삐요오옹!
“아, 순찰차가 도착했네요. 빨리 출동하시네.”
‘근처에 있었나?’
아무래도 목포서장에겐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지금 손 흔드는 사람이 저니까 멈춰 서라고 하세요.”
종혁은 골목 밖으로 나가 손을 흔들었다.
“추, 충성!”
종혁의 경찰공무원증을 본 파출소 경찰들이 다급히 경례를 한다.
“얘들 병원에 입원시켜서 치료받게 하고, 그 후에 따로 소환해서 특수폭행과 특수협박, 갈취 미수로 조서 꾸미세요. 아, 저 여학생도 한 패거리니까 같이 소환시키고요. 어이, 학생! 몇 살이야?”
“여, 열아홉이요…….”
“들었죠?”
촉법소년은 훨씬 지난 나이.
아직 만 19세를 넘지 않았기에 소년법이 보호하는 나이라고 해도, 앞에 특수라는 글자가 붙은 범죄는 중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아, 알겠습니다! 박 순경, 구급차 지금 어디쯤이래?”
종혁은 다급해진 경찰들을 뒤로하며 선우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학…… 생?”
손을 내밀던 종혁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 얼굴은?’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아니, 강렬하게 남아 있는 얼굴이다.
그 살인이 결국 경찰의 잘못으로 비롯됐음에.
계속 내밀었던 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잡아 주지 못했음에.
‘그래, 너였구나.’
곧 보려고 했던 학생.
올해 말,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비운의 살인범.
‘김선우…….’
선우는 멍하니 종혁을 바라봤다.
* * *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난생처음 겪은 일에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그보다 더 그를 괴롭게 하는 건 짝사랑 상대였던 최수미의 배신이다.
“바보.”
넋이 나가 어떻게 걸어온 줄도 모른 채 집 앞까지 도착한 선우가 얼굴을 구긴다.
현관문을 보자 정신이 번뜩 차려진다.
“이번 주 토요일에 연락이 오면 경찰서로 가라고 했지.”
말이 어려워 잘 이해할 순 없지만, 경찰서로 넘어갈 만큼 중대한 사건이니 경찰서로 가라고 했다.
“씨이.”
엄마한텐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심장이 더 거세게 뛴다.
쿵쿵!
답답해지는 가슴을 두드린다.
“아.”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던 선우의 눈에 더러워진 교복이 비친다.
‘얼굴에도 상처가 났을 건데…….’
입술이 따끔거리고, 아깐 피도 났었다.
이건 또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까.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말까?”
안 된다. 그러면 큰일 난다.
하지만 버틸 수도 없는 게 자신이 들어올 때까지 엄마는 주무시지 않는다.
결국 포기한 선우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앉아 책을 보고 있던 작은 체구의 중년 여성이 몸을 일으켜 다가온다.
“늦었네? 밥은?”
“저, 저녁은 먹었어요.”
차마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
선우의 모친은 그런 아들을 바라보다 몸을 돌린다.
“배고프겠다. 얼른 씻고 나와. 간식 먹고 공부해야지.”
‘눈치채지 못한 건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다.
선우는 부엌으로 향하는 엄마를 바라보다 얼른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솔직히 알아차리지 못한 게 좀 서운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선우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앉은 식탁.
“아들, 오늘 학교에선 어땠어. 공부는 뭐 했어?”
파인애플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선우는 다정하게 물어 오는 엄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 * *
“꺼흐.”
트림을 토해 낸 종혁이 뒷목을 주무른다.
“어젠 많이 안 마셨는데…….”
2차로 따뜻한 감자탕에 소주를 마시는 걸로 끝낸 어제의 술자리.
노래방이나 유흥주점 같은 곳은 가지 않았다. 목포서장이 꺼려 해서다.
그로 인해 후끈 달아오를 때 술자리는 끝나 버렸고,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흠.”
‘딱히 별거 없었지?’
다들 거나하게 취하긴 했지만, 사건이나 취미 이야기 말고는 나눈 이야기가 없다.
견찰은 아닌 것 같음에 종혁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다 곧 선우의 얼굴이 종혁의 눈앞에 떠오른다.
“후우. 어떻게 해야 할까.”
쿵! 쿵!
“예, 들어오세요. 아, 생안계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충성.”
“앉으세요. 커피?”
“주시면 감사하죠.”
몸을 일으킨 종혁이 커피를 타온다.
“믹스커피는 잘 마시지 않다 보니 원두커피밖에 없습니다.”
“어이쿠. 이거 신안서에 온 덕분에 입이 호사를 누립니다.”
신안에서 오기 전까지만 해도 믹스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던 그. 생안계장뿐만이 아니라 경찰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신안경찰서에 발령을 받자마자 거의 매시간마다 1층 로비 사랑방 커피숍에서 파는 커피와 쿠키로 입과 배를 채우고, 이렇게 가끔 서장실에 들를 때엔 발음하기도 어려운 원두커피로 목을 축인다.
“하하. 양갱도 괜찮으시죠?”
“어이구구. 없어서 못 먹죠.”
어디 서장실 냉장고에 있는 간식들이 보통 간식인가.
강남 백화점이나 5성급 호텔 등에서만 한정판으로 파는 것들이다. 이곳 신안은 물론이고, 가까운 대도시인 광주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할 것들.
“잘 먹겠습니다. 으음.”
입안에서 녹듯 사라지는 달지 않은 양갱과 희미하게 남아 있는 단맛마저 깔끔하게 지워 내는 상큼하고 고소한 커피의 향.
생활안전계 계장의 얼굴이 느슨하게 풀린다.
달그락!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아차. 내 정신 좀 봐. 다름이 아니라 목포서에 공문을 보낼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목포서 생안계에 말입니까?”
그럼 그냥 보내면 되지 않냐는 듯한 물음에 생안계장이 어떤 서류를 내민다.
“목포의 고등학생 중 경찰대와 중경으로 진학하는 학생들 숫자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경찰학교, 즉 순경 지원을 하는 학생들의 숫자도 적혀 있다.
“호오?”
눈을 빛내며 서류를 살핀 종혁이 흥미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이거 꽤 되는데요? 아, 그러고 보니 제 경찰대 기수에도 목포 출신이 여섯 명이나 있었죠.”
정원 백여 명 가운데, 목포에서만 여섯 명. 이는 굉장히 많은 숫자라고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순경이나 경찰행정 쪽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로 굉장히 많았다.
“확실히 이 정도면 대전, 광주랑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데요?”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와 인구수 차이는 약 6배에 달하는데, 경찰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거의 비슷했다.
이는 목포서에 다른 지방 경찰서에는 없는 특별한 노하우가, 학생들이 경찰을 미래의 직업으로 삼고 싶게끔 만든 노하우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서장님께서 올려 주신 신안서의 격을 저희가 떨어트릴 순 없잖습니까. 하하.”
모든 부서가 잘해야 누구나 오고 싶은 신안경찰서가 될 터.
어제 계장들끼리 한잔하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생활안전계장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끄응. 이거 목포서장님과 찐하게 한잔해야겠네요.”
남의 영업 비밀을 알아내야 하는 일. 보통 기름칠 가지곤 어림도 없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부하 직원이 이렇게 열의를 보이는데 수장이 되어서 초를 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냥 단합회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목포서장은 어떻게 잘 구슬린다고 해도, 아랫사람들까지 온전히 따라 줄까.
그래서 떠올린 방법이 바로 단합회.
서로 웃고 떠들며 몸으로 부딪치다 보면 금세 친해지는 법.
거기에 술까지 곁들이면 게임은 끝이라고 봐야 했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충성. 신안서장입니다, 선배님. 이렇게 연락을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겨울이라 별일도 없으니 다리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목포서와 저희 신안서가 단합회를 해 보는 건 어떨까 해서 말입니다. 1등 상품은, 글쎄요…… 5박 6일 가족 동반 동남아 여행권으로 할까요? 호텔까지 포함해서요.”
“허억?!”
생활안전계장뿐만 아니라 전화를 받는 목포서장 함필성 역시도 입을 떡 벌렸다.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목포를 돌아다닐 명분이 필요했는데, 딱 맞게 명분이 생겼다.
* * *
“으.”
늦은 오후, 쉬는 시간이 되자 선우가 통증이 치미는 배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허벅지를 문지르는 그.
조용히 이를 악문 선우가 고통을 참아 낸다.
그 순간이었다.
드륵! 쾅!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다.
‘어? 쟤들은?’
전남에서 공부를 제법 한다는 이들만 모이는 목포고였지만, 그것도 평준화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의 이야기.
2005년부터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시행된 이후부터는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도 제법 입학하게 되었다.
지금 들어오는 이들은 그런 학생들, 그중에서도 일진들이었다.
“여기 김선우가 누구냐?”
움찔!
모두의 시선이 선우에게로 향한다.
“나, 난데?”
“너야? 따라 나와.”
“왜, 왜?”
가기 싫다.
“그럼 교실에서 얻어 터질래?”
쿵!
몸의 모든 피가 빠져나가는 아찔함에 주위를 둘러본 선우는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시선을 피하는 학급 친구들.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을 깨달은 선우는 어쩔 수 없이 일진들을 따라나서야 했다.
쿠웅!
“컥?!”
고등학교 건물 뒤편, 멱살이 잡혀 벽에 밀쳐진 선우가 방금 전보다 더한 공포에 질린다.
“어제 너 때문에 강현이가 다쳤다며?”
“켁! 케엑! 가, 강현이가…… 누군데…….”
“어제 네가 부른 웬 개새끼 때문에 양팔이 부러진 내 친구, 새끼야!”
전남 도대표 유도선수인 친구.
유도로 대학에 갈 친구였는데, 어제 일로 인해 더 이상의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모, 몰라……. 모르는 사람이었단 말이야…… 케에엑!”
“너랑 전화번호 교환했잖아!”
“그, 그건…….”
억울하다. 맞은 건 자신인데, 왜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퍼어억!
“커헉!”
“말 안 해? 안 할 거지?”
“그, 그 아저씨 겨, 경찰이야.”
“뭐?”
“그 아저씨 경찰이라고-!”
경찰. 거의 반사적으로 멱살을 푼 일진 무리의 눈이 흔들린다.
“경찰이라고?”
“으응. 신안경찰서 서장이라고 했어.”
“……아, 씨발. 이 새끼들은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을 해 주지. 야, 미안하다?”
“아, 아니야.”
“그럼 당연히 아니어야지.”
움찔!
일진 무리는 몸을 움츠리며 시선을 피하는 선우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아니, 보기 싫은데…….’
하지만 절대 할 수 없는 말.
오늘도 온몸을 엄습하는 무력감에 선우는 입술을 깨물며 교실로 향한다.
그러나 오늘 그에게 닥친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우야.”
‘최수미…….’
학원 앞, 선우는 뻔뻔하게 자신의 앞에 나타난 최수미의 모습에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