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69화 (769/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69화>

    134. 사랑의 다른 이름

    늦은 밤, 서울의 한 지하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종혁이 시계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힌다.

    “11시 2분…….”

    시간이 지났다. 2011년 여대생 피살 사건의 피해자인 여대생이 죽은 시각이.

    집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다 이 자리, 이곳에서 뒤통수가 함몰되어 죽은 여대생.

    “지하도에 설치되어 있던 CCTV는 모두 고장.”

    흉기를 비롯해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어떠한 단서도 발견하지 못해 결국 미제로 남게 되었던 사건이다.

    찰칵! 화르르르!

    종혁은 타들어 가는 여대생의 사진을 서늘한 눈으로 노려보다 몸을 돌렸다.

    * * *

    -아덴만 여명 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던…….

    TV를 끈 종혁이 기지개를 켠다.

    이 시기 국민들을 떠들썩하게 만든 소말리아 해적 피랍 사건. 이번에도 무사히 구해 낸 것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종국 센터장님이 가셨으니 이번에도 무사히 치료해 낼 테고…….”

    ‘이걸로 깡패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거둬졌네.’

    앞으로 며칠은 이 사건으로 떠들썩할 터. 이태흥들이 움직이기 딱 좋은 타이밍이 됐다.

    옅게 웃은 종혁이 외투를 들며 집을 나선다.

    “하아.”

    ‘따뜻하네.’

    입 밖으로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지만, 춥다 못해 살을 베는 듯했던 서울과 달리 포근하다.

    꼬르륵!

    종혁의 발걸음이 경찰서 앞 편의점으로 향한다.

    “아이고! 오셨어라, 서장님!”

    이른 아침부터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는 신복동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종혁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린다.

    아직 이겨 낸 게 아니다. 자식에게 배신당해 아내를 잃고, 본인의 목숨마저 위험했던 충격이 그렇게 쉽게 가실까.

    그럼에도 웃으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참 고마울 뿐이다.

    종혁은 신선 코너로 다가가 햄버거와 삼각김밥 등을 집어 든다.

    “아따, 또 밥을 안 자셨소?”

    “흐흐. 계산해 주세요.”

    “계산은 무신. 그냥 들고 가쇼. 앞으로 우리 서장님은…….”

    턱!

    종혁이 십만 원 수표를 내려놓자 신복동이 그대로 굳는다.

    “에헤이. 걍 들고…….”

    턱!

    이번엔 백만 원짜리 수표.

    싱글벙글 웃는 종혁의 얼굴을 본 신복동이 이내 한숨을 쉬며 계산을 한다.

    삑! 삑!

    “일은 계속하실 생각이세요?”

    “……해야지라. 이 나이에 집에서 뒹굴믄 사람들이 욕한당께요. 괜히 처지기나 하고.”

    그리고 고향을 떠나 봤자 괜히 헛생각만 들 뿐이다.

    물론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자식에게 죽을 뻔했는데, 주변 시선이 온전할까.

    하지만 어딜 가도 이 아픔을 털어 버릴 수 없는 걸 알기에 그냥 남기로 했다.

    “우리 사장님 일 중독이시네.”

    “푸흐. 여태껏 요로코롬 살아왔는디 우짜겠어라.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잘 부탁드리겄습니다, 서장님. 얼릉 아무 아가씨 낚아채서 결혼하시고.”

    “킁!”

    “낄낄낄!”

    고개를 저은 종혁은 봉지를 집어 들며 편의점을 나선다.

    ‘그래요. 사시는 겁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짐을 한 덩이 내려놓은 종혁이 한결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경찰서 안으로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흠칫!

    종혁이 걸음을 멈춰 세운다.

    “전체 차렷! 서울에서 신안서를 알리고 복귀하신 서장님을 향하여 경례!”

    “충! 성!”

    종혁은 경찰서 로비에 서서 경례를 하는 경찰들에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몰래카메라인가?’

    * * *

    “하하핫! 놀라셨습니까?”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 담겨 있는 각 계의 계장들.

    그럴 수밖에 없다.

    전국의 깡패 1800여 명을 검거하는 대작전에 자신들의 서장이 자문으로 참여했다. 깡시골의 경찰서인 신안경찰서의 격이 한 단계 상승한 것이다.

    종혁이 특수본의 본청 간부들과 나란히 서서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는 모습을 보던 그 감동이란…….

    여기에 광주광역시와 목포 깡패 검거에도 신안경찰서가 한 손 보탤 수 있게 됐다.

    본래라면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신안경찰서.

    모두 종혁 덕분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종혁은 그들에게 각 계에서 몇 명씩 차출해 검거 작전에 투입시키게 함으로써 신안경찰서 모든 계가 막대한 인사고과와 상여금의 은총을 입게 했다.

    그래서 이런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다.

    “이야, 이거 경무관으로 진급하시는 거 아닙니까?”

    10만 경찰 조직에서 100명도 채 되지 않는 계급인 경무관. 여기서부터는 간부 중에서도 고위 간부라 불릴 수 있는 위치였다.

    종혁이 경무관이 된다면, 또 한 번 역대 최연소를 갱신하는 것이었다.

    “경무관은 무슨. 경무관이 그렇게 쉽나요.”

    2009년부터 2년간, 짧은 기간이었으나 그사이에 종혁이 해결한 사건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그 실적들만 놓고 보자면 종혁은 충분히 경무관 특진이 가능하다고 남았다.

    그러나 고작 31살에 경무관이 된다?

    시민을 지키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능력보다 우선시해야 할 건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 때문에 조직의 체계까지 무너질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종혁은 체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특진을 제안받았다 하더라도 거절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상으로 승진을 하면, 경무관이 된다면 정말 현장에서 뛰기 어려워질 수도 있었으니까.

    “대신 우리 신안서를 위한 특진 점수와 상여금은 넘치도록 가져왔으니, 이번 작전에 참가한 분들께 골고루 나눠 주세요.”

    “허어…….”

    “앞으로 영원히 딸랑거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집부터 청소해 드릴깝쇼?”

    “하하핫!”

    사무실의 분위기가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온화해졌다. 역시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였다.

    “아, 그보다 목포와 광주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서울 쪽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챙겨 보질 못했는데 말입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의 여파가 가시면 검찰이 움직일 거다. 대한민국 전체가 뒤집힌다고 봐야 했다.

    분위기가 살벌해지기 전에 어느 정도 파악은 해 놔야 했다.

    “음. 일단 광주 쪽 파출소장들과 계장급들, 경찰서장 두 분의 목이 날아갔습니다.”

    종혁의 눈이 동그래진다.

    “설마?”

    “예. 신21세기파와 선양OB파한테 돈을 받아먹은 것 같습니다.”

    “서장 두 분 다 완전히 옷을 벗으신 겁니까?”

    “시골 경찰서로 인사이동을 하는 걸로 마무리됐습니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포는요?”

    “목포서장님이 이번에 쩌그 태백경찰서로 가신 것 같아라.”

    “그렇습니까…….”

    이건 알고 있다.

    “그럼 깡패들 쪽은 어떻습니까?”

    그 물음에 계장들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이 전라도에 태흥파만 남게 됐습니다.”

    소규모의 조직들은 꽤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규모가 제법 있는 조직들 중에선 태흥파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태흥, 이 썩을 놈이 제법 영리하게 대처했지라.”

    경찰 조사가 들어가자마자 조직원 10명을 자수를 시킨 이태흥.

    빌미가 잡힐 수 있는, 자신들이 엮일 만한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일에는 먼저 선수를 쳐서 자수를 시킨 것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해 보기도 전에 죄다 자수를 해 버리니, 더 털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태흥파만이 유일하게 약간의 손실만으로 태풍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곧바로 목포와 광주를 접수했지라.”

    “그뿐만 아니라 전주와 군산 등 전라북도도 접수했습니다.”

    태흥파는 조직원 10명을 희생한 대가로, 영역을 크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300명이 넘는 조직원을 추가로 영입할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태흥건설 및 산하 계열사의 직원으로 채용된 것이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경찰은 없었다.

    이로써 태흥파는 명실상부 전라도 최대 조직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믄…… 아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디, 요 새끼가 전라도에서 활동하던 마약 밀매 조직들을 조지고 다닌다는 거지라.”

    “그러니까. 나도 그 새끼가 왜 그러는 건지 궁금했어. 태흥이 새끼 옛날에 마약에 크게 데인 적이라도 있는 거야?”

    “없어. 그래서 의문인 거지.”

    “뭐, 아무튼 별다른 말썽을 일으키진 않고 있어서 전남청에서도 그냥 예의주시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새끼 죽을 날짜라도 받아 놓은 거 아녀?”

    “하하. 그냥 마음을 고쳐먹은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종혁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보는 계장들의 시선을 피하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군.’

    약속한 걸 잘 지키고 있는 듯하다.

    종혁은 표정을 굳혔다.

    “곧 검찰이 포문을 열면, 전라도를 비롯해 전국이 뒤집어질 겁니다.”

    깡패들의 뒤를 봐주던 정재계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로 소환될 테고, 그들이 엮여 일으킨 불법적인 일들이 드러난다면 한동안 바빠질 터였다.

    “뭐, 신안은 별일 없겠지만요.”

    시골 중의 시골인 신안은 먹을 게 없는 만큼 더러운 이권이 개입될 일이 적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인력 파견이나 협조 요청이 들어오면 거부하지 말고 들어주도록 하세요. 웬만한 상황이 아니라면요.”

    그래야 자신도 훗날 명분이 생길 테니 말이다.

    “으음. 뭐, 서로 식구가 부족한 거 다 아니까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짝!

    순순히 수긍해 주는 계장들의 모습에 고맙다 웃은 종혁이 박수를 친다.

    “자, 그럼 제 복귀 기념으로 아침 회의는 이쯤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죠.”

    아침밥도 먹고, 그동안 밀린 일감들도 검토해야 한다. 1분 1초가 절실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저희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런데 오늘 저녁에 한잔 어떠십니까? 겨울엔 방어가! 크으!”

    이번에 특진 포인트들을 받을 직원들을 싹 다 불러다 회식을 하는 거다. 그러면서 종혁도 폼을 좀 잡고 말이다.

    “하하. 말씀은 고마운데, 오늘은 안 될 것 같네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예.”

    이번에 새로이 부임한 목포경찰서에 부임한 서장 및 주변 군 서장들과의 식사 약속이 잡혀 있다. 뺄 수 없는 자리였다.

    “대신 내일은 괜찮으니 내일 회식을 하도록 하죠. 신안서 전체 회식을!”

    “오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충성!”

    종혁은 경례를 하는 그들에게 마주 경례하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신안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 * *

    퇴근 후 종혁이 향한 곳은 목포의 평화광장이었다.

    웅성웅성!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음에도 평화광장을 꽉 채운 사람들.

    누군가는 연인과 함께 길을 재촉하고, 누군가는 감성에 젖어 술잔을 기울인다.

    정복을 벗고 정장을 입은 종혁이 향한 곳은 한 횟집이었다.

    드륵!

    ‘아이고.’

    방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이미 와 있는 장년인들의 모습에 아차 싶었다.

    “오, 최 서장 왔어?”

    서장이란 말에 몇몇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이번에 부임한 경찰서장들이다.

    “죄송합니다. 먼 곳을 다녀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신안경찰서 서장 최종혁입니다. 충성.”

    “……젊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에 목포서에 부임한 서장 함필성입니다.”

    ‘어?’

    꽤 희귀한 성씨인 함씨.

    함경필 전남청장이 떠오른다.

    꽤 중후한 인상의 장년인이 일어서 손을 내밀고, 이번에 인사이동을 한 다른 서장들도 인사를 한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쏟아진다.

    “끙. 늦었으니 벌주 한 잔 마시고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으하핫! 한 잔 가지고 되겠어? 석 잔 마시고, 여기 방어도 먹어!”

    “하하. 감사합니다!”

    ‘방어를 여기서 먹네.’

    참 공교로운 우연이다.

    글라스에 가득 한 잔 따라서 원샷을 한 종혁이 방어를 듬뿍 떠서 입에 가져간다.

    ‘으음.’

    입안에서 뭉개지는 묵직한 지방의 맛. 물이 제대로 오른 대방어다.

    “자, 우리 최 서장도 목을 충분히 축인 것 같으니…….”

    어서 특수본의 썰을 풀어 봐라. 그런 압박에 종혁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처음 강남범동방파를 인식했을 때부터 만들어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며 각 경찰서의 서장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까.’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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